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출애굽기

출애굽기 12장 유월절과 출애굽

메르시어 2023. 2. 6. 15:31

출애굽기 12장 유월절과 출애굽

Tolle Rege/출애굽기

2011-05-26 22:56:55


  애굽에 있는 모든 처음 난것의 죽음이 11장에서 경고되었고 이 마지막 재앙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오게 될 것이 예언되었다. 그런데 이 재앙이 집행되기전에 12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특이한 규례가 주어지는데 그것이 유월절과 무교절 규례였다. 이 규례는 이후 이스라엘 후손 대대로 지켜지는 이스라엘의 3대 절기중 가장 가장 중요한 절기의식이 되었다. 이 규례가 시작되는 달이 이스라엘 달력의 첫 달로 정해진 것은 이 규례와 함께 이스라엘 역사의 새로운 시작이 전개됨을 의미한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규례로 말마암아 애굽을 떠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이 첫달이 히브리 달력의 첫 달인 아빕월인데 이것은 하나님나라가 새로운 차원으로 시작되는 것을 나타낸다.

유월절 규례는 일단 그 달 10일에 식구수를 따라 흠없고 일년된 수컷으로 어린양을    준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14일 해질녁에 그 어린양을 잡고 그 피를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나물과 함께  반드시 불에 구워 먹되 아참까지 남겨두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먹을 때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어야 한다. 이것이 유월절 규례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날을 여호와의 절기로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키도록 명령을 받는다. 무교절 규례는 유월절 규례에 바로 이어서 진행되는 일종의 유월절 규례와 함께 지키는 규례인데 엄격하게 요구되는 것이 유월절이후 7일동안 모든 누룩을 집안에서 제하고 누룩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는 무서운   경고가 주어진다. 무교절과 유월절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사실상 하나의 절기인 셈이다.

 

마지막 재앙 직전에 애굽인에게는 예외없는 죽음의 경고가 주어진 반면 이스라엘에게 는 이 규례가 주어졌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 이 규례가 주어진 것은 마지막 재앙과 관련이 된 것이다. 즉 이 규례를 통하여 이스라엘은 마지막 재앙으로 부터 보호를 받게되는 것이다.  마지막 재앙을 막아주는 것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였다.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피가 발라진 집은 멸하는 자가 건너 뛰는( pass over) 것이다. 그러니 유월절에 어린양의  죽음은 이스라엘의 죽음을 대신한 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양을 준비할 때 그 집의 식구수를 감안해서 준비하도록 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 규례를 정하시면서 이것을 영원한 규례로 삼아 대대로 이 날을 지킬 것을 반복하여 명하신다. 이것은 일종의 실물 교육용 의식이 셈이다. 왜냐하면 이 의식을  행할 때 마다 후손들이 이것이 무슨 뜻이냐고 묻으면 그 의미를 가르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준비가 끝나자 마자 마지막 재앙은 신속하게 집행된다. 거기엔  어떤 예외도 없었고 어떤 자비도 베풀어 지지 않았다. " 그 밤에 바로와 그 신하와 모든 애굽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않은 이가 하나도 없었음이더라" 이제 바로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주어지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을 하루 속히 떠나보내는 것만이 애굽의 살 길이었다. 애굽은 이스라엘을 떠나 보내기 위해 은금 패물과 의복까지 내어주어야만 했다. 애굽을 떠나는 이스라엘 자손이 유아외에 장정만  보행하는 장정만 육십만이었다.  애굽에 들어 온 야곱의 족속 70인이 장정만 60만명이 되었다. 이제 하나님 나라는 나라다운 규모로 성장하여 새롭게 출발을 하게된 것이다. 그래서 성경 기자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한지 사백삼십년이 되었음을 감회어린 심정으로 반복한다.  사백삼십년만에 60만명으로 성장한 이스라엘은 이제 여호와의 군대로 묘사된다. 그리고 이 감격스런 출애굽의 밤은 이제 " 여호와의 밤"으로 명명되며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켜야 하는 역사적인 날이 된 것이다.

 

유월절 규례에 이방 사람은 먹지못하도록 엄격하게 규제되었다. 다만 할례를 받은  남자는 본토인과 동일하게 먹을 수 있었다. 이것은 유월절 규례가 엄격하게 언약백성에게만  주어진 특권임을 알게한다, 그러나 이 언약은 혈통을 따라 되는 것이 아니라 할례라는 언약예식을 통해서 타국인이라도 언약에 참여할 수 있음은 놀라운 일이다.유월절 규례가 언약백성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란 점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특권의 내용이 매우 특별한 것이기 때문인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들의 생명이 보호되는 것인데 그냥 보호되는 것이 아니라 어린양의 생명이 이스라엘의 생명을 대신하는 방식으로 보호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어린양은 이스라엘에게만  유일하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 어린양의 피를  바르고 어린양을 불에 구워서 먹음으로 사망의 재앙으로 부터 면제를 받게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이삭 대신에 하나님이 준비한 어린 양이 번제로 드려진 것을 연상시킨다.  결국 유월절 어린양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대신 준비하신 어린양인 셈이고 하나님의 이런 특별하신 행동은 언약백성을 행한 그의 언약적 자비의 행동이셨 던 것이다.

 

그런데 유월절 어린양을 먹을 때 먹는 방식이 주어진다. 그것은 고기를 반드시 불에 구워서 먹어야 된다는 것이고 무교병과 쓴나물과 함께 먹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주어지는 무교절 규례에서는 7일 동안 집안에 누룩을 제하고 누룩없는 떡을 먹어야 한다 만일 유교병을 먹으면 언약백성에서 끊어진다는 경고가 주어진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적 선물인 어린양을 취할 때 이스라엘이 행해야 하는 언약적  반응으로서 주어진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에 대한 이스라엘의 언약적 반응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의미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하게 강조되는 것이 누룩을 제하고 무교병을 먹으라는 것이었다. 출애굽기는 왜 누룩을 멀리하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우리는 신약에서 누룩을 죄와 악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보아서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언약적 자비를 경험한 이스라엘에게 죄를 멀리하는 성결한 행동이 언약적 반응으로서 요구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追記] 2012. 2. 19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실 때 자신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심으로써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이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에 근거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셨다. 유월절 규례의 가장 현저한 두가지 내용은 어린양을 잡아 먹는 일과 무교병을 먹는 일인데 두가지 모두 먹는 일과 관련된 것이 흥미롭다. 유월절 규례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유월절 규례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선 유월절 규례에서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어린 양을 불에 구워서 먹는 규례가 어떻게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과 관련이 되는지 생각해 보자. 애굽에 내려진 마지막 재앙에서 이스라엘이 죽음을 면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에 근거한 언약적 자비로 인한 것이다. 다만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적 자비가 이스라엘에게 베풀어지는 방식으로 어린 양을 사용하신 것이다. 즉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는 어린 양으로 상징되는 대속적 죽음의 방식으로 이스라엘에게 베풀어진다는 것을 유월적 규례는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조상과 맺으신 언약의 본질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관계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린 양의 죽음이라는 방식으로 언약적 자비가 부어지는 것은 언약의 본질이 바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영원한 관계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는 유월절 어린 양 규례 이후에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는 여호와의 것이므로 어린 양으로 대속하라고 명하신 것을 보아서도 분명하다. 하나님은 어린 양의 규례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영원히 하나님에게 바쳐진 존재이며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임을 보여주신 것이다.

 

두번 째 유월절 규례는 누룩을 멀리하고 무교병을 칠일간 먹으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누룩은 죄를 상징하는 것이고 무교병은 죄없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식의 해석은 성경이 설명하지 않는 의미를 인위적으로 갖다 붙이는 어색한 해석일 것이다. 사실 성경은 왜 누룩을 멀리하고 무교병을 먹으라고 하는지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어린 양의 규례에서 어린 양의 피나 고기 자체가 어떤 가치나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니듯이 마찬가지로 누룩이나 무교병 그 자체가 어떤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유월절 규례로서 무교병을 먹으라는 명령을 하신 것일까? 이것은 마치 선악과 금령을 주시면서 왜 선악과 를 먹지말라고 하셨는지 설명하지 않는 것과 같지 않을까? 하나님이 선악과 금령을 주신 이유는 인간에게 하나님게 대한 순종을 가르쳐 주시려고 하신 것 같이 유교병을 먹지 말하는 금령도 결국 하나님은 선악과 금령을 통해서 가르치시려던 동일한 순종을 가르쳐 주시려고 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린 양과 무교병의 두 규례는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는 일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일 이 두가지를 교훈하는 규례인 셈이고 결국 이 두가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근본 조건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출애굽을 통하여 이제 새로운 차원의 하나님나라가 출발하는 시기에 유월절의 두 규례가 주어진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유월절 두 규례가 보여주듯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출애굽기 12장

닥치고 성경/출애굽기

2019-10-13 19:01:17


출애굽기 12장

마지막 재앙인 유월절 재앙은 애굽에 대한 결정적인 심판 사건인 동시에 이스라엘에게는 결정인 구원의 사건이었다. 유월절 재앙이 일어난 아빕월이 이스라엘 해의 첫 달이 된 것은 이스라엘 역사의 본격적인 출발이 바로 출애굽 사건임을 보여준다.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중심적인 사건으로서 이후 이스라엘 역사에서 반복되어 회고되고 인용된다. 유월절 재앙에서 하나님은 애굽 땅에 있는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죽이시고 애굽의 신을 심판하심으로 자신이 여호와이심을 증거하실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 한 마리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않음으로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는 줄 이스라엘로 하여금 알게 하실 것이다. 그런데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한 것은 유월절 재앙뿐 아니라 이미 다섯 번째 재앙인 가축의 죽음에서부터 나타났다. 그런데 유월절 재앙의 독특한 점은 집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어린 양의 피가 애굽과 이스라엘을 구별하는 표징이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린 양의 피에 무슨 특별한 효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것을 구원의 표징으로 정하셨다는데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일지라도 만일 어린 양의 피를 바르지 않는다면 죽임을 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린 양의 피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의 표징이고 이스라엘이 그 표징에 순종하는 것이다. 만일 애굽 사람일지라도 이 구원의 표징을 알고 그대로 따랐다면 그들도 죽임을 면했을 것이다. 이것은 앞서 일곱 번째 재앙인 우박재앙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여 피한 애굽인들이 그 재앙을 면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유월절 재앙을 끝으로 이스라엘은 드디어 애굽에서 나오게 된다. 그러므로 유월절 재앙은 곧 출애굽이요 이스라엘의 해방을 의미하는 구원의 사건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로 삼아 대대로 영원한 규례로 지키라고 명하신다. 그 유월절 규례는 아빕월 14일 해 질 때에 각 가족대로 양을 잡고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고기를 구워먹으며 21일까지 이레 동안 누룩이 없는 무교병을 먹는 것이다. 이 유월절 규례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대대손손 출애굽 역사를 기억하고 그 의미를 반추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유월절 규례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본격적인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역사상 첫 발을 내딛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방사람이나 거류인아니 타국 품꾼은 유월절 식사에 참여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타국인이라도 할례를 받은 후에는 본토인과 같이 유월절에 참여하는 것이 허락되고 있는데 이 점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혈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약에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