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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나라의 복음(The Gospel of the Kingdom)- 조지 엘든 래드

하나님나라의 복음(The Gospel of the Kingdom)- 조지 엘든 래드

2014-01-06 15:23:32


1장 하나님나라란 무엇인가?

 

하나님나라라는 주제만큼 성경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도 그렇게 극단적으로 상이한 해석들이 나타나는 주제도 없다.

 

어거스틴 이래로 하나님나라를 교회와 동일시해왔고 많은 개신교 신학자들이 하나님나라를 가시적인 교회속에 구체화되는 참된 교회와 동일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성경적 근거가 거의 없다.

 

나라를 뜻하는 히브리어 말쿳과 신약의 헬라어 바실레이아의 주된 의미는 왕이 행사하는 계급, 권위, 주권이다. 나라란 무엇보다도 다스리는 권세요 왕의 주권이다. 하나님의 나라란 그의 왕권이요 그의 통치요 그의 권위이다. 일단 이 사실을 인정하면 나라가 영역이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이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 생각할 점= 교회를 하나님나라와 동일시하지 않는 것은 옳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나라라는 문자적 의미를 가지고 하나님의 다스림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은 너무 단순하지 않은가?  다스림이 가능하려면 다스림의 대상인 백성 그리고 그 백성이 거주하고 활동하는 영역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나라 사상은 신구약 성경 전체의 흐르는 흐름을 가지고 해석해야 한다.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이 이루시는 나라이지만 하나님이 독자적으로 이루시지 않고 항상 그 나라의 백성의 순종을 통하여 이루신다는 것이 성경에 면면히 흐르는 하나님나라 사상이다. 그럼로 우리는 하나님나라를 생각할 때 반드시 하나님의 다스림이 그 백성의 역사적 순종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장 하나님나라의 미래성

 

하나님의 다스림은 미래와 현재 모두에서 드러난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의 실현이며 또한 그로 인하여 수반되는 축복들을 누리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강림은 성육신과 재림으로 두 차례인데 하나님나라가 드러나는 것도 마찬가지로 두 차례에 걸쳐서 이루어진다. 한번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이고 그 다음은 그리스도의  재림때이다.

 

하나님의 구속적인 목적이 이루어지는 과정에는 두 시대가 있는데 보통 그것을 가리켜서 이 시대(this Age)와 다가올 시대(The Age to come)로 부른다. 두가지 세상이 아니라 두 가지 시대인 것이다. 그런데 이 두시대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죽은 자들의 부활을 기점으로 서로 분리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다가올 시대에 속하며 이 시대와 날카로운 대립상태에 있다.

 

그런데 다가올 시대에는 두가지 단계가 있다. 그리스도의 파루시아(계19:11-16)와 다가올 시대(계21:1 이하) 이전에 성도들이 일어나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동안 왕노릇하는 중간기가 있다.(계20:1-6)

 

교회시대( 이 시대)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가리워 있는 기간이다 그러나 다가올 시대는 그 영광이 완전히 드러난다. 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영광이 드러나는 시기인 것이다. 다가올 시대를 역사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천년왕국은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의 승리의 기간이라 할 것이다.

 

고린도전서 15:20-28절이나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나라가를 이루는데 두가지 종말론적 단계기 있음을 시사한다. 이 시대에서 다가올 시대로 전환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아라는 한 사건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게시록 20장에 보면 죽은 자의 부활과 사단의 멸망에 각각 두가지 단계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천년왕국 시초에 한번의 부활이 있고(계20:4-5절) 그 마지막에 두번째 부활이 있다.(계20:12-13절) 

또한 사단을 정복하는데도 두가지 단계가 있다. 천년왕국의 시초에 사단은 무저갱에 천년동안  갇혀있게 된다(계20:2-3절) 그러나 천년왕국 마지막에 가서 그는 풀려나서 활동을 재개하게 된다.

 

( 생각할 점- 하나님나라의 실체를 미래성으로 보고 미래성에 방점을 둔 것은 하나님나라의 역사성을 약화시킨다. 성경에 흐르는 하나님나라의 사상은 철저히 역사적이며 성자와 성령은 역사 가운데  들어오시어 역사속에서 일하시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된다. 저자는 역사적 전천년설을 강조하면서 하나님나라의 본격적 역사를 천년왕국으로 부터 시작된다고 봄으로써 그리스도 재림이전의 하나님나라의 역사성을 약화시키는 것 같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의 두 단계로 온다면 초림과 재림의 관계성은 무엇인지? 왜 두 단계로 오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사실 재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초림과 부활의 사건이 아닐까? 왜냐하면 재림은 이 두 사건의 결과로서 일어날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재림보다는 초림과 부활이야 말로 역사의 두 시대를 구분하는 사건이 아닐까?  저자는 너무 하나님나라의 미래성을 강조하면서 현재성을 소홀히 하는 것 같다.)

 

 

3장 하나님나라의 현재성

 

다가올 시대는 여전히 미래에 속하여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시대의 능력을 맛볼수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 미래에 속한 것이 현재가 되었다. 다가올 시대의 능력이 이 시대를 뚫고 들어온 것이다. 우리는 다가올 시대의 능력을 완전히 누리지는 못하지만 이미 맛보고 있는 것이다.

 

이 시대가 진행하는 동안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새로운 능력을 체험하도록 하셨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분별하도록 하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다가올 시대가 두 단계로 오는 것 처럼 이 시대에도 두 단계가 있다. ( 이 시대를 그리스도의 부활이전과 이후로 구분하여 이후에는 다가올 시대의 능력이 침투된 시대로 본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의 마지막 원수인 사망을 최종적으로 멸하심으로써 그의 통치의 능력을 드러내실 것이다. 그런데 사망을 정복하는 승리의 역사에 세가지 단계가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활 그 다음에 첫번째 부활( 그리스도인 신자들만의 부활)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번째 부활( 모든 죽은 자의 부활)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정말로 전율을 금할수 없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즉 그리스도의 부활이 미지막 부활의 시작이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다른 것과 동떨어진 그런 독자적인 사건이 아니라 역사의 한가운데 심겨진 종말론적 사건이다. 이것은 부활이 이미 시작되었으며 그런 점에서 하늘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세 단계의 부활을 통하여 사망을 정복하는 일에서 하나님나라가 삼중적으로 드러난다.

 

이렇게 사망에 대한 정복은 세단계로 이루어지는데 그 첫단계가 이미 성취되었고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역사속에서 이미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단의 패배에도 세단계가 있다. 천년왕국의 마지막 때에 불못에 던지우는 것과 천년왕국의 시초에 무저갱에 가두는 것 그리고 십자가에서 최초로 패배한 것이 그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그 원수들을 정복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정복은 세가지 단계로 성취되며 그 첫번째 승리는 이미 일어났다. 우리는 이미 사단의 일차적 패배로 인한 축복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완성되기 위하여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생각할점 : 하나님나라의 미래가 현재를 뚫고 들어왔다는 표현은 하나님나라의 실체를 미래로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하나님나라의 현재성은 미래라는 실체의 그림자일 뿐이다. 이 말은 하나님나라는 이 시대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비관론을 전제한다. 물론 저저는 하나님나라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역사 가운데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 범주는 영적인 영역에 국한시킴으로 하나님나라의 역사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구속의 역사가 완성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이미 이루어진 구속 사건이 재림으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하나님나라의 현재성은 미래성의 반영이나 그림자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나라의 현재성은 미래를 향하여 진행하고 있는 실체라고 보아야 한다. 하나님나라의 현재성이 실체가 아니라면 미래성도 실체가 아닌 것이다.

특별히 저자가 하나님나라의 현재성을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찾으면서 부활이후에 임하신 성령의 역사이 대하여 언급하지 않는 점 역시 하나님나라의 현재적 실제에 대한 취약한 인식을 보여준다.

 

 

4장 하나님나라의 비밀

 

성경에서 말하는 비밀이란 감추었다가 이제는 겉으로 드러난 그 어떤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것인 하나님이 영세전 부터 계획해 놓으시고 사람들에게 감추어 오신 하나님의 목적이다.

과연 하나님나라가 여기에 임하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 나라에 대한 새로운 계시가 있다. 그 나라는 인간의 주권을 멸하는 것이 아니라  사단의 주권을 공격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외형적인 정치적 질서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질서에 대해서와 사람들 삶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비밀, 곧 새로운 계시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여 사람들 가운데 역사하고 있으나 사람들이 전혀 기대하지 못하던 방식으로 역사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나라는 받아들일 수도 거부할 수도 있는 하나의 선물이다. 그나라는 지금 여기서 권능보다는 권유(persuasion)로 역사한다. 하나님나라가 여기에 임하여 있으나 그 나라를 거부할수도 있다는 것이 바로 그 나라의 비밀인 것이다. 언제가는 하나님이 그 놀라운 권능으로 이 땅에서 죄와 악을 완전히 제거하실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사람들 가운데 지금 역사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 나라를 강제로 받아들이게 하지 않으신다. 사람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의지로 굴복함으로 그 나라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의 기적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행동이다. 그것은 초자연적이다.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도 없고 일으켜 놓을 수 도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은 그 나라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맡기셨다. 그 나라의 복된 소식을 전파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나라를 이루어가시는 것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다

 

 

(생각할 점 = 저자는 하나님나라의 비밀은 신약시대에 새롭게 나타난 계시라고 하면서 그것은 외적이 아닌 영적 하나님나라 그리고 강제적이 이닌 자발적 선택을 요구하는 나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나라는 구약이나 신악이나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그것은 영적이며 동시에 외적이다. 영적와 외적을 구분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역사성을 약화시키며 이원론적 시각을 만들 수 있다. 그 다음에 하나님나라는 인간의 자발적 선택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통하여 들어가는 것이 개혁주의의 사상이다.

하나님 나라를 실제로 이루어 가시고 하나님이 행하신다는 것이 교화가 할 일은 복음전파 뿐이라고 하는 것은 복음전파와 하나님나라와의 관계를 철저히 규명하지 않는 일종의 자동주의적 접근이다.

 

 

5장 하나님나라의 생명

 

니고데모 이야기는 사람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생명속에 들어가야 하며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구절은 하나님나라를 영생과 관련지어 준다. 영생과 하나님나라는 분리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그 생명은 바로 하나님나라의 생명인 것이다.

 

영생은 근본적으로 다가올 시대에 속하여 있다. 그러나 영생은 또한 현재의 악한 시대속으로 들어와 있어 죽음과 부패의 한가운데서 사람들이 영생을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거듭남을 통해서 이러한 생명을 경험하는데로 들어간다.

 

영생이란 무엇인가?  영생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의미한다.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이것이 바로 영생이다.  영생은 하나님의 영의 생명이 우리 속에 거하신다는 사실이다.  성령을 현재에 소유하고 있는 것은 다가올 시대의 영생에 대한 보증이다. 이것이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이다. 이것은 본격적인 수확이 아니라 수확의 시작이다. 그것은 단순한 약속 그 이상으로 실질적인 경험이며 현실적인 소유이다.

천국 그 자체의 생명이 지금 우리 가운데 있다는 사실은 감격스러운 일이다. 

 

하나님나라의 미래를 바라만 보고 있으면 안된다. 미래가 이미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다가올 시대가 이미 이 시대속에 들어와 있으며 그 시대에 속한 영생이 오늘 임하여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생의 의미이고 구원의 의미이다. 우리는 매일 현재의 악한 시대에 살면서 천국의 생명가운데 사는 것을 뜻한다. 이는 이 생명을 나눈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예배하고 교제하고 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 생각할 점- 하나님나라의 실체를 영생으로 보고 거듭남으로 하나님나라의 생명을 경험한다는 언급은 정확하다. 그리고 성령의 임재가 영생에 대한 보증이며 실제라는 인식은 전적으로 옳다. 그런데 그 생명의 드러남을 교회내적 활동에 국한시키는 것은 여전히 하나님나라의 생명의 발현을 제한한다는 느낌을 준다.

 

 

6장 하나님의 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는 하나님이 오셔서 다스리실 때에 우리에게  부여해주시는 하나님나라의 의이다.

하나님나라가 요구하는 의란 외형적인 죄의 행동만이 아니라 마음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의는 우리가 무슨 행동을 하는 것보다 어떤 사람인가를 더욱 중시한다. 그런 마음의 의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나라의 의는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속에서 다스리고 계시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다가오는 시대에 우리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려면 이 시대에 하나님이 우리의 삶속에서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나라가 요구하는 의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다. 하나님이 이 의를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죄인일 수 밖에 없다. 순결하게 될 수 있는 유일한 삶은 하나님나라의  능려과 그의 다스리심을 아는 삶이다.

 

하나님나라가 요구하는 의는 하나님나라가 주셔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은혜로 주어지거나 아니라면 내가 쫒겨난 상태에 있거나 둘중 하나이다.

내가 하나님나라의 생명을 몸소 경험할 때에야 비로서 내가 그 생명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산상수훈에서 요구하는 의는 하나님의 통치를  그의 삶 가운데 체험한 사람에게 나오는 의다.

 

예수님의 제자는 그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다스리심을 체험할 때 그 의의 표준에 이르게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있는 그것을 체험하도록 힘써야 한다.  이 체험의 시작은 중생에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복종할 때에 중생의 이적이 그 마음속에 일어난다. 성령께서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시는 것이다.  중생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로서 이 악한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의 의를 진정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체험하게 된다. 하나님나라의 의는 하나님나라의 생명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생명이 다가올 시대에 속하여 있지만  이 시대에도 축복이 되었듯이 하나님나라의 의도 다가올 시대에 속하여 있지만 이시대에도 그 의가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하여 그 나라의 자녀들에게 부여되고 있는 것이다.

 

 

( 생각할점- 하나님의 통치로 하나님나라의 의가 부여된다는 말은 기본적으로 옳지만 거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의 순종을 통해서라는 말이 덧붙여지지 않으면 일종의 자동주의 내지는 형식주의의 위험이 있다. 하나님나라의 의가 하나님나라 생명의 발현이라는 진술은 훌륭한 통찰이다. 그러나 생명이 발현되기 위하여 생명을 받은 자들의 자발적 능동적 반응으로서의 순종의 중요성도 강조되어야 한다. 생명이 주어진다하더라라고 그 생명이 바르고 풍성하게 드러나기 위하여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이해와 순종이 필요하며 특별히 성령의 인도와 역사가 강조되어야 한다. 

 

 

7장 하나님나라의 요구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드러나게 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나라가 외적인 영광이 없이 이미 역사속으로 들어와 있다. 권능과 영광 가운데 임하게 될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비밀한 가운데 감추어진 형태로 임하여서 사람들 가운데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것을 경험하게 되는가이다. 사람이 어떻게 그 나라의 생명과 의를 얻게되는가?   하나님나라는 한가지 근본적인 것을 요구하는데 그것은 우리의 의지적 결단이다. 이 시대의 역사속으로 들어온 하나님나라는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한다. 예수님의 메시지는 화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음이라이다. 회개는 돌아서는 것, 인생의 진로와 행동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하나님나라를 향하여 결단하는 것이다.  회개의 본질은 현재의 삶의 질과 미래의 운명을 결정하는 하나의 결단에 있다. 

 

 하나님나라가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사람이 의지로 응답하는 것이다. 하나님나라는 오직 한가지 회개를 요구한다. 돌아와서 하나님나라를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하나님나라는 즉각적이고 긴급하며 급진적인 결단을 요구한다. 그 나라의 생명은 응답을 요구하며 급진적인 결단과 열광적인 영접을 요구한다. 유명무실한( nominalism) 이야말로 현대 서구기독교의 저주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나라는 영원한 결단을 요구한다 현재의 하나님나라를 받아들이는 결단을 내리든 거부하는 결단을 내리든 그것은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우리가 할 일은 한가지 뿐이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 회개하라 돌아서서 복된 소식을 받아들이라 그 다스림에 굴복하라 이것이 하나님나라의 요구이다. 

 

 

( 생각할 점- 사람들이 현재적으로 임한 하나님나라를 경험하는 것 즉  그 나라의 생명과 의를 얻게 되는 것은 중생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저자는 이미 언급하였는데 그것이사람의 의지적 결단이라고 함으로써 사람의 중생을 성령의 단독 사역이 아니라 사람의 결단에 따른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이미 생명을 받은 자가 하나님나라를 향하여 결단하는 것은  가능하고 필요한 일이지만 생명을 받는 일이 사람의 결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물론 유명무실이야 말로 서구 기독교의 저주일 것이지만 그 유명무실이 결단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회개에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죄의 확신과 구원의 확신을 말하지 않고 의지적 결단으로 표현하는 것은 문제점이다.)

 

 

8장 하나님나라, 이스라엘 그리고 교회

 

하나님나라와 이스라엘 그리고 교회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구약에서 언약의 조건들은 주로 민족으로서 이스라엘 전체와 관련된다. 그러나 새 시대의 영적 축복들은 민족이 아니라 개인을 근거로 베풀어진다.

새언약의 조건들은 오로지 개인의 인격적인 결단과 믿음에 관계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스라엘에게 제시하셨다는 것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거부함으로써 그들이 것이 되어야 했던 그 나라의 축복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주어지게 된다.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스라엘을 통하여 세상속에 활동하지 않고 교회를 통하여 역사한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에게 맡겨졌던 지식의 열쇠가 사도들과 교회에 맡겨진 것이다.

 

하나님은 이제 혈육을 좇는 민족을 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는 개인의 구원얻는 믿음을 근거로하여 교회를 세우시는 것이다.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의 관계는 분명히 정리되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속적인 활동과 다스림으로서의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를 창조했고 세상속에서 교회를 통하여 역사한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받았고 그 나라의 복음을 이 세상에 전하는 일에 헌신하는 예수의 제자들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나라가 홀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나는 하나님의 다스림에  자신을 드린 구속받은 사람들에게 맡겨져서 그들을 통하여 역사하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교회를 하나님나라와 동일시하는 예도 있는데 계시록에서 이십사 장로들의 노래가 그렇다(계5:9-10)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인 것은 다만 교회가 그리스도의 다스림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이 구절에거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영역이 아니라 그 다스림 자체이며 그 다스림에 굴복하는 자들이 그 다스림에 함께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를 창조하며 교회를 통하여 활동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로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가 없다 다만 그 나라를 선포하며 전파할 수 있을 뿐이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을 통하여 나타났던 하나님의 나라는 이제 교회를통하여 세상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은 오순절에 탄생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란 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된 사람들로 구성되는데 이 성령 세례의 역사가 오순절에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와 이스라엘에 대하여 논할 때 우리는 오직 한 하나님의 백성만을 이야기 해야 한다.  하나님나라의 역사를 이 시대에 이루는 하나님나라 백성은 주로 이방인들로 이루어진 교회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완성될 하나님나라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에는 이스라엘이 포함된다.( 롬11:12) 하나의 나라가 하나의 백성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요구에 굴복하여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구성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 , 곧 교회를 통해서 이 세상에 역사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의 사역을 통하여 사단의 영역을 침범하여 사람들을 흑암의 권세에서 구원해 낸다. 하나님나라와 흑암의 권세와의 싸움은 교회가 하나님나라의 복된 소식을 이 땅에 전하는 동안 계속된다. 교회는 이 투쟁의 도구가 된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서 교회의 삶속에 갈등이 본질적 요소로 자리할 수 밖에 없다.

 

( 생각할 점-하나님은 이제 혈육을 좇는 민족을 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는 개인의 구원얻는 믿음을 근거로하여 교회를 세우시는 것이라는 진술은 자자의 교회관이 개인주의적임을 보여준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게는 구약이나 신약이나 공히 개인적 관계가 아니라 공동체적 차원이다. 구약은 말할 것도 없고 신약도 개인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개인은 그 공동체에 편입되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를 머리로한 몸의 지체라고 말한 것이다. 또한 저자는  교회는 하나님나라가 아니고 하나님나라가 교회를 창조하고 교회를 통하여 활동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니까 교회를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존재하며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교회의 역할을 하나님나라 건설이 아닌 복음전파에만 국한 시킴으로써 교회와 하나님나라의 관계를 약화시키며 복음전파와 하나님나라와의 관계를 탈역사화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의 투쟁도 영적 투쟁의 국한시킴으로써 하나님나라의 총제성과 역사성을 간과하고 있다.

 

 

9장 하나님나라는 언제 오는가?

 

마태복음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This gospel of the kingdom shall be preached in all the world for a witness unto all nations; and then shall the end come

 

이 구절은 이 장의 주제를 드러내 준다.

그리스도의 지상사역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면 과연 이 이 축복들을 누리게 된 결과로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실상 하나님의 나라는 이 악한 시대속에 들어왔고 사단은 이미 패배하였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안에서 교회를 창조하였고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를 통하여 이 세상에서 역사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서 확장시키는 하나님의 목적들을 성취해 가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의 능력을 통하여 이 세상에 역사한다.

 

복음이란 하나님나라의 복음 곧 하나님나라에 대한 증거이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은 구원의 메시지와 동일하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망과 부활로 사망을 이기셨다는 선언이다. 우리는 이미 얻어진 승리를 선포하여야 한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과 장차 하실 일을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원수들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승리를 거두셨다는 복된 소식은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우리 주님의 승천과 그의 영광중의 재림 사이의 역사의 궁극적인 의미는 복음이 세상에 전파되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이 구속받은 죄인들인 우리에게 역사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행해가는 책임을 맡기신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그것을 행하지 않으면 그 일은 이루어 지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복된 소식이 온 세상에 증거되어야만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다. 이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이 교회에 맡겨진 것이다. 역사의 의미와 운명이 나의 손에 있는 것이다.

교회가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그 사명을 마칠 때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 그리스도께서 아직 오시지 않은 이유는 오리가 그 사명을 아직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명은 세상을 구원하는 일이 아니다. 이 시대를 변혁하라고 요구하시지 않는다

교회의 사명은 복음전파이고 이 사명이 완수되면 종말이 온다.

우리는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기다릴 뿐  아니라 그 날의 임함을 속히  앞당겨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나라의 복음의 사명이요 우리의 사명인 것이다.

 

(생각할 점- 저자는 하나님나라는 종말론적으로 온다고 말함으로써 하나님나라의 실체를 미래성에 두는 저자의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미 온 하나님나라를 어떻게 누릴 것인가보다는 미래에 올 하나님나라를 기다리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당기려면 그리스도가 재림하셔야 하는데 그러러면 복음 전파가 속히 온 땅에 이루어지도록 교회가 힘써야 한다고 말하면서 하나님나라의 현재성을 복음 전파에 국한시키고 있다. 그는 하나님나라가 교회를 통하여 역사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을 영적인 측면에 국한시키고 교회의 역할을 복음전파에만 제한시키고 시대를 변혁시키는 일은 교회에 맡겨진 일이 아니라고 강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