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2장 하나님의 시험
창세기 22장 하나님의 시험
Tolle Rege/창세기
2011-05-11 18:27:18
하나님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셨다. 하나님이 이런 기이한 명령을 하신 이유를 성경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로 설명한다.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에게 이런 시험을 하신 것일까? 이 시험이 왜 아브라함에게 필요했던 것 일까? 이것은 도저히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잔인한 명령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가 납득하지 못한다 해도 이런 시험이 아브라함에게 반드시 필요한 시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인 이삭의 죽음은 곧 하나님의 약속의 무효화를 의미하는 것 아닌가? 아브라함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번성하는 일은 육신의 자녀인 이스마엘이 아니라 약속의 자녀인 이삭을 통하여 성취되어야 하는 것이 분명한데 이삭을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런데 이 이해하기 힘든 하나님의 명령에 아브라함은 즉각적인 순종을 한다. 성경은 아브라함에게 있을 법한 어떤 망설임도 기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즉각적으로 순종한 아브라함은 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떻게 이해하였을까? 신약성경은 죽은 자 가운데서도 다시 살리실 것을 아브라함이 믿었다고 해석한다. 아뭏든 아브라함은 이삭의 죽음이 하나님의 언약을 무효화하지 못할 것임을 믿었던 것이 분명하다. 아브라함의 이런 믿음은 갑자기 생긴 것이라기 보다는 갈대아 우르를 떠난 이후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단련된 것이고 이삭의 출생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반드시 언약에 신실하신 분임을 체험한데서 나온 것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금 믿음의 본질적 성격을 보게되는데 믿음은 단순히 약속의 성취를 바라는 것만이 아니라 약속을 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의뢰이며 그 신실하심과 인자하심을 의지하는 것임을 보게된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다 이해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아니 이해했기 때문에 순종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해를 조건으로 하는 순종은 참된 의미의 순종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이전 같으면 마땅히 반문하고 의문을 제기했을 법한데 이번에는 아무런 질문도 없이 즉각적으로 순종한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순종이 그의 이해에 기초하기 보다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시험의 목적은 아브라함에게 바로 이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순종을 가르치시려고 한 것 아닐까? 그리고 아무리 약속의 씨가 준비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씨가 절대적인 순종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나라는 이루어 질 수 없다는 무서운 진리를 가르치시려고 한 것이 아닌가?
아브라함은 이 시험의 통과를 통하여 그 진리를 터득한 자임을 입증하였다. 그러나 성경의 이 기록은 우리 현대의 그리스도인에게도 동일한 시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순종이 없이는 하나님나라는 이루어 지지 않는다는 무서운 진리를 말이다. 이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나라를 완성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 아들이신 그리스도 예수가 아닌가? 가능하면 이 죽음의 잔을 피하고 싶어했던 예수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까? " 라는 죽음앞의 절규는 그리스도 예수의 순종이 납득에 기초한 조건적 순종이 아니라 납득과 관계없는 절대적이고 무조적인 순종이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그리스도 예수가 이루신 하나님나라는 이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순종으로 오늘날 우리를 부르고 있지 않는가? 사실, 첫 인류가 선악과 명령을 범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엄밀하게 보면 선악과 명령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뱀에게 한 하와의 대답에는 자신이 그 명령을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불만이 암시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선악과 명령을 순종하기 위해서는 그 명령에 대한 납득이 아니라 그 명령을 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경외심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선악과 명령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의 정당한 관게의 유지 발전을 의도하신 것이라면 선악과 명령도 언약법적 성격을 가진 것이다. 비록 그 명령을 납득하지 못해도 명령하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 명령에 순종할 때 비로서 하나님의 창조목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선악과 명령은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 경외함을 가르쳐 줌으로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언약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시금석이 되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과 하와의 실패는 결국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절대적 무조건적 순종의 실패였고 이것이 결국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의 파괴를 초래한 바 결국 죄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의 실패 그 자체요 그 결과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성경에서 말하는 죄란 관계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 네가 네 아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분명히 하나님의 시험의 목적이 하나님 경외함으 무엇인지를 가르치려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하나님 경외함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순종임을 보여준다. "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게 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아브라함의 이런 언약적 행동에 대하여 하나님도 언약적 행동으로 반응하실 것을 맹세로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이미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더 높고 확실한 차원으로 발전시키신 것이다. 여기서 이전의 계시가 반복되면서 새로운 계시가 더해지는데 그것은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고대 근동에서 성문을 차지한다는 것은 성 자체를 정복하는 것에 해당한다. 결국 이것은 씨의 순종을 통하여 땅이 정복되는 하나님나라의 도래에 대한 약속인 것이다. 그래서 창22장은 순종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의 성격을 명백하게 계시해준다. 여기서 또한 새롭게 드러난 계시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숫양이 이삭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려지는 최초의 대속적 죽음의 모습이다. 이삭을 대신하여 죽임을 당하는 숫양의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이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계시하셨다고 해석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래서 네 씨가 대적의 성문을 얻으리라는 계시가 함께 더하여 진 것은 이런 배경에서 일 것이다. 인간의 아들의 죽음을 대신한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 아브라함의 무조건적 절대적 순종,,, 아브라함의 후손 예수의 무조건적 절대적 순종,,, 이런 맥락에서 이브라함의 후손 이삭의 죽음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숫양인 또 다른 아브라함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대신된 것이다. 그래서 천하만만이 네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 약속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추기 2011. 11. 19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씨의 약속에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한 것이었고 이브라함은 성공적으로 이 시험을 통과하였다. 사실 약속의 자녀인 이삭이 죽음은 씨의 약속뿐만이 아니라 땅의 약속을 포함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현실적으로 무효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시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넘어선 약속하신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무조건적인 순종을 요구하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선악과 금령을 통하여 아담과 그 후손들에게 가르치시려고 했던 것이고 하나님의 창조목적인 하나님나라는 바로 이런 순종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무리 씨가 번성하고 아무리 땅이 주어진다고 해도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씨가 하나님에게 순종하여 그 땅을 다스릴 때만이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씨와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그 뜻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종인 것이다. 우리는 이삭의 번제사건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그래서 이삭의 번제사건의 시험을 아브라함이 통과한 것은 아브라함에게 순종을 가리치시는 하나님의 오랜 훈련과정의 종료를 의미하는 것이며 비로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되시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언약의 목적이 성취된 것이다. 믿음의 본질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 곧 그분에게 자신을 온전히 의존하는 것이며 오직 그분을 자신의 주인으로 여기며 그분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이런 믿음을 통하여만 이 땅에 임할 것이다.
창세기 22장
닥치고 성경/창세기
2019-10-10 21:03:15
창세기 22장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는데 그것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천청벽력과 같은 명령이었다. 놀랍게도 아브라함은 한마디 토도 달지 않고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일을 감행한다. 이것은 이전의 아브라함과 매우 다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씨와 땅의 약속을 주실 때 믿기는 믿었지만 그 믿음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한 믿음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시험하시는 목적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가르치시려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을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필요한 믿음이 무엇인지를 하나님은 이 시험을 통하여 가르치시려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신 것이다.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서 태어났으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이삭을 통하여 성취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삭을 번제로 드린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며 또 어떻게 이루어진단 말인가?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고 작정하였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신 믿음이고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모든 믿는 자의 조상으로 우뚝 세워진 이유였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믿음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이며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라고 인정을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약속하신 하나님께 대한 전적이고 무조건적인 충성과 헌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은 납득되어야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납득 여부와 관계없이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으며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은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여 취해야 할 정당한 태도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이며 사람은 이 믿음의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신 다스리는 권세를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담이 실패한 지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아담은 바로 이것을 배워야 했으나 실패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선악과 금령을 주신 것은 바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처럼 만물을 다스려야 할 사람에게 순종을 가르쳐 주시려고 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은 바로 아담이 실패한 지점을 통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을 이루실 것을 맹세하신다. 그 약속은 일차적으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어 그의 씨가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그 대적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하는 것이다. 아담은 그 대적에게 패배를 하였지만 아브라함의 후손은 대적에게 승리할 것이라고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를 하셨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후손의 승리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다. 이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준행하였기 때문이다. 약속이 없이는 믿음은 있을 수 없지만 믿음이 없이는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 경륜이다.
[추기]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희망에 찬 21장의 모든 것을 일시에 원점으로 돌려버리는 것 같다. 오랜 기다림 끝에 이제 씨의 약속이 이삭의 출생으로 겨우 가시화되었는데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이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일까? 그것은 아브라함이 의지할 것은 이삭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약속뿐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의 실체임을 가르쳐 주시려는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17절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다고 말한다. 이삭을 드린 아브라함의 믿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요 약속에 언제나 신실하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었을 것이다. 이삭이라는 존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중요하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사람의 믿음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의 믿음을 통하여 자신의 약속을 이루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알았다고 말씀하심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해 주신다. 그리고 이어지는 16-18절에서 다시금 이전 부터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맹세로 다시금 확증하여 주신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이 독자로 아까지 않은 것,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한 것이 이 약속이 성취되는 이유인 것 처럼 말씀하신다. 이는 분명히 하나님의 약속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믿음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확인시켜준다.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에도 매이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지며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약속이 사람의 믿음을 통하여 이루어지도록 섭리하시며 그것을 기뻐하신다. 이것이 하나님나라의 분명한 진리이며 아브라함 이야기는 이 진리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