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4장 광야 시험
Tolle Rege/누가복음
2013-06-10 23:03:06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다. 예수는 성령에 충만하였고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광야로 가신 것이다. 인준의 세례를 받으신 후 이제 예수는 마귀의 시험을 통과하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사십일을 주리셨을 때 마귀는 예수께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여 주림을 면하라고 시험하였다. 예수님은 신명기 기록을 인용하여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대답하셨다. 마귀의 이 첫 시험은 뱀이 첫 사람 아담을 넘어뜨린 시험을 생각나게 한다. 그 때도 마귀가 시험한 방식은 먹는 문제였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하시고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 경고하셨지만 뱀은 오히려 먹어도 결코 죽지 아니한다고 하며 죽기는 커녕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거짓말로 하와를 넘어뜨린 것이다. 아담에게는 모든 먹을 것이 풍족했으므로 굳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어야만 할 절박한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은 자기 욕심을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뱀의 말을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경우는 사십일을 주렸으므로 돌이라도 떡으로 만들어 먹어야만 할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것을 금하신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마귀의 시험을 물리친 것이다. 예수님의 이런 모습은 아담의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순종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사람의 생명이 먹고 마시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진리를 계시한다.
그런데 여기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란 말을 한 것을 주목하여야 한다. 이 말은 예수님의 신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특별하고 긴밀한 관계를 가진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사실 첫 사람 아담도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보아아야 한다. 이것은 예수님이 사람이,,, 라고 대답하신 것을 보아도 그러하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은 신적존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인 인간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의 시험의 내용은 신적존재라면 돌을 떡으로 만드는 이적을 보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능력으로 굶주림의 문제를 해결해서 하나님의 아들됨을 증거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하나님의 아들됨은 먹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님을 보여줌으로 증명된다는 진리를 가르친 것이다.
마귀의 두번째 시험은 자기를 섬기면 천하만국을 다스리는 권위와 영광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귀는 천하만국을 다스리는 권위와 영광이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이 권세는 원래 첫 사람 아담에게 주어졌던 것인데 마귀에게 빼앗긴 것이다. 이 두번째 시험 역시 첫 사람 아담이 받았던 시험을 생각나게 한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아 모든 피조물중에 고귀한 존재였으며 그에게는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담은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마귀의 시험을 이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자신의 신분과 위치를 망각한 것이었다. 사람은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자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겨야 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의 두번째 시험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사람의 가장 근본적인 본븐이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는 것임을 가르킨 것이었다.
마귀의 세번째 시험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하나님이 천사들로 하여금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지키실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마귀는 이번에 자신도 시편의 기록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는 듯 흉내를 내는 것이었다. 이 세번째 시험은 일견 그럴 듯 해보인다.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뛰어 내림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해 보이라는 요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주님은 일갈하셨다. 하나님의 아들됨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림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음으로 즉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함으로 증명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마귀의 세가지 시험을 통과하시고 마귀를 이기셨다. 이것은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거두신 첫 승리였으나 마귀가 얼마동안만 예수님을 떠난 것이지 시험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마귀의 권세를 완전히 부수는 최종적인 승리는 예수님의 사역의 마지막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공적 사역의 초기에 자발적으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신 것일까?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시는 모습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첫 사람 아담이 뱀에게 시험을 받고 넘어진 최초의 역사를 생각하게 된다. 예수님의 시험은 아담의 넘어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첫 사람 아담의 패배 그리고 두번째 아담이신 예수님의 승리의 대조적인 모습은 예수님의 앞으로서의 사역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암시한다. 그것은 첫 사람 아담의 실패로 망가진 인간 역사를 고치시는 일이며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지연된 창조목적의 성취를 이루는 일인 것이다. 주님은 자기의 죽음으로 죽음의 권세를 가진 마귀를 없이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키러 오신 것이다.
광야시험이후에 예수님은 갈리리 지방을 중심으로 여러 회당에서 가리치심으로 본격적인 공사역을 시작하신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이사야의 글을 펴서 읽으심으로써 자신이 바로 이사야에 예언된 메시야 이심을 계시하셨다. 예수님에게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신것은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신 것 곧 그를 메시야로 세우신 것을 의미한다. 메시야의 사명은 가난한 자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다. 가난한 자란 포로된 자이며, 눈 먼 자이며, 눌린 자들이며 좋은 소식이란 이들에게 자유와, 다시 보게함과 해방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한마디로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는 것이었다.주의 은혜의 해란 구약의 희년을 가리킬 것인데 희년의 정신이 모든 빚을 면제해주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듯이 주의 은혜의 해는 인간을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시킴으로 새롭게 시작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희년을 의미할 것이다. 주님은 이렇게 이사야를 읽으시고 이 글이 오늘날 성취되었다고 말씀하셨다. 무리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놀랐지만 그들은 요셉의 아들인 예수의 권위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가난하고 비천한 목수의 아들인 예수님은 무리들이 인정할만한 외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씀의 능력보다는 외적인 권위를 중시하는 무리들은 은혜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었다. 하나님의 은혜의 해가 선포되었는데도 기뻐하기는 커녕 예수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예수님은 엘리아와 엘리사 시대의 역사를 인용하여 이들의 불신앙을 책망하신다. 엘리야가 이스라엘의 과부들이 아니라 사렙다의 이방인 과부에게 간 것이나 엘리사때에 이스라엘의 나병환자들은 고침을 받지 못하였는데 수리아의 나아만이 고침을 받은 일들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복음이 이방인에게 퍼져갈 것을 강력히 시사하는 비유인 것이다. 무리들은 이 말을 듣고 자기들의 불신앙을 회개하기는 커녕 분노하였고 예수를 낭떠러지로 밀어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자기의 길을 가셨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아니면 누구도 예수님을 해치 못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에 가시어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셨는데 사람들은 그 가르치심에 권위가 있음을 보고 놀랐다. 마침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자가 예수를 보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귀신은 예수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인즐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소리를 지른 것이다. 예수께서 귀신을 꾸짖어 쫒아내시는 것을 보고 무리들은 예수님이 나타내시는 권위와 능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졌다. 예수는 또한 열병을 앓고있는 시몬의 장모를 보시고 명하시매 즉시 열병이 떠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이적을 보고 온깆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님은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쳐주셨다. 귀신들도 '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라고 소리지르며 쫒겨나갔다. 귀신들이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곧 예수님이 메시야라고 한 것과 동일한 말이라고 성경은 증언한다. 그러니까 메시야란 하나님의 아들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란 하나님과 부자관계에 있는 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수행하는 공적인 후계자와 상속자를 가리키는 직분의 명칭인 것이다. 무리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을 떠나지 않도록 만류하였지만 예수님은 다른 동네에도 복음을 전하여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주님은 복음을 하나님나라 복음이라고 하신 점이다. 그러니까 복음이란 단순히 좋은 소식을 일컫는 말일 뿐인데 그 좋은 소식의 내용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이다. 이는 예수로 말미암아 구약에 약속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였다는 소식일 것이다. 결국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은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였다는 소식인 것이다. 주님은 자신이 바로 이 일을 위하여 보냄을 받으셨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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