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출애굽기

출애굽기 24장 시내산 언약

메르시어 2023. 2. 6. 19:16

출애굽기 24장 시내산 언약

Tolle Rege/출애굽기

2011-05-30 15:51:53


이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과 세부법이 모두 수여되었고 백성들이 전부 수납하였으므로 정식으로 언약을 맺을 준비가 완료된 것이다.그래서 하나님은 아론과 그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 그리고 이스라엘의 장로 70인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대표로서 언약예식에 참여하도록 부르신다.

 

언약예식의 준비는 먼저 모세가 언약법을 기록하여 언약서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언약법이 언약예식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그 다음에 언약의 양 당사자을 상징하는 제단과 열두기둥이 세워진다. 제단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이고 12기둥은 이스라엘 12지파 공동체를 상징하는 것일 것이다. 그 다음에 짐승을 잡아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데 이 때 짐승의 피를 양푼에 담아서 먼저 그 피의 반을 제단에 뿌린다.

그리고 언약서를 백성들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고 백성들이 순종의 서약을 하게 한다.

그리고 남은 피의 반이 백성들에게 뿌려지면서 그 피의 의미가 선언되는데 이 피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 곧 언약법에 대하여 이스라엘과 세우시는 언약의 피라는 것이다. 이 선언에서 언약의 핵심은 언약법임이 다시금 강조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언약예식이 완료되었다.

 

여기서 직접적으로 표현은 되지 않았지만 언약법을 중심으로 언약의 양 당사자가 서약을 한 것이고 그 서약은 단순한 서약이 아니라 "피의 서약"이었다. 피의 서약이란 서약의 양 당사자중 어느 일방이 서약을 위반하면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즉 이 서약은 언약의 양 당사자가 목숨을 담보한 서약인 셈이다. 이제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서로 목숨을 걸고 언약을 맺은 것이다. 이스라엘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향하여 언약에 충성하여야 하며 하나님도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을 행하여 언약에 신실하셔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약에 신실 여부는 모두 언약법을 따라 행하는 여부로 판단될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뿌려진 피가 이스라엘이 언약법에 순종하지 않으면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제단에 뿌려진 피는 이스라엘이 언약법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책임지고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을 보장하셔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언약에 신실하셨지만 이스라엘은 언약에 충성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입증되었다.

 

언약예식이 마무리 되고 이제 모세와 이스라엘 공동체의 대표들은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는 것이 허락되었고 이제 그들이 대면한 하나님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을 처음 대면할 때의 죽을 것 같던 두려우신 하나님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발 아래는 청옥을 편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즐겁게 먹고 마실 수 있었다. 이제 언약을 맺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공동체와 하나님과의 완전한 샬롬의 관계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렇게 언약예식은 끝났지만 하나님은 모세에게 머무르도록 지시하신다.  그런데 언약예식에서 모세가 언약서를 기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언약법을 하나님이 얼마나 중대시 하시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돌판은 나중에 만나와 함께 지성소에 보관되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사용될 것이다. 특이하게도 이 대면의 자리에 여호수아의 대동이 허락됨으로 모세이후 차기 지도자가 예비되는  모습이 암시되고 있다. 

 

 

[추기 2012. 3.28]

  시내산의 언약 예식 역시 고대 근동의 언약방식을 따른 피의 서약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방식은 좀 다르다. 아브라함 언약의 경우는 고대 근동의 언약방식을 따라서 동물을 쪼개어 벌려놓았고 그 사이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타는 풀무불이 지나갔지만 시내산 언약 예식의 경우는 번제나 화목제로 동물을 드리면서 동물의 피를 앙푼에 나누어 담아서 제단과 백성에게 뿌리는 피뿌리는 방식이었다. 시내산 언약은 근본적으로 아브라함 언약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아브라함 언약을 갱신한 이스라엘 백성과의 최초의 공적인 언약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시내산 언약도 아브라함 언약과 동일하게 피의 서약이었다. 아브라함 언약에서는 타는 풀무가 쪼갠 동물사이로 지나감으로써 하나님편에서 피의 서약이 이루어졌고 아브라함은 할례예식을 통하여 동 언약에 피의 서약으로 응답한 것이라면 시내산 언약에서는 더욱 직접적이고 명백한 방식으로 언약 쌍방을 향하여 피를 뿌리는 예식을 행함으로 언약의 쌍방이 피의 서약으로 언약에 참여하였다. 그래서 모세는 이 때 뿌린 피를  언약의 피라고 선언하였다.

 

  이렇게 볼 때 구약에서 언약의 성격은 언약법을 중심으로 한 피의 서약인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하나님은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언약적 자비와 신실함을 베푸실 의무가 있고 이스라엘은 언약법을 준행함으로써 하나님께 순종할 의무가 있다. 이 두가지 의무가 쌍방에 의해 수행될 때 그 언약은 지켜지는 것이고 언약의 피라는 것은 언약의 당사자들이 이 언약적 의무를 준행할 것을 맹세하는 의미였다. 그런데 신약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기전 유월절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소위 성찬예식을 제정하셨는데 이 때 예수님은 포도주잔을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이는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을 구약에 나타난 언약의 성격에 비추어 보면 예수님이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가 하나님편에서의 언약에 참여하는 피의 서약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사건은 하나님이  언약의 당사자인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언약적 자비와 신실하심을 약속하시는 피의 서약인 셈이다. 이런 해석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의 대속의 의미를 포함하면서도 십자가 사역의 보다 근본적이고 폭 넓은 의미를 제공하여 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단순히 죄사함의 대속적 의미에 국한 시키지 않고 하나님 편에서의 언약적 프로포즈로서 이해하게 된다. 즉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이 피의 서약으로서 언약맺자는 프로포즈인 셈이다. 우리가 예수의 십자가 사역을 죄사함의 대속적 의미로 국한 시킬 때 우리는 믿음의 쌍방적이고 역동적인 차원을 알지 못하고 단순히 예수님이 이루신 속죄 공로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이후에 어떻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루고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를 알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하나님의 언약적 포로포즈로 이해할 때 우리는 언약의 상대방으로서 그 포로포즈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여야 할지 명확해진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언약의 상대방으로서 하나님의 피의 서약에 대하여 우리도 동일하게 피의 서약으로 반응함으로서 하나님과의 언약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 자명해진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단순히 예수의 속죄 공로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에게 전적인 의탁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렇게 맺은 언약이 진실됨을 언약이후의 언약관계의 발전을 통하여 입증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소위 칭의와 성화의 이원론적 구조를 탈피할 수 있게된다. 칭의로 이미 의롭게 되었고 죄사함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자에게 성화는 사실 필수사항이 아니라 선택사항이나 희망사항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을 언약적 차원으로 볼때  믿음은 생명을 걸고 자신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결단,즉 피의 서약을 통하여 언약을 수립하는 것이된다. 그리고 나아가 이것은 언약의 시작일 뿐 더 중요한 것은 언약 양당사자의 언약적 삶인 것이다. 왜냐하면 언약은 언약적 삶을 위한 것인데 언약적 삶이 없는 언약은 허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언약을 맺었다고 할지라도 그 언약맺음은 반드시 언약적 삶을 통하여 입증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믿음과 행위를 언약적 차원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믿음과 행위, 혹은 칭의와 성화의 이원론이 들어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아도 구약적 계시의 기반을 두지 않고 신약의 계시를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언약적 삶을 이야기 할 때 그것은 추상적이거나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구체적이고 공동체적이라는 점을  구약의 계시는 보여준다. 시내산 언약에서 피뿌리는 예식을 행하기 앞서 모세는 여러번 언약법을 백성들에게 들려주고 그들의 순종의 약속을 확인하였으며 그 이후에 언약의 피를 뿌리는 예식을 한 것을 보아 언약적 삶이란 공동체가 하나님의 법에 구체적으로 순종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순종이란 단순히 외적인 모습이기 이전에 마음의 차원인 것을 십계명은 분명히 보여준다. 특별히 십계명의 제일계명은 하나님의 법에대한  순종의 출발이며  근본이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의탁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믿은 신자들 특히 교회가 하나님의 법을 삶의 전영역에 구체적으로 준행하고 가르침으로 실현하는 일에 힘쓰지 않는다면 예수의 피로 구원을 받았다는 주장이 공허하고 거짓됨을 스스로 드러내게 될 것이다.

출애굽기 24장

닥치고 성경/출애굽기

2019-10-13 19:06:05


출애굽기 24장

이제 공적으로 언약예식이 치뤄지고 있다. 언약의 핵심은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이다. 그래서 모세는 백성들에게 다시금 그것을 전했고 그들은 한 목소리로 응답하여 이루되 여호와의 말씀하신 모든 것을 준행하겠다고 하였다. 언약의 핵심은 언약법이고 언약법의 준수임을 이 장면은 분명히 보여준다. 그래서 모세는 여호와 모든 말씀을 기록하였다. 언약예식에서 제단은 분명히 언약의 한 편은 하나님을 상징할 것이며 열두 기둥은 언약의 다른 한편인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할 것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언약의 양 당사자가 되어 언약을 맺는 것이다.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피를 가지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반은 열두기둥이 아닌 백성들에게 뿌렸다. 제단과 백성들에게 피를 뿌렸다는 것은 이 언약이 생명을 걸고 맺는 엄숙한 언약임을 의미할 것이다. 이스엘만 생명을 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언약에 신실하실 것을 생명을 걸고 참여하신다. 그래서 모세는 이 피를 언약의 피라고 말했다. 언약의 피를 뿌릴 때에서 모세는 다시 한번 여호와의 모든 말슴과 그의 모든 율례가 기록된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고 그들이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준행하겠다는 대답을 확인한 후에 피를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