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장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마태복음 1장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Tolle Rege/마태복음
2012-04-22 17:48:32
신약성경의 첫번째 책인 마태복음이 예수그리스도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소개하며 시작하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신약과 구약의 관계가 어떠함을 보여주는 계시적 선포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신약은 구약의 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동시에 구약 역사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신 분이시며 그 약속을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과 역사 가운데 들어오셨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의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로서 오셨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하신 약속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를 아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특별히 마태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특정지은 것 그리고 그 계보를 말할 때도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그리고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기까지로 시대적 구분을 한 것을 보아도 이 복음서의 기자는 아브라함과 다윗을 구약 역사의 중심에 놓고 있음을 알수 있는데 그것은 그 인물때문이라기 보다는 그 인물을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언약역사 때문일 것이다. 특별히 천사를 통하여 주어진 두가지 이름인 예수와 임마누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것과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신다는 두가지 하나님의 사역이 동일한 것임을 계시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목적은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시려는 것인데 여기서 우리는 구원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알게된다.
이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서 주목되는 것은 거룩해야 할 계보에 라합과 룻이라는 이방여인이 있다는 것이며 또한 다말이나 우리야의 아내와 같은 비정상적인 출생의 역사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우리에게 두가지 중요한 계시를 던져준다고 볼 수 있는데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역이 이스라엘에 국한되지 않고 이방인을 포괄하는 온 세상으로 확대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인간 역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실패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인간 역사의 실패를 고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말하는 것 아닐까? 더우기 유다가 바벨론에게 포로로 잡혀간 이후로도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가 이어지는 것은 분명히 인가 역사의 실패를 넘어선 하나님의 언약적 열심을 보여준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복음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인간적 혈통을 따라서 설명해 나아가다가 16절에서갑자기 놀라운 반전을 일으키는데 그것은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고 말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적 혈통을 따라서 나신 것이 아님을 못박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복음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이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이면서 동시에 그 성취는 인간적 혈통의 계보를 통하지 않고 신적 능력으로 이루어졌음을 멋지게 서술한 것이다. 그래서 복음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하면서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고 하심이라고 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아브라함 언약과 다윗 언약의 성취일 뿐만 아니라 또한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의 성취임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신약의 첫번째 책인 마태복음은 신약이 구약 역사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나아가 구약 역사의 연장선에 있음을 우리에게 강력하게 가르치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신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시사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추기] 2012. 11. 20
마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약 역사의 성취로서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약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함의한다. 이스라엘의 역사가운데, 그 역사를 통하여 예수님이 등장하신 것은 구약 역사가 예수님의 등장을 위한 모판의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성취이며 완성이기 때문에 구약의 내용이 무엇인자를 잘 알지 못한다면 그 성취와 완성으로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 수 없을 것이다. 종교개혁의 역사는 구약적 맥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하나님나라 사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구약 역사는 하나님나라의 역사이므로 예수님은 비로 그 하나님나라의 성취와 완성을 목적으로 오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 첫 말씀이 하나님나라가 가까왔다고 선포하신 것이리라.
[추기] 2014. 4.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말하면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브라함과 다윗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은 아닐텐테 아브라함과 다윗을 조상으로 내새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그 후손에 관한 특별한 약속을 하셨는데 바로 예수 그리시도가 그 약속의 성취로 오신 분이심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특별히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서 세상에 오신 분이심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하신 약속은 무엇인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창세기 22장 18절에 나타난 바, 아브라함의 후손에 대한 약속이었으니 아브라함의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는다는 것이고 다윗에게 하신 약속은 삼하7장 22절에 나타난 바, 다윗의 씨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며 하나님은 그의 나라 왕위를 견고하게 영원히 견고하게 하신다는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 약속의 성취로 오신 분이시라는 것이 마태복음의 논지인 것이다.
이 계보에는 특이한 여인들이 등장한다. 마태가 여기서 굳이 여인들의 이름을 나열한 것은 특별한 의도가 있을 것이다. 이 여인들의 공통점은 이방 여인들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이방여인들이 들어갔다는 것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하나님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며 그러므로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의 구주가 되심을 의미한 것이 아닐까?
계보를 소개하면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멸망의 역사가 언급되고 있다. 이는 비록 이스라엘이 국가적으로는 멸망하였지만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루실 하나님의 역사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메시야의 약속은 결코 폐하여 지지 않고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이 마지막의 계보 소개는 특이히다. 야곱이 미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다고 말하고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낳았다고 말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법적이고 역사적인 수단일 뿐이며 그들이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 오신 분이시지만 인간의 혈통을 가진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 네 대요 다윗 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 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 한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 네 대러라" 이렇게 마태는 열 네대라는 구분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것을 구분하는 의도는 분명히 하나님 나라의 역사와 관련이 된 것 같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는 하나님나라 역사가 시작하여 절정에 이른 시대라면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는 시대는 하나님나라가 쇠퇴하여 가장 바닥에 처박힌 시대이다. 그렇다면 바벨론 포로이후 부터 그리스도까지의 시대란 하나님나라 역사가 바닥에서 일어나 다시 절정을 향하여 회복되는 시기임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되었음이 계시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성령의 능력으로 사람이 되신 것이다. 여기에는 삼위일체의 신비가 암시되고 있다. 성육신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시지만 그 일에는 하나님과 성령이 함께 계시며 일하고 계신 것이다. 성육신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이후의 모든 사역에 하나님과 성령이 함께 계시며 함께 일하심을 볼 수 있다. 창조든 구속이든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 삼위하나님이 일체로 계시며 일체로 일하심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할 때 항상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을 함께 묵상하여야 한다.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이 누구신가 계시되고 있다. 첫째 그의 이름은 예수라 칭하여지는데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자이란 의미이다. 둘째 그의 탄생은 하나님이 선지자로 하신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나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는 예언의 성취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 두가지 계시를 요약하면 예수는 자기 백성과 함께 계시면서 그들을 죄에서 구원하실 하나님이시란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예수님이 인간이 되신 신적 존재이심이 계시되고 있다.
[추기] 2019-11-06 17:01:38
마태복음 1장
마태복음은 왜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했을까? 아마도 당시에 유대 세계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은 곧 메시아를 가리키는 말로 당연히 이해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마태는 예수가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바로 그 메시아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마태가 제시하는 메시아 예수의 계보를 보면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그리고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까지, 그 다음에 바벨론 포로 이후 그리스도까지, 이렇게 계보를 3시대로 나누고 있다. 첫 번째 시대가 이스라엘의 시작으로부터 다윗이 왕으로 다스리던 이스라엘 역사의 절정기였다면 두 번째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가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쇠퇴기였다. 그렇다면 세 번째 시대는 어떠한가? 외적으로 보면 바벨론 포로기 이후 로마의 지배를 받는 예수 시대까지 이스라엘은 포로 시대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시대를 셋으로 구분하는 마태의 역사관은 달랐다. 그의 의도는 이스라엘 역사가 밑바닥에서 예수 메시아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다시 역사의 절정에 이르렀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시대 구분을 통해 마태는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 예수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셨으며 그리하여 이스라엘 역사는 다시 절정에 이르렀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비록 외적으로는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지만) 아마 여기까지는 유대인들도 크게 문제 삼을만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메시아 예수의 계보에서 언급되는 이방여인들의 이름은 아마도 유대인들을 불편하게 했을 것이며 급기야 16절에 이르러 마태가 메시아 예수가 요셉이 아니라 마리아에게서 낳았다고 한 말은 유대인들에게 폭탄과 같은 선언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말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 메시아를 근본도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처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예수를 낳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태는 시편 7장14절을 인용하여 이 모든 일이 구약의 선지자의 예언대로 성취된 것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이 지점에서 기독교의 메시아관은 유대교의 메시아관과 결별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마태는 예수를 메시아라고 소개하면서 유대인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메시아관을 주장한 것일까?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초기 교회가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아마도 당시의 유대교와 정면 충돌하는 이런 주장은 설명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