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장 거룩한 영적예배
로마서 12장 거룩한 영적예배
Tolle Rege/로마서
2012-10-13 21:41:14
이제까지 바울은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그리고 신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받을 영광에 대하여,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와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말하였다. 이어서 바울은 그렇다면 이런 복음을 들은 자가 하나님 앞에 어떠한 반응을 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말하기 시작한다. 먼저 바울은 복음을 들은 자들에게 자신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리고 권면하며 이것이 바로 그들이 드려야 할 영적예배라고 말한다. 영적 예배란 영이신 하나님께 신자들이 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언약적 반응임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영적 예배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는데 그것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바울은 몸에 많은 지체가 있는 것 처럼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 몸안의 각 지체가 기능이 다르듯이 신자들의 공동체도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과 은사에 따라 공동체를 섬기는 일도 각각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예언하는 일,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위로 하는 자, 구제하는 자, 긍휼을 베푸는 자들이 각각 거짓이 없는 사랑으로 맡은 일을 감당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형제를 사랑하며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주를 섬기라고 권면한다, 그리고 소망중에 즐거워하며 환란중에 참으며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권면한다. 이렇게 바울이 앞에서 영적 예배에 대해 말하고 이어서 신자간에 이루어야 할 관계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이는 분명 영적 예배가 하나님과 신자 개인의 관계로 국한 되는 것이 아니고 공동체적 관계로 나타나야 하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신자 공동체가 공동체 밖의 외인들에게 취해야 할 태도를 가르키고 있는데 이것 역시 신자 공동체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영적 예배의 차원에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은 무멋보다 박해하는 자를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는 것이고 그들의 즐거움과 슬픔을 같이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며 스스로 지혜있는체 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악으로 악을 갚지 말아야 하며 모든 사람 앞에서 선을 도모하여야 한다.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기를 힘써야 한다.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겨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이다. 이것이 바로 신자들이 복음에 합당하게 드리는 영적예배라는 것이다.
추기 2014. 4. 29 합당한 예배
바울은 "그러므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권면한다." 여기서 "그러므로"라는 의미는 당연히 앞에서 바울이 길게 설명한 내용을 가리킬 것이다. 그것은 요약하면 첫째는 하나님이 율법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복음을 준비하셨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 복음을 이스라엘을 통하여 준비하셨는데 그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파되게 하시려고 이스라엘을 순종치 않는 가운데 가두어 두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한 "그러므로" 란 "하나님이 이렇게 이방인들을 위하여 특별히 복음을 준비하여 주셨으니" 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복음을 받은 자로서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를 바울은 말하는 것이니 결국 하나님의 언약적 행동에 대하여 사람은 어떻게 언약적으로 반응할 것인가를 의미하는 것이다.
복음이 하나님 편에서의 언약적 행동이라면 믿음은 사람 편에서의 언약적 반응일 것이다. 그런데 믿음이란 단순히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요구하는 삶을 사는 것을 당연히 포함한다. 그것이 바로 신자가 자신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라고 바울은 말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이다. 결국 이 말의 요지는신자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 요구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복음에 대한 합당한 반응인 것이다.
신자의 삶의 핵심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신자는 이 세상의 가치관, 생각을 거부하여야 하며 끊임없이 마음을 새롭게 하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한 예배인 것이다.
추기 2014. 4. 30 한 몸을 이루라
바울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한 후에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고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바울은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한 지체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 몸에 각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듯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은사대로 교회를 섬기라고 말한다.
그래서 각 사람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여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가르치는 일이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하라고 권한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의 근본은 사랑이다. 그리고 그 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하고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먼저하며 부지런히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한다. 소망을 가지고 즐거워하며 환난중에도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말한다. 바울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며 이 뜻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라고 말하는 것이다.
추기 2014. 4. 30 선으로 악을 이기라
앞에서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으니 교회를 이루고 섬기는 일에 힘쓰라고 권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바울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인가를 가르친다.
그런데 바울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가르친 것이 첫번째가 신자간의 관계라면 둘째는 세상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것이다. 이 두가지 교훈의 공통점은 곧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사람과의 관계 회복으로 이어진다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라는 얘기가 된다.
이것은 창세기의 계시와도 일치한다. 창세기에 보면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다. 사망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 깨어짐의 결과였다. 왜냐하면 생명이신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은 필연적으로 사망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깨어짐 이후에 즉시 나타난 것이 사람과의 관계 깨어짐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급기야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살인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을 때 나타나야 하는 결과는 첫번째는 사망의 권세가 깨뜨려지는 것이고( 그래서 신자들은 영적으로 살아나고 몸이 다시 사는 약속을 받았다.) 둘째는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앞에서 신자간의 관계 회복에 대해서 말했고 이제 믿지 않는 세상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원리와는 너무나 다른 가르침이다.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는 놀라운 교훈이다. 그리고 즐거움과 슬픔을 함께 하라는 것이며 세상 사람을 향하여 마음을 높이거나 지혜있는 체하지 말고 도리어 낮은 체 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무에게 악을 당하더라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도모하여 가능한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는 것이다.
특별히 원수를 갚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고 말한다. 오히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는 것이다. 이 말은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교훈과 동일하다. 결국 이렇게 하는 것이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것이 세상 사람과의 관계에서 신자가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추기 2014. 10. 15
12장 1, 2절의 내적인 연관성
바울은 11장에서 하나님이 이방인을 부르신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설명한 후에 그러므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권면한다. 그러니까 바울의 이 권면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에 대한 합당한 반응이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예배란 하나님의 은혜에 합당하게 반응하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다음에 바울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말한다. 이 말은 하나님께 자기 몸을 거룩환 산 제물로 드리는 것과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이 관련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것은 거룩이란 개념에서 일치한다. 거룩 곧 구별됨에는 두가지 차원이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거룩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외의 인간을 포함한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거룩일 것이다. 전자가 하나님외에 어떤 피조물도 섬기지 않은 언약적 순결을 의미한다면 후자는 세상의 방식이나 가치관을 가지고 피조물과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전자와 후자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이다. 하나님 앞에 거룩이란 곧 세상과의 구별된 삶인 것이다. 그리고 세상과의 구별된 삶이란 세상의 틀에 자신을 맞추지 않는 것이다. 세상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로마 시대에는 순교를 각오해야만 하는 일이었고 교회 역사의 어느 시대에나 엄청난 희생과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으며 오늘날도 그러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그러하였듯이 그리스도인의 겪는 고난의 본질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이 없는 것은 세상을 본받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바울은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이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세상을 본받지 말라는 권면은 능동형으로 표현된 반면에 이어지는 마음을 새롭게 하으로 변화를 받으라는 말은 수동형으로 나온다,. 다시 말하면 세상을 본받지 않으려면 마음이 새롭게 되어 변화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시키는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이실 것이다. 그것이 당연히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는 것과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일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 왜냐하면 바울은 마음이 새롭게 되어 변화를 받아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변화를 받지 못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은 마음이 새롭게 된 자들만이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는 이 세대를 본받지 않을 방법이 없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때만이 이 시대의 정신을 거스릴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