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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칼바르트의 생애와 신학

칼바르트의 생애와 신학

2015-01-17 16:37:32


 칼 바르트의 신학 사상

 

Ⅰ. 서 론

칼 바르트는 (Karl Barth,1886-1968)는 자유주의 신학의 교육과 훈련을 받았으나 그는 자유주의 신학과 갈라지는 큰 계기를 창시한 사람이다. 쉴라이에르마허, 리츨, 하르낙, 트뢸취, 헤르만 등에 의해서 대표되는 19세기 독일 자유주의 신학은 18세기의 계몽주의, 19세기의 낭만주의를 유산으로하여 인간 중심의 신학 내지는 내재주의 신학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인간의 감정,인간의 가치, 인간의 역사, 인간의 종교철학, 인간의 현실성 속에 있다고 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성과 자유성이 상실되었던 것이다. 바르트는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에 정면도전하여 반론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저 유명한 “로마서 주석”이다. 그는 인간의 종교나 윤리 행위를 근거로 하는 인간 중심적인 신학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하는 “하나님 말씀의 신학을 수립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모든 진정한 의미의 신학은 인간을 섬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봉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A. 소년 시절과 신학교 입학 동기

바르트는 1886년 5월10일 스위스 바젤(Basel)에서 개혁교회 목사이며 신학자인 아버지와 어머니 안나 사르토르우스사이에 태어난 3남2녀 중의 장남이었다. 교회의 신앙고백은 단순히 무조건 긍정하며 인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체험’(Erlebnis)햐야 된다고 생각하여 신학교에 입학한 동기가 되었다.

 

B. 신학교 입학

스위스 베른 대하교 입학.- 칸트의 “실천이성비판”과 쉴라이에르마허의 “종교 강화”등의 ‘경험신학’에 더 관심. 베르린대학 3학기 신학공부.- 궁켈의 강의 심취. 튀빙겐대학교로 옮김-블룸하르트를 방문하는 것이 유일한 가치. 마르부르크 대학교로 옮김-세학기 동안 불트만과 나란히 헤르만의 강의를 들음. 그의 강의는 ‘체험신학’이었다. 그에 의하면 종교는 하나의 체험이므로 신은 인간의 현실 속에 체험된다고 했다.

 

C. 목회활동과 종교 사회주의 운동

스위스 아르가우주에 있는 자펜빌이라는 노동자 농민 마을에서 목회를 통해 ‘사회문제’, ‘노동문제’로 도전받음. 그의 친구이며 목회자인 투르나이젠의 권유로 쿠터, 라기츠, 블룸하르트 등과 함께 ‘종교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듬. 그는 사회주의 노력 속에서 ‘하나님의 현실성’ 즉 ‘하나님의 흔적을 봄. 이때 바르트는 “예수를 사회적 운동으로, 사회적 운동을 현대의 예수”로 파악.

 

D. “로마서 주석”과 새로운 신학 운동

로마서 주석 제 1판(1919)- 신학적 자유화의 투쟁으로 우주적 종말론, 제 2판(1922)- 이를 더욱 발전시켜 ‘하나님과 인간의 질적 차이’는 초월적 종말론을 잠적적으로 유도. 서술 방식은 변증법적. 그러나 그것은 변증법적 방법의 뿌리를 헤겔에서 찾지 않고, “유한은 무한을 파악할 수 없다.”는 종교개혁자들과 바울에게서 찾음. 특히 “시간과 영원의 무한한 질적인 차이”, “하나님은 하늘에, 너 인간은 땅에”를 말하는 키에르케고르의 용어를 빌려 보다 강한 변증법적 서술로 이끌어 나감. “로마서 주석”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엄숙한 심판, 어둠 속을 꿰뚫고 들어오는 빛과 같이 전 역사에 대해 내려지는 심판자의 모습.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심판(Nein), 그것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긍정(Ja), 곧 구원이 된다. 한마디로 “로마서 주석”은 종교개혁자들이 강조했던 “오직 은총으로만”, “오직 그리스도만”의 재현.  그러나 이 시기에 바르트에게 있어서 강조점은 초월, 간격, 부정(Nein)에 있었다. 그것이 그처럼 단호한 부정이었던 것은 19C 백년 동안 굳게 깔려 있는 낙관주의적인 신학의 이상주의 터전을 깨드려 부수기 위해서 였다.“로마서 주석”은 바로 인간의 행위를 종말론적으로 심판하는 것이며, 에에 대한 부정이었다. 이 부정아래 인간의 전 실존과 역사는 뿌리 채 흔들리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위기’는 가장 깊은 곳에서 ‘심판’을 의미한다. 이러한 ‘위기 의식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신학을 ‘위기의 신학’, ‘변증법적 신학’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바르트는 “로마서 주석”(1932년 영역판)에 대한 서언에서 자신의 신학을 변증법적 신학, 위기의 신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신학의 본질을 왜곡하기 쉽다고 경고한다.

 

E. 교수 생활과 “바르멘 고백 선언”

바르트는 다만 부닥쳐오는 상황에 압도되어 “로마서 주석”을 쓰게 되었고, 그책의 출판으로 무명의 시골 목사가 대학교수가 됨. 1921년 독일 괴팅겐 대학교의 조직신학 교수됨. 1924년 3권의 책 출간.- ‘죽은자의 부활’,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 투르나이젠과 공동설교집 ‘창조의 영이여 오소서’. 그리스도 교의학(1927), 신학과 교회(1928), 안셀무스 연구 ‘지성을 질문하는 신앙’(1931)출판.  바르트가 나치 정권에 항의하게 된 근본적 이유는 단순히 정치적 의미가 아니라, 거기서 이미 신학적 물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나치스 히틀러를 ‘제국주의’나 ‘인간의 자기 영광’의 범주에서가 아니고 이단과 우상의 범주로 간주. 1933년 친구 투르나이젠과 함께 “오늘의 신학적 실존”이라는 잡지 발간 - 나치스 히틀러 의 위험 경고,교회의 각성 요구. 그 항거 운동은 1934년 5월 27-31일에 바르멘에서 “바르멘 고백 선언”과 더불어 ‘고백 교회’의 탄생으로 이어짐. 바르멘 고백 선언은 독일 복음주의 교회의 지성적 승리요, 신학의 과시였다. 히틀러에 정면 도전을 위해 ‘독일 사민당’에 입당.1935년 독일에서 추방.

 

F. 독일에서 추방후 강연과 강의

1935년 10월 독일 바르멘에서 강연- “복음과 율법”. 루터를 따르는 독일 교회를 생각하며 “율법과 복음”을 말한 루터의 논문을 “복음과 율법”으로 순서를 바꿈으로 루터와 루터교에대한 중요한 교정을 가함. “교회와 국가”문제에 대한 주석은 ‘루터의 두왕국론’과는 전적으로 달랐다. 그는 루터의 두왕국론의 교리는 교회의 정치적 정숙주의의 뿌리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으로 보았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혼동될 수 없다. 교회는 국가에 종속될 수 없고 오히려 능동적이며 책임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 1937-1938년에 스코틀랜드 에버딘 대학교에서 “스콜틀랜드 신앙고백”에 대한 신학적 해설을 하면서 강연- 어떻게 이 신앙고백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계시의 빛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영광’이 연결될 수 있는지를 갈파했다.

 

G. 냉전 체제와 바르트의 체제 비판

바르트는 독일 교회를 향하여 여러 가지 충고와 경고를 하면서 갱생의 변화를 촉구.1946년부터 다시 독일 교단에 서서 전후 낙망과 절망에 헤매는 젊은 세대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주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가르쳤다. 바르트가 본 것은 반공주의 얼룩진 서구의 기독교가 동구의 무신론보다 휠씬 더 교활하고 독기가 서려 있다고 갈파. 바르트는 정치적으로 보면 어느 정도 좌경 신학자 였다. 왜냐하면 그가 나치 국가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과는 달리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진지한 무신사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 그러나 그의 신학적 관점은 분명히 ‘하나님의 신학’이다.

 

Ⅱ. 하나님 말씀의 신학 으로서 교회 교의학

바르트의 교회교의학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나타난 하나님 말씀을 출발점으로 한다는 의미에서 혁신적이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의 신학이 오늘의 상황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다음 세가지의 난관을 극복해야만 했다.

첫째, 19세기 문화 개신교 및 그와 같은 인간학적 신학에 대한 극복이다. 즉 19세기 신학은 현대 정신과 타협한 나머지 기독교의 독자성 절대성이 제거되고 상대화되어 힘없는 인간의 종교로 전락한 것을 간파한다. 그래서 그는 내재 속에 가려진 하나님의 주권, 초월 , 하나님과 인간의 거리 등을 염두에 두는 신학을 생각했다. (계시의 신학)

 

둘째, 보수적 정통주의에 대한 극복이다. 성서의 축자영감설을 고집하는 교회주의자들을 극복하고 살아있는 오늘의 하나님, 즉 계시의 현실성을 선포하는 문제를 포착하는 신학을 생각했다. (선포의 신학)

 

셋째, 하나님의 교회와 교황의 권위로 대치된 교권주의와 자연신학적인 가톨릭 사상에 대한 비판이다. 바르트는 교회의 참된 의미, 즉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제자직을 말하는 교회관을 정립해야 했다. (교회의 신학) 바르트는 교회 교의학 제 1권 제1부와 2부에서 교의학의 대상 과제 방법을 취급하는 서론격으로 하나님의 말씀론을 신학의 과제로서 제시하고 있다.

 

# 교회 교의학 전체 프로그램의 도식화(서론)

 

A.하나님 말씀론

 

1. 교의학의 표준으로서 하나님 말씀론

하나님 말씀의 세형태  1) 선포된 말씀 2) 기록된 말씀 3) 계시된 말씀

 

2. 하나님의 계시

1) 삼위일체 하나님 :  ‘창조자로서 하나님’ ‘화해자로서 하나님’ ‘구원자로서 하나님’

2) 말씀의 성육신: 예수 그리스도- 계시의 객관적 현실성과 가능성

3) 성령의 부음: 성령- 계시의 주관적 현실성과 가능성

 

3. 성서

성서는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 이다. 교회의 권위는 ‘말씀의 권위’이지 결코 교회 자 체로서는 권위가 될 수 없다. 따라서 바르트는 교회 자체로부터 오는 구원론을 비판했다.

 

4. 교회의 선포

말씀의 최종 목표는 선포에 있다. 선포는 ‘교회의 위탁’이다. 교회의 선포가 있는 곳에 윤리가 있고 삶이 태동한다. 따라서 선포는 우리의 삶의 현장과 마주치는 현실이다. * 바르트의 ‘ 하나님 말씀의 신학’의 독특성은 하나님 말씀이 그의 신학의 중심이고 그 하나 님 말씀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 중심 속에서 더구체적으로는 삼위일체론적으로 취급했다 는 점이다. 방법론적으로 그의 신학은 변증론적 원칙 과 신앙의 유비위에서 케리그마적 관점으로 쓰여진 것이다.* 그의 교의학은 어떤 체계나 사변적인 서술이었다기 보다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봉사와 충 성의 결과로서 ‘ 교회에 봉사하는 학문 ’이었다.

 

* 교회 교의학 구조 (13권) 하나님의 말씀론 프롤레고메나 (2권), 신론 (2권), 창조론(4권), 화해론(5권)

 

B. ‘ 하나님의 인간성 ’ 과 대화의 신학

“ 하나님 말씀의 인간성 ” 이라는 강연에서 바르트는 신성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성에 대한 이해를 포함하는 것이어야 하며 그의 신성은 인간성으로 둘러 싸여 있다고 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상대자로서 하나님이요, 언약을 수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인간 안에서 인간과 더불어 인간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인간의 하나님,즉 대화의 하나님이다. 이제 바르트는 “ 로마서 주석 ”에서 처럼 ‘하나님 자체 ’나 인간과 질적으로 다른 ‘ 절대 타자‘로서 하나님을 말하지도 않고 예수 그리스도 만을 말하는 ‘계시 실증주의자’로 오해 받지도 않는다. 이제 바르트는 하나님의 인간됨 속에서 “하나님은 인간이다. ”라고 까지 말한다. 하나님의 인간성 강조는 그의 교의학 ‘화해론’에서 ‘그리스도의 모방’ 과 ‘제자직에로의 부름’ 등의 윤리 속에서 더욱 구체화 되어 종교 개혁자들의 오직 신앙으로 , 오직 은총만의 전통을 이으면서 보다 구체적인 현실적인 삶에 적용한다는 점에서 종교개혁자들을 넘어선다. 1968 년 슐라이어 마허 탄생 200 주년을 기념하는 ‘슐라이어 마허 선집’ 뒷자리 말의 형식 속 에서 19세기 신학의 아쉬운 점을 지적하면서 슐라이어 마허가 성령의 신학에 가능성을 두지 않 았음을 지적했다. 바르트는 슐라이어 마허를 신학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영웅이라고 말하지만 그를 추종하지는 않았다. 바르트는 18C 합리주의 , 슐라이어 마허 , 그리고 불트만의 비신화화 에 이르는 모든 신학들을 십계명 제 3계명의 정신에 위배되는 신학으로 규정했고 19세기 문화 개신교는 신앙고백의 제 3 조항 즉 성령의 조항을 소홀히 한 것으로 비판했다.그래서 그는 말년 에 교회 교의학 제4권 1200 페이지의 분량을 “성령론적으로 ” 기술했다. 바르트는 생의 후반부에서 성령론적 관점에서 인간과 문화에 대해서 긍정에 긍정을 더하는 긍정적 신학을 말했다. 바르트는 그가 처한 종교적 정치적 상황을 떠나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자신의 신학을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은 상황 신학 이 아니라 텍스트 신학 으로서 상황에 민감한 신학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 바르트의 신학의 주제와 특색

 

C. 성서 이해

바르트는 성서는 전체로서 인간의 문서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면서 과거의 삶의 정 황을 넘어서 각 시대의 삶의 정황 에 선포된 사실 로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으 로 이해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삼중적 구조 즉 선포된 말씀 (설교) - 기록된 말씀 (성서) - 계시된 말씀 (예수 그리스도) 가지는 것으로 파악했다. 바르트는 정통주의의 성서 축자 영감과는 달리 성서 즉 하나님 말씀을 강조하는 ‘ 성서 축자 영감론 ’을 말했다.

 

D. 계시 이해

바르트에게 있어서 계시는 성육신의 사건속에서 단 한 번에 구체화된 예수 그리스도 사건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계시에 대한 이해다. 즉 계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 자신 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은 파괴될 수 없는 통일성 이며 동시에 계시자 , 계시자 , 계시, 계 시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시의 삼위일체적 이해가 바르트 신학의 특징이다. 특히 바르트는 교회 교의학에서 초기 변증법적 신학의 계시의 초월적 의미 보다는 긍정과 하나님의 은총을 강 조한 ‘계시 중심의 신학’ 으로의 새로운 전환이 있었다. 바르트에게 있어서 계시는 ‘하나님의 말 씀‘’이며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되어진 한 사건 이며 지금도 그 안에서 사건이 되고 있는 선포로 이해된 것이다.

 

E. 예정론 : 은총의 선택

바르트는 바울이 강조한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을 강조한다. 그는 예정이란 말 대신에 ‘은총의 선택‘을 사용했다. 그에 의하면 이중 예정은 두부류의 인간 집단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 스도 의 선택과 관련해서 일어났다고 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선택함으로써 인간을 위해서는 긍정 ,자신을 위해서는 부정을 결정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택은 하나님의 자유와 은총의 승 리다.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에서 소홀히 한 은총과 예정을 다시 신학적으로 부활 시켰다.

 

F. 동정녀 탄생

바르트는 동정녀 탄생을 우리가 긍정할 수 있는 기쁨의 교리라고 본다.그는 동정녀 탄생을 부인 하는 것은 계시의 표적을 제거하는 자연신학적 시도로 보면서, 또한 가톨릭 교회의 마리아 숭배론을 비판했다.

 

G. 교회론과 윤리

바르트는 교회교의학에서 교회론을 ‘성령론적’ , ‘ 윤리적’으로 다룬다. 교회는 ‘성령의 오심’ 속 에서 1. 모이는 것 2.교화시키는 것 3.파견 시키는 것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그는 “교회 밖에는 구 원이 없다.“는 복음의 전통을 받으며 가톨릭의 교회 절대주의 나 자유주의의 교회와 세상과의 조화를 말한 것을 배격했다. 바르트에게서 ‘윤리’는 기독교인으로 가는 과정에서 나타난다고 하면서 복종 없는 신앙이나 신앙 없는 복종은 ‘싸구려 은혜’ 나 착각적인 ‘행동주의’를 야기시킨 다고 경고했다.

 

H. 하나님의 정의 문제

바르트는 하나님의 정의문제를 다룰 때 ‘악’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다.그에 의하면 악 혹은 무 는 하나님도 아니고 피조물도 아니다 . 그것은 하나님과 피조물이 존재하는 방식이 아닌 제3의 방식으로 즉 무로서 ,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서 존재한다. 악은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은 세계로 서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세계다. 십자가는 악에 대한 궁극적 승리를 말하며 부활은 십자가에서 일어나 이 승리를 증명한다. 악은 피조물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등장하는데 그것은 두려워할 악 이 아니라 다만 위험하게 보이는 권세일 뿐이다.

 

Ⅲ. 정리를 위한 결론

칼 바르트는 19세기 자유주의 신학과 근본주의적 정통주의 신학을 뒤엎고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적 신학에 기초하는 말씀의 신학을 수립하였다. 그의 신학은 선포와 설교를 위한 신학, 즉 교회에 봉사하는 신학이다. 그는 양차 세계대전의 위기와 사회주의 운동의 격류속에서 휘말리지 않고 성서안에 있는 신기한 세계와 그메세지를 발견하여 복음의 놀라움과 기적의 논리 속에서 열정을 가지고 신학적 해명을 착수했다. 그는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로 인간을 인간의 자리로 돌 려 놓은 기수였다. 그는 자신의 신학을 신정통주의신학이라고 불리는 것까지도 꺼려했고 , ‘하나 님 말씀의 신학‘ 이라고 거듭 말했을 뿐이다.그의 신학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강조하는 ’교 회의 신학‘이기 때문에 상황신학이라 불리는 현실 참여 신학에 새로운 지평을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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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르트의 생애와 신학

 

칼 바르트 생애 바르트는 1886년 스위스의 바젤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2년 견진례(장로교의 입교식)를 받기 전날 밤 신학자가 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는 베른, 베를린, 튜빙겐, 말부르크 등의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였으며 리츨 학파의 사상을 따르게 되었다. 베를린에서는 하르낙의 영향을 받았고, 말부르크에서는 리츨 학파의 신학자였던 빌헬름 헤르만의 제자가 되었다. 후에 그는 이 신학을 철저하게 거부함으로써 그의 스승들을 크게 당황시켰다.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과 급진적인 결별을 하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다.

 

그 중 두 가지가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첫째, 바르트는 자펜빌의 사람들에게 매주 설교를 해야 하는 그의 일에서 자유주의 신학이 쓸모 없는 것임을 발견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심혈을 기울여 성경을 조심스럽게 연구해 나갔고 그것을 통하여, '성경 안에 이상한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성경 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올바른 사상이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지당하신 생각이다" 바르트는 그 동안 몸 담았던 자유주의 학파의 철학에서가 아니라, 성경에 있는 초월적 말씀 안에서 그의 교인들을 위한 적절한 메시지를 찾았던 것이다. 바르트를 자유주의 신학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한 두 번째 요인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1914년 8월 그는 카이저 빌헬름의 전쟁 정책을 지지하는 93인의 독일 지식인들이 낸 지지 성명을 읽었다. 그들 가운데 신앙적으로 존경하던 많은 신학 은사들이 거의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그들의 신학이 그렇게 쉽게 전쟁의 이데올로기에 타협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인가 잘못된 것임에 틀림없다고 믿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선생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그들의 윤리학, 교의학, 또 그들의 성경 주해, 역사 해석 등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그의 신학적 재능을 사용하여 자유주의 신학을 파괴하게 된다. 전쟁 중 바르트는 바울의 로마서에 대한 주석을 쓰는 작업에 착수했다. 1919년 주석이 출판되자 예상치 못했던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카톨릭 신학자의 말에 의하면 "로마서 주석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놀던 놀이터에 떨어진 폭탄과 같았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 바르트는 성경 연구에 적용된 역사-비평 방법도 옳고 축자 영감도 옳다고 말하며 그 둘 가운데 선택을 하게 된다면 후자를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로마서 주석, 1).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이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케 하는, 즉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과 전혀 다른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케 하는, 즉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과 전혀 다른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들이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예기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메시지로 인정케 하기는커녕, 복음을 하나의 종교적인 메시지로 바꾸어 인간들에게 자신들이 신이라고 말하는 결과가 되었다고 비판했다.

 

바르트는 신학적 방법론에서 '아래로부터' 라는 인간 중심적 신학을 대신할 '위로부터'의 신학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주석 전반을 통하여 하나님의 전적 타자성, 복음, 영원, 구원 등을 강조했다. 그의 [로마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대면에 대하여 강조하는 것 때문에 '변증법적 신학' 이라든지 '위기의 신학'이라는 꼬리표를 안겨 주었다. 변증법적이라는 말은 바르트를 헤겔보다는 키에르케골의 철학적 방법의 영역에 위치하도록 하였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역설적 진리들은 유한한 인간의 지성으로는 신앙의 도약을 통해서만 포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로마서 주석 제2판(1922)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만일 어떤 체계를 가지고 있다면, 키에르케골이 말했던 시간과 영원 사이의 '무한한 질적 차이'에 대한 인정과, 그 차이는 긍정적인 의미뿐 아니라 부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에 국한되어 있다. 곧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당신은 땅 위에 있다.' 그러한 하나님과 그러한 인간의 관계, 그러한 인간과 그러한 하나님의 관계가 내가 보기에는 성경의 테마이며, 철학의 정수이다(로마서 주석, 10)." 로마서의 영향은 19세기 신학의 종말과 20세기 신학의 출발 연대를 1919년으로 이 책의 출간에 맞추게 되었다.

 

로마서 주석으로 인해 바르트는 1921년 독일 괴팅겐대학교의 신학 교수가 되었다. 그는 여기서 리츨주의자들과 갈등에 빠졌으며, 계속 신앙을 이성 위에 두는 글을 쓰며 자유주의적 개신교는 계몽주의 시대의 합리주의 문화에 굴복했다고 비난했다. 1925년 바르트는 뮌스터대학교로부터 교수직을 제의받았고 거기서 5년을 머물다가 1930년에는 본대학교로 옮겨갔다. 이 기간 동안 그의 저술에는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지난 10년 동안 언명해 오던 '아니오'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예'를 더 강조하기 시작했다. 바르트는 조직신학을 위한 첫 번째 시도를 포기했다. 그는 조직 신학이 실존주의 철학에 의하여 지나치게 부패되었다고 보았다. 그는 어떤 인간적 사상 체계에도 의존하지 않는 절대적으로 신학적이고 그러므로 전적으로 성경적인 신학을 창출하고 싶었다. 더욱이 그는 인간이 가지는 신앙의 주관성보다는 하나님의 계시의 객관성을 강조하기를 원했다. 1931년 바르트는 신학적 방법론에 관하여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으로 안셈에 관한 연구를 하였다. 신 존재에 대한 안셈의 존재론적 논증은 하나님을 신앙과는 별개로 입증하려 했던 시도가 아니라 신앙으로 이미 믿어진 바를 이성적으로 이해하려던 시도였다는 것이다. 바르트가 안셈에 대한 논문을 쓰기 전까지는 하나님과 인간이 만난다는 것에 대하여 부정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 책으로부터 시작하여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라는 범위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모든 형태의 자연 신학, 곧 자연, 문화, 철학 등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 하는 시도에 대하여 그가 항상 반대하였다는 면에서 부정적인 요소는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지식이 얻어질 수 있다고 그 가능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옮겨갔다. 안셈에 대한 책을 완성한 지 얼마 안 되어 바르트는 [교회교의학]이라는 조직 신학서의 집필 작업에 착수했다. 이 책은 그가 1968년에 죽기까지 13권까지 쓰다가 미완으로 끝났다. 이 책의 특징은 전통적 서설이나 철학적 서론 같은 것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의식적으로 생략했는데, 진정한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해설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르트가 [교회교의학]에서 노력한 것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과 인간 사이에 일종의 유비를 설정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여기서 '믿음의 유비'를 '존재의 유비'라는 개념과 대비시켰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인간의 본성이나 경험 안에 내재되어 있는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이며 동시에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을 은혜로 허락하시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길과 진리 그리고 생명으로 볼(하나님의 은혜로 깨닫게 된다는 뜻)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진리는 입증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그리스도를 입증하려는 모든 시도는 우상 숭배에 가깝다.

 

그것은 하나님과 그의 계시를 인간 이성이라는 심판대로 불러내기 때문이다. 1930년 초 바르트는 반나치적인 독일 고백 교회에 깊이 참여했다. 1934년 그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리스도인들의 주님이라고 언명한 바르멘 선언(Barmen Declaration)을 작성하도록 도움으로 히틀러를 하나의 메시아적 위치로 높였던 독일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암암리 비판을 가했다. 바르트는 독일 그리스도인들이 나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는 것을 문화 기독교의 모습, 즉 자연 신학이 이를 수 있는 정상적인 결과로 보고, 국가 교회 내에 있으면서 나치에 대항했던 반체제 인사들을 격려했다. 그가 강의 서두에 히틀러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고 히틀러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서약에 서명하기를 거부하자, 독일 정부는 1935년 6월 바르트를 본대학 교수직으로부터 즉각 해임하였다. 그는 바젤대학교에서 교수 자리를 부여받고 그가 태어난 도시로 돌아와 거기서 살면서 여생 동안 가르쳤다. 그의 생애 마지막 몇 년은 극히 어려운 시기였다. 건강의 악화와 더불어 보수 진보 양 진영의 가혹한 비난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세속신학과 사신신학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당황스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단지 로만 카톨릭 교회의 변화들을 보면서 위로삼고 1968년 12월 9일 바젤의 자택에서 생을 마감했다. 바르트의 신학방법론 부정적인 면에서 바르트는 자연 신학이라면 어떠한 형태의 것이든지 피했다. "기독교의 자연 신학을 매우 정중하게 그리고 아주 겸손한 모습으로 계시를, 그들이 고안해 낸 새로운 형태의 그 무엇으로 개작한다.

 

그러나 그 모습이 그렇게 정중하고 관용적인 것 같아도, 또 스스로를 의식적으로 그리고 일관성 있게 굽히고 들어가는 것 같아도, 자연 신학은 이미 초전에 그것을 정복해 버렸다. 즉 계시를 비계시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이것은 자연 신학이 흡수해서 길들여 놓은 계시에 대하여 어떻게 하는가를 보면 훨씬 분명하게 드러난다(교의학 II-1, 149-50)." 바르트는 고전적 로마 카톨릭 신학이나 개신교의 고전적 자유주의 신학 그리고 심지어 독일 그리스도인들의 나치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개방성 등에서 어떻게 복음의 파괴가 일어났는가를 보여 주고자 했다. 바르트는 이렇게 결론을 맺고 있다. "문제의 논리는 우리가 자연 신학에 새끼 손가락 하나를 양보해 줄지라도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결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부정하는 것이다. 유일무이한 주인으로서 행세하려고 하지 않는 자연 신학이 있다면 그것은 자연 신학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에서 여하한 자리라도 내어주는 것은, 비록 부지불식간에 한 일일지언정, 그것으로 하여금 독점적 주권을 휘두르도록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된다(교의학 II-1, 173)." 바르트의 입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어느 곳에도 있지 않다(교의학 I-1, 222)"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에 대하여 준비되지 않았고 이성, 자연, 문화를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지식을 가질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의 주권적인 자유와 은혜 안에서 자신을 인간의 역사 속에 계시하셨고 그를 알 수 있는 기적이 가능하도록 하셨다. 바르트에 따르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계시된 유일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단순한 정보나 삶의 방식 같은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을 계시하신다. 바르트의 이 말은 "영원하신 하나님은 다른 곳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알 수 있음(교의학 II-2, 190-91)"을 의미한다. 이것이 진실하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바르트는 "신앙의 증거는 신앙의 선포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의 증거는 그것을 고백하는데 있다"고 답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자기 계시적 진리라고 믿는 믿음은 스스로 그 진실성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모든 것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믿음은 다른 어떤 것에도 의거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 바르트에게 기독교 신학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세 가지 형태 쪼는 양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주된 형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생애, 죽음 그리고 부활에 이르기까지의 그리고 그 사건들 주변에 있었던 하나님의 행동들을 망라하는 모든 역사이다. 이것은 계시 자체, 곧 복음 자체이다.

 

제2의 형태는 성경으로서,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특권적 증거이다. 끝으로 교회의 복음 선포가 세 번째 형태이다. 후에 말한 두 가지 형태는 도구적 의미로만 하나님의 말씀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기 위하여 사용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정적으로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동적, 사건적 성격을 가진다. 말씀의 사건은 자신의 존재를 행동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하나님 자신이다. 성경은 하나의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 말씀이 된다. "성경은 하나님이 그것으로 하여금 그 분의 말씀이 되도록 하시는 경우에, 그 분이 그것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경우에 하나님의 말씀이다(교의학 I-1, 109)." 바르트의 성경관은 많은 논란과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자유주의자들은 바르트가 성경을 거의 전통적인 축자 영감 교리에서 가르치는, 특별한 위치에까지 격상시킴으로써, 그것을 역사 비평적 탐구의 대상에서 제외시켰다고 비난했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바르트가 성경을 비명제적 계시의 사건보다 낮은 위치에 두었고, 성경의 무오성을 노골적으로 부정했다고 맹렬히 공격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의 신학을 신현대주의라고 부를 정도였다. 바르트는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구분하면서, "성경 안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어쨋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인간의 말과 사상들을 통하여 그리고 인간들의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 반복하고 재현하려는 인간들의 시도이다(교의학 I-1, 113)"라고 주장했다. 다른 한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특권적 증거인 성경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지위, 즉 성경의 신적 영감은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가치 판단일 뿐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하였다.

 

성경의 영감은 우리가 평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분명 우리가 믿음을 가진다고 해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고, 우리 믿음의 기저에는 성경이 있으며, 또 그것은 우리 신앙의 본질이요 생명이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진리의 객관성을 더 잘 보장해 주는 것은 없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리, 즉 그 밖에는 다른 어떠한 것도 존재치 아니하며, 인간의 주관성이라는 힘 앞에서도 의심할 수 없는 능력임을, 또 우리가 그것을 바로 그러한 것으로 알고 인정치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성경의 영감을 교회와 그 성도들의 삶 속에 끊임없이 내려지는 하나님의 결정으로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서게 된다(교의학 I-2, 534-35)."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은 개인의 주관적 경험이나 내적, 외적 증거에 기초한 학문적 결론에 의존하지 않는다. 바르트에게 성경은 인간의 결정이나 주도권과는 별도로 하나님이 그것을 사용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기적을 창출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에 대하여 교회는 순종과 순복의 태도를 지녀야 하는데 "그것은 교회의 발생에 대한,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본질과 기초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현존하는 최고의 진정한 역사적인 기록이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성경은 항상 교회에서 독특한 그리고 나름대로 유일한 권위를 가진다(교의학 I-2, 540)." 바르트는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예속시키지만 모든 인간의 권위 위에 두었다. [교회 교의학] 전반에 걸쳐서 그는 성경이 축자적으로 영감되었으며 그 가르침이 무오한 것처럼 취급했다.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교의학이 성경적이냐는 것이다. 만약 성경적이지 않다면 그것은 분명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될 것이다. 그것에 대하여 우리는 기필코 그것 때문에 교회가 혼란스럽게 된다고, 다시 말해서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 바빠진 나머지 교회의 선포라는 문제의 본질에 의해 제기된 학문적 과제를 제대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교의학 I-1, 287)." 그리스도 중심적이며 삼위일체적인 신학 바르트의 신학은 그리스도 중심적이다. 모든 교리의 시작과 중심 그리고 결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 곧 그의 생애와 죽음, 부활, 높이심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와의 영원한 연합이다. 그리스도 중심적 구조는 일관성과 통일성을 제공하며 그의 신학을 하나의 체계로 만들어 주고 있다.

 

그에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유일하고 독특한 자기 계시, 즉 인격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계시는 이 하나님의 자기 해석이다. 우리가 만일 그의 계시에 대하여 다룬다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자신을 다루는 것이지... 그와 다른 어떤 실재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교의학 I-1, 311)."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믿음이 말하는 그 분이라면 그는 어떤 면에서 하나님 자신과 동일한 분이어야지 단순히 하나님을 대표하거나 그의 대리자일 수만은 없다. 계시 사건의 실제성 안에, 그리고 그 이면에 그것의 가능성 즉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있는 것이다. 바르트는 삼위일체의 교리가 "스스로를 계시하는 하나님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독교적 답변이라고 이해했다.  그는"따라서, 계시에 대한 성경적 이해에 의한다면, 계시하는 하나님과 계시의 사건 그리고 인간에 대한 그것의 효력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며, 매끄러운 연합 가운데 계신 그 동일한 하나님이다(교의학 I-1, 309)"라고 주장했다. 슐라이엘마허와는 반대로 그는 삼위일체 교리를 그의 신학의 출발점에 두었다. "삼위일체 교리는 여타의 모든 신론들과 계시의 개념들과 비교해 볼 때 기본적으로 기독교적 신론을 기독교적인 것으로 구별케 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이미 계시의 기독교적 개념을 기독교적인 것으로 구별케 한다(교의학 I-1, 301)." 그러므로 계시는 하나님 자신이다. 예수는 하나님과 독특하고 탁월한 자기 계시로서, 하나님과 동일하시고 그러므로 진정 인간이며 동시에 진정 신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실재는 인격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이 육체 안에서도 능동적으로 임재하신다는 것이다. 인격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은 진정한 인간 존재와 활동의 주체이시다(교의학 I-2, 151)."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두 번째 '존재 양태'의 성육신에 대해 분명히 이야기한다. 그는 '위격'(person)이라는 말보다 '양태'(mode)라는 말을 더 좋아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성부와는 다른 인격이시라면 그 분은 성부의 자기 계시일 수가 없다. 바르트의 견해에 따르면, 성부, 성자, 성령은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절대적인 연합을 이루고 계시는 신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그 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자기 계시와 교회의 삶 내에서의 성령의 임재를 위해서 반드시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바르트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다"라고 했을 때 그는 삼위일체라는 상황 내에서 이 말이 이해되기를 원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두 번째 존재 양태요, 성부 자신의 인격이 그대로 반복되어 나타나신 것이다. 자유로이 사랑하시는 분으로서 하나님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자유로이 사랑하시는 분으로 정의하고 신적 탁월성을 두 가지 범주, 즉 신적 사랑이라는 탁월성과 신적 자유라는 탁월성으로 구분하였다. 이러한 구분은 하나님의 내재성과 초월성이라는 전통적 이중성을 대신한다.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을 정당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유가 동등하게 강조되어야 하며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자신과 인간들 사이에 교제가 있도록 그가 자유로이 선택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기꺼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고자 하시며 우리를 자신의 소유로 삼고자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은혜롭게 죄악된 인류와 같이 되신 것(identification), 곧 하나님의 아들이 먼 나라로 찾아오신 길에서 드러난다. 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탁월성들은 은혜와 거룩, 자비와 의, 인내와 지혜이다. 바르트는 이 하나님의 사랑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자유를 강조했다.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진정이지만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대한 사랑과 이 세상과의 교제를 갖기 전에, 그리고 그것과는 별도로, 그 자신 안에서, 즉 그의 삼위일체적 삶 안에서, 완전한 사랑과 교제를 가지고 계신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해할 때만 (헤겔의) 범신론을 피할 수 있으며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진정 은혜로운 것이 될 것이라고 바르트는 주장했다. 하나님이 만약 그의 사랑의 대상으로서 이 세상이 필요했다면, 그의 사랑은 순수한 은혜의 사랑이 아니었을 것이며 이 세상은 하나님이 존재하기 위하여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그의 신성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바르트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초월성을 주장했고 하나님의 자유라는 입장에서 그것을 생각했다. "하나님의 고상함, 주권적 위엄, 거룩함, 영광, 심지어 초월성이라고 할 수 있는 이것은 살아계시고 사랑하시는 이 신적 인격의 자기 결정과 자유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교의학 II-1, 302). 사실 하나님이 하나님인 것은 그 분이 이 세상과의 관계에서 절대적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최고의 것 그리고 철저히 독립해 있는 모든 것과 대비된다. 그것들이 전혀 존재치 않았거나 다른 모습으로 존재할지라도 그 분은 작아진다거나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교의학 II-1, 311)." 하나님의 자유의 탁월성은 조화와 편재, 불변과 전능, 영원과 영광 등인데, 바르트는 그 모든 것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했다.

 

하나님의 자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충만함은 피조적 생명과의 조화를 향하여 기우러져 있다. 더욱이 하나님은 자기의 자유에 매여 있지 않고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이 나와 이 세상과의 진정한 교제로 들어가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심오한 조화에 도달한다.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피조물들과 연합이라는 이러한 의욕과 결심을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한 근거와 기초로 보았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한 것은 예수의 성육신, 죽음 그리고 부활 안에서 세상과 언약적 교제를 맺으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이렇게 바르트는 예수 안에 계시된 하나님 뒤에 어떤 하나님도 감추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분은 우리가 없는 하나님이기를 원치 않으며 ... 오히려 우리와 함께 나누기 위하여, 즉 우리의 존재와 삶의 행위 안에서 그 분의 비길 데 없는 존재와 삶의 행위를 나누기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다(교의학 IV-1, 7)." 선택의 교리 바르트에 따르면 하나님이 인간 역사에 들어온 최고의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죄악된 인류가 충분히 받아 마땅한 하나님의 진노와 배척을 짊어지고 '먼 나라'로 들어간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하게 선택받은 자이자 배척받은(저주받은) 자이고, 그 외에 모든 사람들은 그 분 안에 포함되며 그 분은 대표가 된다. "모든 사람들이 불러일으킨 하나님의 배척, 모든 사람들에게 놓인 하나님의 진노, 모든 사람이 죽어야 하는 죽음을, 하나님은 사람들에 대한 그 분의 사랑을 인하여 영원 전부터 자신에게로 돌려놓고 그 안에서 그들을 사랑하고 택하며, 예수를 필두로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예수를 택한다(교의학 II-2, 123)." 이와 같이 바르트의 신학은 그리스도 일원론적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선택이자 유기의 유일한 대상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뜻인 예수 그리스도의 선택 안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 선택, 구원, 생명을 허락하고, 자신에게는 ... 배척, 파멸, 죽음을 돌렸다(교의학 II-2, 163)." 곧 바르트에게 있어서 예정이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 자신에게 엄청난 대가를 돌리면서 인류를 사죄하고자 결정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용서, 구원이 미치는 영역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하게 유기되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은 것을 분명히 하였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배척하는 가운데 불경건한 삶을 살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들의 이러한 욕망과 노력은 이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하나님에 의하여 무효화되었다. ... 인간에게 놓여진 것은 하나님의 교제 속에서 누리는 영생이다(교의학 II-2, 319)." 그는 만인 구원설(apokatastasis)을 말나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서면 응답에서 바르트는 직접적으로 답변하기를 거부했다. "나는 그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가르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가톨릭 신학자 한스 우어스 폰 발타사르는 "바르트의 선택 교리에서 분명한 것은 보편적 구원이 가능할 뿐 아니라 필연적이라는 사실이다. 명백한 단 한 가지의 실재는 은혜이며 어떠한 정죄적 심판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은 잠정적인 것이어야만 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평가: 바르트의 신학 방법의 강점은 계시에 대한 전적 의존에 있다. 이 때문에 그의 신학은 철학적 체계들이나 문화적, 지적 유행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진정으로 '신학적'이다. 전반적으로 바트르의 신학은 다른 학문과의 관계에서 신학의 자주성을 보존하고 있다. 신학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과학으로 남는다.

 

그러나 그의 강점은 또한 약점으로 남는다. 그것은 그가 신학적 자주성을 극단적으로 몰고 간데서 연유한 약점이다. 계시의 진리를 합법적으로 정당화시키려는 여하한 시도도 거부한 결과 그것은 신학의 자주성을 확립시켜 주는 것을 넘어서서 신학을 고립시키게 되었다.  자유주의 신학이 기독교 신앙을 인간 경험의 지평 안에서 예기 될 수 있는 것쯤으로 축소시키는 것을 거부한 것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믿음과 경험의 연관 관계를 무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스탠리 그렌쯔는 말한다. 후이스틴(Wentzel van Huyssteen)은 "바르트는 신학의 대상을 인간의 종교적 의식이란 것으로 축소시키는 것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정당하다... 그러나 하나님과 그의 계시에 대하여 그가 전제하고 있는 공리적 기준은 출구가 막혀 있다. ... 계시에 대하여 그가 제시한 긍정적인 특성도 신학의 주관주의에 대한 대안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증주의적 계시 신학은 대단히 비의적인 방법을 채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기본적인 신학적 교의들--하나님, 계시, 성경, 영감 등--이 주관적인 변덕(그것이 개인적 차원이든지 혹은 영향력 있는 전통을 따르는 것이든지)이 만들어 낸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납득시키기는 매우 어렵다." 바르트의 신학적 방법이 일으킨 논란의 두 번째 요점은 소위 그리스도 일원론이라는 것이다. 바르트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그 분을 아는 인격적 앎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것으로만 제한하였다. 그럼으로 모든 교리가 일종의 기독론이 되어 버렸다. 이것은 바르트의 선택 교리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예정의 주체인 동시에 대상이다. 바르트가 성자와 성부와 성령 사이의 구분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기독론에 대한 극단적인 집중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신학은 구속사에서 성부와 성령 그리고 인간의 역할들을 간과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바르트의 성경에 대한 교리는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보수주의 신학자들 양자로부터 상당한 비판의 대상이 되어오고 있다.

 

자유주의자들은 그가 고등비평설의 학문적 결과들을 무시하여 성경을 마치 축자적으로 영감된 것처럼 취급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을 지나치게 구분함으로써 성경의 교리적 무오성을 부정하게 되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양쪽 모두 바르트의 성경관과 성경의 용도에 대한 그의 이해 사이에 그가 두고 있는 차이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자유주의자들은 그가 말하는 성경의 용도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성경의 인간적인 성격에 대하여 그가 강하게 했던 말들을 무시한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그의 성경관에 초점을 맞추어서 바르트가 성경을 신학에서 절대적인 권위로 취급하고 있는 점에 대하여 무시한다. 20세기 신학에 끼친 바르트의 가장 위대한 공헌 가운데 하나는 불분명한 가운데 묻혀 있던 삼위일체의 교리를 회복시킨 것이다. 그러나 삼위일체에 대한 바르트의 입장에 대하여 모든 사람이 동의하지는 않았다. 어떤 비평가들은 바르트의 취급 방법이 양태론적(modalistic) 특성을 암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즉 하나님의 본질을 그의 인격(person)과 동일시함으로써, 그리고 삼위일체의 구분을 위하여 존재의 양태(modes of being)라는 용어를 채택함으로써, 하나님을 어떤 단일적 주관성으로 축소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르트는 "하나님의 본질 속에 있는 세 가지 존재 양태라는 궁극적 실제를 초월하거나, 그 이면에 그보다 더 높은 실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양태론을 거부했다(교의학 I-1, 382). 그리고 나중에는 양태론에 대한 거부를 극명하게 밝히고 하나님이 영원한 존재 안에 복종의 순서가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성부, 성자, 성령 사이에 영원한 그리고 환원할 수 없는 구분이 있음을 주장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승리의 "예!"가 인간의 모든 "아니오!"를 무효화시켜 버린다. 바르트에 대하여 가장 동정적인 비평가들 가운데 한 사람인 버카우어(G. C. Berkouwer)는 "마치 케리그마가 아무런 중대한 메시지가 없는 단순한 선언이 되어 버리는 위협 속에 놓이듯이, 바르트 신학에서 은혜의 승리는 인간 결정의 심각성을 막연하게 만들어 버린다"고 말했다. 슐라이엘마허가 인간에 대하여 매우 큰소리로 말하면서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려고 했던 오류를 범했다면, 바르트는 하나님에 대하여 큰소리로 말하면서 인간에 대하여 말하려 했던 실수를 범했다고 볼 수 있다.

 

칼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

2017-03-15 13:18:43


바르트 신학의 위치와 출발점

 

1. 원시 기독교가 묵시사상과 임박한 종말론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면 고대의 기독교는 로마 및 헬레니즘 세계와 조우하면서 제도화되고 제국화된 교부들의 시대였다. 이어지는 중세 카톨릭의 주류 신학은 신앙과 이성, 은총과 자연, 교회와 국가를 통합하는 토미즘이었다. 종교개혁으로 등장한 개신교는 중세의 교회전통과 예전 중심에서 성경과 설교중심의 기독교로 변화했다. 근대에 이르러 기독교는 계몽주의와 조우를 통해 자유주의 기독교의 형태를 띠게 되면서 과거의 신앙중심에서 이성중심으로 변하게 된다. 이 시대에는 이성에 합치되지 않는 교리를 재해석하고 수정하게 된다. 이리하여 19세기에는 자유주의 신학이 융성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신학자들이 슐라이어마허, 하르낙, 리츨, 트뢸치 등의 학자들이다.  하르낙으로부터 배웠던 바르트는 19세기 신학을 반대하고 새로운 신학을 제창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신정통주의라고 부르는 바르트의 독창적인 신학이다.  20세기 신학의 출발점은 일반적으로 칼 바르트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2.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일반적인 특징은 인간, 역사, 도덕에 대한 긍정을 바탕으로 문화개신교주의를 표방한 것이다. 바르트는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의 긍정을 반대하고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은 인간의 위기를 주장하였기 때문에 바르트의 신학은 위기의 신학이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그의 이런 부정의 신학은 부정을 위한 부정이 아니라 부정을 통해 긍정에 이르기 위한 변증법적 신학이었다. 유럽의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형성된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일반적으로 인간학이 된 신학으로 평가된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이 인간 안에서 발견되며 하나님은 인간의 자의식 안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포이에르바하는 신은 인간의 자아의식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바르트는 이에 반대하여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며 전적인 타자임을 주장했다. 자유주의 신학이 신을 내재성의 범주로 생각하여 종교, 역사, 인간 안에서 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바르트는 신을 초월성의 범주로 생각하여 하나님은 인간이 인식하거나 만날 수 없는 전적인 타자라고 주장했다. 자유주의 신학이 아래로부터의 신학이며 자연신학이라면 바르트의 신학은 위로부터의 신학이며 계시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르트 신학의 성격과특징

 

1. 자유주의 신학은 데카르트의 본유관념을 견지하며 인간이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은 반면에 바르트는 인간의 선험적인 능력을 부인하고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인식할 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전적 타자인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가? 여기서 바르트의 접촉점 개념이 나온다. 바르트는 죄인된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길이 없으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이 가능하게 된다고 말하면서 전적 타자인 하나님과 인간의 접촉점을 예수 그리스도로 제시한다. 바르트는 존재의 유비를 반대하고 신앙의 유비를 주장했는데 존재의 유비란 하나님과 인간이 존재론적으로 유사하므로 유한이 무한을 품을 수 있는 카톨릭적 사고인데 루터와 본회퍼는 이 노선에 서있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하나님의 전능성과 주권을 강조한 칼빈은 유한은 무한을 품을 수 없다며 하나님과 인간의 절대적 차이를 강조했는데 바르트는 이 노선에 서있다고 볼 수 있다. 바르트가  주장한 신앙의 유비란 인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르트의 신학은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이다. 그의 신학은 모두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전개되는데 특히 그의 필생의 저작인 교회교의학에서 그는 하나님과 인간의 유일한 접촉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인간 긍정이라고 말한다.

 

2. 종교개혁 전통에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두가지 계시로서 특별계시와 일반계시를 인정한다. 특별계시가 성경을 통해 주어진 계시라면 일반계시란 자연물이나 인간의 관념, 양심을 통해 주어지는 계시를 의미한다. 그런데 바르트는 일반계시를 부정했는데 이는 19세기 자유주의의 긍정의 신학에 대한 반발에서 나온 것이다.

 

3. 바르트의 신학을 말씀의 신학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단순히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의미가 아니다.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시의 절정이라고 말하며 인간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성경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는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정통신학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하지만 바르트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아니고 계시에 대한 인간적 증언이라고 말한다.

 

4. 바르트는 하나님의 주권을 매우 강조했는데 바르트의 신학을 하나님 주권의 신학이라고도 한다. 그는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고 인간은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로 하나님의 전적타자성을 강조했면서 인간의 자유의지, 자율성을 주장하는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했다. 바르트가 하나님의 주권과 초월성을 강조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자유를 강조하려는 의도였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주권신학을 하나님은 승리자이시다 라는 말로 표현했는데이는 불룸하르트 부자에게서 받은 영향을 반영한다. 하나님은 승리자라는 선언은 바르트의 그리스도의 왕적 통치설에 근거한다. 이러한 하나님 주권신학에 근거해 바르트는 은총우위설을 주장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구원이 보편적으로 모든 인간에게 열려있다는 보편구원론으로 발전한다. 바르트는 예정론이 복음의 총화라고 말하지만 그가 말하는 예정론은 전통적인 예정론이 아니다. 그는 칼빈의 이중예정을 반대하며 단일예정을 주장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예정은 유기나 선택이라는 이중예정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이라는 단일 예정(유기적 예정을 배제한)이라는 의미다. 바르트는 모든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유기됨으로 모든 자가 선택되었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바르트는 만인구원론자라 비판을 받지만 바르트 자신은 이런 비판을 인정하지 않는다.

 

5. 바르트는 구원론을 화해개념으로 설명하는데 그의 화해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모든 사람이 이미 하나님과 화해되었다(각 개인의 믿음과는 상관없이)는 객관적 화해론이다. 다시 말하면 화해의 사건은 인간의 믿음과 관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이미 객관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이 객관적 화해사건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각 개인에게 주관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바로 구원이라고 말한다. 

 

바르트의 해석학

 

1. 바르트는 성서 바깥에서 오는 어떤 해석학적 원리에 따라 성서 텍스트를 해석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는 성서가 증언하는 성서 자체의 주제가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이 주제에 따라 텍스트를 해석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바르트는 성서 해석과 이해는 어떤 해석학적 원리에 따라 해석하는 지적 행위가 아니라 믿음의 행위 복종의 행위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르트에게는 해석을 위한 텍스트 언어의 중요성, 텍스트가 생성된 역사적 배경이 간과되고 있다. 바르트의 입장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상황들의 차이를 뛰어넘어 언제 어디사나 동일하게 해석되고 이해되어야 한다. 바르트는 성서해석에 정당한 다원성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에 대답하지 못한다. 텍스트에 대한 역사-비평적 연구는 단지 예비적인 것에 불과하고 텍스트의 이해가 궁극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의 기적으로 이뤄진다면 모든 해석학적 노력을 불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 비평을 배제하거나 우회함으로써 성령의 감동으로 들려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비평과 해석학적 접근을 포괄하는 모든 이해의 과정을 통해 들려진다고 보아야 한다. 바르트는 텍스트 저자와 해석자 사이의 삶의 연관성 또는 관계성을 배제한다. 그는 성서의 텍스트는 이러한 연관성이나 관계성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인간의 닫힌 눈이 열릴 때 이해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통의 장이나 삶의 연관성을 배제하고 텍스트가 성령의 역사 가운데 기적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자에게 전달한다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생각이다. 

 

2. 그러나 성서 해석학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단순한 인간의 지적 작업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 가운데 그리고 인간의 믿음과 복종과 감사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는 바르트의 지적은 타당하다. 특히 성서 밖의 어떤 해석학적 원리로 성서 텍스트를 굴복시키고 이 원리로 성서 주제를 왜곡하지 말아야 하며, 성서 주제에 대한 이해 속에서 개별 텍스트를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은 올바르다. 바르트는 성서 해석학은 성서의 역사-비평적 연구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성서의 주제에 통합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바르트 신학에 대한 평가

 

1. 판넨베르크가 지적하듯이 바르트 신학의 가장 큰 한계는 역사 상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한계는 그가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주의적 사고를 수용함으로 생기는 필연적인 귀결이다. 자연계시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인 그의 신학적 입장은 세계와 역사의 지평을 자신의 신학적 사고 안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그의 신학적 출발점으로 삼지만 그 이전의 초역사를 전제하며 사실상 이 초역사에서 그의 신학이 출발한다. 바르트는 계시의 사건 이전에 있는 내재적 삼위일체를 전제하며 이 내재적 삼위일체에서 시작한다. 20세기 초엽의 많은 신학자들이 땅의 현실에 대한 기독교의 연관성과 세계성을 회복하고자 노력한 반면에 바르트는 하늘을 추구하였다고 볼 수 있다. 바르트의 이런 문제점은 역사의 전과정을 정신의 즉자속에 내포된 것의 역사적 전재로 본 헤겔의 문제점과 동일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영원한 삼위일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의 모상에 불과하다면 그 계시에서 참으로 새로운  그 무엇이 일어난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계시는 정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이 전달되며 인식될 뿐이다. 

 

2. 바로 여기에 바르트의 보편주의의 핵심이 있다. 모든 인간 구원은 하나님의 영원한 삼위일체적 존재 안에서 이미 결정되어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인간은 구원과 영원과 생명으로 선택되었다. 이리하여 모든 인간은 구원과 관련해 하나의 존재론적 규정을 얻게되고 이로써 신자와 불신자 사이의 존재론적 연관성이 형성된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앙은 이 보편적 연관성을 통찰하는 것에 불과하게 된다. 그러나 바르트가 보편구원론을 주장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바르트에 의하면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결정이요 약속이며 인간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이다. 이 가능성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선택은 현실화되지만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인간은 여전히 버림받은 자로 머물게 된다. 

 

3. 바르트가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자기계시는 실제 역사의 차원을 결여하고 있다. 역사적 예수의 삶을 통해 일어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에 바르트는 대답하고 있지 않다. 바르트 신학의 이런 한계성은 특정한 정치, 경제, 사회, 종교적 배경 속에 있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가 발전되지 않았던 신학적 상활에서 불가피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바르트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계시의 이런 역사적 종말론적 측면이 간과되고 계사는 내재적 삼위일체 속에서 이미 일어난 것의 전개와 드러남으로만 생각된다. 바르트 신학의 역사 상실의 문제는 그의 종말론에도 드러난다. 그는 종말론의 역동적이며 우주적 지평을 포기하고 시간과 영원의 변증법을 그의 종말론적 사고의 중심으로 기술한다. 그에게 종말은 역사의 마지막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순간 속에 있는 영원을 말한다. 그는 현재의 순간 속에서 영원을 경험하는 사람은 역사의 종말을 경험한다고 말한다.

 

4. 바르트는 피조물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내재성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재성을 말할 경우 그가 한평생 반대해온 자연신학을 인정하게 되며 하나님의 절대적 초월성과  타자성이 위험스럽게 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바르트의 신학 사고에서 이 세계는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철저히 구별되고 분리된 것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세계 즉 창조는 바르트의 신학에서 다른 중요성을 얻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창조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곧 계약에 있다. 성서의 주제는 계약에 있으며 창조세계는 이 주제가 역사적으로 전개되기 위한 배경에 불과하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과 세계, 구원사와 세속사, 종교와 문화, 산학과 일반학문의 영역이 엄격히 구분되고 그 결과 교회와 신학이 자연을 포함한 세속세계의 영역에서 고립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이 자연의 문제에 거의 관심을 갖지 않고 생태학적 신학을 발전시키지 못한 원인이 여기에 있다. 바르트는 자연계시와 특별계시를 서로 대립된 것으로 봄으로써 구원의 진리를 오직 기독교에만 있는 것으로 보게되고 세계의 다른 종교들은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추구하는 자연종교로 규정된다. 바르트에게는 계시가 우선적으로 인간에 대한 부정 내지는 심판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므로 어떤 식의 자연적 인간 이해에 대한 긍정이나 일반적 이성에 근거된 철학적 시도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칼 바르트의 생애와 신학 여정

2017-03-19 18:03:41


1 .바르트는 1886년 5월 10일 스위스 바젤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프리츠 바르트는 베른대학 신학부의 신약학, 교회사 교수였다. 바르트는 1904년 베른에서 신학수업을 시작하여 베를린 대학에서 아돌프 폰 하르낙, 헤르만 궁켈, 슐라이어마허, 헤겔 등에게 배웠다. 이버지의 권유로 튀빙겐 대학으로 옮겨 아돌프 쉘터에게 배우고 1908년 마부르크 대학에서 자유주의 신학자인 빌헬름 헤르만에게 배웠다. 빌헬름 헤르만은 신칸트학파로서 순수이성으로 하나님 증명은 불가능하나 실천이성으로는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계시는 역사적으로가 아니라 인간성과 종교성에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2. 바르트는 1909년 제네바 개혁파 교회의 전도사로 목회를 시작했고 이어서 1911년부터 1921년까지 10년간을 스위스 공업도시인 자펜빌에서 목회를 했다. 이 당시에 그는 원리적 사회주의를 하나님나라 운동과 동일시하며 자본주의를 악마적 체제로 규정함으로써 자펜빌의 붉은 목사라 불렸다. 바르트는 당시에 종교사회주의자인 크리스토프 불룸하르트의 영향을 받이 사회민주당에 가입하여 종교사회주의 운동을 주창하고 사회민주당 활동을 했다.  종교사회주의란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종교적으로는 기독교를 표방하는데 당시에 헤르만 쿠터나 레온하르츠 라기츠 등이 이 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불룸하르트는 사회주의와 하나님나라를 동일시하는 것을 거부했다.

 

3. 바르트는 1919년에 로마서 강해 제1판을 출판하는데 당시에 3개 출판사로부터 출간 거부를 당하고 300부를 기증본으로 겨우 1000부를 인쇄했다. 그러나 로마서 강해에 대한 반응은 뜻밖에 뜨거웠는데 아담스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폭탄을 던졌다고 평가했다. 로마서 강해 덕분에 박사학위가 없는 시골목회자인 바르트는 1921년 괴팅겐 대학의 개혁신학 교수로 초빙되었다. 1923년 괴팅겐의 젊은 신학자인 바르트는 당대의 자유주의 신학의 거목인 하르낙과 신학논쟁을 벌린다. 이 논쟁에서 하르낙은 바르트가 신학교 교수직을 설교직으로 변질시켰다고 비판하며 학문적 신학 대신 부흥설교를 하는 것을 우려했고 바르트는 신학의 과제와 설교의 과제는 동일하다고 반박했다. 1922년에는 로마서 강해 2판이 발간되고 바르트는 뮌스터 대학에서 명예신학박사를 받고 1925년 뮌스터 대학 교수로 취임했다. 바르트는 1925-1930년동안 뮌스터 대학에서 킬뱅의 기독교강요로 수업을 진행했다. 1930-1935년에는 본대학에서 교수직을 수행했는데 이 시기에 바르트는 1931년 안셀름의 이해를 주구하는 신앙을 집필했고 1934년 바르멘신학선언에 가담했으며 부르너와 자연과 은총에 대한 논쟁을 벌렸다.

 

4. 1934년에는 바르멘 신학선언으로 인해 본대학 교수직을 박탈당하게 된다. 바르트는 본대학에서 강의시 나치식 경례를 거부하고 경건주의자들이 사용하던 기도로 강의를 시작했다. 이 시기에 칼빈주의 개혁신학자로서 바르트는 신앙고백서(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칼빈의 신학, 칼빈의 기독교 강요 수업을 수차례 개설했다. 1932년에는 교회교의학이 처음 출판되는데 13권으로 구성된 바르트의 교회교의학은 20세기 신학대전에 비견된다. 1956년 바르트는 하나님의 인간성(Humanity of God)이란 논문을 출간하는데, 그동안 하나님과 인간의 질적 차이를 강조해왔던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은 인간이신 하나님이라는 주목할만한 언급을 한다. 1962년 바르트는 개신교신학입문이라는 고별강연을 끝으로 76세에 은퇴한다. 은퇴후에 바르트는 2차 바티칸 공의회에 초대되는데 그동안 카톨릭을 적그리스도로 간주했던 태도에서 우호적 태도로 전환된다. 바르트는 죽기 전날밤 트루나이젠과 세계정세에 대해 대화한 후에1967년 12월 10일 세게 기도주간에 강연할 원고를 책상에 두고 작고한다.

 

5. 칼 바르트는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하고 결별하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개신교 정통주의 신학을 극복하려고 했는데 이런 이유로 그의 신학은 신정통주의라고 불린다. 바르트는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지만 1922년 로마서 강해를 통해 자유주의 신학과 결별한다. 그는 로마서 강해에서 인간론적인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하면서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했기에 이 시기의 그의 신학을 변증법적 신학이라고 부른다. 1932년에는 교회교의학이 출간되는데 여기서 바르트는 하나님과 인간의 유일한 접촉점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하며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을 전개하는데 이 시기의 바르트 신학을 하나님 말씀의 신학이라고 부른다. 1956년에는 하나님의 인간성이란 책을 펴내면서 성령론적 관점에서 인간 현실을 논하는데 이 시기의 신학은 대화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6. 바르트의 초기 신학은 로마서 강해로 대표되는 변증법적 신학인데 여기서 그는 하나과 인간의 무한한 질적 차이를 강조한다. 1판에서는 헤겔의 변증법을 따라 하나님나라 역사 속에서의 성장 가능성을 인정했으나 2판에서는 1차 대전의 충격에서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절망을 드러내는 키에르케고르적 흐름을 따라 하나님의 계시와 하나님나라 역사 속에서의 가능성을 역설로 규정하게 된다. 이 시기에 바르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철저한 간격을 강조하며 전적 타자로서의 하나님을 주창한다. 따라서 바르트는 하나님은 인간의 경험이나 종교의식으로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며 오직 실존적 믿음 속에서만 알려진다고 말한다. 바르트의 이런 신학은 시간과 영원의 무한한 질적 차이를 말하는 키에르케고르의 변증법적 사고를 반영한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님은 인간과 역사 아넹서 말씀한다고 주장했는데, 바르트는 인간과 역사 밖에 계시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며 인간의 실존을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한 존재로 규정한다.

 

7. 바르트는 1924년에서 1942년 사이에 대작 "교회교의학"을 집필하는데, 그는 이 책에서 성육신하신 말씀, 기록된 말씀, 선포된 말씀이라는 말씀의 삼중직을 제시하면서 시간과 영원의 질적 차이에서 인간 예수가 하나님 말씀의 도구라고 주장한다. 교회교의학의 집필을 통해서 1942년 이후 바르트의 신학에는 초기신학의 심판은 사라지고 은헤와 사랑이 강조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은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이지 인간을 심판하고 징벌하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한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모든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가 짊어지셨으며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심판당하고 버림받음으로 모든 인류가 선택되고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 시기는 예수는 하나님의 자기계시라고 말함으로써 그리스도 중심주의를 강조한 시기다. 바르트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든 신학의 주제(말씀론, 신론, 창조론, 화해론)를 전개한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함으로써 그는 하나님과 인간의 질적 차이를 강조하던 전기 신학에서 벗어나 인간이 되신 하나님, 인간 안에서, 안간을 통하여 계시하신 하나님을 강조하게 된다. 이제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분이 아니라 땅에 오신 성육신하신 하나님이다.  1956년 바르트는 하나님의 인간성이란 책을 통해 하나님은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긍정이라고 말한다. 

 

 

칼 바르트 신학의 특징

2017-03-19 19:11:15


1.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계시, 즉 특별계시만을 강조한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접촉점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바르트는 당시 자유주의 신학이 인간의 종교경험, 역사, 문화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자연신학을 극도로 경계하며 일반계시를 부정했다. 바르트는 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대립하며 그것은 불신앙이며 적그리스도라고 말한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에게 이르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오직 은혜를 통해, 오직 성령의 능력을 통해, 오직 믿음을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의 초월성보다는 내재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의 죄성보다는 인간이 도덕적 능력으로 이 지상에 하나님나라 건설이 가능하다고 보았는데 바르트는 이런 인간론적 낙관주의를 철저히 부정하며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인간의 실존과 역사는 위기 아래 놓여있다고 주장한다.

 

2. 바르트는 하나님은 인간에 의해 인식될 수 있는 분이 아니라며 하나님의 전적 타자성을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은 하늘에, 인간은 땅위에" 라는 말로 하나님과 인간의 절대적인 질적 차이를 말하며 하나님과 인간의 연속성이 아니라 불연속성을 강조하며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을 통하여만 인식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바르트는 중세의 전통인 존재의 유비(analogia entis)를 반대하고 신앙의 유비(anlaogia fidei) 혹은 관계의 유비를 주장한다. 바르트는 유한은 무한을 파악할 수 없으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존재의 유비가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님과 인간의 존재론적 유비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신앙에 의해서(신앙의 유비) 가능하며, 이 신앙의 유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3. 하나님 말씀의 3중성을 주장하는 바르트의 성경관은 독특한데, 이 지점에서 그는 정통주의 신학과 충돌한다. 정통주의는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자체로 인정하는데 반해 바르트는 성경을 계시 자체가 아니라 계시 자체에 대한 인간의 증언으로 본다. 바르트는 성경을 인간의 증언의 형태를 가진 이미 일어난 계시로 보기 때문에 성경에는 인간적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하지만 성경에 대한 역사비평을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기록된 말씀(성)과 더불어 바르트는 성육신 하신 말씀(에수 그리스도)와 선포된 말씀(설교)를 말씀의 3중성으로 제시한다. 바르트에게 성경이 과거에(인간의 증언을 통해) 이미 일어난 계시라면 설교는 (인간의 말을 통해)지금 일어나는 계시이다. 그리고 성육신 하신 말씀은 기록된 말씀과 선포되는 말씀의 궁극적 근거이다. 결국 선포된 말씀(설교)는 기록된 말씀(성경)에 근거하고 기록된 말씀(성경)은 성육신 하신 말씀(예수 그리스도)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르트는 신학은 말씀의 선포가 궁극적으로 성육신 하신 말씀으로부터 오는가? 성육신 하신 말씀으로 인도하는가? 성육신 하신 말씀과 일치하는가를 검증함으로써 교회의 선포가 바르게 이루어지도록 봉사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4. 바르트는 성육신 하신 말씀(예수 그리스도)과 기록된 말씀(성경)은 구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사건 자체와 계시 사건에 대한 보도가 구별되어야 하는 것처럼 계시 자체(예수 그리스도)와 계시에 대한 증언(성경)은 구별되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성경은 계시 자체가 아니라 과거에 일어난 계시에 대한 인간의 증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바르트에게 성경은 무오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인간의 증언이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성경에는 오류도 있고 신화도 있는데 그것은 인간이 인간의 언어로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성경을 하나님 말씀 자체로, 계시 자체로 여기게 되면 성경숭배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바르트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는 아니고 하나님이 성경을 그의 말씀이 되게 하실 때에만, 즉 성경을 통해 현재적으로 말씀하실 때에만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주장한다. 바르트의 의도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그것이 일점일획이라도 오류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성경의 역사를 통해 비로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는 것이다. 바르트의 이런 성경관에는 성경을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정통주의에 대한 자유주의 신학의 비판에 대한 의식, 그리고  성경을 주관적으로 보려는 실존주의적 사고가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5. 바르트는 예정론(선택론)을 복음의 총화라고 말한다. 그러나 바르트는 전통적인 이중예정을 비판하고 하나님의 선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지로부터 파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하나님은 인간이 당해야 할 저주와 죽음을 자신에게 돌리시고 그 대신 인간에게 구원과 생명을 돌리기로 결정하셨다고 말하면서 진정한 이중예정이란 선택과 유기의 예정이 아니라 선택된 자를(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버림받은 자(죄인인 인간)를 선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ㅜ도를 선택하시는 하나님이시면서 선택받은 인간으로 본다. 그래서 바르트는 모든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객관적으로 화해되었다고 본다. 여기서 바르트의 독특한 구원론이 등장하는데 그는 화해와 구원을 구분한다. 화해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사람에게 이루어진 객관적 사건이라면 구원은 그 화해 사건이 개인에게 성령에 의해 주관적으로 적용된 사건을 의미한다. 그러나 바르트가 보편구원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바르트는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으로 선택되었다(객관적  화해사건)는 것은 하나님의 결정이고 약속이며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가능성이다. 그런데 이 가능성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선택(객관적 화해 사건)은 현실화되지만(주관적인 구원사건), 받아들이지 않을 때는 인간은 가능성으로만 존속할 뿐 실제로는 버림받은 존재로 남게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바르트틑 모든 사람이 선택되었다고 말해서는 안되며, 버림받은 자는 세상 끝날까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칼 바르트 신학의 성격

2017-03-19 21:15:59


1. 자유주의 신학의 특징은 하나님과 인간, 계시와 이성, 교회와 문화를 동일시하는 경향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거두 하르낙은 "기독교의 본질"에서 기독교의 본질은 헬라사상의 영향을 받아 후대에 변질된 것이라며 기독교의 본질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과 인간 영혼의 무한한 가치라고 말한다. 그는 정신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적 신앙에 도취되어 신과 세계, 종교와 문화, 신적 질서와 지상적 질서를 조화시켰고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시민적 이상주의 시대를 찬양한다.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슐라이어마허는 역사적 과정을 신적 운동으로 보면 신적 운동의 목적은 역사속에 내제한 정신적 힘들이 점진적으로 승리하여 인류를 한단계씩 자연상태에서 문화로 상승시키는데 있다고 말한다. 그는 개별인간은 이 정신적 힘들에 의해 자연상태로부터 자율적 인격성으로 발전하면서 역사의 과정에 참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역사에는 정신적이며 신적인 힘들을 소유한 개인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신적 계시의 담지자라고 주장한다. 그는 최상, 최대의 계시 담지자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하며 인간은 예수의 모범을 따르고 그의 내적 생명에 참여하면서 그들의 신적 의식이 강해지고 자유로운 정신적 도덕적 인격으로 성숙하게 된다고 말하는데, 슐라이어마허의 세계관은 역사적, 범신론적 세계관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신학은 인간의 경건한 자기 의식이 표현하는 바를 체계적으로 진술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리하여 그에게 복음의 초자연성은 종교 혹은 인간의 경건성이 되며, 신학은 인간의 경건한 자기의식 체험의 학문 혹은 종교적 인간학이 된다. 

2.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여 변증법적 신학운동이 일어났는데, 그 주된 신학자들이 칼 바르트, 투르나이젠, 에밀 부르너, 고가르텐 등이다. 변증법적 신학이란 하나님의 계시와 인간적인 것을 긍정적 상호관계로 보지 않고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보는 관점이다. 바르트는 역사의 진보, 역사내재적 목적을 지행하는 자유주의 신학의 역사주의 신학을 비판하고 양자간의 대립 ,모순을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세계는 세계다,. 하나님과 세계는 혼동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우리의 새로운 시작은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르트로부터 시작된 신정통주의 신학은 17세기 정통주의가 강조하는 하나님과 신학의 초월성과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이 강조하는 하나님과 신학의 인간적인 정향, 즉 내재성을 극복하려는 신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변증법적 신학은 하나님과 인간이라는 이중성을 고려하여 명제와 반명제,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파악하려고 한다. 죄인됨으로 인간은 부정되지만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인간은 긍정된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긍정과 부정이 만난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의 죄를 정죄하고(부정) 동시에 인간의 죄를 용서하신다. (긍정) 신앙과 종교, 심판과 용서, 영원과 시간, 죽음과 삶이 십자가에서 만난다.

3. 바르트의 신학은 또한 위기의 신학이다. 바르트는 전적 타자이신 하나님의 계시는 세계의 위기라고 말한다. 바르트가 말하는 위기는 19세기 인간중심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하나님의 부정이며 인간의 의가 하나님의 의 앞에서 부정되는 순간의 위기다. 바르트트는 교회의 전통적 교리를 무시하고 성서비평을 통해 성서를 인간의 역사적 문서로 취급하고, 신학을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말로 여기는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하나님의 부정을 위기로 규정한다.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은 이 부정에서 긍정을, 위기에서 기회를 찾으려는 것이다. 그래서 바르트는 성서로부터 교리를 새롭게 수용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학적 원리로 하여 신학을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한 하나님 말씀의 신학으로 방향을 전환하려고 시도한다. 먼저 바르트는 하나님과 인간, 하나님과 세계의 무한한 질적 차이를 강조한다. 그러나 무한한 질적 차이만 강조하면 접촉점이 없게된다. 바르트는 여기서 성경이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다고 선언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기 때문에 참 하나님이요,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정반합의 변증법적 관계가 성립된다고 말한다.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하나님의 부정과 하나님의 긍정으로 파악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부정과 긍정 사이에는 변증법적 관계가 있으며 부정은 불가피하게 긍정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진노의 하나님(부정)은 사랑의 하나님(긍정)이기 때문이다.

 

4. 바르트는 계시의 초월성, 초역사성을 강조하며 자연신학을 철저히 부정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에 대한 신앙만이 참된 종교라고 말한다. 바르트의 종교론은 계시와 종교를 대립과 배타로 본다. 그래서 그는 종교의 지양((Aufhebung)으로서 하나님의 계시를 말하면 타종교에 대한 태도를 배타모델 혹은 대체모델로 설정한다. 바르트는 종교를 불신앙으로 규정하며 계시와 종교사이의 절대적 불연속성을 주장한다. 바르트에게 신학이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하셨다는 하나님의 자기계시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그의 교회교의학의 주된 목표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신앙적 해명으로 본다.나아가 바르트는 계시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를 강조한다. 그에게 계시한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를 의미한다. 바르트에게 성육신을 떠나서는 계시가 존재하지 않는다. 바르트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계시 그 자체이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를 하나님의 행동이로 보기에 그리스도는 행동의 말씀이자 말씀의 행동이다. 계시의 주도권은 하나님에게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과 더불어서 혹은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찾아오심으로 시작된다. 바르트가 하나님의 계시를 행동이라 말하는 것은 계시를 사건으로 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는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사건으로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을 사변이나 관념이나 어떤 명제로 계시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 나타난 행동으로 알리시기 때문이다. 나아가 바르트에게 계시는 만남의 사건이다. 그는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이 일어나는 사건이 발생할 때 계시가 된다고 말한다. 발트가 정통신학과 달리 기록된 성경 자체를 계시로 보지 않는 이유는 계시는 하나님의 행동이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성경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성경 안에서 계시 사건이 일어날 때, 그리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이 일어나는 사건이 일어날 때, 계시가 되기 때문이다. 바르트의 후기 신학에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인간은 하나님의 계시에 직면하여 책임적인 자유 속에서 응답해야 한다고 말한다.

 

5. 바르트는 기독교 계시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 자체라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존재와  행동이 곧 계시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유일하게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르트는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인식하며 그리스도 아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바르트는 그의 초기 신학에서 하나님의 초월성과 타자성을 너무 강조함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의 분리 및 간격을 크게 만들었는데 이것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발로 인한 것이었다. 자유주의 신학에서 신학은 인간학이 되고 종교가 되고 인본주의적이 되었기 때문에 바르트는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로, 인간을 인간의 자리로 이동시키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바르트는 자신의  후기 신학에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인간성, 인간을 향하시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관심을 돌렸다. 특히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된 말씀(설교, 케리그마), 기록된 말씀(성경) 그리고 계시된 말씀(예수 그리스도)과 같은 하나님 말씀의 3중성을 강조했다. 개혁주의 전통은 성경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으로 보지만 바르트는 성경은 계시에 대한 인간적 증언이지 계시 자체가 아니라 계시의 가능성으로 본다. 바르트는 계시 자체(예수 그리스도)와 계시에 대한 가능성으로서 증언(성경)을 분리한다. 그래서 바르트는 성경이 계시 사건에 대한 증언으로서 권위를 갖는 것이지 계시 자체로서 권위를 갖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6. 바르트는 선택론을 복음의 총화라고  규정하지만 칼빈의 이중예정은 비판한다. 그는 하나님의 예정이란 그리스도 안에서의 예정이므로 선택과 유기는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다고 말한다. 전통적인 예정론이 선택과 유기를 인간론적 차원에서 이해한 것과 달리 바르크는 예정론을 기독론적으로 설명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예정하시는 하나님이면서 예정된 인간이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는 예정의 주체도 되고 예정의 대상도 된다. 그래서 바르트는 선택과 유기가 한 분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일어난다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은 선택받았으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버림받은 자들의 운명도 되었다. 그러나 바르트는 보편선택론이 초래할 만인 구원론의 위험성 때문에 선택의 현실과 효력을 구분한다. 그래서 바르트는 하나님의 선택을 하나님나라 확장의 선교적 효력으로 보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현실로 보지는 않는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선택은 고정된 현실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개방되고 확장되어야 할 그리스도 안의 효력이라는 것이다.

 

7. 바르트는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를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영원전 부터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맺으신 삼위 하나님 간의 계약에 의한 것으로 본다. 즉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는 인간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원초적인 하나님의 의지의 성취로서 영원한 하나님의 결의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전통적인 화해론은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가 그리스도를 믿는 개인의 응답에 달려있다고 보는 주관적 화해론이다. 그러나 바르트는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유일회적인 사건으로 객관적으로 일어났다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가 인간의 신앙에 관계없이 이이 객관적으로 일어났다고 보는 객관적 화해론이다. 바르트의 객관적 화해론은 인간의 주관적 신앙에 근거를 두지 않고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화해는 하나님의 주권적 행동으로서 회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의 성취이고, 계약은 화해의 전제가 된다고 말한다. 바르트는 이 객관적 화해 사건만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역사며 인간 실존의 가장 내적인 역사라고 강조한다. 결국 하나님은 인간의 주관적 신앙 이전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세계와 모든 인간과 화해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르트는 객관적으로 일어난 화해사건이 실제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화해사건은 칭의와 성화라는 구원의 주관적 적용과정에서 성령에 의해 믿음으로 인식되고 고백될 때 일어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