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이사야

이사야 7장 임마누엘의 계시

메르시어 2023. 3. 26. 17:02

이사야 7장 임마누엘의 계시

Tolle Rege/이사야

2011-07-19 02:14:16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아하스 시대의 사건이 기록되었다. 이 당시 아람과   이스라엘이 동맹하여 유다를 공격하지 아하스는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이 흔들렸다. 그들은 아하스를 폐하고 다브엘의 아들을 세워 왕으로 삼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도모는 이루어 지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아하스에게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굳게 서라고 하셨다.  두려워 하지 말아야 되는 이유는 아람왕이나 사마리아 왕이나 고작 인간 왕일 뿐이지만 유다의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하스에게 약속이 이루어질  징조를 주시는데 그 징조는 특이한 것이었다. 처녀가 잉태하여 임마누엘이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을 것이 그 징조로 주어졌다. 이 징조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언급되지 않고 있지만 이 징조가 이루어 질 때 아하스가 두려워 하는 두 왕 곧 다메섹의 아람왕과 사마리아의 이스라엘왕이 멸망당하고 그 땅은 황폐해질 것이다. 유다를 공격하는 그 두 왕의 땅을 황폐케 하는 장본인은 바로 앗수르 왕이 될 것이다.마치 파리와 벌을 부르듯이 하나님이 앗수르 왕을 부르실 것이며 그들을 멸망시키실 것이 예언되고 있다.

 

요담을 이어 유다왕이 된 아하스는 산당에서 제사와 분향을 하는 악에 더하여 이방인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한 악한 왕이었다. 열왕기 기록에 따르면 아하스는 아람의 공격을 막기 위하여 앗수르왕 드글랏 빌레셀에게 성전과 왕궁 곳간의 보물을 보내어 아람을 쳐달라고 부탁한다. 유다 왕중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악한 왕이었던 아하스의 시대에 하나님이 유다의 왕이되시어 유다를 공격하는 두 왕을 멸망시키실 것이며 심지어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계시가 주어진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소망은 언제나 하나님이 그 언약백성에게 베푸시는 무조건적인 언약적 자비인 것이다.

 

이사야 7장

닥치고 성경/이사야

2019-09-22 19:45:46


이사야 7장

 시리아와 북이스라엘 연합군이 예루살렘을 치려고 올라왔을 때, 아하스와 백성들의 마음은 마치 거센 바람 앞에서 요동하는 수풀처럼 흔들렸다. 주님은 이사야를 아하스에 보내 그들을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라고 이르셨다. 그런데 주님은 이사야를 보내면서 그의 아들 '스얄야숩'을 데리고 가라고 명하셨다. 주님은 아하스가 믿지 못할 것을 아시기에 징조를 보여주시려고 하였지만 아하스는 징조구하기를 거절했다. 아하스는 주님을 시험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 속마음에는 이미 앗시리아의 도움을 얻어 이 위기를 극복해나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아하스는 시리아와 북이스라엘 연합군의 공격이라는 눈에 보이는 현실에 압도되어 자기의 합리적인 생각과 꾀로 그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는 눈에 보이는 현실 너머에 계시는 주님과 주님의 약속을 의지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다윗의 탁월함이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부각된다. 다윗은 언제나 현실을 바라보지 않고 현실 너머에 계신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다윗은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않고 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신과 함께 하시는 주님의 뜻을 분별하여 행동했던 사람이다. 결국 이것은 이스라엘의 왕이 누구인가라는 문제와 맞닿아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시며 자신은 그분의 종임을 늘 잊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아하스는 스스로 이스라엘의 왕노릇을 하며 주님의 명령에 귀를 기을이기 보다는 자기 꾀로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하려고 한 사람이다.

 

   아하스가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징조 구하기를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아하스에게 징조를 주신다. 그것은 한 여인이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아들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라는 징조였고, 이 아이와 관련되어 두 가지 소식이 전해진다. 하나는 이 아이가 잘못된 것을 거절하고 옳은 것은 선택할 나이가 될 때에(성년이 되기 전이란 의미로 보면 아마도 13년 정도의 기간을 가리킬 것이다.)  그 아이가 버터와 꿀을 먹게된다는 소식이다. 다른 하나는 그 아이가 잘못된 것을 거절하고 옳은 것을 선택할 나이가 되기 전에 이하스가 두려워하던 시리아와 북이스라엘이 멸망한다는 소식이다. 문제는 첫번째 소식인데, 이것은 유다가 앗시리아로 말미암아 전무후무한 재난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하스가 주님을 의지하는 대신 앗시리아를 의지했기에 주님은 앗시리아로 인하여 유다가 엄청난 재난과 고통을 겪게 하실 것이다. 임마누엘이란 이름을 가진 아이가 버터와 꿀을 먹게 된다는 말은 앗시리아로 인해 유다가 황무지가 될 것이고 그 땅에 남은 자들이 목축을 통해 버터와 꿀을 먹고 살게된다는 의미일 것이니 이는 곧 유다가 당할 재난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여기서 임마누엘이란 이름을 가진 아이는 특정한 인물이 아니라 유다가 앗시리아에게 재난을 당한 후에 그 땅에 살아남은 자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사야의 아들의 이름 '스알야숩'이 의미하듯이 이 남은 자들은 주님께 돌아올 것이며, '임마누엘'이란 이름이 의미하듯이 주님은 이 남은 자들과 함께 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