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복음과 율법의 행위
2014-10-01 11:16:51
바울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율법에 대한 이해이다. 갈라디아서 2장 11-21에서 바울은 율법의 행위에 대해서 언급한다. 율법의 행위란 율법을 지키는 행위란 의미이다. 구약성경이나 중간기 유대문서를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지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E.P.Sanders는 유대교는 율법 종교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유대교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은혜로 되는 것이지 율법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며 율법은 언약 백성이 된 다음에 언약 백성으로 살아가는 규칙이라고 말하면서 유대교는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렇다면 바울이 반대한 율법의 행위란 무엇인가? James Dunn은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의 행위란 말로 비판한 것은 1세기 당시 유대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외적인 표지로서의 율법인 할례, 인식일, 음식법, 다시 말하면 도덕적 행위로서의 율법이 아니라 율법의 사회학적 기능을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바울이 말하는 논점은 어떻게 구원을 받느냐가 아니라 누가 하나님의 백성인가하는 점이다. 그래서 톰 라이트는 칭의론을 구원론이 아니라 교회론이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바울에 대한 새관점이다.
전통적 관점으로 갈라디아서 2장 11-21을 해석해 보면 문맥이 전혀 맞지 않는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도덕적 행위로서의 율법을 지키려고 하였다면 바울이 그렇게 반대했을리가 없다. 바울이 갈라디아 5:2에는 할례를, 갈4:10에서는 절기를, 다시 갈라디아 6:13절에서는 할례를 그리고 2장의 안디옥 사건에서는 음식법을 거론하는데 이것을 보면 바울이 율법의 행위라는 말로 반대한 것은 제임스 던의 말대로 할례, 절기, 음식법같은 율법의 사회적 기능이었을 것이다. 2장 15절(우리가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의 문맥을 보아도 바울이 말한 율법의 행위란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는 표지라고 보아야 한다. 6장 13절을 보면 선동자들은 할례는 강조하나 정작 도덕적 율법은 안 지키는 자라고 비판한다. 5장 2절에서 할례를 반대하면서 5장 3절에서는 할례 받는 의미가 무언지를 강조하는 걸 보면 도덕적 율법은 무시하면서 외적 표지만 강조하는 상황인 것 같다. 분명 이 상황은 옛 관점처럼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함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위선의 상황이다. 바울은 1장 6절에서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것이라고 정죄하고 있다. 결국 바울은 행위 구원론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배타적인 선민 의식을 비판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갈라디아서에서 믿음-행위의 반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로마서는 어떠한가? 로마서 1장은 이방인에 대한 정죄가 나타나지만 정작 바울이 말하려는 것은 2장에서 말하는 유대인에 대한 정죄이다. 이방인을 죄인이라고 판단하는 유대인이 이방인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도 결국 유대인의 위선을 고발하려는 것이다. 2장 25절에서는 율법을 행하지 않는다면 할례받은 유대인도 이방인과 다를바 없다고 말한다. 29절에서는 유대인이라는 외적 신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 곧 순종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순종이 없는 할례는 껍데기라는 말이다. 3장 20절에서는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여기서 "그러므로"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은 어떤 상황인가? 그것은 율법은 안지키면서 유대인이라는 외적 신분을 자랑하는 위선적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20절의 율법의 행위란 유대인이라는 외적 자랑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22절에서 차별이 없다는 것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를 게 없이 모두 믿음으로 의를 얻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29절은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고 결론을 내린다. 결국 바울의 강조점은 하나님은 유대인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도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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