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훔 1장 여호와의 질투와 분노
Tolle Rege/나훔
2011-08-27 10:49:10
나훔의 사역시기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그의 예언의 주제가 니느웨의 멸망인 것을 볼때 그의 사역시기는 앗수르가 신바벨론에 멸망을 당하는 요시아 통치 당시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가 사역을 하던 시기가 예레미야의 사역초기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요시아 시대에 예레미야, 스바냐, 나훔 같은 선지자들을 일거에 보내주셨다. 비록 요시아의 개혁이 기울어진 유다를 살리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은 요시아의 시대에 선지자들을 많이 보내주심으로 그들에게 유다 멸망의 원인을 분명히 새겨주시며 동시에 소망을 주시려고 한 것이다. 당시의 앗수르는 이미 사마리아를 멸망시켰고 유다를 위협하는 근동 최강의 강국이었다. 멸망의 징조가 전혀 보이지 않는 앗수르의 융성하는 시기에 나훔은 여호와의 심판으로 앗수르가 멸망할 것을 예언하였으니 이것은 앗수르를 두려워하는 유다를 향하여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나훔의 묵시는 여호와가 어떤 하나님이신가에 대한 소개로 시작된다. 먼저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으로 소개된다. 여호와는 자기를 거스리는 자에게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내리신다는 것이다. 여기서 질투와 보복은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등장하는데 이는 여호와께서 앗수르에 대하여 질투하신다는 의미일 것이다. 즉 하나님의 언약백성인 유다가 여호와 보다 앗수르를 더 두려워하므로 하나님은 앗수르에 대하여 질투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두려워해야 하는 분은 오직 여호와뿐이신데 그들이 여호와 아닌 다른 것을 두려워할 때 하나님은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질투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질투는 마땅히 하나님이 차지하셔야 할 것을 다른 것이 차지한 것에 대한 언약적 진노인 것이다. 여호와께서 앗수르를 벌하시는 이유는 두가지인데 첫째는 그들에 대한 질투이고 두번째는 그들이 여호와를 거스리고 대적하기 때문이다. 앗수르는 여호와께서 진노의 막대기로 쓰려고 새우신 것인데 그들은 자기 힘을 믿고 스스로 교만하여져서 지니치게 잔인하고 광포하게 이스라엘과 주변나라를 멸망시키고 위협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유다는 여호와보다 앗수르를 더 두려워하게 되었고 이것이 여호와의 질투와 보복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여호와께서 오래 참으신 것은 권능이 없어 그런 것이 아니다. 그는 권능이 크신 자이시며 벌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 두지 않는 분이심을 소개하며 그가 초월적인 권능자이심을 웅장하게 묘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여호와는 천지를 호령하시는 분이시므로 그의 분노 앞에 설자가 없으며 그의 진노를 감당할 자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는 자기를 거스리는 자에게는 이렇듯 두렵게 진노하시지만 자기에게 의지하며 피하는 자에게는 선하시며 환란난에 산성이시다. 이것은 유다에게 앗수르를 두려워말고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고 그에게 피하라는 권고의 메시지일 것이다. 유다가 두려워하는 앗수르가 아무리 많고 강할지라도 그들은 반드시 멸절을 당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앗수르를 사용하여 유다를 괴롭히셨지만 다시는 괴롭히지 않으실 것을 약속하신다. 유다에 지운 멍에를 깨뜨리고 그 결박을 끊으실 것이다. 앗수르의 대가 끊어질 것이며 그들의 우상이 파괴되며 그들이 무덤에 내려갈 것이다. 이런 평화의 희소식을 가진 자의 발이 산을 넘어오고 있다. 다시는 앗수르의 위협을 받지 않게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유다는 여호와께 기쁨으로 절기를 지키고 감사로 서원을 갚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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