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3장 여호와의 것
Tolle Rege/출애굽기
2011-05-26 22:58:00
유월절과 관련하여 무교절을 지킬 것이 다시 반복하여 명령된다. 그러나 이 명령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이르게 되었을 때 이 규례를 지키라는 내용이 새롭게 첨가된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살게될 때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언약적 자비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어서 특이한 명령이 새롭게 더해진다.
그것은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첫 태생은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는 명령이었다. 이 명령이 주어진 이유는 첫 태생이 여호와의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여호와께 돌리라는 의미는 여호와께 희생제물을 드리라는 요구이다. 나귀의 경우는 어린 양을 대신 드리고 사람의 경우도 짐승을 대신 희생제물로 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첫 태생은 모두 여호와의 소유가 된다는 말인가?
이것은 마지막 재앙에서 애굽의 모든 첫 태생이 죽임을 당했는데 이스라엘의 첫 태생은 죽임을 당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어린 양이 그 죽음을 대신하였기 때문이었다. 즉 하나님은 어린양으로 이스라엘의 첫 태생을 사신 셈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첫 태생은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소유를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드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짐승으로 대신하여 희생제물을 드리도록 요구된 것이다.
이것은 어린양을 준비하여 이스라엘의 죽음을 대신케 하신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에 대한 이스라엘의 언약적 반응으로서 요구되는 것인데 그 언약적 반응의 내용은 다른 것이 아니라 생명을 드리는 전적인 헌신이었던 것이다.
이 특이한 명령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실 때 그 땅에서 행해야 할 규례로 주어진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 땅에서 살게될 때 이예식을 통하여 하나님이 베푸신 놀라운 언약적 자비를 기억하며 언약적 헌신을 새롭게 다짐하여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 예식은 후손들에게 대대로 생생한 실물교육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손의 기호와 미간의 표가 될 정도로 이스라엘이 잊어서는 안되는 하나님의 위대한 언약적 행동이셨던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블레셋길로 인도하지 않으신 것은 전쟁을 모르던 그들이 전쟁을 하게되면 애굽으로 돌아가려할 것을 염려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군대로 단련하시는 시간을 준비하고 계셨다. 이것은 하나님나라에서 그 씨가 아무리 수가 많을 지라도 전쟁에 준비되고 훈련되지 않으면 안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하나님은 홍해의 광야길로 돌려 이스라엘을 인도하신다.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나온 것은 가나안 땅을 주신다고 조상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이 출애굽을 통하여 이루어 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임재가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밤낮없이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놀라운 광경이다.
"낮에는 구름,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그 언약을 다 이루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떠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적 열심이 얼마나 대단하신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추기] 2012. 2.22
유월절 규례와 관련하여 새로운 규례가 주어지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중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막론하고 초태생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께 바치라는 명령이었다. 그 명령의 의미는 모든 초태생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바쳐야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모든 초태생이 여호와의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이 명령은 출애굽의 유월절 사건 즉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초태생을 다 죽이신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애굽의 모든 초태생이 죽임을 당할 때에 이스라엘의 초태생은 죽임을 면하였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준비히신 어린 양을 베풀어진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로 인한 것이었다. 여기서 어린 양은 이스라엘의 초태생 대신에 죽임을 당한셈이 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초태생을 어린 양으로 대속하셨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어린 양으로 이스라엘의 초태생을 사신 것이고 그래서 이스라엘의 초태생이 여호와의 것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의 초태생의 여호와의 소유가 되었고 그러므로 모든 초태생은 여호와께 바쳐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초태생을 바치는 대신에 어린 양으로 대신 바치는 일이 허용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어린 양으로 초태생을 대속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대대로 초태생을 대속하는 어린 양을 바칠 때 마다 하나님께서 유월절 사건에 행하신 대속의 은혜를 기억하게 되는 것이며 나아가 이제는 자신이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으므로 자기 멋대로 살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야 할 존재임을 자각하여야 하는 것이다.
13장에는 이렇게 대속의 규례가 새롭게 주어졌는데 이것과 함께 다시 무교절 규례를 지킬 것을 다시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대속의 규례와 함께 무교절 규례가 다시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유월절 사건을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에 대한 이스라엘의 언약적 반응을 요구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이 베푸신 대속의 은혜에 대하여 이스라엘은 전적인 순종과 헌신으로 반응하여야 한다는 진리가 분명하게 계시된 것이다. 하나님이 베푸신 대속의 은혜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언약의 상대방인 이스라엘에게 그에 걸맞는 언약적 반응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베푸신 대속의 은혜가 이스라엘을 값을 지불하고 사서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신 것을 의미한다면 이제 하나님의 소유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헌신과 순종이 요구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진리는 오늘날 싸구려 복음을 치료하는 소중한 계시가 아닐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부어진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에 대하여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언약적 반응이 무엇인가를 이 진리는 선명하게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헌신과 순종이 없다면 그런 믿음은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는 헛된 믿음인 것을 13장의 진리는 분명히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 13장
닥치고 성경/출애굽기
2019-10-13 19:01:58
출애굽기 13장
유월절 규례에 더하여 새로운 규례가 주어지는데 그것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초태생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께 바치라는 규례였다. 왜냐하면 모든 초태생은 여호와께 속한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유월절 재앙은 애굽의 모든 초태생이 죽임을 당하는 재앙이었다. 그러나 어린 양의 피라는 표징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죽임을 면하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모돈 초태생이 여호와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어린 양의 피라는 표징을 통하여 그들을 하나님의 것으로 삼았다는 의미가 된다. 한 가정의 장자는 그 가정을 대표하는 자이고 이스라엘의 온 장자들은 온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존재일 것이다. 그러므로 장자가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말은 곧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실 출애굽 사건은 단순히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되는 사건이 아니라 이제 더 이상 바로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가 된 사건이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목적은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함이었다. 이 초태생 규례는 유월절과 별도로 이스라엘이 대대로 지켜야 할 규례였다. 그러므로 유월절 규례가 출애굽 사건을 기념한다면 초태생 규례는 출애굽의 목적과 의미가 무엇인지를 기억하는 규례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월절 규례와 함께 초태생 규례를 이스라엘 대대로 손의 기호와 미간의 표가 되게 하라고 명하셨다. 드디어 이스라엘은 애굽을 떠나 광야로 들어갔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나안 땅으로 가는 지름길인 블레셋 길이 아니라 둘러가는 홍해의 광야 길로 인도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부딪혀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 것을 염려하셨기 때문이다. 출애굽 길에 모세는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나오는데 이는 장차 하나님이 반드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내실 것인데 그때 자신의 유골을 가지고 나가라고 한 요셉의 명령을 기억하였기 때문이다. 억울하게 약속의 땅을 떠나 애굽으로 팔려갔던 요셉이 이제 비록 유골이 되었지만 다시 약속으로 땅으로 향하는 이 장면은 하나님이 얼마나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신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스라엘이 광야로 나갈 때 그들만 나간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도 함께 가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 앞장서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므로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이스라엘 백성을 떠나지 않았다. 하나님의 이런 생생한 인도가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결코 죽음이 기다리는 광야로 나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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