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장 사마리아 여자
Tolle Rege/요한복음
2012-12-15 17:58:30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하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에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천히 여기고 상종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사마리아를 지나가셨고 또 의도적으로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을 거신 것이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자가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자신에게 물을 달라 하냐고 반문한 것이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이 하나님의 선물이 무엇이고 예수님이 누구이신줄 알았다면 예수님에게 생수를 달라고 구하였을 것이라고 말하셨다. 이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선물을 주시는 자이시며 그 선물은 다름이 아닌 생수 곧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마리아 여자는 전혀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우물은 깊고 물 길을 그릇도 없는 당신이 어떻게 그 생수를 주겠느나고 반문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자신이 말한 생수란 사람이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물이며 마신 사람 안에서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과 같은 물이라고 설명하였다. 이 말을 듣고 사마리아 여자는 그런 신기한 물을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런 물이 있다면 목마르지도 않고 여기 물길러 올 필요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갑자기 여인의 남편을 불러오라고 명하신다. 예수님이 그 여인이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자기 남편이 아니라는 말을 하신 것으로 보아 그 여인은 지극히 문란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 같고 자기 동네에서도 멸시를 받는 처지에 있던 것 같다.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이런 여인에게 접근하신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선물이 유대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지극히 천한 자에게도 주어질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님이 뜻밖에 자기의 부끄러운 비밀을 지적하자 여자는 예수님을 선지자로 생각하면서 거북한 자기의 사생활 얘기 대신에 예배장소에 대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의 논쟁거리로 말꼬리를 돌린다. 그러자 예수님은 예배의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의 때가 이를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때가 오면 영과 진리로 참되게 하나님께 예배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바로 이렇게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이 말씀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하나님나라의 때가 가까이 왔음을 의미할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대해 여자는 구약에 약속된 메시아가 오시면 이 모든 것을 알려줄 것이라는 정곡을 찌른 대답을 하였다. 이에 예수님은 즉각적으로 여인에게 바로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밝히신다.
이 말을 들은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갔으며 자신의 비밀을 말한 그 사람이 메시아라고 선전하였다. 그 결과 그 동네중에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믿었고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졌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소외된 사마리아인들에게도 하나님나라를 전파히신 것이다. 음식을 권하는 제자들에게 나의 음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것은 예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내신 이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며 자신의 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내신 이의 일을 이루는 것이라고 하심으로써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이며 창조된 인간존재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선명하게 계시한 것이다. 이스라엘에 아직 추수의 때가 넉달이나 남았지만 예수님은 이미 추수할 때가 되었고 말씀하신다. 추수꾼도 준비되었고 추수할 열매는 바로 영생에 이르는 열매이다.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추수를 즐거워할 것이지만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는 말씀은 하나님나라의 역사적 성격이 어떠함을 보여준다. 예수님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천국말씀을 뿌리셨고 이제 제자들은 역사를 이어가면서 그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에서 이틀을 유하신 후 갈릴리로 가셨다. 유대인이 천히 여기는 사마리아인들은 오히려 예수가 메시아이심을 믿었지만 정작 유대인들 그리고 예수님의 고향인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이에 예수님은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친히 증언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던 갈릴리 가나에 이르셨는데 가버나움에서 왕의 신하의 아들이 병들어 거의 죽게되었다. 그래서 왕의 신하는 예수님에게 청하여 내려와 자기 아들을 고쳐달라고 간청하였다. 갈릴리에서 예수님은 가나에서 이적을 보이셨지만 갈리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였고 이제 또 죽게된 아들을 살려달라는 표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마리아에서는 아무 이적도 행하지 않으셨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을 듣고 그가 메사이이심을 믿었던 반면에 갈릴리 사람들은 이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예수님은 이것을 지적하여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것이다. 신하의 아들은 예수님의 말씀만으로 병이 낫게되었고 신하와 그 온 집안은 다 예수를 믿게 되었다. 여기서 말씀을 듣고 즉시 믿은 사마리아인들의 믿음과 표적과 기사를 보고 겨우 믿는 갈릴리 사람들의 불신앙이 대조된다.
[추기] 2019-11-06 17:31:06
요한복음 4장
예수가 유대를 떠나 다시 갈릴리로 가실 때 사마리아를 통과한 것은 단지 지리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2-3절) 더구나 유대인 남자인 예수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건넨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7-9절) 예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면서 만일 그 여인이 예수가 누군지 말았다면 거꾸로 예수에게 물을 달라고 했을 것이라는 수수께기 같은 말을 던진다. (10절) 여자는 예수의 이 말에 대단히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는데(11-12절) 그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예수가 자기가 주는 물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은 물,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라고 말하자 여자는 호기심을 보인다. 이 대목에서 니고데모의 대화와는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니고데모는 자신이 가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예수의 말을 믿지 못하고 의혹했지만 여인은 예수의 말에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이며 그런 물이 있다면 달라고 대답한 것이다. 사마리아 여자는 니고데모와 달리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없었고 그래서 예수의 말에 제대로 반응을 한 것 같다. 그런데 예수가 갑자기 남편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아마도 반응을 보인 여자로 하여금 예수에 대한 관심를 끌어올리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그래서 여자는 예수를 (신기한 능력을 가진) 선지자라고 말하며(19절) 유대인들과 사미리아인들간의 논쟁거리인 예배하는 장소에 대한 논쟁을 꺼내는데 이는 아마도 선지자라고 생각한 예수에게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간의 종교적 정통성 논란을 제기한 듯하다.(20절) 예수는 예배의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다.(24절) 결국 대화는 메시아애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고 예수는 여인에게 자신이 바로 메시아라고 명시적으로 알려준다. 니고데모에게 예수는 암호와 같은 말로 자신이 메시아임을 말했다면 이 여인에게는 매우 직설적으로 말한 것이다. 결국 여인은 예수를 메시아로 믿게 되었고 동네 사람들에게도 알리게 된다.(28-29절) 그리고 여자의 증언으로 말미암아 그 동네 중의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메시아로 믿었다.(39절) 특이한 것은 그들이 예수를 세상의 구주라고 부른 것인데 (42절) 이는 메시아가 유대인이나 사마리아인만의 메시아가 아니라 온 세상의 메시아라는 놀라운 고백으로 보인다. 니고데모 이야기와 사마리아 여인 이야기는 앞뒤로 배치되어 날카로운 대조를 보인다. 유대인의 선생인 니고데모는 예수가 누구신줄 알지 못했지만 정작 유대인이 이방인같이 멸시하고 상종하지 않는 사마리아인 그 가운데서도 무시받는 여자는 예수가 메시아이신줄 알았다. 빛이 어둠에 비추었을 때, 니고데모는 그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나아오지 않았지만 사마리아 여인은 빛을 깨닫고 빛으로 나왔을 뿐 아니라 빛을 증언하는 자가 된 것이다. 예수는 사마리아를 떠나 다시 갈릴리 가나로 오셨고 거기서 왕의 신하의 거의 죽게 된 아들을 고치신다. 요한은 이 일을 포도주 사건에 이어 두 번째 표적이라고 언급하는데(54절) 그것은 이 사건이 포도주 사건과 동일하게 하나님나라의 표적이란 사실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첫번째 표적인 포도주 사건이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메시아를 보여준다면 두번째 표적인 거의 죽게된 아들을 살린 사건 역시 거의 죽게된 상태에 빠진 이스라엘을 살려주는 메시아를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2장에서 4장은 한 단락을 이루며 하나의 수미상관 구조를 가진 두 표적을 통해 예수의 표적이 하나님나라 표적이며 그것은 곧 메시아 표적임을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수미상관 구조의 가운데에 서로 대조를 이루는 니고데모 이야기와 사마리아 여인 이야기가 놓여져 있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니고데모는 표적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예수가 메시아이심을 믿지 못하는 반면에 유대인들이 멸시하는 사마리아 여인은 표적을 보지 않고도 예수가 메시아이심을 믿었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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