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의 기독론 PERSONAL Reflection Essay
1. 왜 기독론에 대한 역사적 탐구가 필요한가?
이미 기독론은 완성되었는데, 굳이 기독론의 형성에 대한 역사적 탐구가 필요한가? 이미 완성된 기독론을 믿으면 그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미 완성된 기독론을 바르게 믿기 위해서는 기독론의 형성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초자연적 계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사를 통하여, 역사 가운데 형성된 역사적 종교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완성된 기독론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때 우리는 기독론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이 아닌 역사에 기초한 균형 있고 깊이 있는 신앙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론은 흔히 조직신학의 한 분과로 취급되지만 사실 역사적 접근이 선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조직 신학의 기독론은 이미 발전되고 완성된 기독론을 교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지만 초기 기독론은 그 완성된 기독론이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탐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초기 교회는 언제 어떻게 예수를 신적, 선재적 인물로 알게 된 것인가?
기독교는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인류 역사 가운데 개입하여 들어오신 역사적 사건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한 인간에 불과한 나사렛 예수가 언제 어떻게 신적이고 선재하는 아들로 경배를 받게 된 것인가라는 초기 기독론적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신약성경은 분명히 예수를 신적, 선재적 인물로 믿고 고백한다. 기독론의 형성에 대한 견해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기독론이 요한복음이 기록되는 시기인 주후 70년경 비교적 늦은 시기에 점진적으로 형성되었다는 견해와 다른 하나는 기독론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주후 30-50년 경에 빅뱅과 같이 형성되었다는 견해가 그것이다. 제임스 던, 모리스 케이시 등이 전자의 견해이고 마틴 헹엘, 리처드 보컴, 래리 허타도, 이형일 등은 후자의 견해다. 전자의 견해에 의하면 공관복음서나 바울 서신은 모두 예수를 신적, 선재적 존재로 믿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후자의 견해는 신약성경은 모두 공히 예수를 신적, 선재적 존재로 믿고 고백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3.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과 기독론
이렇게 기독론 형성의 시기에 대한 견해가 갈리는 것은 유대교 유일신 사상과 기독론의 형성의 관계에 대한 견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후대 형성설을 주장하는 던과 케이시는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이 기독론 형성에 장애로 작용했기 때문에 그 장애를 극복하는데 시간이 걸렸고 그래서 기독론이 후대에 형성되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허타도, 이형일 등은 유일신 사상이 기독론 형성에 장애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유일신 사상을 초기에 극복하여 이른 시기에 기독론을 형성했다고 말한다. 허타도는 유대교의 신적 대리인 전승의 영향과 예수를 경배하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종교적 체험을 통해 유일신 사상이 극복되었다고 설명한다. 이형일은 예수의 자기 이해(하나님의 아들됨과 신적 사명)에 근거하여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두 편의 메시아 시편(시110:1, 시2:7)을 독창적으로 주해함으로써 유일신 사상을 재정립했다고 말한다. 대다수 학자들과 달리 보컴은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이 기독론 형성에 장애로 작용하지 않았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한다. 그는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은 신적 본질이나 특성으로 하나님을 이해하지 않고 신적 정체성을 통해 하나님을 이해했기 때문에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이 예수의 신성과 선재성을 제약하는 사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컴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부활 이후에 시편과 구약 본분들을 창의적으로 해석하여 매우 이른 시기에 예수가 하나님의 고유한 정체성에 포함되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4. 초기 기독론 형성의 연구 역사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구종교사학파는 기독론의 형성을 헬레니즘과 이방종교의 영향에서 찾고자 시도했고 20세기의 마지막 25년은 새종교사학파가 제2성전기의 유대교 배경에서 기독론의 기원을 찾고자 시도했다. 새종교사학파의 대표적인 이론은 바울의 지혜기독론인데 이는 바울의 지혜기독론이 제2성전기 유대교의 지혜전승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초기 기독론의 형성에 관한 유대교적 선례를 찾으려는 새종교사학파의 시도는 과거 초기 기독론을 헬레니즘과 이방종교에서 찾으려던 구종교사학파의 시대착오적 견해를 극복한다는 점에서는 매우 긍정적이지만 그들이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의 연계성을 너무 강조하는 자세는 수정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들 중 일부 학자들은 마치 초기 기독론의 어떤 개념이 유대교 내에 존재했던 개념과 유사함을 입증해야만 초기 기독론 형성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제임스 던, 보컴, 허타도, 이형일 등의 학자들은 모두 기독론의 기원을 제2성전기 유대교보다는 초기 기독교 자체에서 찾으려고 했다. 초기 기독론의 기원을 허타도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종교적 체험을 통한 예수 숭배에서 찾았다. 보컴과 헹엘은 초기 기독교가 구약본문들을 창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기독론을 형성했다고 본다. 이형일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자기 이해에 근거하여 구약의 메시아 시편들을 독창적으로 해석하여 기독론이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5. 유대교의 메시아 사상과 기독교의 메시아 사상
정경적 관점에서는 구약에 메시아 사상이 나타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사상이 누구나 인정할 정도로 분명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구약에서 메시아는 종말론적 인물에게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메시아가 종말론적 의미를 갖게 된 것인가? 주전 2-3세기에 의로운 왕, 제사장의 출현을 기대하는 사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그리스와 로마의 지배에 대한 반응으로 그리고 하스모니안 왕조에 의해 대제사장직이 강탈당하고 이후 이스라엘 왕권도 헤롯가문에 의해 강탈당한 것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이 시기의 유대교 메시아 사상은 이스라엘을 이방의 압제에서 해방시킬 정치적, 군사적 인물로 발전했다. 유대인들은 장차 이방을 심판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인물이 출현할 것으로 믿었고 그 인물은 역사의 마지막에 등장할 종말론적 인물로 생각했다. 유대교의 메시아 사상에 대한 구약의 대표적인 증거본문들은 주로 창세기 49:10, 민수기 24:17, 이사야 11:1-6이었다. 결론적으로 유대교의 메시아 사상에 의하면 메시아는 신적, 선재적 존재가 아니었으며 더구나 메시아가 그의 백성을 위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다거나 부활한다거나 하는 내용은 전혀 없었다. 고난받는 메시아에 대한 구약본문(이사야 53장)이나 메시아의 부활에 대한 구약본문(시편11편)은 모두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부활 이후에 찾아내고 새롭게 해석한 메시아 본문이지 유대인들은 메시아 본문으로 이해하지 않았던 본문들이었다. 오늘날 구약의 메시아 본문으로 알려진 것들은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인정하던 것보다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새롭게 찾아낸 것이 대부분이다. 결론적으로 유대교의 메시아 사상이나 기독교의 메시아 사상은 서로 다르며 복음서에서 언급되는 메시아 본문들은 모두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부활한 예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따라 새롭게 찾아내어 해석한 본문들이다.
서론
바트 어만의 논쟁적인 책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 는 학문적이기보다는 대중적인 책이지만 그렇기에 일반 대중들에게는 막강한 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다. 그의 책은 치밀한 학문적 논의와 논증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쉽고 논리적인 설득력을 가지고 대중에게 접근하는 호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인지 바트 어만의 이 논쟁적인 책에 대응하는 책 “하나님은 어떻게 예수가 되셨나?” 라는 책이 나왔다. 이 책의 제목은 좀 어색하지만 바트 어만의 책 제목에 대한 패러디를 염두에 둔 듯하다. 그다지 학문적 권위가 없는 바트 어만의 책에 대응하여 나온 이 책의 집필에는 마이클 버드를 비롯한 유수한 신학자들이 대거 참여했는데, 이는 어만이 제기한 이슈들이 그만큼 학문적인 예민함을 가지고 다루어야 하는 주제들임을 반증하는 듯하다. 이 글에서는 어만의 책과 그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 이 두 책 및 이번 학기에 배운 기독론을 참고하여 초기 기독론 형성과 관련된 핵심 주제들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본론
1. 신의 개념
1-1. 기독론에 대한 어만의 출발점은 신에 대한 개념에서 시작한다. 그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하나님으로 숭배했다고 말하지만 그들에게 하나님이란 말이 무엇을 의미했는가를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다. 어만은 고대 세계에서는 그리스 로마 세계는 물론이고 유대 세계에서도 신과 인간의 영역이 절대적으로 분리된 범주가 아니라 서로 연속성을 지니는 실체였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인간이 신적 존재로 고양되는 것도 가능하고 천사와 같은 신성한 존재가 육화를 통해 일시적으로 인간이 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어만은 마가복음은 예수를 전자의 방식으로 이해했고 요한복음은 후자의 방식으로 예수를 이해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복음서의 예수 이해의 근저에는 신성과 인성의 간격을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인식하는 고대적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만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의미에서 예수를 하나님으로 생각했느냐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만은 신성한 영역에 대한 고대 세계의 이런 관점은 후대에 크게 변하게 되었고 주후 4세기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는 시점에 이르러는 신의 영역과 인간 영역 사이에 절대적인 간격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고 말한다. 결국 어만은 예수가 4세기적 의미의 전능한 신이 된 것은 사실상 기독론의 발전이라고 보는 것이다. 어만은 유대교의 유일신론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주장을 하는데 유대교의 유일신론은 사실은 여러 다른 신들이 있지만 예배를 받아야 할 신은 오직 한 분이라는 단일신론적 의미라는 것이다. 어만은 그래서 유대인들이 신성한 존재들을 배제한 것이 아니고 궁극적 하나님과 동등하지는 않지만 신적인 천상의 존재들을 인정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만은 결국 이방 세계와 유사하게 유대교 안에도 신성한 존재와 신성한 권세에 속하는 연속체가 존재한다고 이해했다고 주장한다.
1.2 어만은 이렇게 자신의 책 첫 두 장을 할애해서 인간이 된 신적 존재나 신적 존재가 된 인간을 묘사하는 그리스-로마와 유대 문헌을 논하면서 초대교회가 예수를 신적 존재로 여기게 된 것에 대한 자신의 논증의 토대를 닦았다. 그러나 마이클 버드는 어만이 자신의 기독론을 설명하기 위해 고대문헌과의 병행성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버드는 예수에 관한 기독교의 주장과 신적 존재에 관한 그리스- 로마의 주장 간에 언어적, 개념적 유사성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기독교가 이교도의 문헌을 원용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주장에는 유사성과 함께 상당한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버드는 예수에 대한 기독교의 주장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먼저 기독교 자체의 맥락과 조건 안에서 이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버드는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하나님과 예수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은 이유는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과 예수가 유대인이나 이교도들이 생각하는 하나님과 너무나 많이 달랐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1-3. 버드는 기독교의 예수 경배는 유대 유일신론으로부터의 일탈이나 유대 유일신론과 그리스-로마 종교사상의 혼합의 결과가 아니라 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미친 영향과 하나님과 메시아와 성령에 대한 제자들의 새로운 믿음에 비추어 그리고 종교적 체험에 의해 추동된 유대 유일신론의 개정판으로 보아여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초기 기독론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유대교의 유일신론을 견지하면서 이 한 분 하나님을 하나님 아버지, 주 예수 그리고 종국에는 성령으로 이해한 것이다. 유대교의 유일신론적 맥락을 감안할 때, 예수를 창조주와 동일시하며 예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신학적 모험이며 사회적 파격이며 역사적 선례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버드는 어만이 예수의 신성을 개정된 유일신론이라기 보다는 인간 형태를 취한 천사라는 현상으로 보려고 하지만 초기 유대교에서 천사 숭배는 일반적이 아니라 특별한 맥락에서 표출되었고 더구나 천사숭배가 하나님 경배의 대체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에게는 바쳐지지만 천사에게는 금지된 경배를 받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리차드 보컴이 잘 지적했듯이 유대교에서 천사나 승귀된 족장과 같은 중간적 존재들은 반신적 존재들이 아니라 어느 모로 봐도 하나님의 위격과 하나님의 경배로부터 구별된 명백한 피조물들이었다. 유대교 사상은 중간적 존재들을 수용하였으며 그들에게 영예로운 칭호들을 주었지만 중간적 존재들을 숭배하는 것과 유일한 한 분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날카롭고 엄격하게 구분하였다. 보컴에 의하면 이런 구분의 근거는 중간적 존재는 하나님의 신적 정체성의 일부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어만의 논증과는 상반되게, 유대 유일신론과 신약 기독론의 연속성은 중간적 존재가 아니라 기독론적 유일신론에서 비롯된다. 어만은 1세기에는 절대적 유일신론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예수가 신적 존재라는 것은 신격화된 왕이나 천사 같은 피조물이란 의미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만은 다양한 중간적 존재들과 그리스도가 신적 존재라는 기독교 개념 간의 유사성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양자 간의 심각한 차이를 도외시하고 있다. 엄격한 유일신론은 초대교회의 발명품이 아니라 유대교로부터 상속받은 유산이었다. 그러나 오직 한 분인 하나님이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안에서 그로서 알려진다는 기독론적 유일신론은 초대교회의 창조물이었다. 고대에는 이교도들 중에서도 유일신론자들이 존재했고 더구나 유대의 유일신론은 엄격했고 다양한 중간적 존재들로 인해 약화되지 않았다. 중간적 존재들은 하나님에 대한 배타적 경배나 하나님의 고유한 정체성을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예수는 확실히 하나님과 그런 속성들을 공유했다. 실제로 초기 교회에서 유대 유일신론을 재구성하려는 움직임이 즉각적으로 일어났고 이를 통해 이스라엘의 한 분 하나님이 이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알려지고 경험되기 시작한 것이다.
2. 예수의 신적 자의식
2-1. 어만은 역사상 예수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범주가 유대교의 묵시론적 세계관이라고 말한다. 그는 공관복음은 예수를 임박한 종말과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예고하는 묵시론적 예언자의 모습으로 예수를 묘사한다고 주장한다. 어만은 예수는 자신을 메시아라 생각했지만 하나님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예수가 자신을 메시아라 부른 것은 하나님나라가 도래할 때 자신이 그 나라의 왕이 될 것이라고 믿었고 예수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 자신을 메시아로 가르쳤음에 틀림없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는 자신을 묵시론적 예언자이자 다가올 하나님나라의 왕이라고 여겼을 뿐이지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어만은 요한복음에서 예수가 자신을 신적 존재로 주장한 것은 결코 역사적 예수에게로 소급될 수 없는 요한의 신학의 주장리라고 평가한다. 결론적으로 어만은 예수의 공생활과 그의 선포는 그의 신성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실현할 왕국 그리고 그 나라가 도래할 때 자신이 그 나라의 왕이 될 것에 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2-2. 마이클 버드는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부활 이전 시기에 시작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예수의 생전에 예수의 추종자와 비판자들은 모두 예수가 누구인가라는 그리고 예수는 스스로를 누구라고 생각하는가에 관한 질문에 부딪혔다. 그리고 이 물음은 초기 교회부터 교부 시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계속되었다. 기독교인들은 초기교회 이후 400년의 대부분의 기간을 예수가 제자들에게 던진 질문, 즉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부심했다. 이 질문에 대한 최종적인 답은 니케아 신조의 진술대로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하나님, 빛으로부터 온 빛, 창조되지 않고 나신 아버지와 일체된 존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 자신은 그가 하나님임을 알았는가? 어만은 예수는 단지 자신이 악한 현세의 종말과 다가올 미래의 이스라엘 왕에 관한 예언을 하는 예언자라고 생각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비록 요한복음은 예수가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말하지만 어만은 요한복음의 예수는 역사적이기 않다고 반박한다. 어만은 우리가 예수에 대해 알 수 있는 바는 그의 공적 사역과 선포이지 그의 신성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버드는 예수가 고유한 권세와 이스라엘 하나님에 대한 고유한 관계를 가진 신적 대행자로서의 자기 정체를 밝혔다고 생각한다. 예수는 말씀을 전할 때 직접적인 의미에서 자신이 하나님을 대변하는 자로 말했으며 자신이 이스라엘을 새롭게 하고 회복시키는 사역에서 바로 하나님의 위격 자체를 자기 안에 구현한 존재라고 믿었다. 초대 교회는 분명 이렇게 주장했다. 버드는 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자신을 계시한 내용은 그 이후 결과로 이어진 제자들의 예수 섬김과 그 발전 방식을 형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단일 요소였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2-3. 버드는 예수의 초기 제자들이 예수에 관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할 때, 그들이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에 대한 관심과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복음서를 통한 역사적 예수 연구를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복음서가 역사적 예수 연구에 일반적으로 신뢰할만하며 일관성을 가진 원재료이며 초대교회가 주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한 자와 동일 인물로 알았다는 게 사실이라면 교회 신앙의 토대는 언제나 역사적 예수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부활 이전에 예수가 말하고 행한 바는 부활 이후에 교회가 예수에 관해 믿고 말한 바의 중요한 요체다. 물론 복음서가 믿음을 창출하기 위해 쓰인 신학적 성격이 다분한 문서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복음서는 그리스-로마 세계의 독자들을 위해 예수에 대한 기억을 해석하고 적용한 것이다. 복음서 기자들의 의도는 하나의 스토리를 내러티브화 하여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자 이 세상에 합당한 주, 즉 예수라고 불리는 자의 유의미성을 일깨우는 것이었다. 어만은 복음서에 실린 예수 스토리의 진정성을 정립하기 위해 어떤 전승이 예수에게로 소급되는지 가려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버드는 그런 기준들이 예수에 대한 객관적 역사로 가는 길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진짜 전승과 그렇지 않은 전승을 가려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예수의 역사는 초대교회의 예수 선언과 모든 지점에서 완벽하게 용접되어 있기 때문이다. 버드는 복음서에서 신학과 역사를 분리해 내는 것은 대단히 어려울 뿐 아니라 진정성을 구별하는 기준의 다수는 비판적 검토를 통해 복음서의 주어진 부분의 역사성 또는 비역사성을 정립하는데 부적합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한다.
2-4. 어만은 예수는 자신을 선지자와 메시아로만 생각했지 인자는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버드는 예수는 어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양된 방식으로 자신에 관해 말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수의 하나님나라 메시지 안에는 항상 암시적인 자기 지칭이 있었다. 하나님나라는 예수의 권능과 축귀와 치유와 말씀 선포를 통해 임했던 것이다. 이것은 예수는 단지 하나님나라 도래를 선포한 전달자가 아니라 그 나라가 임하는 그 때에 그 자리에 있는 선구자요 주인공이었다. 예수가 스스로를 하나님으로 알았다는 말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새롭게 하고 새로운 출애굽에 관한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자신 속에 있다는 것을 예수가 인식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유대인의 회복을 소망하는 이 내러티브는 예수 자신의 말과 행동의 배경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대본이 되었다. 예수는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선포하면서 하나님이 왕으로 오심을 말하고 있었다. 예수가 열두 제자를 선택한 것은 그의 제자들과 함께 마침내 이스라엘의 회복이 시작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예수가 행했던 다양한 치유와 축귀 사역은 구원의 날이 가까웠으며 하나님이 마침내 왕이 되실 것임을 보여주는 가시적 표적이었다. 예수는 자신을 다가오는 왕국의 왕인 메시아로 생각할 뿐 아니라 자신의 사역과 그의 위격 안에서 야웨가 마침내 시온으로 돌아오신다고 믿었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시온으로 귀환하시는 야웨에 대한 절정의 소망을 실현하고 상징하고 구체화하려는 의도로 예루살렘에 귀환했다.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왕의 귀환은 나사렛 예수 안에 잇는 하나님이 찾아오신 날에 백성에게 임하였다. 따라서 버드는 신적 기독론(a divine Christology)은 부활 하나만으로 창출된 것이 아니며 부활 신앙은 예수를 부활 이전의 존재와 다른 무엇으로 변화시키지 않았다고 말한다. 예수는 자신의 부활 이전에 자신의 권능, 사명, 기원에 관해 놀랄만한 주장을 했으며, 부활은 이런 주장이 합당하다는 신적 확증이었다. 버드는 이런 맥락에서 보면 신적 위상에 대한 예수의 자기주장은 부활로 말미암아 창출된 것이 아니라 확대되고 확인된 것이며, 다시 말하면 예수와 하나님과의 고유한 관계에 대한 믿음은 부활로 말미암아 시작된 것이 아니라 강화된 것이라고 말한다.
2-5. 어만은 예수에 관한 원재료로 요한복음을 저평가한다. 그 이유는 요한복음이 전하는 예수는 공관복음에 병행본문이 없으며 진정성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복음과 공관복음 사이에는 많은 유사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요한복음은 그 자체로 독창적이며 하나의 범주를 형성한다. 버드는 예수가 하나님과 동등하며 예수와 아버지는 하나라는 요한의 주장은 사실 공관복음서에서 이미 전제된 내용을 명료하게 언어화한 것일 뿐이며, 또한 요한의 사상은 헬라 철학을 밑거름으로 삼은 게 아니라 이 세상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유대인의 개념에 견실하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요한의 성육신 신학은 헬레니즘과의 조우에서 부상한 것이 아니라 유대 사상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사실 이후의 수 세기동안 헬레니즘과 기독교의 조우를 통해 드러난 바는 헬레니즘의 상상력은 성육신을 가현설로 몰아갔다는 사실이다. 버드는 요한의 신학이 어떤 면에서 독특한 것은 사실이지만 공관복음과 분명히 양립 가능하며 상응한 전승들에서 나온 것이며, 그러므로 요한의 고기독론은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나름의 유대적 스토리에 기반을 둔 요한의 증거로 확증된 예수 생애에 대한 참된 해석에서 나온 것임을 강조한다.
3. 초기 기독론의 형성
3-1. 어만은 가장 초기의 기독론은 예수는 하늘에 선재하던 존재로서 지상에 파견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지상 생애가 끝나고 부활 시에 하나님의 아들로 고양되어 신성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이런 기독론을 고양기독론이라고 부른다. 그는 바울 서신에는 문서 이전의 구전 전승들이 나타나는데 이 전승들의 기독론은 일관되게 예수는 부활 때 하늘로 고양되었고 그 단계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으로 말한다고 주장한다. 어만은 후대의 신학자들이 이런 고양기독론을 부적절하다고 비판했지만 기독교의 가장 초기 전승이 고양 기독론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런 기독론은 결코 열등한 기독론이 아니라 사실은 놀라운 기독론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고백은 예수가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만물의 창조주와 통치자의 권세를 물려받은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만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이렇게 믿기 시작한 시기가 로마세계에서 황제들이 신으로 숭배받기 시작된 때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은 대단히 주목할 만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은 로마 황제가 아니라 예수라는 고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만은 예수는 이렇게 고양된 지위로 말미암아 예배를 받았고 하나님처럼 경배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3-2. 그러나 어만은 초기 기독론이 오직 고양 기독론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바울 서신 이전에 이미 예수를 선재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말하고 있었다며 이것을 육화 기독론이라고 부른다. 그는 최초의 기독론은 고양기독론이었는데 아주 빠르게 육화기독론으로 변형되어 초기 기독교에 두 기독론이 공존했다고 주장한다. 어만이 말하는 육화기독론은 예수를 인간이 되기 이전에 선재하던 천사적 존재로 이해한 기독론이다. 그러니까 예수가 신적 존재로 고양되었다고 여겨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부 제자들이 예수를 선재하던 천사적 존재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만은 신약성서 안에는 고양 기독론과 육화 기독론이 공존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공관 복음서와 바울서신은 사로 다른 기독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공관복음서의 기독론이 고양 기독론이라면 바울서신의 기독론은 육화기독론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바울은 예수를 인간이 된 선재하는 천사로 이해했다고 말하며 그 결정적은 본문으로 갈라디아서 4장 14절을 제시한다. 그러니까 어만은 바울에게 예수는 전능한 하나님이 아니라 천사와 같이 선재하는 신성한 존재였다는 것이다. 그는 바울의 이런 육화 기독론이 후대에 요한복음의 더 높은 기독론으로 발전했다고 본다. 어만은 초기의 고양기독론이 결국 육화기독론에 길을 내주었고 결국 더 높아진 육화기독론은 기독교 전승의 주류가 되었다고 말한다.
3-3. 어만은 마태와 누가 두 복음서는 어느 것도 선재하는 예수를 담고 있지 않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두 복음서는 모두 예수는 지상에서 존재하던 출발점부터 신적 존재로 그리고 있다고 본다. 어만이 심혈을 기울여 강조하는 바는 마태와 누가복음에 개념 정의된 예수는 신조에 나타난 예수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만이 마태나 누가복음에는 예수의 선재성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그러나 사이먼 게더콜은 그 복음서를 유대적 배경에 비추어 면밀히 독해한다면 그리스도가 잉태 전부터 존재했으며 지상 사역에 착수하고자 이 땅에 오기 전부터 존재했다는 내용에 전적으로 부합함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어만은 마가복음의 예수도 선재적으로 보지 않았다. 어만은 마가복음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된 것은 마태나 누가복음보다 이후 시점은 세례 때로 본다. 어만은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세례 시에 비로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마가복음에는 변화산에서 세례 시와 동일한 선포가 재현되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 시점에서 예수를 아들로 재입양한 것이란 말인가? 어만은 공관복음이 예수를 신적 존재로 묘사한다고 말하지만 그가 의미하는 신적 존재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정체성을 공유한다는 의미의 신은 아니다. 어만에 의하면 예수는 신적 위계 상 일정한 자리를 차지하지만 분명 정상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언행은 단지 구약의 하나님의 언행과 중첩되는 수준을 넘어선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만 고유한 특권에 해당되는 언행을 했다. 예수가 이런 언행을 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한편으로는 놀라움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성모독이란 비난이었다. 게더콜은 가장 경이로운 예수의 언설은 공관복음에 모두 나오는 죄 사함의 권세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죄 사함은 오직 한 분인 참 하나님의 고유한 전권에 해당하며, 죄를 사하는 권능은 천사나 선자지나 심지어 신이 아닌 메시아나 다른 어떤 존재에게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만은 당시 로마 세계에서 통용된 신적 개념은 상당히 유연한 개념이었고 소수이지만 일부 유대 텍스트에도 일정 정도의 유연성이 있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공관복음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예수 당대의 유대사회의 분위기는 하나님과 피조물의 구분이 엄격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우리가 예수의 신적 정체성의 실체를 규명하는데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즉 공관복음에서 예수가 구약에서는 하나님만이 가질 수 있는 전권에 해당하는 언행을 하는 이유는 그가 이스라엘 하나님의 정체성을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결론적으로 게더콜은 공관 복음의 예수가 후대의 신조에서 고백하는 선재적, 신적 예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어만의 주장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예수의 선재성은 어만이 생각하는 것 보다 더 깊이 복음서에 뿌리내리고 있다. 더 중요한 점은 복음서가 예수에게 부여하는 신적 정체성은 단지 낮은 수준의 신적 정체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3-4. 크리스 틸링은 어만의 전체 프로젝트를 여는 열쇠는 그의 승귀 기독론(고양 기독론)과 성육신 기독론(육화 기독론)의 구분이라고 지적한다. 어만은 가장 초기의 기독론은 그리스도를 단순히 인간으로 이해했으며 그는 나중에 그의 세례 혹은 부활 시점에 일종의 신적 존재인 하나님의 아들로 승귀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기독교인은 점차 예수를 인간의 육신을 덧입기 위해 하늘에서 온 신적 존재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그가 말하는 승귀 기독론이다. 이어서 어만은 성육신 기독론은 교회 초기에 아마도 기원후 50년 이전에 비롯되었다고 추축하면서 바울 서신에는 이 두 유형의 기독론 간의 이행이 일어나는 것이 발견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어만은 가장 초기의 기독론인 승귀 기독론은 훗날 부적합 것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이단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고 말한다. 어만에 의하면 신약성서 안에는 예수 자신의 소박한 기독론에서 출발하여 승귀 기독론을 거쳐 성육신 기독론으로 귀결되는 발전과정이 있으며, 이 기독론들이 후대의 정통 기독교 신조와 흡사한 예수 인식으로 대체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틸링은 어만의 이런 구분은 신약 본문 자체의 데이터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복음서뿐 아니라 바울서신에는 승귀 기독론과 성육신 기독론이 병행하여 공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만이 두 가지 기독론을 연대기적으로 배열한 것은 인위적이라는 것이다. 신약 기독론 언어의 압도적 다수가 선재성에 방점이 찍혀 있지 않다. 틸링은 신약 증인들의 주관심사는 선재성이 아니라, 명시적으로는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한 분 하나님의 초월적 고유성을 공유하는 방식이었으며 그리스도가 이 초월적 고유성을 공유하는 정도만큼 또한 선재한다는 논리가 파생된다고 말한다.
3-5. 틸링은 바울이 예수를 인간이 된 천사로 보았다는 어만의 주장은 바울의 기독론을 오독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어만이 이 주장을 위해 갈라디아서 4:1-4의 독해를 바울의 전체 기독론에 대한 해석적 열쇠로 사용한다. 그러나 바울 기독론에 대한 이런 해석적 접근은 바울의 텍스트가 의도한 결과가 아님이 자명하다. 틸링은 그러므로 어만이 제기한 두 유형의 기독론 간의 구분만 이상한 것이 아니라 바울의 기독론을 이해하는 그의 해석적 열쇠도 이상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해석 범주의 수준에서 어만의 프로젝트에는 두 가지 의미심장한 문제가 가중되는데, 그것이 바로 그의 신이라는 단어 사용과 유대 유일신론에 대한 이해다. 신약 기독론, 특히 예수와 하나님 관계를 탐구하는 프로젝트라면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유대 신앙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는데서 출발하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어만은 유대 유일신론을 논의선상에 올려놓았지만, 그의 프로젝트의 핵심은 가장 초기 기독론의 본질을 성육신이 아니라 단순한 사람의 승귀로 규정하고 후대에 지리한 발전과정을 거쳐 정통 기독교의 기독론으로 형성되었다는 주장이었다. 어만은 신이라는 용어를 주후1세기 유대 유일신론의 본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기 위해 수사학적으로 배치된 만능 용어로 사용한다. 어만은 신이라는 명제 아래, 대부분의 신약 기독론 언어와 하나님, 천사, 귀신, 그리고 온갖 형태의 영적 존재를 배치하고는 이것을 포괄적 유일신론의 증거하고 주장한다. 어만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적 인간 분석을 통해 고대인인 신적 영역과 인간 영역 사이에 예리하고 확고한 구분을 두기 않았다고 논증한다. 그러나 어만이 제2성전기 유대교와 관련하여 신이라는 단어를 이런 식으로 유연한 방식으로 사용할 때 나아가 유대교의 신을 그 범주 안에 포함시킬 때 몇 가지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 어만은 유대인들도 신성을 지닌 존재들이 인간이 될 수 있고 인간이 신적 존재가 될 수도 있다고 믿었다고 말한다. 문제는 어만이 사용하는 신이라는 개념이 너무 폭넓은 범주라는데 있다. 어만은 어떻게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를 그 용어의 의미가 무엇이든 신적 존재라고 이해하게 되었는가? 이것이 모든 기독론적 물음의 핵심이라고 제시한다. 그러나 이 질문이 유의미한 것이 되려면 어떤 의미로 신적 존재로 이해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그러므로 기독론적 물음의 핵심은 기독교인들은 어떤 의미에서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는가라고 수정되어야 한다. 어만이 신 혹은 신적 존재라는 단어를 통해 드러내려는 기독론적 함의는 무엇인가? 어만은 하나님과 천사와 귀신과 예수 모두를 나름의 의미에서 신적 존재로 여겼고 그런 맥락에서 예수의 승귀를 논하려고 했다. 그러니까 어만에게 예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는 의미에서 신이 아니라 그저 신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어만은 이 신이라는 단어를 배치함으로써 자신의 논증에 결정적인 해석적 공백을 만들어냈다.
3-6. 어만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살던 시대에 대다수 유대인이 거의 확실하게 유일신론자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유대인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다른 신적 존재들도 있다고 보았으며 신적 영역과 인간 영역 간에 불연속성과 함께 연속성도 있다고 보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초기 기독론 분야의 가장 독창적이고 뛰어난 학자인 리처드 보컴은 배타적 유일신론 개념은 시대에 뒤쳐진 것이라고 비판한다. 보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엄격한 또는 배타적 유일신론이 하나님 이외의 모든 초자연적 또는 천상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라면 이런 유일신론은 근대 이전에는 존재한 적이 없었음이 분명하다.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 전통 속의 전통적 유일신론은 엄청난 수의 초자연적 존재가 있다는 것을 항상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런 존재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어 하나님에게 종속된 피조물로 간주되었고, 지상 피조물의 존재가 유일신론을 제한하는 조건이 아닌 것처럼 이들도 유일신론을 제한하지 않았다.“ 틸링은 어만이 한 일이라고는 문제 있는 포괄적 유일신론의 개념에 신, 하나님 등의 용어를 쓰는 부정밀한 언어유희의 옷을 덧입혔을 뿐이라고 비판한다. 하나님과 그 외 모든 것 간의 존재론적 분리는 어만이 주장하듯이 후대 교회의 발명품이 아니다. 보컴은 이점을 다음과 같이 바르게 고찰한다. ”유대 유일신론을 유일신론답게 만드는 요소는 여러 다른 신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야웨의 고유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야웨를 다른 천상의 존재 또는 초자연적 존재와는 완전히 다른 부류에 놓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야웨의 초월적 고유성이라고 칭하고자 한다.“ 신이라는 모호한 개념에 의해 추동된 어만의 유일신론 이해는 그가 하나님과 신약의 예수의 관계에 관해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의 해석적 근간을 이루고 있다.
결론
1. 어만은 기독론의 점진적 발전은 주장하면서 그 발전은 어느 정도 인위적이라고 말한다. 그는 예언자인 예수가 부활 시에 신성한 존재로 고양되었다는 고양 기독론이 가장 최초의 기독론인데 아주 빠른 시기에 예수는 선재하던 천사적 존재였는데 잠시 인간이 되었다는 육화기독론이 등장하여 두 기독론이 공존하다가 점차 육화기독론이 득세를 하면서 이것이 선재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고기독론으로 발전하였다고 주장한다. 기독론의 점진적 발전이란 측면에서 보면어만의 이런 주장은 제임스 던이나 모리스 케이시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왜냐하면 던과 케이시는 모두 초기 고기독론의 형성을 기원후 70년대 이후의 점진적 발전의 산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던과 케이시가 기독론의 점진적 형성의 주된 원인을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으로 보는 반면에 어만은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은 기독론 형성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평가한다. 어만은 유대교 유일신 사상을 과소평가하는 듯하다. 대다수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은 기독론 형성에 지대한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2. 제임스 던, 케이시, 허타도, 보컴, 이형일 등 초기 기독론의 대표적인 학자들은 서로 간의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1세기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은 초기 기독교의 출현 이전에 약화되거나 변화되지 않고 여전히 견고했다는 사실에 모두 동의한다. 그리고 이들 학자들은 모두 신약의 고기독론의 기원을 제2성전기 유대교 보다는 초기 기독교에서 찾고자 하였다. 던과 케이시는 유대 유일신 사상의 영향으로 고기독론이 점진적으로 형성되어 주후 70년대에 이르러 형성되었다고 주장한 반면에 허타도, 보컴, 이형일 등은 초기 고기독론이 아주 이른 시기에 빅뱅과 같이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허타도는 유대교 안의 하나님의 대리인 전승의 영향으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유일신 사상을 재정의하면서 이른 시기에 예수를 신적, 선재적 존재로 이해하는 길을 열었다고 주장한다. 이형일은 신약의 고기독론은 예수의 자기 이해에 근거하여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두 편의 메시아 시편(시110:1, 시2:7)을 독창적으로 주해함으로써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다른 학자들과 달리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에 대한 보컴의 주장은 매우 흥미롭다. 그는 유대교 유일신 사상에 대한 이해가 신약의 고기독론 형성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하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신약의 유일신 사상이 신약의 기독론 형성에 장애로 작용했다는 전제를 당연시하는데 반해 보컴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보컴은 초기 유대인들은 신성이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하나님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초점을 맞추어 신적 정체성을 이해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아마도 유대교 유일신 사상이 예수의 신성과 선재성을 제약하는 사상이 아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보컴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구약본문들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예수가 하나님의 고유한 정체성(유일신 사상) 안에 포함된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마이클 버드는 초기 기독론이 유대 유일신론을 재구성한 개정판이라고 말하지만 보컴의 견해에 따르면 유대 유일신론은 개정된 바가 없으며 단지 예수가 유대 유일신론으로 파악되는 신적 정체성이 포함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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