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8편 이스라엘아 들으라
시편 78편 이스라엘아 들으라
Tolle Rege/시편
2013-11-29 13:31:08
시인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 백성이여 내 율법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하였다. 그가 말하려는 것은 예로 부터 감추어져 있던 것인데 이스라엘이 모르던 것은 아니고 이미 들어서 아는 것이고 또 조상들이 전해준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감추어져 있다는 의미는 이스라엘이 모른다는 말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이미 듣고 알고 있지만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란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힌 사적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이며 후대에 전해져야 할 일이다.
여호와께서는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고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며 이것을 후대에 알리라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 그들의 조상들 곧 완고하고 패역하며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고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되지 못한 세대와 같이 되지 않게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후대들에게 전해져야 할 것은 여호와께서 조상들에게 세우신 증거나 정하신 법도인데 하나님이 조상들과 세우신 증거가 언약이라면 정하신 법도는 언약법으로서의 율법 혹은 계명일 것이다.
에브라임 자손은(북조 이스라엘을 의미)은 무기를 갖추고 활을 가졌지만 전쟁의 날에 물러갔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율법준행을 거절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언약을 지키는 것과 율법준행이 동격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본다. 언약이 없이는 율법도 없으며 율법이 없는 언약도 없는 것이다. 그들이 울법을 지키지 않은 것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과 그들에게 보이신 그의 기이한 일을 잊은 것이다. 그 기이한 일이란 무엇보다도 출액굽의 역사이며 광야에서 그들을 인도한 역사이다. 특별히 시인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신 사건을 회고하고 있는데 우리는 거기서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언약적 주고받음의 역사를 발견한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바로 이 언약적 주고받음의 역사였으며 하나님나라 역시 언약적 주고받음을 틍하여 진행되어 나아간다.
하나님은 애굽 땅 소안들에서 기이한 일을 조상들의 목전에서 행하셨으니 바다를 가르사 그들이 지나가게 하시고 낮에는 구름으로 밤에는 불빛으로 인도하시고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어 물을 마시게 하셨다. 그러나 조상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범죄하여 메마른 땅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다. 그들은 탐욕대로 음식을 구하여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듣고 진노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그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한 연고이다. 하나님의 언약적 행동에대해 이스라엘은 정당한 언약적 반응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언약적 자비를 베푸셨으니 하늘문을 여시고 그들에게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양식을 그들에게 주셨으며 동풍을 일게하시고 남풍을 인도하사 나는 새를 바다의 모래같이 내리셨다. 그러나 그들이 욕심을 버리지 아니하므로 그들을 죽이시며 엎드러뜨리셨다. 하나님이 언약적 자비를 베푸셨음에도 또 언약을 배반하므로 진노하셨으니 언약적 공의가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 역시 언약적 행동이며 그것은 이스라엘이 회개케 하려는 것이었다. 이러함에도 그들은 여전히 범죄하여 그의 기이한 일들을 믿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은 그들의 말들을 헛되이 보내게 하시며 그들의 햇수를 두려움로 보내게 하셨다. 그때에야 비로소 조상들은 하나님게 구하며 돌이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고 하나님이 그들의 반석이시며 지존하신 하나님이 그들의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입으로 아첨하고 혀로 거짓을 말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그들의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하지 않았다. 그들의 회개가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 형식적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시고 죄악을 덮어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진노를 여러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내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없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반항하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슬프게 하였으며 돌이켜 거듭거듭 하나님을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노엽게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의 손을 기억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그들을 구원하신 날도 기억하지 않았다. 기이한 이적으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시되 자기 백성을 양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떼같이 지도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거룩한 곳 곧 그의 오른손으로 만드신 산(시내산)으로 인도하시고 가나안의 족속들을 쫒아내시며 약속의 땅을 분배하시어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장막에 살게 하셨다. 하나님이 언약적 자비를 베푸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고 반항하여 그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들의 조상들 같이 배반하고 거짓을 행하며 속이는 활같이 빗나가서 산당들로 여호와의 노여움을 일으키며 조각한 우상들로 그를 진노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시며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사람 가운데 세우신 성막 곧 실로의 장막을 떠나시고 그의 능력을 포로에게 넘겨주시며 그의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그의 백성을 칼에 넘기셨으며 그들의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 지고 그들의 과부들은 애곡도 하지 못하였다. 하나님이 언약적 공의로 갚으신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비참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다시 이스라엘에게 언약적 자비를 베푸셨으니 주께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포도주를 마시고 고함치는 용사처럼 일어나사 그의 대적들을 쳐 물리쳐서 영원히 그들이 수치를 당하게 하시었다. 또 요셉의 장막을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않으셨지만 오직 유다지파와 그의 사랑하시는 시온산을 택하시며 그이 성소를 산의 높음같이 영원히 두신 땅같이 지으셨다. 또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어 그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그가(다윗) 그들을 마음의 정직함으로 기르고 손의 능숙함으로 지도하였다. 시인은 이스라엘의 출애굽부터 다윗왕의 등극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그것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적 주고받음으로 진행된 역사임을 서술함으로써 이것이 후대에 교훈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언약적 행동(자비와 공의)에 이스라엘도 언약적 행동( 사랑과 충성)으로 반응함으로써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성취된다는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