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시편

시편 32편 허물의 사함을 받고

메르시어 2023. 4. 14. 11:20

 

 

시편 32편 허물의 사함을 받고

Tolle Rege/시편

2012-01-22 00:10:51


 

이 시편은 분명히 앞의 31편을 의식하고 기록된 것 같다. 31편에서 시인은 자신의 범죄로 징계를 받아 고난 가운데 처하여 있었다.그러나 그는 죄의 사함을 받고 주의 응답과 구원하심을 맛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시32편이 허물의 사함과 죄의 가려짐을 받은 자가 복이있다고 노래한 것은 시31편의 경험을 반영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어지는 "마음에 간사함이 없다는 표현은 죄 사함의 전제가 죄의 정직한 고백임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래서 시인은 자기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 종일 신음함으로 뼈가 쇠하였으며 주의 손이 자기를 눌러 진액이 빠져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다고 할 것이리라. 그러나 시인이 자기 허물을 자복하기로 결심하고 자기 죄를 아뢰고 자기 죄를 숨기지 않고 정직하게 고백하였을 때 주님은 시인의 죄악을 사하셨다는 것이다

 

이렇게 죄사함의 체험을 한 시인은 이제 청중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한다.그는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하라고 한다. 그때 그는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됨으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안전하며 모든 환란에서 보호함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길을 인도하고 주목하여 훈계하실 때 무지한 말이나 노새처럼 되지말고 순종하라는 것이다. 시인의 결론은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지만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른다는 것이며 그러므로 의인들은 여호와를 기뻐하며 마음이 정직한 자들은 다 즐거이 외치라고 한다.

 

 

[추기] 2013. 9.1 주일

 

  허물의 사함을 받음, 죄가 가리워짐, 마음에 간사함이 없음,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않음 이렇게 표현은 다양하지만 그 의미는 동일하게 하나님께 죄의 용서를 받은 자를가리킬 것이다. 시인은 죄의 용서를 받은 자가 복이 있다는 위대한 진리를 선포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  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야 말로 복중의 복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것인데 이 죄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곧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죄의 용서와 관련하여 마음에 간사가 없다는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그 의미는 심령에 거짓과 속임이 없다는 것인데 이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감추지 않고 정직하게 시인하는 마음의 태도를 가리킨다. 이는 죄의 용서를 받는데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시인하고 고백하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진리를 시사하는 것이다.

 

  이어지는 기도는  시인의 이런 진리 선포가 자신의 뼈저린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보여준다. 시인은 자신이 자기 죄를 고백하지 않을 때 주의 손이 자신을 누르시는 고통을 경험하였다. 그 고통으로 시인은 종일 신음하며 뼈가 쇠하고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움에 마르는 것과 같았다는 것이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자기 죄를 시인하고 고백하지 않는 언약백성의 심령을 괴롭히신다. 마침내 시인은 자기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결심하고 자기 죄를 주께 아뢰며 자기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과연 주께서는 시인의 죄를 사하였다.

 

  시인은 자신의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찾았을 때  자기 죄를 자복하라고  권면한다. 그리고 시인은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에대하 무한한 신뢰의 표현이었다. 시인은 하나님은 자신의 은신처이시며 환란에서 자신을 보호하시며 구원의 노래로 자신을 두르시는 분이시라는 고백을 하고 있다. 시인은 죄의 용서를 경험함으로써 하나님이 자신의 찬양과 신뢰를 받으신 분이심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죄의 용서를 받은 자가 복이 있다는 시인의 진리선포는 죄의 용서 자체가 복이있다는 것이라기 보다는 죄의 용서를 경험함으로 하나님을 믿고 찬양하게 된 그것이 바로 복이 있다는 것이리라.

 

  시인은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인 듯하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갈 길을가르쳐 보이며 그들을 주목하여 훈계하겠다고 하였을 것이다. 시인의 훈계는 재갈이나  굴레로 단속하지 않으며 순종하지 않는 말이나 노새와 같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은 자원하는 심령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를 기뻐하신다는 진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죄의 고백도 자원하는 심렴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이다. 이런 자원하는 심령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다. 그래서 시인은 악인에게는 슬픔이 있지만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있다고 한 것이다. 악인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가 대조되어 표햔되는 것을 보아 여기서 의인이란 곧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를 가리키는 듯 하다.  그래서 시인은 의인들 곧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하라고 권면한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여호와로 말미암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