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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에베소서

에베소서 1장 하나님의 창조경륜

에베소서 1장 하나님의 창조경륜

Tolle Rege/에베소서

2013-05-05 22:54:54


    이 편지의 독자들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이다. 에베소는 바울이 3년동안 심혈을 기울여 복음을 전파했던 곳이다. 에베소 지방은 바울이 소아시아 지역의 복음전도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다. 에베소에서 바울은 처음에는 회당에서 하나님나라에 대하여 강론하였으나 사람들이 순종하지 않고 비방하므로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을 하되 두해 동안이나 그렇게 하므로 소아시아 다른 지역에 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들었다고 한다. 에베소서를 쓴 시기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있던 주후 60년 경으로 추정된다. 편지의 서두에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탁월한 정의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이라는 정의이다. 이 표현은 매우 언약적인 표현이다. 먼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말은 그리스도 예수와의 특별한 관계를 가리킬 것이데 이는 아마도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은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신실한 자들란 말은 바로 이 언약에 충성된 자들을 뜻한 것이다. 결국 바울은 성도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충성된 자들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이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은혜와 평강을 복을 기원하고 있다. 은혜와 평강, 이것 역시 언약적인 표현으로서 언약에 신실한 자들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일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소개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관념 가운데 존재하는 신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서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신 분이시다. 이것은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분이시며 우리가 가까이 갈 수 없는 분이시라는 의미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이시고 하나님은 바로 우리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신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란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하시는 것이다. 즉 우리가 하나님과 어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맺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다. 그런데 이 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마암아 주시는 복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되신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에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신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 신령한 복은 이미 창세전 부터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이다. 인간이 범죄하여 타락하기 전부터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 복을 준비하여 두신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안에서 주어질 이 복은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창세후에 마련하신 구원의 계획이 아니라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이미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중대한 계시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경륜이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에 국한되는 분이 아니라 인간의 범죄이전 아니 창세전 부터 하나님이 준비하신 하나님의 창조 경륜을 이루시는 분이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창조 경륜을 따라 이 세상에 오신 것이고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시려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마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것은 하나님의 창조 경륜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신 목적은 첫째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없이 없게 하시려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에게 거저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서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곧 죄의 용서함을 받은 것이다. 그러니까 구속 곧 죄의 용서를 받았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아들됨이 궁극적인 목적이고 구속은 그 수단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시어 하나님의 뜻의 비밀을 알게하셨다. 이 하나님의 뜻의 비밀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안에서 미리 세워놓으신 경륜인데 그것은 때가 되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가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바로 이 계획을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예정된 것이다. 이 부분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대한 매우 위대한 계시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로 통일되는 것인데 바로 이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속 곧 죄의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만물이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되는, 창조목적을 위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안의 소명의식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신자는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는 창조의 동역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부르심은 새삼스런 것이 아니라 이미 창조시에 아담에게 주어졌던 소명이었던 것이다. 신자들은 바로 이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 들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의 성령으로 이들을 인쳐 주셨는에 이 약속의 성령은 하나님의 소유된 자들을 구속하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될 때까지 그들이 받을 상속을 보증해 주신다.

 

  바울은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의 주 예수에 대한 믿음과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듣고 하나님 앞에 김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바울은 기도할 때 마다 이들을 기억하며 기도하였다. 이들을 위해 바울은 무엇보다도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실 것을 구하였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란 당연히 성령을 가리킬 것이다. 성령이 주시는 지혜와 계시가 없이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이 구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란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지를 아는 것이었다.

바로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이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이 앉히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신다. 그런데 만물의 주권자인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고 교회는 그의 몸이다. 그리스도와 신자들의 관계를 몸과 머리로 비유한 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한 연합을 의미할 것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다스림에 교회가 참여한다는 것을 계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충만함이라고 표현된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통치의 두가지 면을 계시하여 주는데 첫째는 그리스도의 통치는 만물을 충만케 하는 것이다. 이 말은 첫째는 그리스도의 통치가 만물이 창조의 목적을 따라 그 존재의 충만함을 드러내도록 하신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 그리스도의 통치는 교회를 통하여 충만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인 교회를 다스리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아 만물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는 만물을 직접 통치하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통하여 만물을 다스리시는 것이다. 이것은 원래 창조시에 인간을 만드실 때 부터 하나님이 작정하셨던 창조 경륜이었고 바로 그 창조 경륜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다.

 

 

추기 2014년 11월 19일

 

에베소서가 바울의 편지가 아니라는 신학자들이 있다. 에베소서는 긴 문장을 많이 나타나는데 바울의 문체와 다르다는 것이고 다른 편지와 달리 구원도 종말론적으로 보지 않고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등 신학적 입장도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추측은 본문에 명확하게 바울의 서신으로 기록된 것을 뒤집을만한 충분한 근거는 아닌 듯 하다.  에베소서는 다른 서신에 비해 지역적 색채가 나타나지 않고 여러 교회를 위한 회람용 편지인 듯 지역 교회보다는 보편교회와 우주적 교회를 가리키는 표현이 많다 그리고 에베소서에는 구원을 하나님의 섭리(경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바울의 원숙한 시상이 나타나 있다.

 

1장

 

  1장 1절에 "에베소에 있는" 이란 구절은 초기 사본에는 없다. 이것은 에베소서가 여러 교회를 위한 회람용 편지이므로 지역 공동체의 상황이 반영 안된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에베소서에는 "그리스도 안에서"란 말이 많이 나오는데 이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라는 의미일 것이다. 3절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복을 주셨다고 하고 이후 구절에게 신령한 복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창세전에 선택 혹은 기쁘신 뜻대로 예정이란 표현은 신령한 복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강조한다. 바울에게 예정론의 의도는 예정 자체보다는 예정의 목적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참고 로마서 8장 28-29절) 그러므로 예정은 단순히 미리 정한다는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꿈 혹은 계획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하나님의 꿈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성취되었고 그 꿈이 우리의 꿈이 되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선택의 목적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는 것이었다. 선택은 무조건적이지만 무목적적인 것은 아니다.  신령한 복의 실체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신령한 복이 은혜로 주어지지만 그런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다시금 강조한다. 이는 은혜는 반드시 합당한 반응과 결과를 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거저주시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이라 말로 반복되어 나타나는데 은혜는 바울서신에서 능력이란 말로 바꾸어 써도 의미에 아무 차이가 없다. 

 

 7절에서는 신령한 복을 다른 각도에서 설명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속량  곧 죄사함이라고 말한다. 9절에서는 하나님의 뜻의 큰 그림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되었음을 가리킨다. 즉 하나님의 때가 찬 경륜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체화된 것이다. 5절 기쁜신 뜻, 9절 그 뜻의 비밀, 경륜, 11절 그의 뜻의 결정.. 중요한 단어는 늘 반복되는데 여기서 창세전의 하나님의 뜻의 방향을 보여주고 그 뜻이 드디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고 우리 속에서 구현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의 성령이 주어졌고 이 성령은 우리가 장차 받을 기업의 보증이 되신다. 14절에서 얻으신 것을 속량한다함은 이미 소유한 것을 완전히 소유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17절 부터 바울이 기도가 나타나는데 여기서 지혜와 계시의 영은 성령일 수도 있고 우리의 영일 수도 있고 분명치 않다. 바울은 영이란 말을 할 때 성령과 인간의 영을 굳이 구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란 말은 몰랐다가 알게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보다 깊은 관계맺음 혹은 순종의 의미일 것이다. 19절에서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말하면서 이 능력이 바로 그리스도를 살리신 능력이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생명의 능력이라고 밝히고 있다.

 

  주목할 것은 그리스도를 만물의 주라고 하면서 동시에 만물위에 교회의 머리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교회가 만물위에 있으며 그리스도는 교회를 통해 만물의 주가 되신다는 의미이다. 그리스도의 통치의 핵심이 바로 교회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완성의 가장 중요한 도구는 교회이다. 그래서 23절은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교회가 경험하고 그 충만함을 교회가 드러내게 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