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 최낙재
2011-05-18 03:01:52
서론. 예수님의 천국 선포
예수님의 "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는 천국선포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나라는 하나님께서 오래전 부터 준비히셨고 옛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하신 나라이며 예수님은 구약의 사상을 이어받아 하나님나라의 일에 몸을 바치셨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이 당시 유대인들의 천국관은 장차 메시아가 오면 전 우주가 새롭게 되고 죽은자가 살아나며 온 세상이 심판을 받으며 하나님의 백성은 낙원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라는 초자연적인 구원관과 이스라엘을 원수의 손에서 해방시켜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열방을 복종하게 하리라는 민족적 기대, 이렇게 두갈래였는데 여기에 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켜야만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배울것이 있다면 사람이 율법을 지켜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사람은 죄인이요 부패하여 율법을 지키지 못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회개하라고 하신 것은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오직 회개를 통하여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가르치신 것이다.
1장. 하나님나라 그 성취의 이중성
예수님은 천국이 이미 시작되었지만 가득하게 모으는 기간이 세상 끝날 까지 있음을말씀하였다. 하나님의 나라는 한번에 오는 것이 아니라 두 단계에 걸쳐서 오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하나님나라의 시작과 끝에는 장구한 기간이 있다.
이 장구한 기간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기간은 천국이 성장하는 때요 그 종들이 바쁘게 일하는 때이다. 그 나라가 올 때까지 우리는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하나님나라가 온 것이 사실이므로 회개하고 그 나라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부지런히 일해야 할 것이다.
2장. 하나님나라와 고난
그러면 이미 천국 시작된 천국은 세상 끝날까지 어떤 모양으로 진행하며 우리는 천국 시민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나님나라의 성격들을 알아야 거기에 맞추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겨자씨나 누룩의 비유를 보면 하나님나라는 강력하게 확장되며 세상을 정복하고 철저하게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나라 확장 방법은 세상나라의 것과는 다르다. 복음은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지만 철저한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물리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기를 삼아 계속 정복하여 나아간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한다. 이것이 하나님나라 사업이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의 성장과정을 취하는 천국은 고난과 희생을 겪지 않으면 안된다. 고난과 희생의 현상은 천국에 따라오게 마련이다. 세상의 지혜는 자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면 서 항상 하나님나라의 현상에 대하여 설명을 요구하고 자기 생각으로 비판한다. 여기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가 핍박과 고난을 받는 현상이 일어난다. 하나님나라 백성이 고난을 겪으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먼저 주께서 고난의 길을 걸어가심으로써 결정지어 놓으셨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복음전파의 시대이다. 복음전파는 교회가 땅위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왔지만 세상의 심판은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을 거스르는 죄악의 시대에서 복음을 전하려면 조소와 핍박을 무릅쓰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는 한번 고난을 받으시고 구원을 완성하셨으나 땅에 있는 지체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지고 아직도 견뎌야 할 고난이 남아있다. 신자의 고난은 개인적인 고난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 시대는 은혜의 시대요 구원의 날이다. 천국이 겨자씨 처럼 자라는 시기이다. 그리고 복음전파를 위하여 교회가 고난을 받는 시기이다.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과정에서 이 시대를 이렇게 정하셨다
3장. 하나님 나라와 순종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종의 기초위에 세워졌다. 순종과 불순종이 인류의 운명과 생사 그리고 행 불행, 또 천국의 성취에 결정적인 요소이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선약과 금령은 사람의 위치를 결정하여 주는 말씀이며 천지를 지으신 뜻과 인생을 내신 목적을 가르치는 말씀이다. 이 금령은 간단하지만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는 하나님을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지킬 수 있는 매우 지혜로운 명령이다. 이 명령은 다른 이유가 없이 오직 하나님이 명하셨기 때문이라는 한가 지 이유로만 지킬 수 있는 명령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존경하는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하나님이 사람이 언제든지 이런 행동 기준을 갖기를 바라셨다. 아담을 통하여 이런 원칙위에 하나님나라를 건설히시려는 것이 창조시의 뜻하신 바였다. 아담이 이 원칙하에서 만물을 다스렸더라면 하나님이 높임을 받고 온 천지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을 것이다.
이런 배경을 가진 역사의 무대위에 예수께서 하나님나라의 왕으로서 오신 것이다. 그는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 자기의 생존문제와 하나님나라의 일을 스스로의 능력과 지혜로 해결하지 않고 오직 보내신 분의 뜻대로 가겠다는 태도를 천명하였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였다. 이 순종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탄생하고 세워졌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순종을 본받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그리하여 원래 에덴동산에서 계획하신 대로 순종의 성격을 띤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신다. 믿음을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하시지만 이 믿음은 순종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믿음이 순종을 수반하지 않을 때 기형적인 신앙주의나 반법주의에 빠지고 만다. 일단 은혜로 구원을 얻은자가 순종의 새생활을 시작하려고 할 때 율법이 꼭 필요하다. 율법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가르쳐 준다.
4장. 천국과 교회
사도들은 하나님나라가 이미 와있다는 의식하여 말하고 활동을 하였다. 바울도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 같이 천국이 이미 온 것을 믿으면서 또 앞으로 올 것을 소망하였다. 이로 보면 예수께서 천국의 일을 하셨고 그것을 사도들이 계승한 것이다.예수께서 천국의 일을 말씀하시다가 천국일의 계속으로 지시하신 것이 교회의 일이었다, 그러므로 교회는 천국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는 천국의 한 樣態이다.
교회는 예수님의 천국 활동 가운데 우러나온 것이다, 즉 천국이 내면적이고 불가견적인 면을 띠다가 어느 일정기간이 지나자 교회라는 표면화된 조직체로서 형체를 위한 것이다. 부활과 세상 끝 사이에는 전도하고 제자를 삼는 즉 교회를 세우는 상당한 기간이 있다, 왕권을 가진 주께서는 교회를 세우기를 명령하셨다.이로써 교회는 천국의 실현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이 기간은 천국이 교회의 형태를 취하여 실현되는 기간이다. 이 모든 점으로 보아 교회는 천국의 실현이요 따라서 천국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왕권은 인간 생활의 전 영역에 미치는 것인데 교회가 이 모든 영역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므로 천국이 교회의 범위에 국한된다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래도 교회는 천국의 실현이요 중요한 형태임이 툴림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성격을 띠어야 하고 하나님나라의 사상을 가르쳐야 하고 하늘나라의 그 강력한 무기로써 하나님을 대항하여 높아진 생각들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이로 인하여 사회는 과학, 예술, 가정, 국가, 상업, 산업 등 모든 분야에 이르러 빛을 받을 것이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서평)
서론 - 예수님의 천국선포
저자는 예수님의 천국 선포가 구약의 천국 사상을 이어받은 것을 바르게 판단하였다. 그렇다면 구약의 천국사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고 그것을 예수님이 어떻게 계승하고 성취하신 것인지 설명하지 않은 점이 아쉽다. 더구나 예수님의 지상생애가 천국건설자로 일하신 것이라면 구약의 천국사상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생애를 통하여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저자가 언급한 당시 유대인들의 천국관은 구약성경의 천국관에서 크게 왜곡된 것이고 예수님은 그들의 천국관과 대결하셨기 때문에 더욱 구약의 천국관의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1장 천국 성취의 이중성
저자는 천국 성취의 이중성을 말하면서 천국이 두단계에 걸쳐서 온다고 표현하였는데 이것은 아마도 천국이 가진 현재면과 미래면의 두가지 성격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천국이 두 단계에 걸쳐서 온다 그리고 천국은 성장한다고 표현 한 것은 이미 도래한 천국의 불완전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 이것은 이미 도래하였고 완성된 천국의 종말론적 성격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는 표현이 아닌가? 하나님나라는 두 단계에 걸쳐 성취되거나 성취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아니라 이미 완전히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미 성취된 천국을 역사 가운데 드러내는 일이 교회 사명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2장 하나님나라와 고난
이 주제는 차라리 3장의 주제 이후에 나오면 논리적으로 더 좋았을 것 같다. 왜냐하면 하나님나라의 고난은 하나님 나라 자체가 고난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순종에 따라오는 불가피한 과정으로서 고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세상은 결코 교회를 핍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상과 타협하는 교회들이 고난을 잊어 버린지 오래됨은 그 증거이다.
3장 하나님나라와 순종
하나님 나라는 예수그리스도의 순종위에 세워졌다는 저자의 말은 정말 탁견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저절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순종으로 하나님나라가 이루어 진다는 것이야 말로 구약의 하나님나라 사상이기 때문이고 예수님이 구약의 천국 사상을 이어받아 하나님나라 건설자로 일하셨음을 증명한다. 예수님의 성육신 부터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 까지 그의 전 생애는 완전한 순종 그 자체인 것이고 이 기초위에 하나님나라가 세워졌다는 저저의 견해는 하나님나라에 관해 정말 듣기 힘든 진리이다. 특히 저자는 선악과 금령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은 원래 창조시 부터 인간의 순종위에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려 하셨다는 말은 구약의 천국사상의 뿌리를 지적하는 예리한 해석이다. 그러나 저자는 천국은 예수님의 순종을 본받는 사람들로 채워진다고 바르게 언급하지만 그 순종을 본받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 점이 아쉽다. 순종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율법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도 매우 적절한 것이었지만 저자는 순종을 주로 복음 전파라는 사명에 두고 있는 것 같다,
4. 천국과 교회
이 대목은 3장의 저자의 탁견을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 매우 유감이다. 저자는 교회가 천국의 실현이므로 곧 천국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저자는 교회는 천국이라는 결론에 이어 교회는 메시아의 백성, 곧 메시아를 머리로 하여 한 몸이 된 믿는 자의 공동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저자는 메시아의 백성, 공동체가 곧 하나님나라 라고 말하는 셈인데 이것은 예수님의 순종으로 세워진 천국이 교회의 순종으로 채워진다고 말한 3장의 논리와 어긋나는 것이다. 즉 교회는 공동체 즉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구성요소이지 하나님나라 자체는 아닌 것이다. 저자가 선악과 금령에서도 갈파하였듯이 처음부터 천국은 순종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다. 3장의 저자의 논리로 말한다면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이고 하나님나라는 교회의 순종으로 역사 가운데 증시되는 것이다. 하나님나라는 예수의 순종으로 완성되었지만 그 나라가 구체적으로 역사 가운데 증시되기 위하여는 교회의 순종이 필수적인 것이다. 이 순종은 단순히 복음전파에만 국한 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복음 명령에서 지시히신 것 처럼 복음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서 복음의 정신을 지켜 행하는 구체적인 순종이어야 할 것이다. 요약하면 예수님의 순종으로 하나님나라는 성취되었지만 교회는 순종함으로 그 나라를 역사 가운데 증시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복음 전파는 이 사명의 한 요소일 뿐이다. 왜냐하면 저자가 말한대로 하나님나라는 인간 삶의 전 영역에서 증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자가 천국을 교회에 국한 시키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한 것은 교회와 천국의 관계를 무시하고 교회가 곧 천국이하고 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어려움인 것이다. 교회는 인간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나라를 이 땅과 역사에서 증시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율법을 예민하고 풍부하게 연구하여 우리 시대의 삶의 각 영역으로 가져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추기]
하나님 나라에 대한 小考
1. 하나님 나라가 신약에서 차지하는 비중
신약에는 <나라(왕국:바실레이아)>라는 말이 무려 159회 나오고 있으며, 그것은 다시 <천국>이라는 말로 37회,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로 47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토록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나라> 혹은 <천국>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 사복음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
마태복음에서는 <천국>이 36회, <하나님 나라>가 4회 나오고 있으며, 마가복음에서는 <하나님 나라>가 11회,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 나라>가 27회에 나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하나님 나라>나 <천국>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하나님 나라의 속성인 <생명>, <빛>, <진리>등으로 표현되어 많은 언급이 되었습니다. 이는 공관복음이 <예수그리스도의 권세와 통치>에 초점을 맞춘데 비하여, 요한복음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서신서에서의 초점도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서신서에 <하나님의 나라>는 6회가 나오고 있으며, <천국>은 1회 나오고 있습니다. 반면 교회라는 말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얼핏 볼 때 교회가 서신서의 중심이라고 보기 쉽지만 교회 역시 가시적인 <하나님의 나라>이므로 하나님 나라가 서신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 나라>가 신약에 나타나기 까지
신약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언급하신 분은 세례요한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3:2) 예수님도 동일하게 그 말씀을 계승하여 선포하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
두 분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정의나 소개 없이 즉각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셨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 나라>는 당시 사람들에게 이미 잘 알려진 주제였기 때문입니다.
1)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구약에서부터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한 관념으로 자리 잡아 있었습니다.
A.이스라엘 민족은 출애굽 당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되기 위해 부름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내게 제사장 나라(말쿠스)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5) “나라” “백성”하는 말은 이미 언약의 성격이 왕과 백성의 관계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B.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이 <왕>이라는 언급들.
이스라엘의 왕 다윗은 하나님을 <왕>으로 칭했습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시5:2)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왕이시니 야곱에게 구원을 베푸소서.”(시44:4) 다윗이 하나님을 자신의 왕이라고 고백한 것은 모세가 맺은 언약 그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며, 그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기본적인 관계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한낱 하나님의 위임을 받아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대리 통치자라고 하는 고백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송을 일으키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사41:21) 자신을 야곱의 왕, 즉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자칭하셨습니다.
선지자들도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사44:6)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딸 내 백성의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로다.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 왕이 그 중에 계시지 아니한가?”(렘8:19)
이러므로 이스라엘 속에서 이미 하나님은 왕이셨고,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스라엘만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온 세계가 그 분의 나라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온 세계를 통치하시는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지존하신 여호와는 엄위하시고, 온 땅에 임군이 되심이로다.”(시47;2)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시103:19) 그러나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는 쌍방 언약을 통해 수립되었다는 점에서는 이스라엘이 좀더 실제적인 <하나님 나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후기 유대사상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개념
BC 2세기부터 AD 2세기 까지 사이에 있었던 유대사상에서는 ‘말쿠스 솨마임‘ 즉 <하늘나라(천국)>라는 개념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하늘나라 사상은 두 가지 사상을 근간으로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의 통치를 불러오기 위해서는 1) 율법을 잘 지켜야한다는 것이었고, 2) 또 하나는 이방들을 멸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하는 배타적 선민사상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이방 강대국들의 지배를 당해온 민족으로써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사상을 용인하지 아니하시고, 싸우셔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라는 용어보다는 “하나님 나라”를 더 즐겨 사용하셨고, 또 이방은 멸망의 대상이 아니라 포용의 대상으로 많이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이스라엘)은 바깥 어두운데로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8:12)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21:43)
3. 하나님 나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1) 하늘나라(천국)
A) “하늘나라(천국)”라 할 때는 그 나라가 초월적이고, 초자연적이며, 최고의 가치를 가진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B) 그러나 “하나님 나라”고 할 때엔 그런 의미보다는 인격성을 가미했을 뿐만 아니라 그 나라가 이루어지는 동력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강조한 말입니다. 본래 유대인들은 “하늘나라(말쿠스 솨마임)”가 신인협동을 통해서 곧, 인간이 율법 준수를 잘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하늘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로 지칭하신 것입니다. “내가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12:28)
2) “하나님 나라”의 의미
A) 추상적 의미: 신약의 헬라어 <바실레이아>는 “통치”라는 개념이 강합니다.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바실레이아)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16:28) 이 구절에서 “왕권”이라는 말이 <바실레이아>입니다.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눅19:11) 여기에서의 “나라”역시 바실레이아인데, 통치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주기도문에 나오는 이 말씀 역시 “통치”를 의미합니다. 나라가 오고 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B) 구상적 의미: <바실레이아>는 “영역”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마23:14),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12;32)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25:34),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천국에서 크다.”(마5:19)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라도 저 보다 크니라.“(마11:11) 이상에서의 닫다, 열다, 주다, 받다, 상속하다, 크다, 작다...능 등의 표현은 천국이 구체적인 것임을 드러내 줍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와 같이 “통치”와 “영역”의 의미로 이해할 수는 있으나 더욱 성서적인 정의를 내린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나타나서 원수의 세력을 꺾고, 그 백성을 죄와 죄의 세력에서 건져내고, 완전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영원한 영역이다.>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4.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
하나님 나라는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본다면 두 가지의 설명이 가능합니다. 즉, 이미 현재 여기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는 관념과 앞으로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관념입니다.
먼저, 현재 이루어졌다는 것을 다음의 구절을 통해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a) "때가 찼다.“(막1:15) ”가까왔으니(at hand)“(막1:15) 등의 말씀은 천국이 도래한 사실을 언 급하시는 것임.
b) "오늘 날 너희 귀에 응하였다.“(눅4:21) ”은혜(구속)의 해:희년(레25:10))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지시함.“
c) 세례요한과 대조적인 생활(금식이 아니라 먹고 마심)
“새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마9:17)는 말씀은 시기적으로 도래했음을 보여줌.
d) "침노하는 자는 빼앗는다.“(마11:12)
“비아제타이(침노당하고 있다)”- 이미 왔기 때문에 사람들에 의해 침노를 당하는 것임.
e) 요한에게 말하라고 하는 것은 이사야가 예언한 현상들(사29:18)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으니 천국이 왔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것임.
f) 율법과 선지자가 요한 때까지로 끝나고, 이미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는 사실은 천국이 아미 도래했음을 시사하시는 것임.
이 상의 구절은 천국의 현재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5.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문 중에서 “나라이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하라고 하셨고,(마6:10),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앉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고,(마8:11),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이요.”(마13:43), “세상이 새롭게 될 것이라.”(마19:28) 하셨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벧후3:10)라 하셨고, “부활의 자녀는...죽을 수도 없고 천사와 동등이요”(눅20:36)라고 하신 것은 아직은 이루어지지 않은 사실이기에 미래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성취되지 않은 미래에 속한 것임을 알게 해 주는 것입니다.
6. 하나님 나라와 교회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일 진대, 교회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고 하면 교회 역시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구약의 하나님 나라 백성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는 신약의 하나님 나라 백성인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왕으로 섬겨야 되고, 또한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거룩한 나라가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할 점 역시 있습니다. 이 관계에 대해서도 균형을 잃지 않아야한다는 사실입니다. 잘못된 두 가지 극단을 경계해야 합니다.
1)카톨릭적인 견해
카톨릭은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일치시킵니다. 따라서 교황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이고, 무오성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신자들은 거룩한 면모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교황이나 사제들에게 하나님에게 하듯이 복종합니다.
2)세대주의적인 견해
반면 세대주의는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전연 별개의 것으로 취급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앞으로 이루어질 것으로만 보기 때문에 현재 교회를 하나님 나라로 볼 수 안목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천국시민이라는 의식도 부족하여 성별하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7. 하나님 나라 실현에 대한 두 극단
1) 세대주의(근본주의):
세대주의자들의 하나님 나라관은 지나치게 미래주의입니다. 그래서 계시록 해석도 완전히 미래적으로 해석합니다. 그들은 계4장 이후부터는 미래에 일어날 일로 해석합니다. 환난도, 천년왕국도 모두 미래에 있을 일로만 봅니다. 그러다 보니 계시록은 아직 하나도 일어난 일은 없게 됩니다. 이스라엘에 성전이 건축되고, 7년 조약이 있고 나서야 계시록 사건이 카운트다운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념은 천국(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성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결과입니다.
2) 자유주의(내재적인 사상):
반면에 하나님의 나라의 미래성을 부인하는 사고도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고, 현재 성도와 교회와 세상 속에서 점점 이루어져 가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막4:26-29) 라는 말씀처럼, 현실 속에서 점진적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는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계시록 해석에 있어서는 후천년설자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라는 그 구절에서 “열매가 익으면 낫을 대나니...”라고 말씀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낫을 댄다는 것은 외부의 개입을 암시하는 구절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외부의 개입, 즉 재림과 심판이라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즉, “도적이 오는 것과 같다”(살전5:2)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살전5:3) “생각지 않은 때에“(마24:44) “알지 못하는 시간에”(마24:51) “홀연히”(고전15:51)
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점진적으로 진화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거대한 이변을 일으키며 나타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8. 미래성을 믿는 자들의 건전한 태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이미 들어와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 미래에 나타날 하나님의나라도 기다려야 합니다.
1) 대망하는 자세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벧후 3:12)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살전1:10) 앞으로 나타날 하나님의 나라를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2)현실에서의 경건한 삶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벧후 3:11)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딛2:12) 하나님의 나라는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 스스로를 잘 준비하여야 합니다.
9. 결론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심령에는 이미 왔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쫓겨난 것이 그 증거입니다. 과거의 불순종, 부정, 불경건한 삶들이 청산되었다는 것, 그리고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지 않고, 자신이 더 이상 왕 노릇하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살며,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삶 자체가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 나라>는 우주적으로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의 육신과 세상엔 마귀로 인한 고통과 질병과 죽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주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다 멸하시고 질적으로 변화된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실 때에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아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그러나 아직!... 그 나라 백성들은 이 둘 사이를 잘 조화시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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