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33장 이스라엘의 파수꾼, 에스겔
에스겔 33장 이스라엘의 파수꾼, 에스겔
Tolle Rege/에스겔
2011-09-14 22:55:01
하나님은 에스겔을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삼으셨다고 하신다. 에스겔의 예언 사역은 이스라엘에게 칼이 임한다는 경고의 나팔을 부는 파수꾼 사역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나팔소리를 듣고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그들은 자기 죄악으로 죽겠지만 만일 파수꾼이 나팔을 불지 않아서 칼에 맞아죽는 일이 생긴다면 그 사람은 자기 죄악으로 죽는 것이지만 파수꾼이 그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에스겔의 사명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특별히 포로지의 이스라엘을 대하여 경고의 나팔을 부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에스겔을 포로지 이스라엘 백성의 예언자로 세우신 것은 포로로 잡혀온 그들이 돌이키고 악한 길에서 떠나 살게하려하심이었다.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 그 공의가 구원하지 못하듯이 악인이 죄에서 떠나 정의와 공의로 행한다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포로지의 이스라엘에 주의 길이 바르지 않다고 불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아마도 예루살렘의 멸망을 두고 하는 불평일 것이다. 즉 이스라엘을 어찌 이방에 넘겨주며 성소를 어찌 이방인에게 짓밟히게 하느냐는 불평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의인이 악을 행하면 이전의 의로 구원을 받지 못하듯이 이스라엘이라도 악을 행하면 이방인과 같이 취급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포로로 잡혀온 신세의 포로지 이스라엘이라도 악에서 돌이켜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에스겔을 포로지의 예언자로 세우신 이유일 것이다.
드디어 사로잡힌지 제12년 10월에 예루살렘 함락소식이 포로지에 전해졌다. 이는 에
스겔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며 포로지 백성에게는 설마하던 마지막 희망이 꺼져버린
대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루살렘 함락소식이 들리자 지금까지 말을 못던 에스겔의 입이 열린 것이다. 말을 하지못하므로 주로 행위예언으로 행하던 예언사역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에스겔이 입이 열린 후에 한 첫번째 예언은 예루살렘 함락이후 황폐한 그곳에 살아남은 자들이 가진 헛된 획신을 부수는 일이었다. 아마도 이것은 그곳에서 도망온 자가 전해준 말이었을 것이지만 그들의 거짓된 믿음을 쳐부수는 예언을 포로지의 이스라엘이 들으라고 하였을 것이다. 그들의 헛된 확신은 아브라함 한사람이 이스라엘 땅을 기업으로 얻었는데 비록 멸망당했지만 아직도 이 땅에 남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많은데 어찌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기업을 주지 않으시겠느냐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함락이후에도 그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헛된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은 포로지의 이스라엘 백성이나 비슷한 모습이다. 그러나 에스겔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은 단호하고 명쾌하다. 하나님의 법을 멸시하는 그들에게는 아무 소망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남은 그들마저 칼에 업드러질 것이며 들짐승에 먹히고 전염병에 죽을 것이다. 포로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에스겔의 말을 듣는체하지만 마음은 자기 욕심을 따라 행할 뿐이다. 그러나 에스겔의 예언이 응할 때에 그들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줄 알게될 것이다.
추기 2011. 9. 16
이스라엘 백성은 에스겔의 말을 듣는 척하지만 행히지는 않을 것이다. 입으로는 헌신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마음은 불의한 소득을 얻으려는 탐욕뿐이다. 그들이 에스겔의 말을 듣기는 하나 행하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에스겔은 수금을 뜯으며 고운소리로 사랑의 노래나 읇는 노래꾼일 뿐임을 증거하는 것이다.이다. 이 말씀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나 행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귀에 듣기 좋은 노랫소리로 간주하는 멸시행위임을 지적한 것이다. 에스겔의 예언이 그대로 응할 때에 그들은 기껏해야 한 선자지가 자기들 가운데 있었음을 알게될 뿐이다. 이것은 오늘날 말씀을 듣고 인정하고 동의하지만 그대로 행치 않는 현대의 예배 관객들을 향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