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과 구약의 언약신학(1/4)- 송제근
오경과 구약의 언약신학
1부
1장 오경의 신학과 메시지
2장 구약의 근원으로서의 오경
2부
3장 창세기의 신학과 메시지
4장 창세기의 구조와 신학
3부
5장 출애굽기의 신학과 메시지
6장 출애굽기 1-18자의 신학과 메시지
7장 출애굽기 19-24자의 신학과 메시지
8장 출애굽기 25-31,35-40장의 신학과 메시지
9장 출애굽기 32장 1-6절의 주석적 신학적 연구
4부
10장 레위기의 신학과 메시지
11장 현대인을 위한 레위기의 메시지
12장 레위기 1-7장의 신학과 메시지
5부
13장 민수기의 신학과 메시지
14장 민수기 1-10장의 현대적 의미
6부
15장 신명기의 신학과 메시지
16장 신명기의 통일성에 관한 연구
17장 제4계명의 구약적 의미와 현대적 적용
1장 오경의 신학과 메시지
2016-01-23 17:46:13
서문
신학은 본문(text)과 상황(context)의 대화로 이루어지지만 그 대화의 실마리는 늘 본문에서 풀려진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구약과 신약에 대한 왜곡되고 피상적인 이해는 신학의 다른 분야에서도 같은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고 이것은 현실에 하나님나라가 임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목회 현실에서는 큰 혼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오경의 신학을 이해하기 위한 관건은 언약(berith)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언약에 대한 근본적이고 전혀 새로운 이해를 가지는 것이다. 언약에 대한 이해와 함께 그것이 하나님나라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명확히 알 때 구약의 근본인 오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경 전체와 그 각 부분이 명백하게 이해될 때 구약 전체를 서로 유기적인 역사로 이해하기가 쉬워지고 나아가 오래된 문제인 구약과 신약의 관계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1장 오경의 신학과 메시지
오경 전체의 메시지는 이 땅위에 하나님나라가 적극적으로 전개되는 역사에 대한 것이다. 오경의 각 책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하나님나라의 형성이다. 오경 연구에서 혼란을 가져오는 것이 성경을 구속사적 관점으로 보는 것이다. 구속의 관점이 오경에 있기는 하지만 오경의 근본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창세기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을 통하여 하나님나라의 씨와 땅이 준비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고 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을 통해 하나님나라의 씨가 완성되는 것을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신명기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을 통하여 하나님나라의 땅이 완성되는 것을 나타낸다. 결국 오경의 신학은 하나님나라가 씨와 땅과 뜻이라는 다양한 측면에서 적극적인 방식으로 역사속에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오경의 이런 신학적 기조를 알지 못하면 오경 각 권속에 있는 다양한 내용과 장르에 대한 총체적인 해석은 불가능해진다.
하나님나라가 역사 속에서 형성되는 구체적인 제도 혹은 수단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언약이다. 그러므로 오경은 하나님의 나라를 역사상에서 구체적으로 이루는 제도인 언약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오경을 비롯한 구약 전체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나타나는 언약은 인격 당사자인 여호와와 이스라엘사이에 공적인 관계가 법적으로 형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공적인 관계란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관계를 의미한다. 오경에는 세가지 언약이 나오는데 창세기의 족장 언약, 출-레-민의 시내산 언약 그리고 신명기의 모압언약이다. 족장 언약은 하나님나라의 씨와 땅을 준비하는 차원의 예비적 언약이고 시내산 언약은 하나님나라의 씨가 완성되는 것을 나타내며 모압언약은 하나님나라의 땅이 완성되는 것을 나타낸다. 이 세가지 언약으로 하나님나라는 준비되고 출발하여 완성에 이르게 된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언약과 율법의 관계를 아는 것이다. 율법은 언약이라는 공적인 관계가 형성되고 난 뒤에 그 언약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언약은 율법의 상위개념이고 율법의 권위를 근본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개념이다. 즉 구약의 법은 그 자체로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체결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약의 울법을 명확하게 정의한다면 언약법인 것이다. 구약의 율법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만민 중에서 택하여 구속하시고 당신의 백성을 삼으신 것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신 은혜의 방편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노예되었던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선택하여 가장 존귀한 자로 삼으신 뒤 그들이 아무렇게나 살게 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니라 존귀한 자 답게 살도록 주신 근본법이 십계명(출20장) 이고 구체적인 법이 시내산 언약법(출21-23장)인 것이다. 이어서 출애굽기 25장에서 민수기10장 까지 나타나는 율법은 시내산 언약법이 인간들의 실수로 깨어졌을 경우 그것을 회복할 방편으로 주신 제사법이다. 그리고 신명기에 나타나는 모압언약법은 시내산 언약법을 대체하고 발전시킨 것이다.
오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현재 있는 위치인 광야-모압의 관점에서 보면 시간상 세가지 구조로 서술되었다. 창세기는 과거의 역사를, 출-레-민은 현재의 역사 그리고 신명기는 미래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창세기는 창조라는 주제 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이 형성되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와 그 형성과정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 이전인 창세기 11장까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의 죄로 얼룩지고 파괴되어 하나님도 심판하실 수 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출애굽기의 주제도 출애굽이라는 사건이라기 보다는 출애굽을 통해 이루어진 하나님나라의 씨가 공적으로 형성되는 시내산 언약이다. 성막에 대한 규례가 시내산 언약체결 직후에 나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왜냐하면 언약관계가 형성된 후에 언약의 당사자가 함께 사는 장소가 필요한데 이 장소가 바로 성막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막의 더 정확한 표현은 증거막이다. 왜냐하면 성막은 언약을 증거하는 장막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막안의 법궤도 증거궤, 증거궤안에 있는 법판도 증거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런 용례들은 성막이 단순히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을 증거하는 장소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민수기는 오경의 근본 주제인 하나님나라 씨의 완성을 나타낸다. 민수기는 하나님나라의 씨는 숫자가 많아졌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언약 백성의 현재적인 순종을 통해서 완성된다는 진리를 말하고 있다. 신명기에 나타나는 모압언약은 출애굽 2세대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을 전제로 하여 시내산 언약을 갱신한 언약이다. 이 언약은 모압에서는 모세가 언약의 법적인 요소를 준비하고 세겜에서는 여호수아가 언약의 제의적 요소를 완결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모압언약의 이런 이중적 구조는 아주 독특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압 언약을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모압-세겜언약인 셈이다.
2장 구약의 근원으로서의 오경
2016-01-23 17:47:55
2장 구약의 근원으로서의 오경
성경의 두 계시인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성경신학의 중대한 과제이다. 오경에 율법이 집중적으로 모여있고 이 울법이 구약의 나머지 책을 형성하는 기초가 되었는데 이것은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율법과 복음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율법을 말하는 구약은 소홀히 하고 복음을 말하는 신약에 집중하는 태도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렇게 구약과 신약을 대립적으로 이해하는 태도는 종교개혁이후 독일신학에서 끊임없이 나타났다. 이와는 반대로 구약과 신약을 동일한 차원에서 바라보는 신학적 입장도 있는데 구약에 나타난 제도적 영성에 관심을 가지는 로마카토릭이나 구약적 제도를 신약적 삶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청교도가 그런 경우이다. 이런 양 극단의 태도는 모두 구약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16세기 종교개혁은 동시대의 르네상스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특히 성경의 문헌학적 연구는 르네상스의 그리스적 고전해독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 결과 종교개혁이후 400년 동안 구약 해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구문학비평 혹은 저등비평과 고등비평의 해석학적 방법이 형성되었고 이러한 왜곡된 해석학적 태도는 구약을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커다란 장애로 작용하였다. 지난 400년 동안 성경학이 이런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데는 개신교 자체의 역사적 경향성과 무관하지 않다. 개신교는 처음부터 제도적인 로마교에 대항하였고 그 결과 눈에 보이지 않는 체제에 치중하였고 이런 태도는 눈에 보이는 제도로 나타난 구약에 대한 편견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구약 해석의 근본적 기초를 다시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약에 대한 오해가 생기고 이것은 신약은 물론 신학 전체와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오경에 나타난 역사는 우주의 기원에 대한 역사나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되는 역사가 아니라 이 땅에 구체적으로 임하는 하나님나라의 역사이다. 그리고 오경은 하나님나라의 역사는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합당한 역사적인 수단인 언약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오경에는 세가지 언약인 족장언약, 시내산 언약 그리고 모압언약이 나타나는데 이 세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위에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렇다면 오경과 구약의 역사서들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역사서 1부에 해당하는 여호수아서에서 열왕기까지의 약 800년의 기록은 하나님나라를 이루는데 관건은 언제나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충실한가에 달려있다는 불변의 진리를 보여준다. 이 책들 속에서 나타난 하나님나라 역사의 진행원리는 언약 상대방을 향한 언약적 사랑과 신실함이었다. 역사서 2부에 해당하는 역대기, 에스라 느헤미아, 에스더가 기록된 역사적 상황은 역사서 1부의 상황과 전혀 다르다. 이제 하나님의 언약적 심판이 지나가고 언약적 자비가 시작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때 대두된 질문이 옛날처럼 독립된 왕정체제로 돌아갈 수 없는 역사적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무엇인가하는 문제였다. 역사서 2부의 책들은 바로 이 문제를 주제로 기록된 것인데 역대기는 과거의 역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정리함으로써 그리고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는 현재의 역사진행을 기록함으로써 이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결국 역사서 2부의 책들도 모두 오경에 나타난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나라가 진행되는 구체적인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구약의 역사서들은 모두 오경에 나타나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진행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 다음에 생각할 점은 오경과 구약의 나머지 책들인 시가서 그리고 예언서들과의 관계는 무엇인가하는 점이다. 시편은 오랫동안 개인시로 읽혀졌지만 시편의 시인들이 사실은 공동체의 대표의 위치를 가진 사람인 것이 밝혀졌고 그래서 시편의 시들은 개인시가 아니라 공동체적 시인 것이 명백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시편의 주제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의 언약적 행위에 대한 다양한 언약적 반응인 것이다. 그것은 찬양, 감사, 고백, 탄원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 이스라엘의 언약적 삶의 모습이었다. 지혜서(잠언, 욥기, 전도서)는 구약에서 오랫동안 그 진가를 인정받지 못한 책들이었다. 폰 라드나 루터 등은 지혜서를 정경에서 이차적인 자료로 취급하였다. 그러나 이런 오해는 지혜서와 오경과의 관계를 알지 못해서 생긴 것이다. 지혜서에는 공통적으로 '여호와를 두려워함'이란 주제가 등장하는데 이 주제의 출처는 바로 오경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두려운 임재를 경험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지혜의 근본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는데 있다는 지혜서의 주제가 된 것이다. 예언서들은 예언자들의 활동시기와 관계없이 언제나 정죄, 심판 소망이라는 세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 모든 예언서에 예외없이 나타나는 이 세 요소는 모두 오경의 언약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먼저 정죄란 언약법을 어김에 대한 정죄이고 예언자들이 선포한 심판의 메시지는 언약적 저주가 적용된 것이며 소망의 메시지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의 선포였다. 결국 예언서의 세 요소는 모두 언약을 중심으로한 메시지로서 등장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구약의 예언서는 모두 오경의 언약적 기초를 역사의 흐름에 적용하고 발전시킨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3장 창세기의 신학과 메시지
2016-01-23 17:57:49
3장 창세기의 신학과 메시지
창세기는 세상과 인류의 역사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의 시작을 말할 뿐만 아니라 먼 미래의 메시아의 오심과 그의 사역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으며 메시야의 재림을 다루는 요한계시록과도 연결이 된다. 창세기는 이렇게 신약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므로 신구약 성경의 통일성을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창세기에서 시작된 하나님나라의 역사는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를 거쳐서 신명기에서 종합됨으로써 창세기는 그 자체로 독립된 책이 아니라 모세 오경의 서론 역할을 한다. 이런 관점에서 창세기는 신구약 성경 전체의 서론이라고 할 수 있다. 창세기는 책의 제목과 달리 창조 자체에 대한 기록보다는 인간의 타락과 타락이후의 구속 역사에 집중되고 있다. 11장까지는 홍수와 바벨탑 사건에서 보듯이 하나님나라를 악에서 보전하시는 하나님의 소극적 사역방식이 나타난다면 12장 이후는 인류를 구속하려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새로운 조처와 방법들이 나타난다. 한 사람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나라를 새롭게 하시는 역사가 시작되었으니 이는 하나님이 더이상 소극적이거나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하나님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역사에 직접 개입하신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새창조 사역이며 이런 의미에서 창조와 구속은 별개의 사역이 아니다. 후일에 시내산 언약에서 창조 후의 안식이 모압언약에서는 구속 후의 안식으로 동일시되어 나타난 것은 바로 이런 진리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우주의 창조주이심을 계시함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이 창조의 하나님이 바로 이스라엘이 시내산 언약에서 경험했던 바로 그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 엘로힘(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이란 표현은 이스라엘이 경험하여 알고 있는 여호와가 바로 천지를 창조하신 엘로힘(하나님)이시란 의미이다. 하나님은 명확한 질서를 가지고 창조사역을 하셨고 인간은 특별하게도 하나님의 종류를 따라서, 즉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만들어졌다.인간이 하나님 자신을 따라서 만들어졌다는 인간 존재의 탁월성에 대한 계시는 고대근동의 어떤 창조설화에서도 그 유례를 칮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고 선언하였지만 하늘에 대한 묘사는 극히 제한적이고 주로 땅에 대한 묘사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는 창세기의 기록 목적이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사는 땅을 중심으로한 창조사역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인간 창조의 중요성 때문에 창세기는 인간을 중심으로한 역사의 드라마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창조에 있어서 인간은 모든 피조물 중에서 유일한 위치를 차지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 모양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의 실제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본문에 대한 주석적 결론은 하나님의 형상의 가장 중요한 면은 인간이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이 결론이 옳다면 인간에 내재하는 하나님의 형상의 중요한 내용은 인간이 남자와 여자로 존재한다는 것이고 이것은 인간 존재의 복수성이 하나님의 복수성의 반향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것은 삼위 하나님의 복수성과 하나됨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가장 중요한 측면인 것 같이 인간 존재 역시 근본적으로 복수성을 가지며 그런 인간이 다시 하나됨을 이룬다는 선언인 셈이다. 이러한 성경적 인간관은 서구를 지배한 개인 중심의 지극히 이기적이고 독재적인 안간관계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선악과의 존재는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불완전성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의 인격과 자유의 완전성에 대한 증거이다. 선악과는 인간이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은 자유를 가진 존재임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구속사역은 범죄후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숨은 아담과 하와를 찾아 부르시는 하나님의 행동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창세기는 11장에 이르기까지 첫사람 아담의 범죄로 시작된 인간의 타락은 역사가 진행될수록 더 심해진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을 수수방관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나라를 지키시는 일을 하셨다. 그래서 역사가 진행될수록 하나님나라와 세상나라는 분명하게 구분되어 갔다. 특이한 것은 가인의 계보와 셋의 계보가 대조되어 기록되고 있는데 가인계의 후손들은 생존연대가 나타나지 않지만 셋의 계보에서는 생존 연대가 정확하게 표시되어 나타난다. 이는 가인의 계보는 그 삶이 무의미함을 암시한다. 가인의 후예들은 하나님과 아무 관계없이 세상의 문화를 만드는 일에 골몰하였지만 셋의 후예들은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생애의 가장 중요한 의미였다.노아의 홍수 사건은 타락한 세대를 향한 단호한 심판과 동시에 노아를 통한 하나님나라의 보전이라는 하나님의 이중적 사역이었다. 홍수후에 나타난 바벨탑 사건은 인간들이 연합된 중앙집권 국가를 형성하여 인간의 자부심을 만족시키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홍수와 바벨탐 사건이후에 드디어 아브라함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다. 아브라함의 등장은 거의 무너져 가는듯한 하나님나라가 극적인 새출발을 하는 신호탄이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역사는 단순히 한 개인이 부르심을 받고 구원받는 개인 역사의 관점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속역사가 전혀 새로운 경륜으로 전개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아브라함으로 시작된 하나님나라의 역사는 이삭과 야곱과 요셉을 통하여 준비되고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언약맺음 그리고 가나안을 약속의 땅으로 받음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는 엄청난 복이 약속되었는데 그 복은 아브라함 개인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나아가 천한 만민에게 주어질 복이었다. 그러므로 후대에 사는 우리가 또 하나의 아브라함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그 복에 동참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궁극적인 약속은 그의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신다는 것이었다. 이 약속은 이미 가나안에 살고 있는 족속들의 제거를 전제하는 것이었으니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가나안 족속들을 쫒아 내시고 그 대신에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주시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하신 가나안 땅의 약속은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을 의미하지만 가나안 족속에게는 심판을 의미하였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구원과 이방의 심판은 한 진리의 양면으로 언제나 구약 역사에 나타났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에 대한 보증으로서 하나님편에서의 서약행위를 하셨고 아브라함에게는 할례를 명하심으로써 아브라함도 서약에 참여하도록 하셨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면 대대로 지켜야 할 할례는 하나님편에서의 언약적 신실함에 대한 인간편에서의 언약 준수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아브라함 언약이라고 부르는데 이 언약은 장차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맺을 본격적인 언약의 기초가 된다. 아브라함 언약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약속에서 출발하지만 언약의 당사자인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할례가 요구되는 일종의 조건성이 부가되어 있다,이 점에서 아브라함 언약과 시내산 언약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과 이스라엘의 조건적인 반응이라는 구조적인 동일성을 가진다. 아브라함의 생애는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명령에서 시작하여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으로 가라'는 명령으로 요약된다. 이삭은 단순한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역사를 이어갈 약속의 씨였다. 약속의 씨를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였다. 이삭이 죽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진다는 아브라함의 믿음이었다. 아브라함의 이런 믿음은 사라가 죽었을 때 가나안 땅에 매장지를 돈을 주고 사는 행동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나라 역사는 수동적이다. 장자 축복사건에서 나타나는 이삭의 수동성은 아브라함의 능동성과 대조된다. 야곱의 경우는 처음부터 아버지 이삭과 달랐다. 이삭과 달리 야곱은 인간적 능동성으로 하나님나라를 이루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가 치른 댓가는 지루하고도 비참한 것이었다. 결국 야곱의 모든 생애는 속이는 자가 속임을 당한다는 주제로 요약된다. 그러나 야곱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열두지파가 준비됨으로써 하나님나라 전체의 중요한 골격이 형성된다는 것이 야곱을 통한 하나님나라 역사의 의미이다. 요셉의 생애의 의미는 이스라엘 전체가 애굽에 정착하여 민족으로 성장하는 것을 준비하는 사명을 다했다는 점이다. 그는 공동체 내부와 외부에서 오는 고난 그리고 자신의 작은 의를 주장하는데서 오는 고난을 믿음으로 이겨내었다. 요셉이 이런 고난들을 모두 통과하였을 때 하나님은 요셉을 들어 하나님나라의 일에 크게 사용하신 것이다. 요셉으로 말미암아 애굽에 들어간 야곱의 70명의 식솔이 무수한 하나님나라의 씨들로 번성하게 되었다. 장차 그들이 출애굽하여 하나님과의 근본적인 언약인 시내산 언약을 맺음으로 하나님나라의 씨가 완성될 것이며 마지막으로 모압언약을 통하여 하나님나라의 땅이 완성될 것이다. 요셉은 장차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날 때 자기의 유골을 가지고 가라고 명함으로써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바라보았다.
4장 창세기의 구조와 신학
2016-01-23 17:59:34
4장 창세기의 구조와 신학
오경은 다섯권으로 된 하나의 책이라는 독특한 성격때문에 오경연구에는 하나인 다섯권의 책의 신학적 통일성과 다양성이 근본적인 주제가 된다. 오경의 신학은 궁극적 목적으로서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합법적 역사적 방법으로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이다. 목적인 하나님나라와 수단인 언약은 다섯권의 책에 다양하게 분산되어 존재한다. 창세기에서는 족장언약 혹은 아브라함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나라의 씨와 땅의 준비가 완료되며 출-레-민에서는 시내산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나라의 씨가 완성되며 신명기에서는 모압/세겜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나라의 땅이 완성된다. 오경의 서론격인 창세기는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나라가 어떻게 필연적으로 시작되는가를 나타낸다. 창세기에 뚜렷하게 나타나는 구조는 창세기에서 10회나 사용된 톨레도트(toledoth)구조이다. 창조로 부터 시작되어 아담, 노아, 노아의 아들들, 셈, 데라, 이스마엘, 이삭, 에서, 야곱으로 이어지는 10가지 톨레도트는 출애굽을 거쳐 이제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는 모압광야에 선 이스라엘의 근본이 어디에서 나왔는가를 보여주려는 의도를 가진다. 이 톨레도트를 통하여 이스라엘은 창조의 하나님이 바로 출애굽하면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은 언약의 여호와이심을 알게되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하나님나라의 역사를 진행시키시는 분이심이 명확하게 나타난 것이다.
창세기 1-11장의 원시역사는 교대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반면에 12장-50장의 족장들의 역사는 동심원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교대적 구조를 가진 원시역사는 그 속에서 하나님나라의 역사가 소극적, 부정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반복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반면에 동심원적으로 나열된 족장들의 사이클은 하나님의 적극적인 역사개입을 통하여 하나님나라가 전개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일반적으로 동심원적 구조는 그 중심에 핵심적 메시지가 있는데 아브라함 사이클의 중심에 아브라함 언약이 배치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창세기 15장과 17장은 그 시간적 간격때문에 하나의 사건임을 자각하지 못하였는데 이런 동심원적 구조를 통하여 이 사건이 아브라함 사이클의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아브라함 언약임을 밝혀진 것이다. 창세기는 1-11장의 원시역사와 12-50장의 족장 역사로 나누어진다. 원시역사가 대부분 실패로 이어진 반면에 족장 역사는 거의 성공과 성취로 이어졌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경륜의 변화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경륜이란 하나님이 시공속에 하나님나라를 진행시키시는 계획이다. 창세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나라 진행의 역사초월적인 요소로서 우주와 역사는 인간들의 무의미한 행동의 연속으로 어디로 흘러갈 지 모르는 실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확실한 섭리속에 진행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동안 경륜이란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신학과 주석이 역사를 모두 인간의 행동과 책임으로만 설명하려고 했기 때문이고 그 결과 하나님을 역사밖으로 밀어내려는 전통이 너무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창세기에 나타나는 경륜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원시역사에서 나타나는 소극적, 수동적, 부정적으로 하나님나라를 진행시키시는 1 경륜이고 다른 하나는 족장역사에서 나타나는 적극적, 능동적, 긍정적으로 하나님나라를 진행시키시는 2 경륜이다. 2경륜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이 하나님나라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운용하시는 방식을 도입하셨다는 점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이다. 언약은 하나님의 적극적인 역사 개입의 의사표현이다. 그러면 창세기에 나타난 아브라함 언약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현재의 뜻에 순종함으로 하나님나라의 씨와 땅이 준비완료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나라의 씨가 준비완료되었으며 사라와 자신의 매장지로 막벨라 굴을 삼으로써 하나님나라의 땅이 준비완료돤 것이다. 아브라함의 이 두가지 위대한 행동은 모두 아브라함 언약에 기초한 언약적 행동이었던 것이다. 모압 광야에 선 이스라엘이 알아야 할 것은 자신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바로 자신들의 조상 아브라함 언약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된 하나님나라의 새로운 경륜이 지금 출애굽 세대에 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단순히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어받는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을 따라서 하나님나라를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언약백성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