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이사야

이사야 9장 하나님의 나라

메르시어 2023. 3. 26. 17:03

이사야 9장 하나님의 나라

Tolle Rege/이사야

2011-07-19 17:24:07


앞에서 예언된 임마누엘의 복이 더 구체적이고 강력하게 제시되고 있다. 비록 유다는 앗수르에게 고통을 받겠지만 ( 앗수르에게 가장 큰 고통을 당하였던 지역이 이스라엘 북부인 스불론과 납달리 땅, 즉 오늘날의 갈릴리 지방이었다) 하나님은 장차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흑암에 거하던 백성에게 빛이 비추실 것이며 즐거움을 더하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들이 무겁게 메었던 멍에와 압제자의 채짝과 막대기를 꺽어 버리실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전쟁이 없는 영구한 평화가 주어질 것이다.

 

이런 놀라운 복은  장차 여호와께서 주실 한 아기를 통하여 주실 것인데 이 아기는 어깨에 정사를 메신 분,  즉 이스라엘의 왕이시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으로 불릴 것이다. 그 다스림과 평화는 영구할 것이며 그는 다윗의 왕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법과 정의로 다스림으로 영원히 굳게 세우실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적 열심이 이 모든 일을 이루실 것이다. 장차 하나님이 친히 왕이 되시어 법과 정의로 다스릴 영원한 나라가 예언된 것이다.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 보다 앗수르의 무서운 세력앞에 바람앞에 등불과 같았던 시대에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나라의  놀라운 예언이 주어진 것은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가 얼마나 무한하신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놀라운 소망의 약속에 이어서 북 이스라엘을 향한 정죄의 메시지가 쏟아져 나온다.에브라임과 사마리아는 교만하고 완악하여 자신들의 패망을 스스로 극복하겠다고 한다. 그들은 자기들을 치시는 여호와에게로 돌아오지 않으며 찾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백성들을 미혹되게 인도하는 지도자를와 거짓 선지자들을 멸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로 그 땅이 불탈 것이며 굶주릴 것이고 서로 죽이게 될 것이다. 놀라운 소망의 약속에 이어 나타나느 정죄의 메시지는 앞의 소망의 메시지가 모든 자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아스라엘의 남은 자에게 주어진 위로의 말씀인 것을 보여준다.

 

이사야 9장

닥치고 성경/이사야

2019-09-22 20:41:12


이사야 9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둠 속에서 고통받던 백성에게 어둠이 걷힐 날이 온다. 앗시리아의 압제하에 멸시를 받는 북 이스라엘 지역은 물론 이방 사람이 살고 있는 갈릴리 지역까지, 이 모든 지역을 주님이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어둠 속에서 해메던 백성이 큰 빛을 볼 것이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에 빛이 비침으로 사람들이 크게 기뻐할 것이다. 어둠의 땅에 빛이 비친다는 의미, 그리하여 사람들이 기뻐하게 되는 구체적인 내용은 주님을 그들을 위하여 행하실 일들 때문이다. 첫째로 주님은 그들을 내리누르던 이방의 멍에를 부수시고 그 압제의 뭉둥이를 꺽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이방의 압제에서 해방됨을 의미한다. 둘째는 침략자의 군화와 피묻은 군복이 모두 불에 타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주님의 다스림으로 더는 이방의 침략이 없고 평화가 주어질 것을 의미한다. 셋째는 한 아기가 이스라엘을 위해 태어나서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주님이 다윗의 보좌와 왕국 위에 앉아서 공평과 정의로 나라를 다스릴 왕을 세우실 것임을 의미한다. 그가 공평과 정의로 다스림으로 그 나라는 굳게 서고 그의 왕권은 점점 커지며 나라의 평화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 왕의 이름이 놀라운 조언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가 다스리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통치를 그대로 반영하는 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이사야기 보여준 나라는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 이루시려는 새로운 세상,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이다.  이사야는 만군의 주님의 언약적 열심이 반드시 이것을 이루실 것임을 확신했다. 이사야가 이렇게 정죄와 심판의 메시지에 이어서 놀라운 소망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단지 심판의 메시지에 이스라엘이 절망할까 걱정되어 다시 희망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정죄와 심판이든 소망의 메시지든 이사야의 모든 메시지의 목적은 단 하나, 곧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이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스라엘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열심이 반드시 이것을 이룬다는 말은 이스라엘 없이 하나님이 홀로 이루신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스라엘을 통해 이스라엘과 함께 그 나라를 이루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이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이사야가 정죄와 심판을 선포하는 것은 언약을 배반한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 하는 것이지 단지 그들의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하나님이 장차 이루실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와야 이루어지는 나라기에 그 나라의 비전을 말하는 것은 곧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부르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은 목적이 바로 이것이기에 이스라엘은 스스로 각성하고 돌이켜야 한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부르기를 멈추지 아니하실 것이며 이스라엘을 택하심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돌아오지 않는 자들을 멸하시며 돌아오는 자, 곧 남은 자들을 통하여 언약의 목적, 곧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가 보는 이스라엘의 현실은 암담하다.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이 선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여전히 교만하고 오만한 마음으로 그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의 대적을 일으키시고 진노를 풀지 않으시며 심판을 계속하신다. 주님의 심판과 진노는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회개의 촉구이다. 회개하는 자는 살 것이고 거부하는 자는 멸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