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5장 하나님과의 화목
로마서 5장 하나님과의 화목
Tolle Rege/로마서
2012-09-28 01:33:51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의미를 더욱 발전적으로 논증하고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이며 믿음으로 은혜에 들어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환란중에서도 즐거워하는 것인데 이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을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루어진 소망은 결코 헛되지 않다.왜냐하면 이 소망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고 있는데 그 사랑은 우리가 아직 무능할 때에 약속대로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심으로 확증된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받았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는 것인데 이것은 다시 말하면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며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 즐거워 하는 것이다.
이제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비함으로써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은혜를 극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고 그 결과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들어온 죄는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 죄를 잘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죄를 깨딛지 못할 지라도 죄의 삯인 사망은 모세이전의 사람들에게도 엄연히 왕노릇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사망이 그들위에 왕노릇한 이유는 무엇인가? 바울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대신 아담은 오실 자, 곧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아담과 그 후손의 관계와 그리스도와 그 믿는 자들의 관계가 동일함을 암시하는 말이다.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자들에게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다는 것은 아담과 그들이 연합된 존재임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리스도와 믿는 자들도 한 몸으로 연합된 관계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 같이 의를 행하지 않은 자들이 그리스도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은 것 같이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치게 되었다. 그 선물이란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왕노릇하였듯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이 왕노릇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선물은 생명인 것이다.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간에게 메어진 사망의 멍에가 벗겨진 것이고 사람을 억압하던 사망의 권세가 깨뜨려진 것이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 것이다. 죄가 사망안에서 왕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여 영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추기 2014. 4. 25 하나님과 화평을 누림
바울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으니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고 말한다. 믿음으로 서있는 은혜에 들어갔으니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다는 것은 그걸로 끝난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란 말이다. 의롭다함을 얻은 것은 시작이며 이제 본격적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즐거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자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 왜냐하면 그는 환난이 인내를 이루고, 인내는 연단을 이루며,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하는 하나님의 인도인줄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루어진 소망은 결코 신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자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졌기 때문이다. 신자는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소망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곧 죄인으로서 무능하고 절망적일 때,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다. 바로 이 사랑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신자의 마음에 부어진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받았으므로 더욱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다. 이 말은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이 이제 시작이고 신자의 궁극적인 소망은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는데 이르는 것임을 의미한다.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은 구원의 시작이지 아직 완성은 아니라는 말이다. 진노에서 최정적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마지막 심판때에 이루어질 것이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되었다고 말한다. 의롭다함을 얻었다는 것을 하나님과 화목된 것으로 표현함으로써 의가 관계적인 의미임을 확신시켜준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화목되었으므로 더욱 그리스도의 살아나심으로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우리의 구원이 그리스도의 죽으심뿐 아니라 그의 살아나심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다시 살아나심을 위한 것이었듯이 우리의 화목은 구원을 받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여기서도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은 구원의 시작이고 구원을 위한 것이지 구원의 전부나 완성이 아니라는 의미가 된다.
추기 2014. 4. 25 아담과 그리스도
바울은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다고 말한다.그런데 죄는 아담만 범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고 그래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고 말한다. 아담의 범죄는 아담 한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담이 대표하는 모든 사람에게 미쳐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말한다. 죄는 한 사람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죄의 세력은 모든 사람에게 전염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 존재의 공동체성을 발견한다.
이렇게 죄는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이 있었는데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 죄인데고 죄인줄 잘 몰랐다는 말이다. 그래서 율법이 없을 때인 아담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자들에게도 사망이 왕노릇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아담은 오실 자, 곧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한 사람 아담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은 것처럼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친다는 의미이다. 한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고 정죄에 이르렀지만, 이제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하심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한 사람 아담이 세상을 망쳤다면 한 사람 ,그리스도가 세상을 구원하신 것이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왕노릇하였다는 말은 사망이 모든 사람위에 왕처럼 군림함으로 사람들이 사망에게 꼼짝없이 지배당하고 사망이 시키는대로 할 수 밖에 없는 종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서 히브리서는 사람들이 죽기를 두려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제는은헤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게 된 것이다. 사망의 종노릇하던 자들이 해방될 뿐 아니라 이제는 생명 안에서 왕노릇을 한다는 놀라운 말이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죄인이 됨으로 사망에 이른 것 같이 의인이됨으로 생명에 이르는 것이다. 율법을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함이다. 이 말은 율법때문에 범죄가 더하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율법이 들어옴으로 율법이 있기 전부터 있었던 죄가 더욱 죄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율법으로 범죄를 더하게 하신 것은 사람을 멸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오직 구원코저 하심이다., 율법으로 죄를 깨닫게 하시고 은헤를 베풀고저 하심이다. 그래서 바울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말한다. 바울은 사망이 왕노릇했다고 말했는데 사실 정확히 말하면 죄가 사망안에서 왕노릇한 것이다. 사람을 종으로 부린 주인은 죄였고 그 통치 도구가 사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의로 말미암아 은혜가 사람을 다스릴 것이다. 그러나 은혜는 사람을 종처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안에서 왕노릇하여 영생에 이르게 만든다.
여기서 왕노릇한다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이는 곧 다스리는 자, 통치자를 의미한다. 이 말은 4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하신 약속 ,곧 세상의 상속자가 되게하신다는 약속을 생각나게 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궁극적으로 이끄시는 곳은 바로 통치의 자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을 다스리게 하시기 위하여 천지를 지으셨기 때문이다. 세상을 다스릴 하나님의 통치자를 죄가 사망으로 다스리고 있는 현실을 하나님이 가만히 두고 보시겠는가? 그래서 죄가 더한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