복음과 율법의 이원론
2013-06-24 00:57:33
율법과 복음의 이원론은 구약과 신약사이에 있는 단층에서 기인한다. 사실 이 단층은 성경의 단층이라기 보다는 성경을 읽는 시각의 단층일 것이다. 구약을 율법으로 단순화하고 신약을 율법에 대립되는 복음으로 왜곡한 것이다. 율법과 복음의 이원론이라는 신학이 하나님나라에 끼친 해악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나라의 진행을 가로막는 큰 장애가 아닐 수 없다. 개신교는 아직도 이 장애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복음과 율법의 이원론은 구약과 신약의 상관 관계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 것이고 이런 신학은 나아가 신약 해석에도 악영향을 미쳐서 믿음과 행위의 이원론을 낳은 모태역할을 하였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런 이원론의 뿌리는 종교개혁으로 거술러 올라간다. 특히 루터로 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의 신학에는 독일인 루터가 가진 이원론적 기질이 유감없이 성경 해석에 발휘되었고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율법과 복음의 이원론일 것이다.
구약을 율법이란 말로 단순화시키고 율법을 부정적인 것으로 매도한 것은 구약이 대한 이해가 얼마나 왜곡되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샌더스는 1세기 유대문헌들을 광범위하게 연구한 결과 1세기 유대교는 율법주의 종교가 아니라 오히려 은혜의 종교라는 폭탄적 선언을 하였다. 유대교의 율법은 그것을 준수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이 그 언약관계안에 머물기 위한 수단이라고 샌더스는 유대교의 율법의 의미를 재해석한 것이다. 샌더스는 구약의 율법이 행위법이 아니라 언약법인 것을 정확하게 발견한 것이다. 샌더스는 이것을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 라 명명하고 이 언약적 율법주의를 모든 유대교 흐름의 공통분모로 간주하였다. 사실 샌더스의 이런 결론은 굳이 1세기 유대교 문헌을 연구하지 않더라도 구약성경을 통하여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너무도 당연한 이런 사실이 21세기에에 와서 밝혀졌다는 것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밥만 먹으면 구약을 파고 들었던 수많은 구약학자들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구약에 나타난 율법의 근본법인 십계명이 주어진 것을 보아도 율법이 율법준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되는 수단이 아님이 분명하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것은 이미 그들이 존재하기도 전에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결정된 일이다. 그리고 시내산 언약을 맺을 때도 율법준수는 언약을 맺는 전제 조건이 아니었고 언약관계를 전제로 하고 주어진 일종의 언약법이었다. 즉 울법은 이미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법이었지 하나님나라 백성이 되는 조건으로 주어진 법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율법의 성격이 분명히 드러나는데 그것은 율법은 하나님나라 백성들에게 주어진 하나님나라 법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나라의 왕이신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나라가 진행되는 원리로서 주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유대교를 율법주의 종교라고 이해한 것은 율법에 대한 심각한 오해가 아닐 수 없다.
샌더스의 폭탄적 선언은 종교개혁이래 율법에 대한 전통적 관념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한 것이다. 샌더스의 주장이 맞다면 복음과 율법, 믿음과 행위라는 이원론적 신학구조에 익숙한 전통적 개신교 신학은 재검토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율법이 복음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면 바울이 그렇게 반대하였던 율법의 행위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 신학이 바울에 대한 소위 새관점(new perspective on Paul) 인 것이다. 새관점 학파들은 바울이 율법 전반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 이방인의 맥락에서 유대인들을 이방인과 구별되게 하는 음식법, 절기법, 할례, 제사법과 같은 이미 신약적 경륜에서 무의미하게 된 율법준수를 반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새관점 학파들의 이런 주장은 바울 서신 전체에 흐르고 있는 율법 전반에 대한 부정적 표현들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바울은 새관점 학파가 주장하는 그런 측면에서 율법을 부정적으로 말한 것도 사실이지만 율법 전체에 대한 부정적 표현을 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율법에 대한 이런 논란과 관련하여 우리가 먼저 생각할 점은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 과연 무엇인가하는 것이다. 복음의 기원은 당연히 복음서에서 출발하여야 할 것이다. 시기적으로는 바울서신이 복음서보다 먼저 기록되었다 할지라도 전승으로 내려온 복음서의 내용들은 바울서신의 신학적 토대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분명 복음서가 문서화되기 이전에 전승을 통하여 복음서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의 신학은 복음서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신학은 복음서 신학에 대한 바울의 해석일 것이며 복음서의 신학과 바울의 신학은 대립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복음서가 말하는 복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의 공사역에서 나타난 첫 선언에서 보듯이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나라의 임박한 도래 이것이 바로 기쁜 소식 즐거운 소식이었던 것이다. 이 선포는 이방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당시 하나님나라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들에게 하나님나라란 이스라엘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나라였다. 바빌론 포로 이후 한번도 독립된 국권을 회복하지 못한 채 현재는 로마의 식민지로 있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나라의 임박한 도래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우리는 왜 그 선포가 복음이 되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도래의 선언은 다윗의 후손으로 약속된 메시야의 등장으로 이스라엘의 국권이 회복되며 다윗시대를 능가하는 영광스러운 시대가 열리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은 진정 이스라엘에게 말 그대로 기쁘고 즐거운 소식 곧 복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복음은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온 만민에게도 복음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나라의 도래는 이스라엘이 기대하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그런 기대를 초월하는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국권이 회복되며 다윗 시대를 능가하는 영광스런 시대가 열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하나님나라는 이제 이스라엘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넘어 온 세상의 만민에게 퍼져나가는 능력의 나라인 것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알았을 것이고 그래서 그가 선포한 복음은 이스라엘을 넘어 천하 만민에게 미칠 기쁜 소식으로 변용된 것이다. 바울이 율법에 대한 부정적 표현을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율법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이고 하나님나라가 이스라엘 국한되어 있을 때 주어진 것이다. 물론 그 율법이 선한 것이고 신령한 것이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도래하는 하나님나라를 규율할 수 있는 법은 아닌 것이다. 물론 그 법정신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이제 천하 만민에게 미칠 하나님나라 법은 새롭게 세워져야 하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국한하여 주어졌던 구약의 율법을 반대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제 하나님나라의 새로운 경륜이 열린 것이고 새 술은 새부대 담아야 하듯이 구약의 율법이 새로운 하나님나라 사상을 포괄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복음과 율법의 상관 관계는 신약과 구약의 상관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신약의 하나님나라가 구약의 하나님나라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구약의 하나님나라를 계승한 것이며 동시에 구약의 하나님나라를 넘어선 것이듯이 복음은 율법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의 율법을 계승한 것이며 동시에 구약의 율법을 넘어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구약의 율법이 이스라엘을 통하여 나타난 구약적 하나님나라를 규율하는 법이었다면 신약의 복음은 천하만민에게 나타날 신약적 하나님나라를 규율하는 법일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율법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포괄하며 율법을 넘어서는 새로운 하나님나라의 경륜인 것이다. 바울이 반대한 것은 구약의 율법으로 복음을 규정하고 제한하려는 시대착오적 태도, 즉 새 포도주를 헌 부대에 넣는 것을 반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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