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2장 정면 대결
마태복음 22장 정면 대결
Tolle Rege/마태복음
2012-06-25 00:20:19
21장에서 권위에 대한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하신 두가지 비유는 스스로 권위를 주장하는 그들의 실상이 어떤 것인가를 고발하는 비유였다. 그들은 아버지에게 가겠다고 말은 하였으나 실제는 가지않은 위선자들이며 결국 하나님께 불순종한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스스로 권위를 주장하는 것은 한마디로 정신없는 소리인 셈이다. 두번째 비유는 그들이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이며 심지어는 포도원 주인의 아들마저 죽인 극악무도한 자들이라는 것이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이 바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하신 말씀인 줄을 알고 예수를 잡고자 하였다. 이렇게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본격적으로 예루살렘의 종교권력자들과의 정면충돌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예수님의 이 두가지 비유가 단순히 대제사장들과 바라새인들을 고발하는 내용만은 아니고 보다 깊은 계시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번째 비유에서 나타난 둘째 아들에 비견하여 예수님은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고 둘째 비유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맺는 백성이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정작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자들이 따로 있다는 것을 강력히 암시하는 것이었다. 22장에 이어진 비유는 이점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임금이 청한 자들이 거절하고 오지않자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데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고 한 것은 하나님나라가 이스라엘에 국한되지 않고 이방인에게로 확장될 것을 계시하는 말씀인 것이다. 그러나 예복을 입지않고 들어온 자에 대한 심판이 언급되며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하신 것은 이방인에게 확장되는 하나님나라는 무차별적인 것이 아니라 선택적인 것을 보여준다.
이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로 대표되는 예루살렘의 종교권력자들은 적극적으로 예수님에게 반격을 시도하게 된다. 먼저 바리새인들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받치는 민감한 문제를 가지고 헤롯당원을 앞세우고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여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시도하였지만 그들은 상상치 못한 예수님의 대답에 대하여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게 된다. 이어지는 사두개인들의 공격은 부활에 대한 논쟁이었다. 사두개인들은 교묘한 이야기를 지어내어 부활이 없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그들이 얼마나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자들인가를 입증하셨다. 무리들은 듣고 그 가르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바라새인들의 공격이 이어지고 있는데 한 율법사는 율법중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크나는 질문으로 예수를 시험하려고 하였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어느 율법이 가장 크다고 대답하신 것이 아니라 구약의 모든 율법을 단 두마디로 요악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결국 율법에는 크고 작은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를 갈파하신 말씀인 것이다. 아마도 울법사인 바라새인은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예수님의 이 대답을 듣고 매우 놀랐을 것이다. 이어진 예수님의 질문,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라는 질문에 바라새인들은 다윗의 자손이라고 자신있게 대답하였지만 그렇다면 시편에서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는 예수님의 반문에 한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묻는 자도 없었다. 이것은 스스로 성경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들의 무지를 조롱하고 폭로한 사건이었다.
[추기] 2019-11-06 17:12:49
마태복음 22장
세번째 비유는 혼인잔치 비유다. 이 비유에서 예수의 권위는 왕으로, 그리고 예수에게 권위를 따지는 자들은 왕이 베푼 혼인잔치에 오기를 거절하고 대적하는 악한 백성들로 비유된다. 이 비유에서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나라의 좋은 소식을 자기고 온 이스라엘의 왕이심, 그리고 예수를 거부하는 자들이 얼마나 심각한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인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 비유의 결론은 청함을 받은 자는 많지만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는 것이다.(14절) 이것은 하나님의 초청에 대한 바르고 정당한 반응이 없이는 누구라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올 수 없다는 진리를 의미할 것이다. 권위를 묻는 자들에 대한 대답으로 주어진 예수의 세가지 비유는 결국 그들이 얼마나 악한 자들인가를 지적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비유를 들은 바리새인들 그리고 사두개인들의 반응은 오히려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문제로, 부활의 문제로, 그리고 계명의 문제로 예수를 넘어뜨리려고 하였다. 그들은 향한 예수의 마지막 질문은 다시 예수의 권위에 대한 문제로 돌아간다. 바리새인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만 생각했지 동시에 다윗의 주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예수의 질문에 능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 질문을 통해 예수는 그들이 가진 메시아관에 대해 도전하며 자신이 바로 다윗의 자손이면서 동시에 다윗의 주가 되시는 메시아이심을 암시하고 있다.
마태복음 23장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있다. 그러나 그들은 무거운 짐을 사람의 어깨에만 지우고 자신들은 한 손가락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 자들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위선자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자들을 향해 예수는 7번에 걸쳐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다. 예수는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했지만 결코 회개하지 않는 그들에게 이제 심판이 선포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눈 먼 인도자며(16절), 어리석은 맹인들이며(17절), 맹인된 인도자며(24절), 눈 먼 바리새인이며(26절), 뱀들과 독사의 새끼들이다(33절) 이들은 결단코 지옥의 판결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33절) 하나님은 마치 암탉이 그 새깨를 날개 아래 모으려는 것같이 안타까운마음으로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했지만 그들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37절) 그러므로 이제 그들의 집, 곧 성전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될 것이요(38절) 그들이 회개하기 까지는 주를 보지 못할 것이다.(3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