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5장 아담자손의 계보
창세기 5장 아담자손의 계보
Tolle Rege/창세기
2011-05-02 22:52:36
5장은 아담자손의 계보를 소개하면서 그 시작을 아벨대신 하나님께서 주신 셋으로 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가인의 후예는 철저하게 배제되어 아예 그 존재에 대한 언급이 없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 존재의 무의미함을 강력하게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셋의 후예는 역사에 존재했던 기간을 정확하게 묘사함으로써 역사상 그들의 존재가 하나님앞에 의미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5장에 반복되는 "죽었더라"는 말은 여전히 인간에게 깊게 드리워진 죽음의 굴레를 분명히 드러낸다. 역사장 그들의 존재가 의미는 있었지만 죽음의 형벌을 면할 길은 없는 인간존재의 허무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죽음을 맛보지 않은 에녹의 존재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가 인간에게 임할 것을 암시하며 마지막으로 "위로한다"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노아의 출생은 허무 가운데 죽어가는 인간에게 임할 하나님의 위로를 기대하게 한다.
창세기 5장
닥치고 성경/창세기
2019-10-10 20:41:31
창세기 5장
하나님은 죽은 아벨 대신에 아담에게 셋을 아들로 주셨다. 5장에서는 아담의 계보로서 셋의 후예에 대한 기록이 나타난다. 만일 하나님이 아벨 대신에 셋을 주시지 않았다면 인류는 아무 희망이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인과 그 후예들은 아예 하나님을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인의 후예는 아예 아담의 계보에 나오지도 않는다.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하셨고 그들에게 복을 주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셋의 후예들도 이런 창조 목적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었다. 비록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지만 아담 계보에 대한 기록은 자녀를 낳고 살다가 죽었다는 말만 반복될 뿐이다. 창조 목적을 따라서 다스리는 일은 하지 못하고 그저 죽음의 지배를 받는 비참한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 육체의 죽음은 3장에서 일어난 본질적은 죽음의 결과일 뿐이다. 이미 존재 근거와 의미를 상실한 인간에게 남은 일이란 육체적인 소멸일 뿐이다. 그러므로 육체적 죽음은 인간이 존재 의미를 상실했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을 짓누르는 육체적 죽음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인간이 그 존재 의미를 다시 회복하는 길 뿐이다. 인간이 그 존재 의미를 다시 회복할 때 육체의 죽음은 더 이상 인간을 짓밟지 못할 것이다. 라멕은 자기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노아라고 지었는데 이는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심으로 수고롭게 일하는 자신들을 이 아들이 위로할 것을 기대한 것이었다. 땅이 저주를 받았다는 것은 땅을 다스려야 할 인간이 범죄함으로 땅이 다스림을 받지 못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땅을 다스려야 할 인간이 오히려 땅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 수고롭게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아담의 계보에 대한 기록은 절망적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그러나 아담의 계보 중에 노아라는 인물의 등장은 새로운 희망의 빛을 던져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