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뱁티즘에 대한 소고
아나뱁티즘에 대한 소고
참고서적 : 스튜어트 머레이 “이것이 아나뱁티스트다(The Naked Anabaptist)”
존 D. 로스 “ 믿음(메노나이트의 신앙과 실천)”
1. 크리스텐덤(Christendom)과 포스트 크리스텐덤(Post- Christendom)
아나뱁티즘을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단어가 크리스텐덤이다. 왜냐하면 16세기에 시작된 아나뱁티즘은 크리스텐덤에 대한 반대로부터 촉발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크리스텐덤을 근본적으로 비성경적 비복음적 체계로 간주했고 그 속의 비성경적, 비기독교적인 교리들과 행동양식들을 거부했다. 그들은 크리스텐덤이 예수를 신앙의 중심에서 변두리로 몰아냄으로써 기독교 신앙을 심각하게 변질시켰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크리스텐덤이 교리와 신조를 강화하고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누락시켰다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크리스텐덤 세계에서 예수의 삶과 가르침은 비현실적이고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크리스텐덤 교회가 산상수훈을 영적 비유적으로 해석하여 실제로 실천될 수 없는 것이며, 특정한 수도자들이나 미래의 하나님나라에 해당하는 삶이라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나뱁티스트들은 크리스텐덤 교회들은 예수를 단지 구원자로만 높이고 예수의 삶과 가르침은 따르지 않음으로써 예수를 신앙의 중심에서 소외시켰다고 말한다. 그들은 종교개혁자들도 예수의 속죄사역만을 강조하고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또한 그들은 종교개혁이 크리스텐덤을 개혁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종교개혁은 단지 중세의 거대한 통일된 크리스텐덤을 여러 개의 작은 크리스텐덤들로 나누어놓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종교개혁의 주류 분파들이 국가교회의 형태를 취한 것이 사실이고 이 작은 규모로 분리된 크리스텐덤들 사이의 정치적, 종교적 갈등이 한 세기에 걸친 종교전쟁으로 촉발된 것이다.
이제는 교회와 국가가 분리되는 포스트 크리스텐덤 시대가 왔고 크리스텐덤 세계에서 세상을 지배하던 교회는 세상에서 소외되고 있다. 교회는 이제 더 이상 크리스텐덤에 의존할 수 없는 시대다. 포스트 크리스텐덤 시대에 기독교는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주류에서 비주류로 몰려났다 .그러나 포스트 크리스텐덤의 도래는 기독교가 새롭게 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제 기독교회는 크리스텐덤의 부정적 유산을 인식하고 거부해야 한다. 최근의 역사적 예수 연구는 크리스텐덤의 껍질을 벗기고 예수를 새롭게 발견하려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그 연구방법에 문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예수의 역사적 삶 자체가 논쟁의 중심에 세게된 것은 긍정적이라고 본다. 최근의 이머징 처치들도 예수를 믿음의 대상만이 아니라 본받고 따라야 할 삶의 기준으로 본다. 이제 신조와 교리 속의 예수가 아니라 복음서 속의 살아있는 예수를 발견해야 할 시대다. 예수 따름(Jesus following)은 아나뱁티스트 전통의 중심 주제다. 16세기 아나뱁티스트의 지도자인 한스 뎅크는 삶으로 예수를 따르지 않는다면 예수를 진정으로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적 경험이나 교리적 전통은 실천적인 제자도를 통해 검증되어야 한다. 이런 전통이 종종 행위 구원으로 비난받기도 했지만 아나뱁티스트들에게 예수는 예배의 대상인 동시에 따라가야 할 대상이며 신자의 삶의 근원이었다.
2. 성경 해석의 전통
첫째는 아나뱁티스트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중심계시라고 믿기에 예수 중심적 접근법(Jesus oriented approach)으로 성경을 해석하려 한다. 그들은 신구약 성경을 모두 예수중심으로 해석하고 예수의 가르침과 모범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구약은 앞으로 오실 예수를 가리키고 신약은 이미 오신 예수를 회고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은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이해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이런 성경해석 태도는 구약성경에 대한 경시나 신구약 성경의 조화에 대한 무관심을 초래하기도 했다.
둘째는 공동체가 함께 성경을 읽고 해석한다는 것이다. 아나뱁티스트 운동은 성경이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보급되는 16세기에 일어났기에 그들은 개인의 성경해석의 자유를 옹호했고(물론 그들은 개인주의적 해석을 경계했고 공동체의 평가와 검증을 중시했다.) 또한 그들은 바울 서신보다는 예수의 삶과 가르침이 나타난 복음서의 예수 이야기를 중시했다. 그들은 성경연구를 신학자나 설교자에 의존하기 보다는 회중의 공동체적 행위로 간주한다. 이런 태도가 가진 단점도 있는 그것은 학자들에 의존하지 않으므로 성경에 대한 더 나은 이해를 돕는 자료나 전통의 도움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개인의 성경해석의 자유를 인정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적으로는 이 자유를 회수했다. 그러나 아나뱁티스트들은 이 자유를 견지했고 그 결과 성경해석과 적용에 대한 견해차이로 분열을 경험하기도 했다.
셋째는 성경 해석과 함께 실천하는 제자도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성경 해석은 성경적 실천을 위한 것이었다. 아나뱁티스트 전통의 핵심은 제자도를 강조한 것인데 그들은 종교개혁자들이 성경해석은 중시하면서도 제자도를 경시한다고 비판했다. 그들은 제자도는 성경해석과 실천을 통합해준다고 믿는다. 초기의 아나뱁티스트들은 성경해석자들의 무실천을 비판하면서 성경적 가르침의 실천여부가 성경해석의 정당성을 부여해준다고 주장했다.
3. 교회 공동체
아나뱁티스트들은 크리스텐덤에 저항하면서 대안 공동체를 형성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아나뱁티즘의 이런 전통은 포스트 크리스텐덤 시대에 필요한 공동체가 무엇인지를 제시해 줄 수 있다. 아나뱁티스트들에게 교회란 그 무엇을 위해 헌신된 공동체였다. 그 무엇이란 바로 예배, 제자도, 선교, 친교, 상호책임 등이다. 교회란 바로 이것을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이기에 그들은 상호합의와 은사에 근거한 지도력을 중시했다. 그들이 보기에 크리스텐덤의 전통을 지닌 교회들은 보수적, 독재적, 가부장적인 지도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구성원들도 자신들을 제자도와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동역자로 여기기보다는 단순히 교회 다니는(churchgoing) 사람들로 여긴다고 비판한다. 종교개혁자들과 아나뱁티스트들 간에는 교회의 본질과 제자도에 중요한 신학적 차이점이 존재한다. 아나뱁티스트들은 은혜가 단순히 의인이 아니라 신자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해한다. 또한 그들은 예정론을 부인하고 행위와 믿음을 분리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들에게 교회는 가라지와 알곡이 공존하는 혼합사회가 아니라 오직 헌신된 자들로 구성된 공동체였다. 16세기에 유아세례를 거부한 것은 엄청난 저항이었다. 유아세례를 거부한 사건은 사람이 태어나면서 자동적으로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믿고 헌신하는 결단을 선택을 통해 신자가 된다는 자유교회 운동의 시작이었다. 세례가 신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확신은 아나뱁티스트들의 교회에 대한 이해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그들에게 교회란 예수를 믿고 따르기로 작정한 자들로 이루어지는데, 세례란 바로 이런 작정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야세례를 크리스텐덤의 유산으로 본다. 그들은 유아세례는 크리스텐덤 체제에서 목회적, 정치적 이유로 합법화되었을 뿐이고 성경적 근거도 없다고 본다.
아나뱁티스트들에게 상호책임성은 진정한 교회의 중요한 표지중의 하나였다. 그들은 종교개혁자들과 마찬가지로 복음의 신실한 선포 그리고 성례전의 바른 집행을 교회의 표지로 받아들였지만 이에 더하여 상호책임성을 3번째 표지로 간주했다. 그들은 종교개혁교회들의 실패는 상호책임성의 부재로 본다. 그들은 상호책임성이 크리스텐덤의 부정적 유산을 극복하는 대안이라고 본다. 크리스텐덤 체제에서는 상호책임성을 실천하는 과정이 성직자의 권위의 이행으로 왜곡되었지만 아나뱁티스트들은 상호책임성이야 말로 진정한 친교의 근간이며 이는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실천이 가능하다고 여겼다.
아나뱁티스트 전통에서 합의에 기초한 공동체적 리더십과 은사를 따른 역할 분담이 중시된다. 그들이 보기에 크리스텐덤 교회에서 리더십은 성직자들에 의해 독점되었고 종교개혁자들이 만인제사장을 주장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성직자 중심의 리더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나뱁티스트 전통에서 공동체 안의 다양한 목소리와 구성원들의 참여는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지도자의 모범과 행동이 협의에 따른 양식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들은 독재적 지도력은 공동체에 부적당하여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상반된다고 믿었기에 공동체 안에 남녀노소의 평등한 권리를 중시했다.
아나뱁티스트들은 성찬식의 신학적 의미를 츠빙글리를 따라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는 행위로 이해한다. 그러나 그들은 성찬식에 독특한 의미를 추가했는데 그것은 성찬을 매일의 제자도와 공동체 안에서 나눔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행위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식사와 성찬을 분리하기 않고 공동체 식사의 맥락에서 성찬을 나눴다.
4. 제자도와 사회정의
아나뱁티스트 전통은 역사적 상황으로 인해 내면적 영성과 교회중심이라는 오해를 받아왔지만 그들을 초기부터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정의의 실현을 위해 폭넓게 활동했다. 초기의 아나뱁티스트들은 사유재산을 부인하고 폭력을 거부했다. 크리스텐덤 체제에서 십일조는 혁신적 제도로 도입되었고 이로 인해 교회는 극도로 부유한 기관이 되었지만 가난한 자들의 경제적 고통은 가중되었다. 16세기 농민운동은 복음의 참 의미에 영감을 받은 자들이 교회와 사회 속에 만연한 경제적 사회적 악습에 대한 저항이었다. 모든 아나뱁티스트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모라비안 후터라이트들은 공동재정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사유재산 제도를 복음과 대치되는 것으로 이해하여, 최소한의 소유만 개인소유를 인정하고 나머지는 공동체의 공동소유를 실천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나뱁티스트들은 공동재정보다는 상호부조를 실천한다. 그들이 실천하는 상호부조는 자선기부와는 다르다. 자선은 가난한자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지만 불공정한 사회를 개혁하지는 못한다. 상호부조는 자비의 실천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아나뱁티스트들에게 영성과 경제정의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들에게 상호부조는 서구의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에 대한 대안이며 저항이다. 그들은 사유재신이나 개인주의라는 세상의 문화적 규범들을 교회가 따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호부조는 이런 문화적 규범에 대한 저항이며 경제영역에서 실천되는 제자도이다. 그러므로 상호부조는 일방적인 베풂이 아니라 상호의존과 인격적인 유대관계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아나뱁티스트들은 평화를 복음의 핵심으로 여기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비폭력적 대안들을 추구했다. 16세기 중반에 평화주의는 아나뱁티스트 전통의 핵심 가치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선교를 중시하는 그들은 타 종교인들과의 평화적 공존을 위해 종교의 자유를 주장했다. 크리스텐덤 시대에 평화주의는 전적으로 비현실적이었고 반체제적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의로운 전쟁 교리를 주창했고 크리스텐덤 교회는 이 교리를 거리낌 없이 수용했지만 이 교라는 성경이나 초대 교회의 가르침에 근거하지 않았다. 그들의 평화주의는 인본주의나 자유주의의 가치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과 모범에서 나온 것으로서 아나뱁티즘 전통의 확고한 뿌리가 되었다. 그들에게 평화는 복음의 핵심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교적 사명은 온 창조세계에 진정한 샬롬을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정의와 평화주의는 미래에 도래할 하나님나라의 표징이었다.
제자도를 중시하며 일반적 도덕기준보다 더 놓은 기준을 성경에서 찾아내어 실천하려는 아나뱁티스트 운동을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행위로 말미암는 의를 추구하는 자들이라 비난하며 그들에게 새로운 수도자들이란 별명을 붙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종교개혁의 핵심 슬로건인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원리를 아나뱁티스트들이 심각하게 손상시킨다고 생각했다. 이후에 제자도를 문화적 보수주의로, 성경문자주의를 율법주의로 간주되면서 아나뱁티스트들은 율법주의자들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아나뱁티스트들은 왜 종교개혁자들은 예수를 구원의 규범으로 삼으면서 제자도와 교회생활의 규범으로 삼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