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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2/3)-톰 라이트

3부 주후1세기 유대교[6장 배경과 이야기]

N.T. 라이트/NTPG

2015-06-17 14:04:10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제3부 헬라-로마 세계와 주후1세기의 유대교

6장 배경과 이야기

 

1. 들어가는 말

 

    주후1세기 유대교 내에서 잉태되고 태어나서 초기 시절에 양육 받았던 새로운 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유대교 전체를 이해하여야 한다. 기독교의 기원, 기독교가 신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고 답할 때 사용했던 용어들을 훌륭한 가설이 되기 위한 요구조건들에 맞추어 이해하려면, 우리는 예수와 바울이 성장했고 실제 사역을 하는 동안에 여러 가지로 관련을 맺었던 유대교를 가능한 정학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한 폭넓게 보면 우리는 이스라엘과 유대교가 처해 있던 문화적 상황 즉 기독교가 시작된 첫 세기 동안의 헬라-로마 세계를 어느 정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초기 유대교를 서술하는 과제는 서구 기독교 신학계가 유대교에 대하여 잘못된 견해를 품어왔던 지난날을 반성하는 과정의 한 복판에 서있다. 그래서 우리는 주후1세기 유대교의 실상과 성격을 아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하고 그러한 자료들을 연구하는데 심혈을 기울여 온 다양한 학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는 제2성전 유대교의 핵심적 측면에 대한 연구를 통해 제2성전 유대교의 세계관을 밝혀내고자 한다. 이런 발판 위에서 우리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의 신앙과 소망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이스라엘의 신념과 열망의 세부적인 내용을 천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팔레스타인 내에서 주후1세기 유대교의 주된 특징은 자기가 추종하는 종교에 대한 정적인 인식이나 도피를 위한 사적인 영역으로서의 종교가 아니라, 현실의 모든 측면을 포괄함과 동시에 현재의 상태는 아직 자기 백성에 대한 계약의 신의 목적들이 완전히 실현된 상채가 아니라는 인식하에 그러한 온전한 실현에 대한 갈망과 기대가 첨예하게 부각되어 있는 총체적인 세계관이었다. 주후1세기 유대민족의 이야기와 다른 문화들의 차이점중 하나는 유대민족의 주도적인 이야기들이 역사 속의 실제 사건들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이야기 속의 마지막 장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예수는 바로 그러한 기대와 열망에 (그 기대와 열망을 재정의하는 방식으로) 대답하였다. 바울도 유대교 신학에 대한 재정의라는 관점에서 볼 때에만 이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대인들의 기본적인 세계관, 주도적인 이야기, 신념체계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가능한 분명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주후1세기 유대교에 대한 연구 동향은 지나치게 원자론적이고 실증주의적이다. 원자론과 실증주의가 주후1세기 유대교 역사의 이면에 대하여 제시한 해석들은 엄격한 심사를 거처여 하고 다른 해석들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 나는 그동안 기독교적 성찰 속에서 모호하게 되어버린 주후1세기 유대교의 진정한 세계관을 서술함으로써 예수, 바울, 초기 기독교에 대한 통상적인 기독교적 이해를 교정하고자 한다. 복음서들에 대한 수많은 기독교적 읽기들은 예수의 하나님나라 선포가 지니는 정치적 의미들을 걸러내었고 유일신과 선택 사상을 바울 신학의 중심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의 목적은 비유대적인 개념을 유대교에 투영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후1세기 유대교의 신념과 열망들을 비판적 실재론에 의거해서 읽어내려는 것이고 나는 이것이 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문제에 예상치 않은 빛을 던져줄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주후1세기의 유대교와 기독교는 그 세계관들과 관련하여 하나의 중심적인 특징을 공유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세계관의 그 이야기가 현재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인식이고, 그리고 아주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가 동일한 이야기였다는 사실이다. 그 이야기는 아브라함으로 시작된 이스라엘의 이야기이며 특히 포로 생활이 정말 끝난 것인지 당혹해하는 이야기이다.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이스라엘에 관한 이야기를 그들 자신의 이야기의 앞부분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여겼다. 바로 여기에 유대교와 기독교의 근본적인 연속성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기독교의 출현을 밝히기 위하여 유대교를 연구하는 것이 정당함을 입증해 준다. 기독교와 유대교의 연관성은 단순히 유대교 내의 한 특정한 하위집단 및 일련의 문학적 유산들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재확인이든 대결이든 재정의든 유대교 전체를 상대로 한 것이었다. 나는 유대교 전체를 문학적 유산들과 아울러 상징세계 및 정치적 동향들을 통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우리의 목적과 관련이 있는 자료들은 주후 66-70년과 132-135년에 일어난 두 번의 큰 반란 이전, 특히 첫 번째 반란 이전의 팔레스타인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특히 요세푸스의 저작인 [유대 전쟁기]와 [유대민족 고대사] 그리고 [나의 생애], [아피온을 반박함] 등은 이 시기의 중요한 자료이다. 그리고 마카베오 1,2,3,4서도 이 당시 유대인들이 태도를 보여준다. 주후1세기 사건들의 이면을 재구성할 때, 이 저작들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차 자료들이지만 동시에 우리는 유대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있었던 책이 성경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구약성서는 1세기 유대인이 가진 세계관이라는 특정한 해석 및 기대의 격자망들을 통하여 특정한 방식들로 읽혀졌다. 탈굼들, 외경 및 위경에 속한 저작들과 쿰란 두루마리들은 많은 부분이 동일한 옛 본문을 새로운 세대의 필요에 맞추어 새롭게 읽은 것들이다. 이렇게 제공된 해석의 격자망들은 주후1세기 유대교의 세계관의 핵심적인 변형을 구성한다. 

 

2. 초기 유대교의 배경이었던 헬라-로마 세계

 

   알렉산더가 주전 322년에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후로 모든 면에서 상황은 백팔십도 달라졌고 예전과 동일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사렛 예수가 태어나기 전 300년 동안 헬라의 영향력은 도처에서 감지되었다. 헬라어는 모든 사람의 두 번째 언어이고 두 번째 문화였다. 마카베오 가문은 헬레니즘적인 이교 신앙을 배척했지만 철저히 헬레니즘적 외관을 가진 하스모니안 왕조를 세웠고 이교적인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철저히 구별했던 쿰란 분파도 다양한 헬레니즘 자료들로부터 가져온 언어와 개념들을 사용하였다. 주전1세기 말에 로마제국이 팔레스타인을 지배하였을 때, 그들은 팔레스타인의 평범한 유대인들에게 복과 화를 동시에 가져다주었다. 로마제국으로 인하여 세계가 기본적인 평화를 되찾았지만 그들의 군사력을 통한 압제와 징세는 무수한 백성들을 빈곤하게 만들었고 로마의 국교는 각 지역에 강제되었다. 다양한 신들로 가득 찬 로마의 이교 신앙은 유일신 사상을 가진 유대인들에게 중대한 도전으로 여겨졌다.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들이 그들의 영토 안에서 이교 신앙이 행해지는 모습을 보아야 했다는 것은 극도로 괴로운 일이었고 이로 인해서 유대인들은 헬레니즘을 대변하는 자들로 여겨졌던 로마 사람들에 대하여 격렬한 분노와 증오심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3. 주전 587년부터 주후 70년에 걸친 이스라엘 이야기

 

   제2성전 시대 유대교에 관한 이야기는 긴장과 비극의 이야기다. 유대인들은 바빌론 포수에서 돌아왔지만 그들이 처한 헬레니즘적인 문화적 배경은 유대인들에게 정치적인 위협만큼이나 모든 점에서 강력하고 지속적인 문화적 종교적 위협이 되었다. 당시 유대인들의 자기 이해는 이러한 이교 문화와 어떻게 단절할 것인가라는 절박한 문제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정체성에 관한 문제는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에게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강요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자기 이해와 열망 그리고 예수 시대 및 그 이후에 까지 유대인들의 신앙의 새로운 구심점과 관련하여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은 수리아의 지배 하에서 일어났다. 수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주전 167년 12월 5일에 예루살렘 성전을 모독하였고 이 일은 유대인들의 완강한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 유대인들의 자기이해, 신앙, 소망의 흐름은 단일한 운동으로 응집되어 유다 마카베오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반란을 일으켜 폭군을 쫒아내었다. 성전 모독이 일어난 날로부터 3년 후에 유다는 성전을 정결케 하고 재 봉헌하면서 유대 역법에 새로운 절기인 하누카가 더해졌다. 마카베오 혁명은 출애굽을 비롯한 이스라엘 역사의 다른 위대한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이후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고전이자 전형이 되었고 유대인들의 기본적인 세계관을 강력하게 확장시켰다. 그러나 성공한 혁명가들의 후예들이 제사장적 왕으로 통치하던 이후의 세월들이 별 의미 없이 지나가자 유대인들에겐 포로귀환 이후에 생겨났던 동일한 당혹감이 출현하였다. 일부 유대인들은 하스모니안 왕조에 반발하여 따로 공동체를 만들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불만을 품고 내부 개혁을 시도하였고 어떤 이들은 권력투쟁을 벌였다. 주전 2세기의 이런 모호한 시대에 나타난 다양한 반응이 바로 예수와 바울이 알았던 다양한 형태의 유대교를 만들어 내었다. 

 

    주후 63년 로마의 팔레스타인 점령이후 유대인들은 로마인을 우상숭배자들의 원형으로 보았고 결국 로마인들이 악하고 신성모독적인 행위들에 대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로마인들은 바빌론, 안티오쿠스, 헬레니즘 문화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감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로마인들의 오만한 통치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고 이와 같은 상황은 끊임없이 유대인들을 반란 일보 직전까지 내몰았다. 결국 주후 70년에 성전은 불에 타고 예루살렘 도성은 멸망되었다. 그리고 74년에 마사다 함락이 뒤를 이었다. 깃딤이 승리하고 계약의 신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 이 당시에 재구성된 유대교는 슬픔과 고통, 엄청난 재앙을 당했다는 인식과 아울러 신앙이 무너지고 소망이 짓밟혔다. 분명히 주후 70년 이후의 시기는 유대교의 향후 방향을 결정하는데 아주 중요한 시기였다. 성전 파괴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응은 한 가지가 아니라 다양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상황 속에서 유대교의 대응은 획일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주후 70년과 135년 사이에 일반적으로 반기독교적인 활동이 유대교 내에 있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이 시기는 많은 모호한 것들이 나란히 공존했던 과도기였고 앞으로 대규모의 분리를 경험할 양 진영(유대교와 기독교)에 속한 많은 사람들은 그냥 모호한 상태로 살아가는데 만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초기 기독교가 이스라엘의 유산을 적법하게 이어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스스로를 이교에 반대하여 정의하였고 오직 부차적으로만 주류 유대교에 맞서서 정의하였던 운동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3부 주후1세기 유대교[7장 다양성의 발전]

N.T. 라이트/NTPG

2015-06-17 14:04:35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3부 헬라-로마 세계와 주후 1세기의 유대교

7장 다양성의 발전

 

 

   제2성전기는 유대인들의 정체성과 삶이 대단히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 시기였는데, 마카베오 왕조 이래 유대교 안에 유대인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로 서로 다른 다양한 분파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마카베오 혁명(주전 164년)과 로마 통치(주전 63년)사이의 기간에 유대사회에는 마카베오 왕조를 둘러싼 다양한 갈등과 불만들이 분파들의 반란 활동으로 나타났고 이런 반란은 메시아적 인물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 시기에 나타난 대표적인 유대교 분파가 바리새파와 에세네파 그리고 제사장들과 귀족들로 구성된 사두개파였다. 

 

  마카베오 왕조 시대에 종교적 정치적 압력집단으로 시작되었던 바리새파는 그 시대 후반에 가장 큰 사실상의 비공식적인 권력집단이 되었다. 그들은 비유대적인 이교사상의 동화에 맞서서 유대인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의 전통들을 고수하려고 하였고 특히 토라에 대해 극단적으로 집착하였다. 그들의 목표는 개인적인 경건 그 자체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정결케 하고 이스라엘을 독립적인 신정국가로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그들은 토라에 대한 연구과 실천을 통하여 압력집단으로서 그런 운동의 선봉에 섰다. 따라서 로마 강점기 동안 바리새파는 정치적인 역할 그리고 적극적인 혁명적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신이 역사하실 때 신실한 유대인들은 그러한 신의 역사에 대리자들과 도구로서 필요하다고 믿었다. 이 문제를 이스라엘의 신에게 맡기는 방향으로 더 기울었던  힐렐 학파에 비해 샴마이 학파는 그런 신의 도구로서 적극적으로 행동하고자 했다.

 

   에세네파는 이스라엘의 나머지 사람들로부터 지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고립되어 살아가면서 자신들을 성경의 약속의 진정한 후예로 자처하며 다른 분파의 유대인들을 위험스러운 사기꾼으로 취급하였다. 이 집단은 스스로를 참 이스라엘이며 참 성전으로 여겼으며 혁명에 대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그들이 예수, 바울, 초대교회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고위 제사장들은 주후 1세기에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상설 비서국을 형성하고 상당한 권력을 휘둘렀는데 그들은 평제사장들과 달리 유대교 귀족층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다. 제사장적 세계관의 중심은 성전이었고 성전은 그들의 권력기반이자 유대의 경제적, 정치적 중심이었다. 그들은 성전을 장악하였으며  성전은 로마인들과 헤롯 아래에서 부여받았던 그들의 지위를 종교적으로 강력하게 합법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이 고위 제사장들은 근본적으로 보수적이었고 대체로 사두개 분파에 속해있었다. 사두개파는 권력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권력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개혁을 원하지 않는 본질적으로 보수적인 집단이었다.

 

3부 주후1세기 유대교[8장 이야기, 상징, 실천]

N.T. 라이트/NTPG

2015-06-17 14:05:06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3부 헬라-로마 세계와 주후 1세기의 유대교

8장 이야기, 상징, 실천 : 이스라엘의 세계관의 여러 요소들

 

1. 이야기

 

   격동의 역사 속에서 그리고 여러 분파들의 압력 속에서 살았던 주후 1세기의 평범한 유대인들의 세계관은 무엇이었을까? 분명한 것은 여러 분파들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유대인들은 그들 대부분을 하나로 묶어 주었던 세계관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공유했던 세계관의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는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와 선택, 출애굽과 왕정, 포로생활과 귀환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이 큰 이야기와 관련된 더 작은 단위의 이야기들이다. 

 

   주후 1세기 유대인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이야기는 창조주 신과 세상에 관한 것이며 창조주 신의 계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지위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족장들의 부르심은 창조와 타락이라는 배경과 대비를 이루며 아브라함은 아담의 문제에 대한 이스라엘 신의 대답으로 여겨졌다. 출애굽 사건은 이 이야기의 최초의 절정으로서 해방이라는 주제를 모티프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이후의 역사에서 당혹스러운 문제가 제기되었으니 그것은 가나안 땅에서의 이스라엘의 타락 그리고 결국 포로로 끌려간 일이었다. 이런 맥락 속에서 새로운 출애굽에 대한 기대들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이 이야기는 그 결말을 미래에 미뤄둔 채 아직 완성을 기다리고 있는 진행 중인 이야기였다. 그러므로 이 위대한 성경 이야기는 제2성전 시대에 그 결론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하는 이야기로 읽혀질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에 많이 등장한 묵시문학의 주제에는 출애굽 전승을 이어받으며 창조주, 그의 세계와 그의 계약의 백성에 관한 역사는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결말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의 이 기본적인 이야기는 어떻게 작용하는가? 이 세계관의 초점은 분명히 창조주와 이스라엘의 계약 즉 정치적 억압과 긴장 속에서 창조주가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내용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토라를 주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토라를 지킴으로 그의 백성이 되고 이방의 원수들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자기 땅의 확고한 통치자로서 살 수 있다. 구원의 수단에는 분파마다 다른 대안들이 가능했는데 에세네파는 이스라엘의 신이 그들의 새로운 공동체에 토라를 진정으로 강화시킬 수단을 제공해 주었다고 믿었고 바리새파는 조상들의 전통에 대한 충실이라는 모토가 토라를 강화시키는 방편으로 생각했다. 그 밖에 명시적인 혁명운동들도 이런 구원의 방편에 부합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른 차원의 이야기들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한 질문이다. 왜 신은 이스라엘을 먼저 부르셨는가? 창조주가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는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구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이 이야기의 배후에는 더 오래되고 근본적인 이야기에 대환 인식이 존재한다. 그것은 이스라엘은 창조주의 지혜로운 질서를 피조세계에 실현하기 위한 창조주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다. 이스라엘은 참 인류 곧 세상을 다스리시는 창조주의 대리자가 되어야 한다. 야훼가 왕이 될 때 이스라엘은 그의 오른팔이 될 것이다.

 

2. 상징들

 

   세계관을 표현하는 이런 이야기들은 그 세계관을 가시적이고 유형적인 실체로 만들어 주는 상징을 만들어 내었는데 관련된 중요한 네 가지 상징들은 성전, 땅, 인종적 정체성 그리고 토라였다. 이 네 가지 상징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주후 1세기 유대인들의 세계관이 정초했던 핵심적 상징들이었다. 성전은 유대 민족의 삶의 모든 측면에서 그 구심적이었으며 또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이 땅의 구심점이었다. 그리고 인종적 정체성은 포로귀환 이후에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해야 하는 유대인들에게 큰 쟁점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주전 5세기에 인종적 정체성의 문제가 중요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유대국가 재건에 반감을 가진 적대적인 세력에 둘러싸여 있었고 헬라, 수리아 로마의 통치를 거치면서 인종적 정체성의 문제는 더욱 증폭되었다. 그러므로 주전 1세기경에는 인종적 정체성이라는 신념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할례라는 계약의 징표는 선민으로서 유대인들의 경계 표시였다. 

 

   토라는 계약의 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계약 헌장이었다. 토라는 성전이나 땅과 견고하게 묶여 있는 상징이었다. 토라는 성전제의의 상당부분을 재가하고 규율하였으며 땅에 관한 약속들에 필요한 지시사항들을 제공하였다. 특히 디아스포라 지역에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이교도들과 구별해 주는 토라인 할례, 안식일 준수, 결례들을 통해 상징들이 일상의 삶에서 생생하게 살아나는 실천의 세계 속으로 인도되었다. 디아스포라 지역에서 토라에 대한 연구와 실천은 점점 더 유대인 정체성의 구심점이 되었고 수많은 평범한 유대인들에게 토라는 들고 다닐 수 있는 땅이요, 이동 가능한 성전이었다. 특히 바리새인들은 갓 시작된 회당 운동과 연결하여 토라에 대한 연구와 실천이 성전 예배를 대신할 수 있다는 이론을 전개하였다. 토라를 일상의 모든 세부적인 부분까지 지켜야 한다면 토라는 오경 자체 속에서 분명하게 해 놓지 않은 세부적인 부분들에까지 적용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결과 세부적인 내용을 다루는 판례법인 미쉬나가 발전하게 되었다.

 

3. 실천

 

    이런 상징들이 일상의 삶에서 실천되는 방식은 두 가지였는데 첫째는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반복하며, 상징들을 부각시켰던 절기들을 준수하는 것이고 둘째는 토라에 대한 실제적인 연구였다.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그리고 추가적인 절기들인 하누카와 부림절, 이 다섯 절기들은 한데 결합하여 유대인들의 기본적인 세계관을 강화시켜주었다. 이 절기들은 유대인의 세계관 전체를 다시 말함으로써 유대인들의 근본적인 소망을 주기적으로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토라 또한 유대인들의 세계관을 담고 있는 상징이었기 때문에 토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일에 헌신하는 유대인들이 필요했다. 제사장들은 토라의 교사들이자 수호자들이었지만 어느 시기엔가 평신도 서기관들과 교사들의 무리가 등장했다.

 

     토라는 주후 1세기 유대교에서 대단히 실천적인 상징이었다. 유대교의 정체성이 끊임없는 위협에 처하게 되었을 때 토라는 유대인을 이교도와 구별해주는 특히 세 가지의 표시를 제공해 주었는데 그것은 할례, 안식일, 결례법이었다. 특히 안식일과 정결에 대한 논증들은 미쉬나와 탈무드에서 보듯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점하고 있었다. 그들이 토라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그들을 압제하는 민족들에 맞서서 신이 그들에게 준 독특성을 유지하고자 애썼기 때문이다. 민족으로서 그들의 존재 이유는 바로 거기에 달려 있었다. 그러므로 주후 1세기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에게 특히 바리새인에게 유대인들의 독특한 표지들을 유지하는 일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표지들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 세부적인 토론들이 가능했던 것이다.  율법의 행위들은 신의 호의를 얻어내기 위한 율법주의자의 사다리가 아니라 정체성을 나타내는 표지들이었다.

 

4. 맺는 말

 

  이야기, 상징, 실천들로 구성된 유대인들의 이런 세계관은 성경에 정초해있다. 제2 성전기에 성경 전체의 이야기는 창조주, 계약백성, 세계에 관해 여전히 미완성의 이야기로 읽혀졌다. 이야기로서의 성경은 현재를 위한 맥락을 만들어 내고 토라로서의 성경은 현재를 위한 윤리를 만들어 내면서 이 둘은 이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절정에 이르게 될지를 보여주는 예언으로서의 성경을 떠받치고 있었다. 유대인의 세계관은 다음 4가지 질문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1)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창조주 신이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이다.

 

2)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성전을 구심점으로 한 거룩한 땅에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여전히 포로생활 중에 있다.

 

3)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우리의 통치자들이 잘못되었다. 한편으로 이교도들, 다른 한 편으로 타협적인 삶을 사는 유대인들, 그 중간에는 헤롯과 그이 가문. 이 모든 것이 이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상황에 처해 있다.

 

4) 무엇이 해법인가?  

우리의 신은 다시 한 번 역사하셔서 우리에게 참된 통치 즉 그 신에 의해 적절하게 임명된 관리들을 통해 행사되는 신 자신의 왕권을 주실 것이다. 그리고 그 때까지 이스라엘의 신의 계약 헌장인 토라에 신실해야 한다.

 

3부 주후1세기 유대교[9장 이스라엘의 신앙들]

N.T. 라이트/NTPG

2015-06-17 14:06:10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제3부 헬라-로마 세계와 주후 1세기의 유대교

9장 이스라엘의 신앙들

 

 

1. 들어가는 말

 

     주후1세기의 유대인들은 의식적이든 잠재적이든 도대체 무엇을 믿었기에 그토록 수많은 다른 민족들이 실패했던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 언젠가는 계약의 신께서 그 자신과 그들을 신원하기 위하여 역사하실 것이라는 소망을 계속해서 키워주었던 일련의 확신들은 무엇이었는가? 여기서 우리는 유대인들의 세계관의 네 번째 요소인 신학, 기본적인 신념들, 부수적인 신념들에 대하여 묻고 있다. 우리가 이런 신념체계를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한 신념체계는 흔히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서 논의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만 유대교 내에서 그 밖의 다른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특히 두 인물, 예수와 바울이 유대교 체제 내부로부터 말하고 있다고 스스로 주장하면서 바로 그러한 도전과 재정의를 시도했다는 것이 나의 프로젝트 전체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의 기본적인 신념은 무엇이었는가?  이 시기의 유대교의 신념체계, 궁극적으로 세계관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적어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현상에 대한 분석과 관련하여 그 밑바탕에 있는 세계관들은 가장 표면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삶의 습관들보다 더 근본적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실천의 밑바탕에는 이스라엘은 창조주 신의 백성이라는 신념이 깔려있다. 둘째는 유대인들의 세계관 및 신념은 바로 그것이 예수와 바울에 의해서 근본적으로 다시 정의된 유대교의 특징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유대인들의 신념에 대한 통상적인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소망을 다시 정의하였고 바울은 이렇게 다시 정의된 소망이 실제로 예수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봄으로써 신념에 대한 재정의 작업을 원칙적으로 완성하였다.

 

   우리는 유대인들의 신념에 관하여 몇 가지 분명하고 확고한 것들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광범위한 유대인들의 글 속에는 몇 가지 중요하고 결정적인 문제들에서 일치된 확고한 견해가 존재했다. 온 세상을 만드신 한 분 신이 계시고 이 신은 이스라엘과 계약 관계에 있다. 그 신은 어떤 목적을 위해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 그 목적은 이스라엘이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2성전 시기의 민족적 위기에 직면해서 유일신 사상과 선택이라는 이 쌍둥이 신앙은 유대인들을 또 하나의 신앙으로 이끌었다. 그것은 창조주이자 계약의 신인 야훼는 이스라엘의 참담한 운명을 끝장내고 그의 참된 백성을 신원하게 될 역사 속에서 또 하나의 행위를 반드시 수행하실 것이라는 종말론 신앙이다. 그래서 유일신 사상과 선택 사상은 종말론으로 귀결되고 종말론은 계약의 갱신을 의미하였다. 유대인들이 지닌 유일신 사상은 유일한 신의 내적 본질에 대한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분석이 아니라 세상을 만든 한 분 신이 이스라엘의 신이고, 그분이 모든 공격자들과 찬탈자들에 대항하여 그의 선을 지킬 것이라는 요동치 않는 신앙이었다.

 

2. 주후 1세기 유대인들의 유일신 사상

 

   창조의 유일신 사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유대인들의 유일신 사상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창조의 유일신 사상은 단일신 사상, 즉 실제로 다른 여러 신들이 존재하지만 이스라엘은 오직 자신의 신만을 섬길 것이라는 신앙이 아니다. 둘째 창조의 유일신 사상은 범신론을 배제한다. 셋째 창조의 유일신 사상은 자연신론을 배제한다. 넷째, 창조의 유일신 사상은 영지주의를 배제한다. 창조의 유일신 사상은 이러한 네 가지 유일신론적인 대안들을 배제함으로써 현재의 세상이 유일하게 한 분이신 참되신 신에 의해 만들어졌고 악은 비록 실재하고 중요한 존재이지만 현세의 필수적 구성부분이 아니며 한 분 신은 현세에 대하여 여전히 주권을 가지고 계시다는 어려운 임무를 스스로 떠맡고 있다. 주후1세기의 유대인들은 그들의 신이 본질적으로 세상으로부터 떨어져서 멀리 초연해 계시다거나 신이 최근에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섭리라는 말로 한 분 신, 창조주, 악의 근본적인 성격에 대한 인식을 함께 묶기에는 불충분하다. 이러한 과제를 시도한 유대인들의 기본적인 신념은 선택과 계약 사상이었다.

 

    주류 유대교 사상 내에서는 오랫동안 창조 및 섭리의 유일신 사상 속에서 악의 문제와 그 기원에 대한 폭넓은 논쟁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체로 악의 문제는 현재 및 미래에 그 초점이 맞춰져 왔다.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인데 창조주는 이 악을 어떻게 할 것인가? 창세기로부터 후대의 랍비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유대인 저자들의 대답은 분명하다. 창조주는 피조세계로부터 악을 제거하고 질서와 정의와 평화를 회복하기 위하여 피조세계 내에서 결정적으로 창조주를 위하여 일하게 될 백성으로 이스라엘을 부르셨다. 창조주가 그의 세계를 회복하고 치유하기 위하여 일하실 때 그는 이 백성을 통하여 그렇게 하실 것이다. 이렇게 유일신 사상의 수식어들인 창조, 섭리라는 말에 계약이란 말을 덧붙이는 것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계약이란 말을 유일신 사상에 덧붙임으로써 창조주 신과 악한 세상의 공존이라는 커다란 신학적 문제는 다른 차원으로 옮겨간다. 악의 문제에 대한 어떤 대답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악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있는 세상의 역사 내에서의 신의 활동을 포함할 것이다. 아브라함의 백성은 원죄와 그 결과들을 말소시키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신념은 우리가 살펴보는 시기의 유대인 문헌들 전체에 나타나는 기본적인 전제이다. 이러한 전제는 궁극적으로 선과 악이라는 이원론의 주장을 배제한다. 악은 존재하고 악은 실재하며 힘이 있고 위험스럽지만 악은 최종적인 것이 아니다. 창조주는 그의 피조세계와 그의 백성을 깨끗이 하고 정화하는데 악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창조의 유일신 사상이 종말론을 수반한다면(창조주는 그가 만든 세계를 회복하여야 한다.) 계약의 유일신 사상은 이러한 종말론이 수반하는 의미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창조주는 계약의 신으로써 계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통하여 세상을 회복할 것이다.

 

   유대교의 일부 형태들은 이원론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거나 이원론에 빠질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흔히들 말한다. 이러한 주장의 문제점은 이원론이라는 단어를 구분하지 않고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던 이원론과 일부 사람들이 장난삼아 말했던 이원론을 철저하게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일신 사상의 처음 두 유형(창조의 유일신 사상, 섭리의 유일신 사상)만을 강조하게 되면 이교 사상과의 타협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변질될 수 있고 요세푸스의 경우에는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세 번째 유형인 계약의 유일신 사상을 강조하게 되면 창조주와 세계, 선과 악, 현세와 내세라는 유대교의 통상적인 구별을 뛰어넘는 이원론들로 변질될 수 있고 쿰란 공동체는 사실 그렇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한편으로는 창조와 섭리 간의 긴장, 다른 한편으로는 창조와 계약 간의 긴장이 존재한다. 계약의 성격을 희생시키고 처음 두 가지, 곧 창조와 섭리의 성격을 강조하게 되면 신과 세계, 선과 악, 현재와 미래 간의 이원성을 포함한 열 가지 모두의 이원성들이 감소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것은 결국 범신론, 이교 사상, 영지주의로 가는 길이다. 역으로 창조와 섭리를 희생시키고 계약을 강조하게 되면 위에서 말한 모든 심각한 이원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이 시기의 유대교에 핵심적인 신앙은 악은 창조의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고 기본적으로 선한 피조질서가 왜곡된 결과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왜곡의 결과로써 인간은 창조의 영광, 즉 피조물에 대한 지혜로운 청지기의 영광을 잃어버렸다. 이스라엘의 사명은 세계가 잃어버린 것을 세계에 되돌려 주는 일에서 창조주 신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볼 때 신학의 주된 과제는 사회정치적인 주된 과제와 같은  성질의 것이었다. 이교 세계 내에서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사명을 어떻게 유지하느냐 하는 문제는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에 피조 세계 내에서 악의 존재와 근본적인 성격을 부정하지 않고, 창조, 섭리, 계약의 유일신 사상을 어떻게 고수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되었다.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 또는 쉐마를 기도하는 것이 이스라엘 신의 내적 본질에 대한 숫자적 분석과 어떤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은 하나도 없다. 그것은 모두 이교 사상과  이원론에 맞선 두 가지 기나긴 싸움과 관련이 있었다. 실제로 이 시기 동안에 유대교 분파들과 어떤 개개인들은 성경의 몇몇 어려운 구절들의 의미를 묵상하면서 신이라는 존재는 복수성을 포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들을 발견한다. 필로는 로고스를 제2의 신적 존재로 생각했고 에녹의 비유서는 인자/메시야를 영원한 신적 존재로 묘사한다. 그러나 이들 중 누구도 그들이 유대교의 통상적인 유일신 사상을 깨뜨리고 있다고 스스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지 않는다. 사실 그들은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을 깨뜨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신 창조주는 한 분이시라는 것은 결코 이 신의 내적인 실존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언제나 이교 사상 및 이원론에 대항한 변증적 성격을 가진 교리였다. 주후2세기 및 그 이후의 유대인들이 유일신 사상을 신적인 존재가 숫자적으로 하나라는 것으로 재해석한 것은 기독교가 등장하여 호교론이 필요했던 상황과 헬레니즘화된 철학의 영향 하에서였다. 세계를 계속해서 주관하고 세계 내에서 활동하시는 분은 한 분 신 창조주이다. 그리고 그는 하늘에서와 마찬가지로 땅에서 그의 올바른 통치를 수립하기 위하여 자신을 위해 일할 도구로서 유일무이한 백성인 이스라엘을 그의 세계로부터 불러내셨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계약 자체에 대한 고찰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3.선택과 계약

 

   한 분 신에 대한  이스라엘의 신앙은 이스라엘은 특별한 의미에서 이 신의 백성이라는 신념과 밀접한 연관 속에서 유지되었다. 또한 유일신 사상에 대한 교리를 천명하고자 하는 시도는 세상 내에서의 악에 대한 분석과 관련된 함의들을 지닌다. 이제 나는 제2성전 시대의 계약 신학이 다양한 형태의 악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대답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다음 세 가지로 논증하려고 한다. 

(1) 큰 차원에서 볼 때, 유대교의 계약 신학은 창조주가 그의 피조물의 반란에 의해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방해를 받지 않았고, 그의 피조세계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그를 위해 일할 백성을 부르셨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창조주는 악을 다룰 수 없는 연약한 신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고 유일신 사상은 신학적/도덕적/ 이원론으로 변질되고 말 것이다.

(2) 작은 차원에서 볼 때, 계약 신학 자체 내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이스라엘 자신들이 고난들은 동일한 계약의 교리로부터 대답된다. 즉 이스라엘은 계약에 불충실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고 있지만 이스라엘의 신은 여전히 신실하셔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것이다. 

(3) 유대인 개개인의 고난과 죄들은, 죄 사함과 회복의 지속적인 공급이라는 관점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위대한 회복이 소규모로 반복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계약 사상은 유일신 사상과 공존하면서 유일신 사상에 좀 더 정확한 의미를 부여하는 유대교의 두 번째로 중요한 교리인데 이 교리에 대한 전문적인 용어는 선택이다. 창조주 신은 그의 세계를 회복하는 길을 발견하였다. 그는 그를 위해 일할 백성을 선택하였다. 유일신 사상과 선택 사상은 그것들이 수반하는 종말론과 함께 유대교의 기본적인 신념의 근본적인 구조로서 유대인 세계관의 신학적 측면을 형성한다. 계약 사상은 이 시기의 유대교의 중심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많은 핵심적인 본문들에서 계약(berith)을 가리키는 통상적인 히브리어 단어가 비교적 드물게 나온다는 이유로 종종 의문시되어 왔다. 그러나 샌더스가 아주 결정적으로 입증하였듯이, 너무도 결정적이어서 그 밖의 다른 견해를 우리가 어떻게 지닐 수 있었는지를 의아해 할 정도로 계약사상은 이 시기에 일상적이고 보편적이었다. 물론 계약의 기초는 족장들에 대한 일련의 약속들이었고 오경의 편집자들은 계약의 첫 번째 성취를 출애굽의 여러 사건들 속에서 보았다. 따라서 토라를 이스라엘의 신이 그의 신실하심으로 인하여 그의 백성을 위하여 백성들이 신에 대한 자신의 신실함을 표현할 생활방식을 제시한 계약 문서로 이해하였다. 

 

   그러므로 계약 사상은 제2성전 유대교 내에서 여러 운동들과 사상 조류들에 근본적인 것이었다. 마카베오 위기나 에세네 공동체도 계약 사상과 관련되어 있다. 지혜문학도 계약을 강조하였고 묵시문학은 계약의 성취와 신원의 날을 열렬히 기다리고 있었다. 후대의 랍비들은 신과의 계약 속에서 이스라엘이 행해야 할 의무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이스라엘에 대한 압제를 실제적인 문제이자 신학적인 문제로 볼 수 있게 했던 것도 계약이었고 이 문제에 해법을 결정한 것도 계약이었다. 또한 어떤 이들을 토라에 대한 열심으로 내몰고, 다른 이들을 무력행동으로, 혹은 수도원적 경건으로 내몰았던 것도 계약이었다. 계약은 누가 진정으로 이스라엘에 속했냐는 문제를 제기했고 또 그 질문에 대답하였다. 계약신학은 이 시기의 유대교가 쉼 쉬었던 대기와 같은 것이었다.

 

   나는 이제 계약과 관련된 이스라엘의 소명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창조주가 지은 참된 인류로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한다.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을 아담의 죄, 그러니까 세상의 악을 다룰 창조주의 수단으로 이해한다면 이스라엘은 참된 아담적 인류가 된다. 이러한 신념은 유대교의 다양한 서로 다른 양식들 또는 흐름들을 대표하는 문헌들을 샅샅이 조사해 봄으로써 입증될 수 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은 모든 인류의 곤경에 대한 해답으로 등장한다. 아담으로부터 가인을 거쳐서 대홍수에 이어 바벨탑 사건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재앙과 저주는 신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네 안에서 땅의 모든 족속들이 축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실 때 역전되기 시작한다. 아브라함의 부르심, 그의 할례, 이삭을 제물로 드림, 아브라함에서 이삭에게로, 이삭에게서 야곱으로 그리고 애굽에서 체류와 출애굽, 이 서사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이 아담과 하와의 역할을 이어받을 것임을 조용히 역설한다. 이스라엘은 제사장들의 나라, 창조주가 그의 피조세계를 다시 한 번 축복하실 때 그 중보가 되어 줄 백성이 되어야 한다. 계약 사상은 오경을 관통할 뿐 아니라 예언서에도 등장한다. 예언서는 야훼가 세상 전체를 다스리실 때, 이스라엘은 그의 도구가 되는 백성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의 핵심은 이스라엘 자신의 역할이라는 견지에서 이스라엘은 창세기의 묘사 속에서 볼 때 아담의 지위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에게 모든 것이 회복될 미래의 날들을 기다리도록 촉구하였던 문헌들 속에서 이 땅의 미래의 영광은 낙원 이미지에서 빌려온 용어들로 묘사된다. 예언자들이 그린 그림은 모두 동일하였다. 회복 후의 이스라엘은 새로운 창조와 같을 것이고 백성들은 다시 한 번 자기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한 분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 될 것이고 이스라엘의 운명은 세상 전체의 운명의 열쇠가 될 것이다.

 

   진정한 인류가 되라는 이스라엘이 받은 소명에 대한 핵심적인 표현은 지혜문학 속에서도 발견된다. 지혜문학들은 이스라엘의 소명과 운명을 세상의 창조 및 인간의 창조에 관한 전승들에서 빌려온 언어로 말한다. 야훼의 지혜는 야훼가 세상을 창조하는 수단이었다. 이것은 야훼가 세상을 창조할 때 지혜롭게 창조하였음을 확언하는 것이며 이런 비유의 말은 창조주가 그의 세계 내에서 활동하고 계시다는 주장이 널리 알려졌음을 보여주는 표지이다. 지혜가 이런 식으로 야훼가 활동하시는 수단이고, 인간은 야훼가 활동하실 때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면 지혜는 인간이 창조주에게 복종하여 지혜롭게 행동하고 세상에 대하여 권위를 가지고 행동하는 야훼의 대리자들이 될 때에 반드시 필요한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지혜를 얻음으로써 인간은 진정한 인간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결정적인 전환이 이루어졌다. 신구약 중간기에 지혜는 토라와 동일시되었다. 이것이 토라를 소유하고 지키고자 애쓰는 사람들은 참된 이유였고 그런 사람들은 인류가 원래 있었던 자리, 즉 창조주의 아래임과 동시에 피조물의 위라는 자리로 높아질 것이다. 동일한 계약 사상이 쿰란 문서들에서도 발견되며 제2성전기의 여러 문헌들 가운데도 나타난다. 계약이라는 주제가 항상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도처에 존재하고 있으며, 계약의 의미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이스라엘과 아담의 연관 관계는 유대인들의 사상과 글 속에 아주 철저하게 얽혀있다. 유대교의 세계관 내에서 이스라엘의 소명은 이방인들이 신의 백성에 합류하기 위하여, 신의 지혜를 듣기 위하여 찾아올 때에 성취된다고 할 수 있다. 열방들의 운명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이스라엘의 운명과 단단히 결부되어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점은 주후1세기의 유대교와 막  등장하고 있었던 기독교를 이해하는데 대단히 중요하다. 이방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 하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 하는 것에 달려있다. 계약의 목적의 첫 번째 차원이라는 견지에서 볼 때 이스라엘의 부르심은 피조물 전체의 구원과 회복을 그 근본전인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연관성을 보지 못하는 것은 유일신 사상과 선택에 관한 근본적인 교리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방인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신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시된다면, 한 분 창조주 신의 유일한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의 주장은 그 자체가 의문시될 수밖에 없다. 

 

4. 계약과 종말론

 

   창조주가 이 특정한 민족과 계약 관계를 맺었다면 왜 그 민족은 신이 택한 백성으로서 세상을 통치하지 않고 있는 것인가? 세상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창조되었다면 왜 이스라엘은 여전히 고난을 받고 있는가? 신실한 유대인은 현재의 고난의 때에 무엇을 해야 하고 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이스라엘의 소망과 계약의 요구사항들에 대한 표현에 특징적인 형태를 부여하였고 이 문제는 계약의 목적의 두 번째 차원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체를 다시 만들고 회복시키고자 하는 신의 의도와 관련이 있다. 이스라엘의 회복의 필요성은 제2성전 시대에 보편적인 역사 인식이었다. 당시에 이스라엘은 포로생활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믿었다. 이스라엘의 현재 상태에 대한 이러한 인식을 제2성전 시대 유대교에서 분파를 뛰어넘어 폭넓은 범위의 저자들이 공유하였다. 현 시대는 여전히 진노의 때의 일부이다. 이방인들이 물러가고 이스라엘과 성전이 온전히 회복될 때까지 포로생활은 진정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선지자들이 약속한 축복은 여전히 장래의 일로 남아있다. 이스라엘은 계약의 신이 역사하셔서 현재의 상태를 전복시키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며 다시 그 가운데 거하시는 그 날을 열망하였다. 이 이야기 전체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던 종교적인 경계표지들 뒤에 피신하여 보호를 받고 있던 이스라엘은 신앙과 소망, 당혹과 열망 속에서 그의 신의 역사를 기다렸다. 후대의 성경 및 제2성전 시대 문헌에서는 이 문제를 흔히 이스라엘 신의 계약에 대한 신실성(tsedaqah, “의”)이라는 견지에서 바라보았다. 이렇게 신의 “의” 라는 사상은 계약 사상과 떨래야 뗄 수 없을 정도로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유일신 사상과 선택 사상의 결합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생겨난 이런 신념들은 제2성전 시대 유대교의 종말론의 특징적인 형태를 이루었다. 이렇게 해서 유일신 사상과 선택 사상은 “회복 종말론”이라고 적절하게 부르던 것을 탄생시켰다. 야훼가 만물을 변화시키고 자기 백성의 운명을 회복하기 위하여 결정적으로 역사하실 때까지는 포로생활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계약의 백성은 부패했고 여전히 구속을 받을 자격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중요한 결과는 유대교가 언제나 모세와 초기 선지자들에게까지 소급되는 내부로부터의 격렬한 비판의 전통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비판은 유대교의 통상적이고 고전적인 특징이었고 세례 요한과 예수 그리고 초대교회가 그런 비판정신을 이어받은 것은 유대교와 유대교가 대변했던 모든 것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유대교의 중심적인 전통들 중의 하나에 충실했음을 보여주는 표지이다.

 

5.계약, 구속, 죄 사함

 

   이스라엘의 신이 자기 백성을 포로생활로부터 건져 내시려면 이스라엘을 포로로 끌려가게 만든 문제, 즉 이스라엘의 죄라는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신이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문제는 이스라엘이 삶, 문화, 제의의 여러 당연한 측면들 속에서 아주 크게 부각되었기 때문에 죄를 다루는 방법이 유대교의 중요한 초점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러나 이 문제는 계약신학이라는 좀 더 큰 문제 속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성경의 선지서 모두를 관통하는 한 쌍의 주제는 이스라엘의 포로 생활은 이스라엘 자신의 죄와 배교의 결과이고 이 문제는 야훼께서 그 죄를 처리하고 자기 백성의 유업을 회복시킬 때 해결될 것이다. 이런 가능성과 소망에 대한 신념은 이스라엘의 신의 신실하심에 대한 유대인들의 신앙의 본질적인 부분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죄가 포로생활을 불러왔다면 이스라엘의 죄 사함은 민족의 회복을 의미할 것이다. 주후1세기 유대인들에게 죄 사함의 의미는 개개인의 죄에 대한 죄 사함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민족 전체의 죄를 처리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모든 개개인들의 죄 문제는 이러한 민족적 죄의 해결이라는 맥락 속에서 먼저 이해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구속과 죄 사함이 필요하다면 이것은 오직 이후의 유대인들의 역사와 제의 속에서 그 어떤 것보다도 더 강력한 희생제사에 대한 반응으로서 야훼의 역사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죄와 종살이를 해결하는 문제들이 제기되었을 때, 유대인들이 자연스럽게 눈을 돌린 것은 희생제사라는 개념이었다. 희생제사 제도는 마치 출애굽과 같은 위대한 구속 역사들을 소급적으로 가리키는 일종의 지시봉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희생제사는 이스라엘과 그 신과의 화해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종말론적 현상을 주기적으로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희생제사 제도는 이스라엘의 세계관의 한 측면을 실현하고 제도화하는 방식으로 기능을 하였다는 말이다. 희생제사는 이스라엘의 계약의 신이 자기 백성의 운명을 회복하시고 그들을 그의 참된 구속받은 공동체로 만드실 것이라는 신념의 표현이었다. 희생제사가 효과를 가지려면 회개가 필요하였는데, 회개와 희생제자의 결합이 그 세계관 내에서 어떤 기능을 했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회개나 희생제사를 계약 백성이 되는 입회의 수단으로 보았다는 그 어떤 암시도 없다. 계약의 백성이 되는 것은 할례를 통해 이루어졌고 회개와 희생제사는 유대인들로 하여금 계약백성의 테두리 내에 머물러서 배제되지 않는 수단의 일부였다. 의심할 여지없이 희생제사는 한 분 참된 신에 대한 정해진 예배로 보아졌고 이 한분 신을 송축하는 것은 그 자체가 이스라엘의 유일신 사상과 선택사상을 재천명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 일은 이스라엘의 민족적 정체성과 소망을 재천명하는 일도 되었다. 민족의 죄에 대한 대가로서 공동체적인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전통적인 사상이었고, 주후1세기에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 이런 사상은 혼란의 시기 가운데서 유대인들의 민족적 자기 이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상을 받아들여서 재해석하였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자기이해 속에는 이스라엘이 신의 선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죄인들이라는 사실을 다루는 다양한 방식들이 존재하였다. 통상적인 희생제사와 절기들을 통해서든, 순교자들의 고난을 통해서든, 다가올 새 시대의 탄생을 알리는 장래의 커다란 환난을 통해서든 창조주는 자기 백성을 죄의 사망을 거쳐서 그가 약속한 영광스러운 미래로 이끄실 것이다. 이러한 모든 사상들의 공동체적 성격을 간과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6.신념들 : 맺는 말

 

   제2성전 시대 유대교의 기본적인 세계관 전체를 신학적으로 설명하는 일련의 기본적인 신념들은 유일신 사상, 선택 사상, 종말론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한 분 창조주 신이 계시고, 그 신은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택하셔서 토라를 주시고 그의 거룩한 땅에 세우셨다. 신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및 이스라엘을 통하여 온 세상에 그의 심판과 정의 그의 지혜와 샬롬을 다시 굳게 세우기 위하여 역사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주전 167년부터 주후 70년까지의 기간을 규정하였던 것은 단순히 종교적 세계관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특히 혁명적인 여러 가지 다른 운동들을 형성하였던 신앙들이었다. 불만을 조장하고 혁명에 불을 붙인 열렬한 대망의 기초는 로마제국 체제의 불평등한 대우에 대한 단순한 좌절감이 아니다. 이런 좌절감은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 선택사상, 종말론이라는 맥락 속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계약의 신은 다시 한 번 역사하셔서 비참과 종살이와 슬픔과 포로생활의 시대인 “현세”를 대신할 다가올 새 시대를 탄생시킬 것이란 소망을 굳게 붙들고 있었다.

 

3부 주후1세기 유대교[10장 이스라엘의 소망]

N.T. 라이트/NTPG

2015-06-17 14:06:41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제3부 헬라-로마 세계와 주후 1세기의 유대교

10장 이스라엘의 소망

 

1. 묵시 사상

 

  우리는 제2성전기 유대인들의 소망을 표현하는 사용된 특징적인 언어 체계들 중의 하나인 묵시사상에 주목해야 한다. 당시에 묵시적 저작들은 유대교뿐 아니라 고대 지중해 및 근동의 여러 종교들 속에도 나타나는 문학 양식과 언어 관습이었다. 이런 묵시 문학에는 다양한 환상과 상징 그리고  화려한 은유들이 사용되는데 이것은 진술되고 있는 사건들의 의미와 의의를 드러내고 사람들로 하여금 사건들의 내부를 볼 수 있도록 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역사 내에서의 사건들을 언급함과 동시에 그 세계관 내어서 그 사건들의 온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해주는 언어가 바로 묵시문학이었다. 묵시문학의 은유적 언어는 역사에 신학적 의미를 부여하고 하늘과 땅 사이에 드리워진 휘장을 뚫고 들어가 역사의 이면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주후 1세기 유대인들의 묵시문학을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읽는다면 그 언어를 망쳐놓게 된다. 슈바이처는 묵시사상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주후 1세기 유대인들은 물리적인 세계가 종말을 고할 것을 기대했다고 주장하였다. 슈바이처의 그런 견해는 유대인들의 기본적인 세계관이나 유대인들의 소망을 표현하던 본문들을 설명해 주지 못한다. 언어에 대한 이런 “문자주의적 읽기”가 금세기 신약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슈바이처, 불트만, 케제만은 물리적 종말론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해석학을 구축하려고 열정적으로 신학 작업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유대적인 묵시사상을 영지주의에 가까운 것으로 왜곡시키고 나아가 이스라엘의 민족적 소망이라는 역사적 배경에서 분리시키고 말았다.

 

  묵시문학이 신비체험에서 영감을 받았든 아니면 문학적 기법으로 이루어진 것이든 묵시문학은 당시 억압받는 집단들이 전복을 꾀하는 문학으로 기능하도록 의도되었다. 특히 묵시문학에 나타나는 “표상”은 창조주 신이 그의 피조세계와 그의 백성 가운데 임재해 계신다는 것을 단언하는 방식이다. 천상계와 지상계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천상계의 비밀을 통하여 지상계와 관련된 정보를 드러내는 것은 신학적으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 사례로서 다니엘서 7장을 들 수 있는데, 주후1세기 이 본문을 읽는 유대인들은 그 의미를 이스라엘의 고난과 신원의 관점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의 개인적인 운명은 곧바로 이스라엘의 민족적 운명으로 읽혔다. 그러므로 다니엘 7장의 묵시 본문에서 “인자 같은 이”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백성들을 의미하는 문학적 표상이며 이교도들의 치하에서 당하는 이스라엘의 고난과 한 분 신이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멸하실 때 이루어질 이스라엘의 신원을 말하는 것이었다. 

 

   20세기 복음서 연구의 전형적인 특징들 중에 나타나는 아이러니는 많은 학자들이 묵시론적 은유를 문자 그대로의 예언으로 읽으면서 반대로 문자 그대로 읽어야 할 이야기들은 교회와 신앙에 대한 은유로 읽어왔다는 점이다. 묵시론적 저작들이 표현하는 세계관은 이 시기의 다른 많은 유대인들의 저작들이 가진 세계관을 공유한다. 주후1세기의 유대인들은 세상의 창조주인 그들의 신이 설명할 수 없는 방식들로 세상에서 역사한다고 믿었다. 묵시론적 본문들에 대한 현대적인 읽기의 문제는 부재하는 신과 폐쇄된 시공연속체 혹은 통상적으로 부재하다가 이따금씩 시공연속체와의 불연속선 상에서 개입하여 역사하는 자연신론적 틀 속에서 은연중에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이다. 묵시사상을 문자 그대로 우주적 종말로 보는 것은 합당치 않으며 이런 현대적인 개념은 묵시사상을 이원론적으로 보는 믿음에 의해 조장되어 왔다. 그러므로 문학, 역사, 신학적 관점을 통합한 텍스트 읽기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한다. 유대교적이든 기독교적이든 대부분의 묵시론적 저작들을 시간과 공간의 현실에 그 신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복합적 은유체계로 읽어야 한다.

 

2. 포로생활의 끝, 다가올 시대, 새 계약

 

  유대인들의 근본적인 소망은 압제로부터의 해방, 땅의 회복, 성전의 재건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런 기대들은 이스라엘이 처한 비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신은 세상의 왕이라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유대인들이 이 소망을 표현하는 중요한 방식은 시간을 현세와 다가올 시대로 나누는 것이었다. 현세는 이스라엘이 비참한 삶을 사는 때이며 창조주 신이 그 얼굴을 숨기고 있는 듯이 보이는 때이며, 다가올 시대는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때이며 창조주 신이 세계를 새롭게 회복하는 때이다. 유대인들의 세계관에서 시공으로 이루어진 우주의 종말 이후에 이루어질 구원이라든지 육신이 없는 영적인 지복을 누린다는 사상은 찾아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상은 피조질서가 내재적으로 악하기 때문에 소멸되어야 한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으므로 창조의 유일신 사상과 정면으로 모순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다가올 시대, 곧 이스라엘의 포로생활이 끝은, 이스라엘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이스라엘과 그 신이 맺게 될 새로운 계약의 개시시점으로 보았다.

 

3. 신 외에는 왕이 없다

 

   역사적으로 신학적으로 고찰해 보면 “신의 나라”는 이스라엘의 신이 이스라엘과 온 세상을 통치하실 것이고, 가이사나 헤롯 같은 부류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없다는 소망을 그 기본적인 의미로 하는 슬로건이었다. 그것은 토라가 마침내 성취되고 성전이 재건되며 땅이 정결케 되리라는 것을 의미하지만 거룩한 무정부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의 신이 합당하게 지명한 인물들과 수단들을 통하여 그가 의도한 방식대로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신의 나라”라는 복합적인 개념은 이 시기의 유대인들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열망 전체를 한데 결합한 것으로서, 거기에 유대교의 주류 사상이 항상 지니고 있던 종교적, 신학적 차원을 부여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신이 왕이 되는 것과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인 이스라엘의 신원은 시공으로 이루어진 우주를 벗어나 초월적인 영역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었다. 

 

  “신의 나라”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의 신이 유일한 신이라는 신앙을 일깨우는 가운데, 달리 말하면 유일신 사상과 계약신학을 종말론에 활용하여, 민족의 소망을 표현하는 통상적인 수단이었다. 그러므로 신의 나라를 말하는 것은 이원론적 사고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도 아니며 무시간적인 진리나 추상적인 윤리적 이상도 아니고 시공으로 이루어진 우주의 종말도 아니었다. “신의 나라”라는 어구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의 운명이 회복되고 처참한 포로시대가 끝장나며 온 세상을 지배했던 악을 이스라엘을 통하여 물리치기 위한 계약의 신의 행위를 지칭하였다.

 

4. 장차 오실 왕

 

   “신의 나라”라는 상징과 메시아의 도래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므로 평범한 유대인들이 장차 오신 메시야를 믿었다고 말하기 힘들다. 1세기 유대교 문헌 속에서 어떤 메시야적 인물에 대해 말할 때 그의 역할과 성격은 모호하고 제대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여러 가지 다양한 메시야 운동들이 존재했다는 것은 사실이며, 그 운동들은 이스라엘의 신이 자기 백성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한 왕을 보내실 것이라는 소망이 유대인들 가운데 널리 유포되어 있었다는 것을 증언해 준다. 그래서 제2성전기 내내 메시야 사상은 잠재되어 있다가 특정한 성향 아래서 환기될 수 있었고 많은 유대인들이 메시아로 자처하는 신뢰할만한 인물 아래 모여들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 유대교 내에 이렇게 메시야 사상들이 명시적으로 드러난 것이 비교적 드문데도 불구하고 “크리스토스”라는 칭호뿐 아니라 메시야적 주제들이 예수가 활동하던 거의 한 세대후인 유대전쟁 후에 저술된 복음서들에 여전히 등장하다는 것은 대단히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비록 수정되긴 했지만 상당부분 메시야 사상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메시야에 대한 주후 1세기 유대교의 증거가 많든 적든, 신약성서의 대부분에 걸쳐 메시야에 대한 주제가 끊임없이 나오는 것은 메시야에 대한 기대가 분명히 존재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중언해 준다. 이것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의 모호하고 일반적인 메시야 사상을 가져다가 확고한 초점인 예수를 중심으로 메사야 사상의 정밀성과 방향성을 부여한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5. 세계, 이스라엘, 인간의 갱신

  

   제2성전 시대 유대인들의 소망은 포로생활로 부터의 귀환, 죄 사함, 신의 의가 나타남, 성전의 회복 등으로 요약되는데, 이런 소망의 내용들은 동일한 소망의 서로 다른 요소들이므로 이것들을 서로 분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런 신념들과 소망들이 밀접하게 통합될 수 있다면 이것은 주후1세기 유대인들의 기본적인 세계관과 일치할 것이 분명하다. 제2성전 시기에 부활 신앙은 인간 개개인들의 장래의 삶과 관련하여 흔히 거론되긴 하지만, 부활신앙은 대다수의 사람들의 전반적인 신앙, 소망, 세계관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특히 부활은 에스겔 이래로 포로생활로부터의 귀환을 가리킴과 동시에 계약 및 온 피조세계의 갱신을 묘사하는 가장 생생한 은유적 방법들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수리아와 로마 시대에 토라를 위한 투쟁과 핍박이라는 맥락 속에서 부활 은유는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이 시기에 부활은 여전히 개개인들이 새로운 몸을 입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긴 했지만, 계약의 신에 의한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에스겔 이래 부활의 원래적 의미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활은 단순히 개인의 경건한 소망이 아니라 포로생활로 부터의 민족적 귀환이었으며, 죄 사함, 이스라엘의 재건, 피조세계의 갱신과 보조를 같이 했다. 이런 식으로 유대인들은 피조질서의 갱신에 대한 좀 더 폭넓은 신앙의 일부로서 부활을 믿었다. 그러니까 부활은 계약에 대한 재천명이자 창조에 대한 재천명이었으며 이스라엘의 회복과 동시에 우주의 회복을 가리키는 은유였다. 그러므로 부활의 때에 세상은 마침내 누가 진정으로 창조주 신의 참된 백성이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바로 이곳이 유대인들의 한 쌍의 기본적인 신념들인 유일신 사상과 선택사상이 마침내 결합되어 종말론을 낳게 되는 지점이다. 그러니까 창조/계약의 유일신 사상은 필연적으로 선택과 포로생활의 긴장 속에서 부활과 새로운 세상을 요구한 것이다. 그래서 부활 신앙은 언제나 현세의 끝과 다가올 시대의 시작점에 있을 전체적인 부활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부활은 온 이스라엘이 공유하게 될 생명이며 온 이스라엘이 누릴 구원이며 신원이 될 것이다.

 

6. 구원과 칭의

 

   주후1세기 유대인들에게 구원은 그 소망, 특히 이스라엘의 신이 이스라엘을 이교도들의 압제에서 구출하신다는 소망을 의미했다. 이 구원은 이스라엘의 신이 자신과 계약을 맺은 백성 전체에게 단번에 주는 선물로서, 이스라엘은 계약 안에서의 구원을 얻는 것이었다. 계약은 남자는 할례를 통해서 그리고 계약문서인 토라에 대한 충성을 통해서 유지되었다. 토라의 소유와 토라의 준수는 계약의 지체라는 지위를 획득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러한 지위를 드러내는 것뿐이라는 샌더스의 논증은 전적으로 옳다. 실제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의 상징들이 위협 아래 놓였을 때 유대인으로 머무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성전, 땅, 토라 같은 주류적인 상징들을 고수하는 일은 자신이 올바른 집단의 지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계약에 신실했던 자들은 신원을 받을 것이다. 이런 것이 실제로 주후1세기의 구원론이었다.

 

   다가올 시대가 마침내 오면 진정한 계약의 지체들은 신원될 것이며 칭의를 얻을 것이다. 만약 진정한 계약의 지체임을 드러내주는 표시와 상징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이러한 신원, 이러한 칭의는 이미 현재 시점에 존재할 것이다. 현재 계약에 신실하다는 것은 미래에 계약상의 신원을 받을 것임을 알려주는 표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칭의는 마래적인 것인 동시에 현재적인 것이며 이 둘은 모두 신의 계약에 대한 신실성에 달려있다.  그리고 신원과 칭의로 나타날 구원은 새로운 세상, 피조물의 갱신에 관한 문제였으며, 이 안에서 이스라엘의 신은 이스라엘 민족 내의 일부를 새로운 이스라엘, 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선봉대로 부르실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새로워진 백성은 창조주 신의 계약적 신실함에 대응하는 계약적 충성 속에서 살아갈 거룩하고 순결하고 새로운 인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