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사사기

사사기 13장 삼손이 준비됨

메르시어 2023. 3. 16. 15:12

사사기 13장 삼손이 준비됨

Tolle Rege/사사기

2011-07-01 21:10:06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주셨다. 여호와의 목전에서 행한 악이란 가나안의 잡신을 섬긴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과 섞여 살면서 가나안 잡신을 근본적으로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하나님이 40년동안이나 이스라엘을 블레셋에 붙이셨다. 오랜 세월 이스라엘은 종노릇에 익숙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고통 가운데 여호와께 부르짖지도 않았지만 하나님은 다시 삼손을 통하여 언약적 자비를 준비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 붙이셨지만 그것은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는 언약적 징계였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아니할지라도  하나님은 자신이 애굽에서 건져내사 자유를 주신 백성을 언제까지나 이방의 종노릇하게 버려두실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특별히 택하사 자유를 주신 백성, 하나님의 안식으로 초대된 백성이 안식은 커녕 자유도 없이 다시 종노릇하는 이 답답한 세월이 사사기의 시대인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가 없다면 이스라엘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을 것이다.

 

삼손의 경우는 이전의 다른 사사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특별한 준비속에 출생되고 있다. 여호와의 사자를 통하여 단 지파의 미노아의 아내에게 출생 예고가 주어졌는데    그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 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될것이며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약속이 주어진다. 원래 나실인은자발적인 헌신의 제도였는데 태에서 나옴으로 부터 나실인으로 정해진 것은 매우 독특한 일이다. 삼손의 출생 기사는 마치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듯 하다. 미노아의 아내가 불임의 절망적 상태에서 잉태하는  생명이 부어지고 태어날 아이가 특별한 나실인으로 구별된 것처럼 이스라엘은 절망적인 애굽의 속박에서 기적적으로 해방되었으며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특별히 구별되었던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삼손의 출생 기사를 통하여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베푸실 하나님의 구원이 얼마나 특별한 언약적 자비로 준비되고 있는지를 보여주신다.

사사기 13-15장

닥치고 성경/사사기

2019-10-31 23:02:12


사사기 13-15장

 삼손 이야기는 입다의 경우와는 매우 상반된 모습을 보여준다. 입다기 언약적 능동성을 통한 성공을 보여준다면 삼손은 언약적 수동성을 통한 실패를 보여준다. 삼손은 이스라엘의 사사중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세심한 계획 가운데 준비된 사람이었다. 태어날 때 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으로서 하나님은 그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세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로 준비하셨다. 삼손이 블레셋 여자에게 장가를 들겠다고 한 것으로 보면 당시에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통혼하는 일이 흔히 있었던 것 같다. 삼손의 부모는 이를 반대했지만 삼손은 결국 불레셋 여자를 좋아해서 아내로 삼고 말았다. 삼손의 이런 태도는 자신이 나실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구별된 자임을 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이 일로 인해 블레셋 주민들과 삼손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다. 주님의 영이 삼손에게 임하므로 삼손은 블레셋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혼자의 힘으로 블레셋과 싸웠는데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괴력을 당해낼 수 없었다. 블레셋은 쳐올라와서 유다 땅에 진을 치고 레히 지방을 짓밟았다. 그러자 유다 사람들은 블레셋이 두려워 삼손을 붙잡아 그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들은 블레셋의 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삼손을 잡아서 블레셋에 넘기는 일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였으니 당시의 이스라엘의 비굴한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삼손은 혼자서 나귀 턱뼈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 천명을 죽일 수 있었다. 이스라엘이 모두 블레셋을 두려워하고 그들의 지배를 당연시하는 상황에서 삼손 홀로 블레셋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혼자 힘으로 그들을 무찔렀다. 그러나 이것은 삼손의 열심이나 담대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주심이었고 삼손이 이스라엘을 구할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삼손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하시려는 하나님의 열심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