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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구약과 신약의 관계- 류호영

구약과 신약의 관계- 류호영

2015-04-13 01:09:52


    많은 사람들은 구약이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었고 신약은 오신 메시아에 대한 성취의 기록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 성취된 예언인 구약은 더 이상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이러한 구약 이해는 구속과 복음을 집중적으로 말하고 있는 신약에 대해 열등한 자리매김을 할 수 밖에 없다. 먼저 약속과 성취라는 신학적 패러다임은 구약과 신약을 하나의 단일한 언약으로 이해하는 방식으로서 매우 성경적인 구조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런 패러다임에서 성취된 약속은 그 가치에서 성취 그 자체보다 덜 중요하다거나 혹은 그 효력이 이제 정지된 것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런 관점에서 구약은 상대적으로 신약에 비추어 열등하게 여기는 현상이 생기게 된다. 이런 현상을 염두에 두면서 구약의 약속과 신약의 성취라는 두 요소를 보다 긴밀한 유기적 관계로 이해하려는 새로운 노력을 하려고 한다. 이런 노력을 새롭다고 하는 이유는 어떤 신학적 주제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중심 사상 혹은 원리는 구약에서든 신약에서든 변치 않고 동일하게 머물러 있다는 관점에서 약속과 성취라는 두 요소를 새롭게 조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약의 약속의 형태나 신약의 성취의 형태로 주어진 신학적 주제를 형성하고 있는 근본 원리와 기저 사상이 언제나 동일하다는 점에 관심을 기울이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구약과 신약의 단일성, 즉 하나의 언약이라는 대명제 하에서 약속과 성취라는 주제를 이스라엘이라는 정체성의 문제, 땅이라는 시간과 장소의 문제를 중심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이스라엘의 정체성 문제 : 누가 참 이스라엘인가? 

  

     하나님이 언약을 맺으시고 언약의 축복을 약속한 이스라엘은 누구인가? 종족상의 문제인가? (유대인) 종교상의 문제인가?(유대교)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기다려 온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을 고정되고 정적인 대상 즉 혈연과 지연의 개념으로 생각할 때마다 이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발하곤 했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언약의 축복들은 믿음과 순종에 관계없이 자동적으로 얻게되는 보장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보면서 구약의 선지자들은 마지막 날에 구원을 받을 자들은 남은 자들이라고 선언한다. 아브라함이 자기들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결코 언약의 축복을 받을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하는데 이는 이스라엘에게서 난 자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며(럼9:6)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마3:9) 결국 구약과 신약은 모두 이스라엘을 만드시고, 이스라엘을 정의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런 점에서 성경은 누가 참 이스라엘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신악의 첫번째 책인 마태복음이 구약의 신앙 열조들의 계보로 시작한다는 것은 신약의 이야기, 곧 예수의 출생, 사역,고난,죽음 부활, 승천의 사건들이 구약 이야기의 연장선 상에 있음을 강력하게 암시한다.  다시 말해서 예수 사건은 하나님이 구약의 신앙 열조들에게 주셨던 약속들을 이제 신실하게 이행하시는 일임을 암시한다는 뜻이다. 마태의 족보는 예수가 아브라함 언약과 다윗언약의 성취임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을 보게된다. 그러나 예수 사건은 이전의 일의 반복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일이다. 구약의 이야기가 이제 예수를 통해 최종적으로 천명되고 구현되었기에 예수 사건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일이다.  마태의 예수 계보의 촛점은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축복들이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예수는 참된 이스라엘의 대표적 구현이요 그가 참된 이스라엘이다. 그러나 예수의 계보에 이방 여인들이 열거된 것은 아브라함의 참된 후손이 혈통의 순수성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또한 예수가 처녀인 마리아를 통해서 출생했다는 사실은 역시, 참 이스라엘이 구약의 이스라엘의 혈통을 따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예수로 대표되는 참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제한되지 않는 보편적인 백성으로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 그러므로 누가 참 이스라엘인가는 하나님이 결정하신다. 이런 점에서 구약과 신약의 단절성을 보게된다.

 

   마태는 두번에 걸쳐 하늘의 음성을 기록하는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라] 구약의 메시지를 반향하는 이런 음성은 예수에게 어떤 정체성을 부여하는가? 하늘의 음성은 예수의 세례에 대한 하나의 반응으로 나타난 것인데 그것은 예수의 메시아 사역을 인준하는 것이다. 하늘의 음성은 이사야 42장 1절은 연상케 하는데 여기서 하나님은 여호와의 종의 메시아 사역은 인정하고자 그의 영을 이 종에게 두실 것을 약속하며 이 종이 택한 자로서 의와 구원을 열방에 가져올 자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의 세례 장면은 예수가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종임을 나타내도록 의도된 이야기 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이 받으신 광야 시험 역시 참 이스라엘이 누구인가를 보여준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시험을 받았듯이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의 파트너요 참 이스라엘되신 예수도 동일한 시험을 광야에서 받으셔야 한다. 광야 시험은 하나의 동일한 근본적인 질문을 담고 있는데 그것은 참 이스라엘로서 예수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라는 질문이다.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을 상징하듯이 예수님은 40일을 금식하며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40년의 시험을 거첬듯이, 예수님도 하나님나라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시험을 거치신다. 결론적으로 광야의 시험을 통해 예수는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의 시험을 겪으셨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실패한 것을 예수님은 성공하심으로 자신이 참 이스라엘임을 증명하셨다. 이로써 구약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약속이 예수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예수는 스스로 참 이스라엘이요 참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분이시기에 하나님은 예수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임재와 뜻에 믿음과 순종으로 반응하는 자들을 모두 참 이스라엘로 인정하신다.

 

 

-. 땅: 시간과 장소의 문제-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의 구현

 

   땅은 매우 성경적인 주제중 하나이다. 땅은 물질적이므로 영적인 진리를 말하는 성경의 가르침과 반한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기독교의 핵심 진리중 하나는 육체의 부활이다. 영혼이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영과 육의 힙일체인 전인격적 존재로 영원히 살 것을 믿는 것이다. 이러한 육체의 부활과 이에 대한 믿음은 이미 그 안에 땅이라는 구체적인 실체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땅은 세러워진 몸이 살아갈 장소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운 다르싦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장소를 암시한다. 하나님의 통치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대상들이 실질적으로 경험하게 될 실체이다. 이런 점에서 땅이란 주제는 성경의 일관된 주제라 할 수 있다. 구약 약속의 핵심적 요소 중 하나가 땅에 관한 약속이다. 신약은 구약 약속의 성취를 말하는데 그렇다면 땅에 대한 약속의 성취는 신약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가? 라는 중요한 질문이 대두된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후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명하셨다. 또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가나안 땅을 주마 약속하시고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을 약속하셨다. 이후 이스라엘 역사에서 일관된 성경적 관심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을 중심으로 땅의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고, 취소되며 또 회복되는지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로 보건데 땅은 하나님의 약속의 근본적 요소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의 근본적 요소인 땅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이다. 이 점은 가나안 땅이 제비뽑기로 배분된 것, 땅의 첫 소산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 그리고 희년 제도를 통하여 강력하게 암시되고 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은 땅은 오직 믿음과 소망을 통해서만 붙집을 수 있도록 의도되었다. 가나안 정탐꾼 사건은 이 약속의 땅이 오직 믿음과 소망으로만 현재적 실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또한 가나안 입성 후의 기록을 보면 땅은 단순히 물리적인 대상이 아니라 축복, 평화, 안정,안식이라는 중요한 사상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땅을 소유한다는 것은 땅이 내포하는 이 모든 축복들을 함께 향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땅을 지속적으로 소유하고 그 내포된 축복들을 지속적으로 누리는 조건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가 그 땅에서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가 드러나지 않는 땅은 필연적으로 박탈될 것이라고 성경은 반복하여 강조한다. 후선지서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가 없음으로 인해 빼앗긴 땅, 곧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말하고 있다. 비록 이스라엘의 거룩하지 못함과 불의로 인해 땅의 약속이 잠정적으로 취소되었지만 땅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은 취소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잃어버린 땅에 대한 회복과 갱신을 기대할 수 있었다. 특별히 땅의 회복은 약속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기인하고 있다. 인간들의 불신실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시다. 이러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땅의 소유에 필요 조건인 거룩과 공의의 문제를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땅을 소유하는데 선결 조건인 의의 문제를 친히 해결하신다고 약속하신다. 이 점이 포로 후기 선지자들이 선포한 일관된 메시지였다.

 

  그렇다면 신약은 땅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는가? 신약의 중심 메시지의 하나는 온 피조세계가 예수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었다는 점이다. 예수의 구속 사역을 통해 인류가 새롭게 될 뿐 아니라 만물이 새롭게 회복되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예수의 사역이 땅을 영적인 차원으로 승화시켰다는 의미가 아니라 온 땅이 정결하게 되고 거룩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성전이 아니라 온 예루살렘이 여호와께 성결이라" (슥 14ㅣ20)는 예언이 근본적을 구현된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지성소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예수의 사역을 통하여 온 만물 강누데 충만하게 임재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가 구현될 장소로서 땅의 참된 의미가 예수 사건을 통하여 온전히 실현된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신약이 말하는 땅에 대한 메시지는 땅의 영적화 혹은 땅의 비영토화, 혹은 땅의 인격화가 아니라 땅의 보편화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하여 온 보편세게가 하나님의 의로운 다스림의 영역이 되었다는 것이 신약이 말하는 땅에 대한 메시지의 핵심이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이루어진 땅에 대한 약속의 성취는 여전히 최후의 완성 때까지 이 땅에서 유보되고 있다. 땅의 약속에 대한 이러한 종말론적인 유보는 육체의 부활을 상정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는 육의 부활 이후에 온전히 경험되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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