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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오경과 구약의 언약신학(3/4)- 송제근

10장 레위기의 신학과 메시지

2016-01-23 18:12:10


10장 레위기의 신학과 메시지

 

<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의 연속성>

출애굽기의 전반부(1-24)가 언약을 이루는 일이라면 출애굽기 후반부(25-40)의 성막을 짓는 일은 전반부에 맺은 언약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레위기는 출애굽기 후반부의 연속으로서 그 성막을 중심으로 언약을 유지하고 갱신하고 발전시키는 일을 기록한 것이다. 출애굽기 후반부는 성막을 중심으로 기구를 준비하는 것이고 레위기는 준비된 기구들 속에서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행동들을 기록한 것이다. 즉 출애굽기가 성막의 건조 자체에 관심이 있다면 레위기는 성막에서의 행동에 초점이 모아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레위기 전체를 통하여 모든 명령은 증거막 혹은 회막에서 주어졌고 또 시행되었다. 시간적으로 보면 성막이 준공된 것이 출애굽 2 11(40:17) 이었고 민수기 기록의 시작이 출애굽 2 21일이므로 레위기의 모든 사건은 한달 동안에 일어난 셈이다. 그러나 레위기의 상황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민수기 10 10절까지 이어진다. 실제로 민1:1-10:10의 기록은 그 이후의 민수기의 역사보다 레위기의 법에 더 관련되어 있고 그 내용도 레위기의 규범과 거의 일치한다. 그러므로 민수기1;1-10:10은 레위기에 속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오경의 실제적인 연속성을 깨닫게 되는데, 창세기가 언약을 맺음으로 이루게 될 하나님 나라의 씨와 땅이라는 두 약속을 근간으로 이루어 졌다면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는 언약이 어떻게 수립되며 약속된 하나님 나라의 씨가 어떻게 마련 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신명기는 하나님의 또 다른 약속인 땅에서 씨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레위기 전체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씨가 어떻게 언약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기록이다.

 

<레위기의 거룩의 의미>

성경에서 거룩이란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이 레위기이고 특히 레19-27장에 집중적으로 나온다. 이와같이 레위기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거룩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19:2)는 말씀은 논리적으로 우리의 거룩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거룩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은 두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속성 자체로 나타나는 거룩으로서 세상의 모든 타락하고 더러운 것에서 분리되어 모든 부정적인 것에 완벽하게 대비된 깨끗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둘째는 언약관계속에서 나타나는 거룩함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한 언약을 지키시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이스라엘이 이러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으므로 자신을 세상의 모든 악함과 타락에서 구분하여야 하며 또한 하나님에 대한 언약을 지켜야 한다.이것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의 의미이다.

 

<레위기의 제사들>

레위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제사인데 제사의 종류에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가 있다. 번제(ohlah)는 제물이 완전히 불태워 지는 것으로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철저한 진노와 인간의 죄는 죽음으로써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사람편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완전한 헌신을 의미한다. 소제(minchah)는 곡물로 드려지는 것으로 신실한 성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의 작은 선물을 의미한다. 화목제(shelamin)는 제사 드리는 쪽과 받는 쪽의 상호관계가 완전한 평화로 유지되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이 제사는 제물이 드려진 후 그 중의 일부가 다시 제사를 드리는 쪽으로 되돌려서 먹고 기쁨을 누리는 경우가 많았다. 속죄제(hattaht)는 죄가 남긴 오염과 타락을 씻어내고 깨끗하게 하는 것 (4:2,13,22,27)으로서 이 예식의 내용은 피를 바르거나 뿌리는 것이다. 신약에서 죄와 그것을 정결하게 하는 피에 대한 언급은 거의 이 제사와 관련된 것이다 (벧전1:2, 요일1:7, 7:14, 9:12-14, 10:19-22) 속건제(asham)는 배상,혹은 보상의 의미를 가진 제사(5:15, 18)로서 죄를 지은 사람 대신에 동물이 그 형벌을 받음으로써 마땅히 치러야 할 빚이 갚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속건제의 예는 이사야 53장에 잘 나타나 있으며 신약에서도 자주 설명된다. (12:38, 10:16, 8:17, 벧전 2:24-25, 22:37) 신약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은 이 제사들의 부정적인 의미 거의 대부분을 포괄한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면이 아닌 긍정적인 면은 신약에서 그리스도인의 헌신적 노력과 관계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적 삶을 더 발전시키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헌신하는 면들도 제사에 포함되는데 죄와 관계없는 번제,화목제, 소제가 그것이다.

 

<축복과 저주>

레위기 26장에 축복과 저주가 나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레위기가 독립적인 책이 아니라 출애굽기의 연속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9-24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었다 그러나 언약을 유지하기 위한 성막에 대한 명령이 완전히 주어지기도 전에 이스라엘은 타락하여 황금송아지와 언약을 새로 맺으며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약의 회복을 하시게 되었고 계속헤서 성막에 대한 명령이 주어졌고 또 이행되었다. 성막의 근본적인 것이 어느정도 만들어 지고 난 뒤에(35-40, 1-25) 그동안 미루어 왔던 언약에 필수적인 축복과 저주의 말이 나오는 것은 아주 당연한 순서이다. 첫 언약(19-24)에서는 저주의 부분이 없고 축복과 같은 약속만이 있었지만 이스라엘이 치명적인 실패를 경험하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은 축복과 저주를 선언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내용에서도 축복에 대한 것은 3-23절 정도이고 저주에 대한 것은 14-45절로 저주의 양이 많은 것이 충격적이다. 이것은 첫 언약에서 축복만 있던 것과는 현격한 대조를 이루며 하나님의 언약의 대상으로서 이스라엘의 한계를 명백하게 드러낸다. 레위기 26장은 시내산 언약의 축복과 저주의 목록인데 후일에신명기에서 나타나는 모압언약에서는 레26장보다 더 구체적이고 발전적이며 자세하게 언약적 축복과 언약적 저주가 주어지게 된다.

 

11장 현대인을 위한 레위기의 메시지

2016-01-23 18:14:20


 11장 현대인을 위한 레위기의 메시지

 

<선지자적 영성과 제사장적 영성>

구약의 유산 중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인 유산인 모세의 윤리법, 선지자의 메시지나 다윗의 시편등이 있다. 그러나 외적으로 눈에 보이는 유산도 있는데 이스라엘의 종교제도 특히 제사제도가 그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사실은 내적인 유산은 현대의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데 반해 고대의 이스라엘에게 익숙했던 외적인 유산은 우리에게는 늘 낯설게 보인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도 레위기부터 민수기10장까지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제사제도는 우리와 무관한 것으로 간주되곤 했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역사적인 이유도 있다. 종교의 외적인 요소를 강조하며 구약과 신약의 다양성 보다는 일치성에 역점을 두어 제의를 중시하는 로마교에 반대해 진리의 내적인 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설교를 중심으로 예배를 발전시킨 종교개혁적 태도가 어느정도 여기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내면성은 자연스럽게 외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므로 종교적 진리의 내면성과 외면성을 반드시 구분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어떤 경우는 외적인 표현으로 종교적인 진리가 탁월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게된다. 이런 면에서 오경 중에서 종교적 진리의 외면성을 가장 심오하게 나타내고 있는 책이 출애굽기 후반에서 민수기 전반까지의 기록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약진리의 외면과 내면이 모두 성취된 것을 믿으며 구약진리의 내면성이 어떻게 성취되고 적용될 수 있는가를 살피기 위하여 예언서를 읽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구약진리의 외면성이 신약에서 어떻게 성취되고 적용될 수 있는 가를 살피려면 출애굽기 후반에서 민수기 전반까지의 기록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구약진리의 내면성이 어떻게 신약적으로 완성되었는가를 알기위하여 계시의 점진성을 고려하듯이, 구약진리의 외면성에 있어서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될 수 있다. , 구약진리의 외면적 내용은 그 제도들의 근본정신 혹은 법 정신을 추출하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을 것이며, 그동안 로마교에 대한 반감으로 그 중요성이 망각되었던 구약진리의 외면성을 잘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얻는 또 다른 유익은 예언자적 영성과 제사장적 영성의 대립구도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종교개혁 이후에 교회들 속에는 예언자적 영성이 지배적으로 나타나 왔다 그러나 제사장 제도는 이스라엘의 수립과 함께 시작된 원초적인 제도이고 예언자 제도는 후대에 왕 제도가 도입되면서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자적 영성은 대부분 비판적인 내용이고 일부분만이 소망과 관련되나 반면에 제사적적 영성은 하나님과의 근본적인 언약 관계로의 회복과 발전을 추구한다. 이런 면에서 제사장적 영성이 신약시대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아는 것은 구약종교의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차원을 알게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신약에서는 구약의 제사제도의 의미를 주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으로만 제한되게 이해하여 왔고 그러므로 구약의 제사제도가 왜 그렇게 다양한지, 각 제사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계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우리는 레위기의 제사제도 연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의 풍성함을 생생하고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속죄사역과 관련되지 않는 제사제도의 의미와 중요성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이 제사의 구체적인 면을 통해 엄청나게 풍성해 진다면 그리스도의 속죄사역과 관련되지 않는 제사제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풍성함을 잘 소개해 준다. 이러한 지식은 특별히 제사제도의 중요함을 그리스도의 속죄사역과만 연관지어 알고 있었던 개신교에 특별히 유익이 될 것이며 나아가 제사제도의 연구는 개신교에 전혀 새로운 차원의 혁명적인 능력이 나타날 수 있는 신학적 기초를 제공한다고 확신하는 바이다. 

 

<레위기의 핵심 내용인 제사제도>

레위기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책이 아니라 오경속의 한 책이며 오경신학의 근본적인 요소를 형성하고 있다, 오경은 언약이라는 본질적 도구(제도)를 통하여 이 땅위에 형성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레위기의 규범들은 근본적으로 시내산 언약을 유지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의 성도들은 레위기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씨로서 어떻게 계속하여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가를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러면 레위기는 어떻게 이스라엘이 계속 하나님 나라의 씨로 머물러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가? 그것은 제사를 통해서이다. 그렇다면 제사란 무엇인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에 피를 취하고 둘로 나누어서 한 부분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제단에, 다른 한 부분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뿌렸다 (24:3-8) 이것은 생명을 상징하는 피를 통하여 만약 언약의 한 당사자가 언약을 파기하면 자신의 생명을 내 놓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예식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불완전함을 아시므로 언약이 파기되었을 때 그것을 회복하는 방법을 미리 마련하여 두셨는데 그것이 바로 제사이다. 그러므로 제사제도에서 피가 흘려지는 이유는 명백하다. 이스라엘이 언약을 깨뜨린 것 때문에 짐승이 사람을 대신하여 죽는 것이다. 결국 제사의 핵심은 진정한 언약관계의 회복이다 

 

<제사제도의 본질>

그런데 이 제사가 행해지는 장소가 출25-31장에서 명령되고 이어서 봉헌된 (35-40) 성막 혹은 회막, 증거막이다. 이 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이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난다는 의미의 성막이다. 또 회막이라는 이름은 그곳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라는 뜻이다.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이름은 증거막(the tent of witness)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세운 언약에 대한 증거이다. 그러므로 그곳에 있는 가장 중요한 물건인 법궤는 더 본질적인 용어인 증거궤라고 불린다. 출애굽기 24장에서 언약예식이 끝나자 마자 하나님은 출25장에서 증거막을 만들 것을 명하신다. 이제부터 하나님은 이 증거막에 늘 임재하시며 떠나지 아니하시고 여기서 이스라엘을 만나사고 언약적 관계를 유지하여 나가실 것이다. 레위기는 이 증거막에 영광스럽게 임재한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어떻게 언약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이러한 증거막 사상은 신약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사도 요한은 구약의 성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한 모습에 근거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1:14)하였고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라는 말로 성막에 가득한 영광이 이제 예수께 임한 것을 나타내었다. 또 사도 바울도 상당히 레위기적 용어를 사용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몸 자체가 하나님의 성전이며(고전6:19-20) 따라서 구약의 성전에 임재하셨던 성령께서 이제는 살아있는 성전인 성도들의 공동체에 임재하여 계신다(6:15, 7:55-56, 고후3, 5:18)고 가르친다. 레위기에는 이러한 증거막에서 행해지는 기본적인 제사가 다섯 가지나 나타나는데, 레위기의 이러한 다양한 제사제도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고 이루는 언약관계가 얼마나 세밀하고 깊고 다양한가를 의미하며 하나님과 피상적인 관계를 이루고 살기 쉬운 현대의 우리들에게 큰 교훈을 시사한다. 우선 제물이 완전히 태워지는 번제(ohlah)는 죄와 관계되는 경우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철저한 진노를 나타내며 죄와 관계없는 경우는 성도들의 철저한 헌신을 의미한다. 화목제(shelamim)는 다른 제사가 단수로 표현되어 있는데 비해 특이하게도 복수로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죄와 관계되는 화목제의 경우 당사자가 동시에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만 관계를 완전히 회복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죄와 관계없는 화목제는 출24:9-11에 나타난 바와 같이 언약관계를 새롭게 하신 하나님 앞에 성도들이 떡을 떼며 현실의 생활 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코이노니아로 생각할 수 있다. 소제(minchah)는 곡식으로 드리는 유일한 제사로서 성도가 하나님께 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자발적으로 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제사에 있어서 소극적 요소인 죄사함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의 발전을 이루는 적극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렇게 우리는 성도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감사의 표현과 행동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신 구약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삼하 7) 항상 죄와 관련되어 드리는 두 제사는 속죄제(chattat) 와 속건제(asham)이다. 이 두 제사는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의 이중성을 나타낸다. 속죄제에는 거룩과 청결의 개념이 지배적인데 이것은 죄 자체가 깨끗하게 처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속죄제 사역은, 그것을 믿는 성도들이 스스로 죄를 멀리하고 삶에서 거룩하지 못하고 깨끗하지 못한 모든 말과 행동을 버려야함을 가르친다. 또한 속건제는 죄로 인한 결과를 보상 혹은 배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리스도의 속건제 사역은 우리가 지은 죄의 결과를 배상하는 것으로서 우리의 죄로 저주를 받은 만물이 그리스도의 속건 사역으로 말미암아 장차 우주적으로 회복될 것을 믿는다. 동시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속건 사역에 근거하여 만믈을 다스리고 회복시키는 제사장적 사역을 감당하여야 할 것이다.

   

<제사의 현대적 의미>

이러한 제사의 기본이념은, 고독하면서 진정한 관계를 갈망하는 현대인에게 치유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드리는 현대 예배의 가장 근본적인 내용은 고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었던 시내산 언약을 다시 새롭게 하는 행위,  언약갱신 행위로서 그 현대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발견할 수 있다.

 

공동체를 이룬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배로 부르심을 받는다 (19:3-8)

죄의 고백과 용서의 선포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19:9-25)

언약의 말씀의 선포를 듣고(20)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듣는다 (21-23)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생명 걸고 지키겠다는 결단을 한다(24:3-8)

언약을 갱신한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떡을 떼며 피로연을 행한다 (24:9-11)

 

여기서 제사는 예배의 두 번째 순서인 죄를 고백하고 용서함을 받는 차원과, 또 예배의 네 번째 순서인 말씀을 듣고 결단하는 차원의 두가지와 관련되어 있다. 현대를 사는 우리의 예배속에 제사의 이런 두가지 차원의 모습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살아 있는가? 죄의 고백과 용서의 차원에서의 제사로서 우리는 예배시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서 새롭게 나아가는가? 죄의 고백과 용서로서의 제사는 그리스도께서 과거에 단번에 이루셨지만 이것의 적용은 현재적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완성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죄사함의 긴장이 없어져도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되신 하나님의 흘리신 피를 지금 나에게 적용하는 것에 대한 현재적 긴장이 있어야 한다. 또 결단과 결심의 차원의 제사로서 고대의 이스라엘이 언약법을 받고나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피를 뿌렸듯이 현대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난 뒤에 얼마나 생명을 걸고 언약법을 지키겠다는 능동적인 태도를 취하는가? 그리고 예배후에 나와 공동체가 다시 죄를 지었을 때 그리스도의 보혈을 또 다시 의지해야 하는 부끄러움을 우리는 얼마나 의식하는가?

 

<거룩과 정결법>

레위기의 가장 지배적인 단어는 거룩과 정결일 것이다. 거룩의 정도를 증거막에서 나누어 보면 증거막 밖, 번제단이 있는 뜰, 성소, 그리고 지성소로 구분할 수 있고 여기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도 차례로 구분되어 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처럼, 레위기에서 거룩(qadosh)은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이스라엘이 이루어야 할 상태를 의미하였다. 거룩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의 완전성을 나타낸다. 즉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있는 이스라엘은 온갖 더러운 것들로부터 자신을 깨끗이 하여 하나님과 늘 만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 거룩은 실제에 있어 소극적 혹은 적극적 의미의 이중성을 가진다. 소극적 의미는 모든 더러운 것을 멀리하고 조심하는 것이다. 레위기는 대부분 이런 의미의 내용을 다루며 이 오염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소개한다. 그러나 거룩의 적극적 의미를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즉 거룩한 것이 오염된 물체나 사람에게 접축했을 때 그것을 정복하여 거룩하게 만드는 경우로서 레위기6:18,27에서 거룩한 물건에 접촉한 자가 거룩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고전7:14은 불신자인 배우자가 신자인 배우자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나아가 그 자녀까지도 거룩하게 되는 사실을 말하는데 이것도 거룩의 적극적 의미를 나타내는 예이다. 현대에 사는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수행할 때, 부엇 보다도 스스로 죄를 멀리하고 더러운 것에 오염되지 않토록 조심하여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거룩의 적극성을 확신하고 오염되고 타락한 곳으로 적극적으로 들어가서 그곳을 거룩으로 정복하여야 한다. 반면에 정결(taher)은 물건이나 짐승, 질병등 구체적인 사항을 나타낼 때에 쓰였다. 정결에 대해서는 먹을 수 있()는 동물(11), 자녀출산(12), 피부병(13-14), 유출병(15)의 네가지 구체적인 경우를 들고있다. 이 네가지 정결법의 원리를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려우나, 세상과 그 속의 생명을 창조하시고 또 이스라엘을 언약백성으로 구속하신 하나님이 그 창조와 구속의 질서룰 유지하는 것이 정결법의 근본 목적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창조질서가 명확하게 드러나며 언약백성의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의 구속질서를 따라서 이스라엘은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속죄일(16)을 중심으로 그 앞에서는 물건과 관련된 거룩과 정결을 말하고(11-15), 그 뒤에서는 인간관계의 윤리적인 삶의 거룩과 정결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이렇게 거룩과 정결을 요구하는 중심에(15) 대속일에 관한 규례가 놓여있다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속죄일 제사의 궁극적인 의미는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과 지도자 심지어 제사장들 조차도 일년동안 범죄하였고 심지어 증거막 조차도 오염되었으므로 그 모든 것을 씻어 낸다는 데 있다. 그리스도의 사역의 다양성과 포괄성이 레위기 전체를 통하여 나타나는데 특히 대속죄일 의식을 통해서 깊이 있게 나타난다.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차례만 지성소에 들어가서 속죄사역을 감당한 것 같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성소에 들어가서 자신을 제물로 삼아 대속죄제의 제사를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드리셨다. 그리하여 이제 신약의 성도들은 누구든지 담대히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며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의 속죄 및 속건 사역을 세상에 적용하는 일을 감당하도록 하신 것이다. 주목할만한 점은 대속죄일 규례를 포함하여 그 앞의 거룩 및 정결 규례(11-16)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수직적인 관계를 회복하고 완전하게 하는 것과 관련되고 이어서 18-22장에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수직적인 관계가 정리되고 난 다음에 이스라엘간의 수평적인 관계에서 어떻게 성결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레위기의 절기들>

절기에 대하여 간단하게 언급한 출애굽기(23)나 상세하게 설명한 신명기(16)에 비하여 레위기 23장에 표현된 이스라엘의 3대 절기는 모두 추수와 관련되어 감사의 의미로 번제(23:12), 속죄제(23:19), 화목제(23:19)의 희생제물을 드렸다. 누룩없는 떡을 먹는 무교절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완성되었다. 그리스도의 죽으신 날짜는 정확하게 유월절에 일치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구속의 첫 열매 (고전15:23)가 되시고 그 대속 사역의 결과로 새 생명을 모든 사람들이 나누어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무교절과 유월절의 현대적 의미는 그리스도가 완성하신 대속의 사역을 감사하고 적용하고 선포하는 데 있다. 현대의 성도들에게 이 절기는 과거적이며 이미 역사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새롭게 이루는 기초를 이 역사적으로 완성된 그리스도의 우주적 대속의 사역위에 든든히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서 하나님나라의 사역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오순절, 즉 칠칠절 혹은 맥추절은 첫 절기인 유월절 후 50일째에 지키는 절기이며 신약에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이다.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속사역이 현재적으로 우리에게 적용되어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가 되게 하신다(8:23) 구약의 오순절의 현대적 의미는 이제 신약의 교회에 강림하신 성령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그리스도의 완성하신 속죄사역을 현재적으로 적용하실 것을 고대하며, 주신 성령의 은사(고전12-14)와 성령의 열매 (5)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야 한다는 데 있다. 이스라엘력 7월은 절기로 가득찬 달이다. 1일은 그 달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절이요. 10일은 대속죄일이며 15-21일은 초막절, 장막절, 혹은 수장절로 불려지는 이스라엘 3대 절기의 마지막 절기이며 그리고 22일은 절기를 마무리 하는 거룩한 대회이다. 대속죄일은 일년에 한번 이스라엘 전체의 속죄를 위한 날인데 이 날후에 비로서 셋째 절기인 초막절이 시작된다. 그런데 유월절과 오순절이 신약에서 역사적으로 완성되었다면 초막절은 신약의 성도에게 남은 가장 중요한 사건인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으로 시작되는 우주적 추수가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구약의 나팔절과 같이 나팔 소리와 함께 시작될 우주의 추수가 있을 것이며(살전4:16) 구약의 대속죄일과 같이 죄의 우주적 청결인 심판이 있으며, 그 후에 초막절과 같이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게 될 것이다. 이렇게 세절기의 역사적인 완성은 우리에게 구속사의 거대한 흐름에 대한 지식과 확신을 주는 축복이 되는 것이다.

 

<안식년과 희년>

자본주의 경제원리에 익숙한 현대인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제도가 매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과 매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 제도이다. 안식년만 언급하는 출애굽기(23:10-11)나 신명기(15)에 비해 레위기는 두가지를 다 언급하고 특히 희년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한다. 이 두 제도는 결국 이스라엘이 장차 완성할 하나님 나라의 또 하나의 측면인 땅의 완성과 관련된다. 언약으로 완성된 그 씨가 그 땅에 들어가서 살아야 할 가장 근본적인 원칙이 선포된 것이다.

 

12장 레위기 1-7장의 신학과 메시지

2016-01-23 18:16:15


12장 레위기 1-7장의 신학과 메시지

 

구약이 말하는 제사의 의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관계 속에서 찾아야 한다 구약의 제사는 이미 언약관계가 깨어졌을 경우에 회복시키거나 이미 있는 언약관계를 발전시키는 역할을 한다. 오경에서 사실과 사건을 기록하는 순서에 있어서도 이 점이 명백해진다. 먼저 시내산에서 언약관계를 공적으로 체결한 후(19-24) 증거막이 준비되었고(25-31, 34-40) 이어서 제사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1-7), 이 사실은 제사가 독립적인, 하나의 종교적인 행동이 아니라 앞에서 맺은 언약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레위기에는 언약법을 어긴 죄를 회복하는 제사도 있지만 죄와 관계없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서원하며 자원하는 제사도 있다. 이런 제사는 이미 건전하게 유지되는 언약관계를 사랑으로 더 깊이 발전 시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레위기의 제사는 그리스도의 속죄로 완성되었다고 짐작하고 레위기를 건너뛰어 읽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죄와 관계없는 제사의 의미는 충격적일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을지라도 적극적인 자기적용을 통하여서만 하나님의 언약관계로 들어갈 수 있으며 나아가 언약관계를 사랑으로 더욱 발전시킬 책임은 결국 사람에게 달려있다는 의미이다. 다윗이 자원하여 성전을 건축할 의도를 가진 것 자체를 기뻐하시고 영원한 다윗왕국을 이룰 것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언약관계의 깊은 발전을 나타내는(삼하7) 좋은 사례이다. 속죄와 관계없는 제사의 이러한 적극적인 면은 현대의 성도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제사 드리는 장소인 회막>

성막,혹은 회막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을 증거하는 증거막이다. 신약적으로는 하나님의 교회가 바로 구약의 증거막이며, 이 증거막에서 공적으로 증거하는 내용은 신약의 교회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당사자인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구체적인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성도들의 모임 자체가 증거막이고 교회이다. 즉 장소가 관건이 아니라 영이신 하나님을 영과 진리로 만나는 것이 교회의 증거막됨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4:24)

 

<안수의 의미>

제사에서 안수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죄의 전가(transfer of sin) 혹은 짐승이 사람을 대신함(substitute)의 두가지로 해석된다. 제사에서 안수하는 경우는 번제, 화목제, 속죄제이다. 그런데 이중에서 번제와 화목제는 죄와 관련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없는 경우도( 7:12,16에는 화목제를 감사제, 서원제로 드릴 때 안수를 한다) 있으므로 안수의 의미를 일관성 있게 이해하려면 죄의 전가(transfer)보다는 대신함(substitute)의 개념으로 설명하여야 할 것이다. 죄와 관련이 있는 제사에서 안수하는 경우는 안수한 짐승이 제사인을 대신하여 죽음을 당한다는 의미이고, 이것은 신약적으로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상징한다. 그리고 죄와 관련이 없는 제사에서 안수하는 경우는 제사인의 감사와 서원의 표시로 자신의 몸을 드리는 대신에 안수한 짐승을 드린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안수는 제사장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은 제사인 자신이 하는 것이다. 신약적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의 머리에 안수함으로 내가 지은 죄를 대신하여 그가 죽으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설 때나 공적인 예배에 임할 때마다 각자의 죄를 적극적으로 고백하며 그리스도의 대속에 의지하여 사죄를 확신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감사하여야 한다

 

<제사인과 제사장의 역할 분담>

구약의 제사인은 능동적으로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제사인이 능동적이고 제사장은 제사인이 능동적으로 준비한 제물을 수동적으로 드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레위기 1-7장에서 각 제사가 두 번식 언급된 점이다.한번은 제사인의 관점에서( 1-5), 또 한번은 제사장의 관점에서 기록되었다. 적극적으로 제사에 참여하는 제사인이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제사인의 관점에서 더 많이 기록되었다.예를 들어 속죄제를 설명할 때 제사장의 관점에서는 7절밖에 되지 않는데 비해(6:24-30),제사인의 관점에서는 48절이나 할애된다(4:1-5:13) 제사장이 드리는 소제가 언급된 6:19-23 에서는 제사장은 자신이 하나의 제사인이 되어 자신에게 해당하는 사항에 대해 제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제사인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제사를 준비하고 제사장은 오히려 그 준비된 것을 가지고 진행하는 모습은, 공동체 예배에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현대의 예배자들의 모습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속죄의 중요성>

레위기에 언급된 제사는 모두 다섯가지다. 이 가운데 죄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제사는 속죄제와 속건제이고, 번제,소제,화목제는 죄와 관계되기도 하고 그렇지 아니하기도 하다.어쨋든 제사는 죄와 관계된 것이 많은데, 이것은 그만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관계에서 죄의 처리가 중요한 문제임을 나타낸다. 그리고 제사가 다섯가지인 것은 죄가 다섯가지 차원에서 처리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이것을 보면 레위기가 얼마나 죄의 문제에 대해서 예민하게 다루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제사들은 죄의 원인과 결과부터 완전한 회복과 치유까지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우선 번제와 소제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완전한 진노를 돌이키며, 죄의 용서에 대한 감사와 새로운 헌신을 나타낸다. 화목제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간에 막힌 담을 헐고 진정한 샬롬의 상태를 회복함을 목적으로 한다. 속죄제는 죄로 오염된 것을 씻어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속건제는 죄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넘치도록 보상함으로써 완전한 원상복구를 목적으로 한다.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은 죄로 인한 모든 종류의 파괴와 파멸로부터 완전한 회복과 치유가 그리스도의 공로로 역사의 마지막에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그때가 오기 까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의 완전성과 전포괄성과 전능성을 믿으며 그것을 역사와 현실속에 적용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제사의 종류 >

 

 번제(  1:1-17, 6:8-13)

번제(ohlah)가 죄와 관련된 경우는 주로 인간의 범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1:9,13,17, 8:21, 15:24, 삼하24:25, 대상21:26,1:5, 42:8, 대하29:7-8) 그래서 작정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면하는 것이다. 번제의 신약적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가 사람을 대신하여 완전히 태워지듯이 고난을 당하시고 지옥형벌을 받으신 것이다. 한편 번제가 죄와 관련되지 않는 구체적인 예는 창22장에 이삭을 번제로 드린 것인데, 이것은 죄와 관계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전적인 포기, 곧 헌신을 의미한다.또 언약제사에서 드려지는 번제(24;5, 27:6, 32:6 비교)도 이스라엘이 지은 죄와 무관한 것이고 언약당사자이신 여호와께 전적인 헌신을 나타낸다.그 밖에 죄와 관계없는 경우들(18:11-12,완상18:38-39, 삼상15:22, 40:7, 6:14, 15:3, 50,66:13-15)을 종합해 보면 번제는 전적 헌신,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사,조건없는 봉사와 관련되었다. 번제는 완전히 태워짐의 개념이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강조 되었고 이것이 죄와 관계된 경우는 하나님의 완전한 진노를 돌이키는, 죄와 관계없는 경우에는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헌신을 의미하는 제사였다.또 번제단의 불은 꺼뜨리지 않아야 하고(6:8-13) 또 번제는 매일제로 드려졌다(28)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가 죄에 대하여 지속적인 경각심을 가져야 함과 동시에 모든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 변함없는 헌신을 드려야 함을 나타낸다.

 

 소제(  2:1-16, 6:14-23)

소제(minchah)는 제사중에서 유일하게 짐승의 희생, 곧 피와 관계없이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이다 소제는 일종의 선물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종교적으로 하나님께 인간이 드리는 감사의 선물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또한 소제는 단독적으로 드려지지 않고 항상 다른 제사와 동반하여 드려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소제는 인간 편에서의 반응, 즉 감사와 찬양, 헌신과 봉사를 표시하는 행위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신약적으로 소제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하신 모든 행동, 즉 구속과 사죄와 회복 그리고 열매, 능력주심, 사랑과 관심에 대한 반응으로서 사람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나타낸다. 소제를 드리는 방법은 굽거나, 부치거나, 삶거나(2:4-7) 다양한데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로 반응하는 것은 사람의 여건과 재능에 따라 다양함을 나타낸다. 그리고 소제에는 소금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며(2:13 언약의 소금) 누룩과 꿀은 절대 들어가서는 안되며(2:11) 기름과 유황은 없어도 되지만 들어가면 좋은 것이었다. 여기서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소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관계가 영원한 것임을 재천명하는 것이다.(18:19, 대하13:5) 반대로 들어가면 안되는 누룩과 꿀은 언약관계를 부패시키는 요소를 경계하는 것이고 기름과 유황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편에서 자원하는 마음과 순전한 즐거움을 나타낸다.

 

 화목제(  3:1-17, 7:11-21)

화목제(shelamim)는 죄와 관련된 경우,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관계가 파괴되었을 때 이것을 회복하는 역할을 하는 제사로서 쌍방적 관계의 평안(shalom)이라는 의미를 명백히 가지고 있다.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샬롬을 제의히신 것이고 사람이 화목제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이 관계회복의 길을 따르겠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화목제가 죄와 관계없이 드려지는 세가지 경우가 레위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감사제(7:12),자원제(7:16),서원제(7:16,7:14 비교)가 그것이다. 감사제(todah, thanksgiving)로 드리는 화목제는 이루어 주신 구원에 대한 감사로서 (35:29, 1:4, 8:28, 54:6) 드리는 것으므로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과거와 관계된 제사인 셈이다. 자원제(free-will offering)로 드리는 화목제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인 요구에 내가 부응키로 작정하고 자발적아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리는 제사이다.이 제사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현재적 관계를 더 깊게 이어 나가는 제사이다. 서원제(vow)로서의 화목제는 하나님께서 미래에 혹은 과거에 구원을 베풀어 주실 것에 대하여 약속했던 서원을 미리 혹은 이제야 갚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이 제사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미래에 관계된 제사인 셈이다. 이렇게 죄와 관계없이 드려지는 화목제는 그야말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관계가 쌍방의 깊은 이해와 사랑속에서 높은 차원으로 발전하는 것을 나타낸다. 신약적으로도 화목제는 하나님의 과거의 은혜에 대함 감사, 혹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신과 봉사의 삶을 살아 드림 혹은 하나님 나라의 미래의 역사속에서 인간의 활동이 사용되기를 서원하는 인간편에서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으로 적용하여 볼 수 있다. 이것으로 언약관계는 하나님의 행동하심에 대한 인간편에서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반응으로 더 깊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모름지기 언약은 인격당사자 간의 관계이기 때문에 쌍방의 노력에 의해 발전하게 되기 때문이다. 번제는 모든 것이 채워지므로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만 태우고 가슴과 뒷다리를 제사장에게 주고 나머지는 제사인이 먹을 수 있는 것이 화목제이다. 화목제는 하나님께 드렸지만 다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특별한 제사로서 이것은 언약관계가 정상으로 회복되거나 더 깊이 발전한 것에 대하여 하나님이 기쁨 가운데 다시 되돌려 주시는 선물인 셈이다. 이 공동식사로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이스라엘 서로 간의 관계가 샬롬의 상태를 유지하거나 발전하는 것을 진정으로 기뻐하고 즐거워 했을 것이다.

 

 속죄제(  4:1-5, 6:24-30)

속죄제(chatat)는 근본적으로 죄 자체를 처리함으로써 오염과 부패와 타락을 적극적으로 막아 이스라엘을 죄로부터 정결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속죄제 역시 그리스도의 사역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는 죄 자체를 처리하여 죄의 근본을 없애고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역사를 이루셨다. 인간 세계에서 죄의 오염을 없애고 죄에서 자유케 한 것이다. 신약의 세례(baptizo)에 정결케 하는 것과 함께, 그리스도와 같이 죽고 같이 사는 의미가 표현된 것이라면(6) 이 의미를 구약의 속죄제외에 다른 제사에서는 찾을 수 없다. 주목할 점은 레위기에서 속건제와 속죄제를 드릴 수 있는 죄는 비의도적으로(4:2,13,22,27) 범한 것 만을 가리킨다. 만약 의도적으로 지은 죄가 있다면 그것은 직접 언급되고 있지는 않으나 그것은 구체적인 법의 발원지이시며 언약의 주체이신 여호와의 권위 자체에 도전하는 것이므로 언약백성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속건제(  5:14-6:7, 7:1-10)

구약에서 죄를 적극적으로 처리하는 제사에 속죄제만이 아니라 속건제도 있다는 사실은 현대인에게는 충격적이다. 속건제(asham)는 죄 때문에 생긴 손해를 처리하는, 즉 보상하는 제사의 의미이다. 이 제사는 죄가 지어졌을 경우에 만족할 만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하고, 갚아야 할 죄의 빚이 처리되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의 의미가 속건제에 있다, 이사야 53장은 속건제의 의미를 가장 적극적이며 회화적으로 표현하는 구절로서 우리가 받아야 할 죄값을 대신 치르는(substitution)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그리스도께서 사역하신 것을 나타낸다.

속건제를 드려야 하는 두가지 경우는 하나님의 성물에 대하여 죄를 범한 것과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법정에서 그릇 맹세되었을 경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