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3/3)-톰 라이트
4부 기독교 1세기[11장 케리그마적 교회의 탐구]
N.T. 라이트/NTPG
2015-06-17 14:09:04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제4부 기독교 1세기
11장 케리그마적인 교회에 대한 탐구
1.들어가는 말
예수에 대한 연구가 19세기 신약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었다면 20세기 신약학의 두드러진 특징은 초대교회에 관한 연구다. 하지만 제2성전기 유대교에 비하여 초기 기독교의 역사에 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는데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이런 사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자료가 희박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탐구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슈바이처가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 이후에 오늘날 신약성서를 규범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초대교회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트만은 원시적인 케리그마 공동체에 주목하였고 거기에서 현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신앙을 찾았으며, 그 이후의 학자들도 이런저런 방식으로 불트만이 제시한 과제를 추구해 왔다.
흔적이 거의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초기 기독교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연구에 참여하는 자들이 고정된 그렇지만 확정되지 않은 다음과 같은 거점들에 동의해왔다. 첫째로 초기 기독교를 유대교와 헬레니즘 간의 투쟁 속에서 찾으려던 것. 둘째는 초기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시공으로 이루어진 우주의 종말을 확신했는데 이런 기대가 시들면서 기독교의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견해, 셋째는 나그함마디 문서에 포함된 영지주의 전승들의 발생 시기를 기독교의 초기로 보는 것이다. 이런 거점들에 근거하여 바우어가 시작한 흐름이 있는데 그것은 유대 기독교와 헬레니즘 기독교 간의 긴장이 초기 가톨릭 사상을 통해 해소되었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의 흐름이 하르낙, 슈바이처, 불트만, 케제만, 콘첼만, 가장 최근에는 헬무트 쾨스터에 의해 여러 다른 방식으로 유지되어 왔다. 이들은 기독교가 유대교로부터 나와서 헬레니즘으로 옮겨간 것은 긍정적이고 필요한 조치로서 이미 바울과 그를 지지하는 자들에 의해 수행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초기 기독교의 핵심을 오직 주변적으로만 유대적인 것으로 보고 기독교의 주류는 헬레니즘 세계, 견유학파, 초기 영지주의, 보편적인 지혜전승의 세계에 닿아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초기 기독교 연구의 반대편 스펙트럼에는 초기 기독교를 단순히 이 시기의 다른 유대교 분파와 별로 다르지 않은 유대교의 한 분파로 이해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런 새로운 관점은 사해 두루마리의 발견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대교에 대한 전반적인 태도변화에 기인한 것이다. 과거에 헬레니즘적이라고 분류되었던 현상들이 돌연히 랍비적이라고 재분류되었고 외경과 위경들에서 초기 기독교의 성격을 밝혀줄 수많은 단서들을 발견하였다. 아돌프 슐라터, 데이비스, 예레미야스, 마틴 헹엘, 로울랜드가 이런 관점을 가진 학자들이다. 이런 새로운 관점이 상당수 연구를 지배해왔고 이제 초기 기독교에 관한 연구의 방향이 이 새로운 추세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기울었다. 이제 많은 학자들은 기독교라는 새로운 운동이 철저히 유대적인 성격을 띠었다는 것 그리고 주후2세기 중엽에 유대교와 단절되었다는 것, 이 두 가지 현상을 충분히 설명하는 것이 기독교의 기원을 서술하는 핵심적 내용이라는 견해에 동의하고 있다.
2.과제들과 방법론
초기 기독교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통일적인 틀 안에 있는 자료들의 의미를 제대로 밝혀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재구성은 헬라-로마 세계 내에서의 유대교와 그런 세계 속에서 시작하여 신속하게 비유대적인 세계로 옮겨간 초대교회로 이루어진 역사적 그림조각들을 통합하여야 한다. 또한 그런 재구성은 바울을 비롯한 신약성서 기자들뿐 아니라 이그나티우스, 저스틴, 폴리갑 같은 인물들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맥락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역사적 재구성의 목적은 단순한 연대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런 역사적 사건들의 이면, 곧 관련된 주체들의 목표들, 의도들, 궁극적으로는 세계관들을 밝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적 재구성의 작업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할 일은 관련 주제를 위치시킬 더욱 폭 넓은 역사에 관한 매개 변수들을 확정하는 일이다.
3.거점들: 역사와 지리
나는 이런 역사적 재구성 작업을 위한 확고한 역사적 거점들로 주후30년의 예수의 십자가 처형으로 부터 주후 155년경 일어난 폴리갑의 순교 사건에 이르기까지 몇 가지 중요한 사건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역사적 거점은 폴리캅의 순교다. 폴리갑의 순교는 당시에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재판과 처형이 이미 일상적인 일이 되 버렸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집단 구성원으로 여겨졌고 무신론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과 가이사에 대한 충성 맹세의 거부, 그리고 당시의 지배적인 신념체계에 부합하는 희생제사를 거부한 일, 이모든 것은 기독교를 이교도나 유대교와 구별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 역사적 거점은 주후110년경 비두니아에서 행해진 플리니우스의 박해다. 이 당시에도 당국자들은 기독교를 체제를 전복시키는 위험한 미신으로 간주했으며 주후 2세기 중엽에는 이런 일이 일상적이 되었다. 플리니우스가 남긴 문서에 의하면 기독교는 이미 소아시아 전역에 널리 퍼져있었고 그리스도인들을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한 확정된 절차나 기준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한 종교적 집단으로 간주된 것이 아니라 로마 사회의 체제를 전복시키는 집단으로 간주된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거점은 주후110년 경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다. 이그나티우스가 트라야누스 치세 후기에 순교를 각오하고 로마로 갔다는 것과 그가 썼다고 전해지는 일곱 개의 서신이 이 과정에 기록된 것은 역사적으로 확실하다. 이그나티우스는 자신의 순교가 복음을 선포하는데 커다란 힘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각 개개 교회들이 각자의 감독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설파하였다. 이그나티우스는 유대교와의 혼합을 반대하였고 또한 가현설주의자들을 배척하였다. 이그나티우스는 기독교는 유대교로부터 탄생했다는 사실과 아울러 기독교는 유대교는 한 분파로 남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신학자였다.
네 번째 역사적 거점은 주후2세기 역사가인 헤게시푸스가 서술하는바, 주후 90년경 예수의 친척들을 도미티아누스가 심문한 사건이다. 이 심문 사건의 내용이 초대교회의 모습과 잘 부합된다. 그것은 유대적 메시야 사상의 모든 뉘앙스들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민족주의적이고 무력적인 운동, 인간 세상의 왕조라는 의미로 쉽게 오해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면서 로마 황제가 궁극적인 충성 맹세의 대상이라는 주장을 거부했던 운동으로서의 기독교의 모습이다.
다섯 번째 역사적 거점은 주후 64년 네로 치하에서 일어난 대화재 사건이다. 역사가 타키투스는 네로가 화재의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전가하려 했다고 말한다. 이 대목은 당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반사회적인 악행자들로 간주했다는 것과 이 시기 이전에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이교도들의 조직적인 박해가 없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여섯 번째 거점은 주후 62년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야고보의 순교사건이다. 이 사건을 유대 전쟁이 임박했던 당시의 예루살렘에 기독교 공동체와 지도자가 존재하였고 유대인들은 이 공동체와 지도자에 대하여 적대감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다.
일곱 번째 역사적 거점은 바울이 주후 50년대 전반에 에베소와 고린도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이다. 바울이 주후51년에 아가야 총독으로 부임한 갈리오보다 대력 18개월 전인 주후 49년에 처음으로 고린도에 갔다는 것은 통설로 인정된다. 당시에 바울은 갈리오 앞에 끌려갔지만 갈리오는 그 지방 유대인 공동체가 제기한 바울에 대한 고소를 묵살하고 바울을 방면하였다.
여덟 번째 거점은 주후 49년 글라우디오가 그리스도인들의 소요를 빌미로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한 사건이다. 이것은 히드리아누스 시대(주후 117-138)에 살았던 수에토니우스의 저작물에 나오는 증거이다. 그는 로마에 있던 유대인 공동체 내에서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일으켰던 소요에 대해 보고하고 있는데 이 사건은 사도행전 18:2에도 언급되어 있다.
기독교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 이런 비기독교적인 기사들이 초기 교회를 연구하는 확고한 역사적 거점들을 제공한다. 이런 사건들은 로마 당국자들이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을 사회적 정치적으로 위협적인 또는 성가신 존재로 간주하고 그들을 탄압하였던 한 세기에 걸친 일련의 사건들이다. 이 기간 동안에 나타난 초기 교회의 모습은 사적인 신앙 동호회로서 살길을 찾은 것이 아니라 비록 그리스도의 나라를 가이사의 나라와 같은 형태로 인식하지는 않았지만 가이사에 대한 충성을 거부한다는 의미에서 왕인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을 선포하는 지극히 유대적이면서도 전혀 유대적이지 않은 이상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4.공백 메우기 : 배경을 찾기 위해 사용되는 문헌들
내가 앞에서 제시한 거점들은 역사적으로 확고하며 특히 초기 기독교의 위대한 저술가인 바울과 이그나티우스가 이 연대 설정 속에 들어가는 인물이라는 사실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나의 관심은 연대기가 아니라 이런 역사적 거점들을 통해서 초기 기독교 세계관의 요소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특히 초기 기독교의 특징을 이루고 있던 실천들, 상징들, 질문들과 대답들, 나아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던 이야기들을 토대로 기독교 운동 전체에 대한 분명한 인상을 얻는 것이 목적이다.
4부 기독교 1세기[12장 실천, 상징, 질문들]
N.T. 라이트/NTPG
2015-06-17 14:09:36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제4부 기독교 1세기
12장 실천, 상징들, 질문들 :초기 기독교 세계관의 이면
1.실천
초기 기독교에서 두드러지게 눈에 뛰는 사실은 엄청난 성장속도다. 주후25년경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기독교가 주후 125년 무렵에는 로마황제가 그리스도인을 처벌하는 공식적인 정책을 수립할 정도로 확산된 것이다. 초기 기독교의 이런 급속한 확산을 학자들이 여러 가지로 설명하지만, 그 주된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이 참되다고 믿은 것이 온 세상과 관련해서도 참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과 이방인 선교에 열을 올린 것은 분명히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선교활동은 다른 그 무엇에 대한 단순한 첨가물이 아니라 기독교의 심장으로부터 생겨난 것이었다. 이렇게 세계선교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실천의 첫 번째이자 가장 분명한 특징이었는데 여기서 이런 세계선교의 밑바탕에 깔려진 근본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선교 외에 주후 첫 세기의 50년 내에 세례와 성찬식이 종교적 실천의 새로운 형태들로 기독교에 정착되어 있었다. 이 세례와 성찬식은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제의 행위들이자 그들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실천의 일부였다. 그러므로 복음서에 나오는 세례 및 성찬에 대한 전승은 복음서 기자들이 기독교가 이전에 알지 못했던 그 어떤 것을 새롭게 제정하려는 시도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렇게 세례와 성찬은 둘 다 교회 생활의 핵심이었던 예배 속에서 집중적으로 부각되었다. 그런데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유일신론자들임을 매우 강조하면서도 한 분 참 신, 곧 창조주를 예배할 때에 예수의 이름으로 예배를 하고 있었는데, 이런 관행 자체가 처음부터 기독교의 중심적인 특징인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실천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유대교와 달리 짐승을 사용한 희생제사를 드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고난과 죽음에 대한 의연한 태도도 두드러진 실천의 특징 중의 하나였다. 기독교 1세대 지도자들은 그들의 추종자들에게 고난을 각오하라고 권면하였고 그 이후 세대 지도자들도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부인하기 보다는 기꺼이 고난과 죽음을 택하였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순교는 신속하게 상징적인 가치를 획득했고 변증가들은 순교를 기독교의 주장이 참되다는 강력한 증거로 제시했다.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적인 행동과 활동들로 인해 그들은 처음부터 고대 세계에서 새로운 부류의 집단으로 부각되었다. 그들은 이교도와도 달랐고 유대교와도 달랐다. 당시 고대 세계에서 기독교는 새로운 종류의 운동이었고 헬라인, 야만인, 유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새로운 범주를 만들어 내었는데 그것은 인간이라 무엇인가를 해석하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3.상징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상징은 유대교의 상징들과 모든 방식에서 달랐다. 그들은 성전을 예수와 그들의 교회에 관한 신앙을 표현하는 은유로 해석하였고 마찬가지로 토라도 재해석하였다. 토라는 더 이상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규정하는 법전으로 취급되지 않았고 토라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믿었다. 그들은 유대교 성경을 새롭게 읽음으로써 참 신이 이스라엘의 이야기 전체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오시는 길을 예비하였고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그 절정에 도달하도록 의도되었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땅도 더 이상 신의 백성의 지리적 정체성의 핵심적인 상징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특히 신의 백성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의식도 완전히 사라졌다.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새로운 공동체가 유대인, 헬라인, 야만인이 동등하게 참여하는 공동체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나 이교의 통상적인 상징들 중 그 어느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유대교나 이교도의 상징을 모두 거부한 기독교는 십자가를 자신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순교자 저스틴 이후 십자가는 풍부한 의미를 지니는 기독교의 중심적인 상징이 되었다. 십자가와 더불어 선교는 실천의 핵심적인 측면일 뿐 아니라 높은 상징적 가치를 지니게 되었는데, 이것은 예수가 세상의 참된 주로 즉위하여 모든 사람에게 충성을 요구한다는 전제하에서만 의미를 지닌다. 또한 기독교는 유대교의 지리적, 신학적 중심이었던 성전 대신에 예수를 창조주 신의 살아계신 임재를 구현한 자라고 말하였고 예수 자신의 영을 초대 교회의 삶과 모임 속에 그 신이 지속적으로 임재하게 만드는 존재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상징체계의 변화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이란 말의 의미조차도 새로운 방식으로 정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창조와 구속은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고 신의 영에 의해서 적용되었다는 신앙고백이 초기 교회에 등장하게 되었다. 이런 신앙 고백들도 기독교 공동체를 그들이 믿는 신이라는 견지에서 다른 공동체와 구별시켰던 상징들이자 표지였다. 결론적으로 기독교 신학은 신앙, 예배, 세례, 성만찬이라는 배경 속에서 탄생하고 자랐으며 이 상징들은 이 신을 예배하는 공동체를 다른 신들을 예배하는 공동체들과 구별하는 기능을 하였다.
4.질문들
초기 기독교가 보여준 이러한 실천과 상징들은 그들의 새로운 세계관의 윤곽을 충분히 보여준다. 이런 실천과 상징으로 나타난 초기 기독교의 세계관을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 묘사할 수 있다.
(1)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새로운 집단 새로운 운동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신 곧 세상의 창조주 신의 참된 백성이기 때문에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는 창조주 신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내내 준비해 왔던 백성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유일신론자들이고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이교도와 구분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와 신의 영을 믿으며, 유대교와 이교도들을 갈라놓았던 전통적인 경계표지들을 초월한 사귐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유대교와도 구별된다.
(2)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우리가 예배하는 신이 만드신 세상 그러나 이 유일하신 신을 아직 인정하지 않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이 세상은 우상을 섬기며 실상을 왜곡하고 있으며 우상에게 끌려 다니며 인간을 비인간화 시키고 타락시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참된 인간이 되는 다른 길과 신의 아들 예수에 대한 참 메시지를 통해서 세상 권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다.
(3)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가?
이교 사상의 세력들이 여전히 세상을 지배하고 교회에 까지 힘을 뻗치고 있다. 외부로부터는 핍박이 내부에서는 이단과 분열들이 일어난다. 이러한 악들은 종종 사탄 또는 여러 귀신들과 같은 초자연적 존재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또한 개개 그리스도인들 안에도 복속시켜야 할 세력들이 활동하며, 죽여야 할 정욕들이 있다.
(4) 해법은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소망은 실현되었다. 참 신은 이교의 신들을 무찌르고 세상을 악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도구인 새로운 백성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결정적으로 역사하셨다. 이 일을 참 신은 참된 왕, 예수, 유대인들의 메시야를 통해서, 특히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이루어 내셨다. 그러나 이 동일한 신이 자기 백성 속에 있는 그의 영을 통한 지속적인 사역으로 이 승리를 이루어가는 과정은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언젠가는 왕이 다시 돌아와서 세상을 심판하고 현제의 세상질서 속에 있는 나라들과는 다른 차원의 나라를 세울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 그리스도인으로 죽은 자들은 부활하여 새로운 몸을 입고 그 나라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때에 현재의 권세들은 예수를 주로 시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고 공의와 평화는 마침내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
4부 기독교 1세기[13장 초기 기독교 이야기들1]
N.T. 라이트/NTPG
2015-06-17 14:10:18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제4부 기독교 1세기
13장 초기기독교 이야기들(1)
1,들어가는 말
실천과 싱징보다 이야기는 세계관의 핵심적인 것을 보여준다. 기독교의 첫 세기에 등장한 신약성서들은 초기 기독교 세계관에 대하여 엄청난 것을 말해 준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은 예수와 관련된 유일한 자료다. 그래서 신약성서에 나오는 큰 이야기들을 살펴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고대의 철학들은 금언, 논평, 짧은 일화 등으로 주로 구성된 반면에 신약성서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야기들은 명백히 그들의 존재와 행위의 본질적인 부분이었다. 나는 신약성서의 이야기를 살펴보는 시작 지점을 하나의 이야기를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는 단일 저자의 글인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2.누가와 그의 이야기들
누가와 요세푸스를 비교하면 누가의 이야기들이 가진 특징을 드러낼 수 있다. 누가는 요세푸스와 거의 동시대 사람으로서 로마에서 글을 썼으며 그들이 설정한 주제도 서로 비슷하였다. 요세푸스가 예루살렘의 멸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누가는 예수의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렇게 그들의 초점은 서로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이스라엘 역사의 절정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요세푸스가 유대전쟁이라는 단일한 절정을 말하고 있다면 누가는 성전의 멸망과 예수의 죽음이라는 이중의 절정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요세푸스가 유대전쟁을 계기로 이스라엘의 신이 베스피아누스를 왕으로 세웠다고 주장한다면 누가는 이스라엘의 신은 베스피아누스가 아니라 예수를 진정한 왕으로 세웠다고 말한 것이다. 이렇게 요세푸스나 누가는 모두 자신의 읽기가 성경 예언에 대한 진정한 읽기라고 주장하면서, 옛 이야기를 전복시키는 방식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유대인들이 기대한 방식으로 예언의 성취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모두 이스라엘의 신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로마를 향한 왕의 행진을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요세푸스에게 그 왕은 베스피아누스였다면 누가에게 그 왕은 예수였다. 요세푸스와 누가는 둘 다 자신이 참 이스라엘의 진정한 계승으로 여겼던 것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요세푸스와 누가는 모두 역사를 이스라엘 신의 활동 영역으로 보았고 역사 가운데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어떻게 절정에 도달하는가가 그들에게 핵심적인 문제였다.
누가는 유대적이고 성경적인 세계를 헬레니즘적 저작, 특히 역사서술이라는 일반적인 세계 속에 위치시키고 있다. 엘리사벳과 사가랴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누가의 이야기는 분명히 사무엘상의 한나와 엘가나의 이야기를 반영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을 위한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포괄하고 있다. 누가의 이야기는 사무엘이 다윗에 대하여 한 역할을 세례요한이 예수에 대하여 하고 있다고 말하는 셈인데, 이것은 헬레니즘과 로마 세계의 나라들에게 이스라엘의 신이 새로운 나라를 만들 것이며 그 나라의 왕으로 예수를 세우신다는 통고의 메시지다. 누가복음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죽은 자로부터 부활한 예수를 다윗이라는 범주에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누가복음이 다윗적인 왕인 예수가 등장한 이야기라면 사도행전은 다윗적인 왕이 등극한 지금, 구원의 메시지가 세계로 퍼져나가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모형론이 아니라 누가는 다윗으로부터 시작된 긴 이야기의 최종 산물이자 다윗에서 준 신의 약속으로서 예수의 삶, 죽음, 부활 그리고 신의 영의 파송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에서 절정에 도달한 유대적 이야기와 헬레니즘적 전기라는 두 이질적인 장르가 잘 조화된 이유는 신학적 문제에 대한 누가의 이해에서 찾을 수 있다. 누가는 이 시기의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포로생활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또한 이스라엘이 구속을 받게 될 때 온 세상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는 이스라엘의 이 기대가 한 사람 예수를 통하여 특히 그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형태로 성취되었다고 믿었고 이 좋은 소식은 이방세계를 향한 유대인들의 메시지였기 때문에, 그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두 장르, 즉 ,유대적인 이야기를 헬레니즘적 전기라는 양식과 결합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의 이 이야기는 그가 근거하고 있는 유대세계와 그가 상대하고 있는 이방세계, 이 두 세계의 주류 이야기들을 모두 전복시킨다. 유대세계를 향하여 누가는 유대인들이 기대하던 종말이 이미 일어났으므로 더 이상 종말을 위해 싸울 필요가 없다고 말함으로써 유대세계의 이야기를 전복시켰다면, 이방세계를 향해서는 온 세상의 창조주인 이스라엘의 신이 예수를 그 나라의 왕으로 세웠다고 선포함으로써 이방세계의 이야기들을 전복시켰다..
이런 식으로 누가는 이스라엘 이야기에 대한 주후1세기의 다른 말하기들을 전복시키는 방식으로 이스라엘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했다. 특히 누가는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과 다윗을 거쳐서 포로기와 그 이후까지 이어지는 이야기, 즉 다윗의 후계자를 통한 구원이라는 약속을 부각시키고 있다. 누가는 예수를 진정한 다윗 가문의 왕으로 정당화시키는 방식으로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래서 누가복음이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예수의 이야기 속에서 그 근본적인 성취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라면 사도행전은 이스라엘 이야기의 장기적인 목표는 예수의 영의 사역을 통해 달성될 것이라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누가의 이야기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마감된 역사는 창조주 신의 경륜 속에서 한 중요한 국면이었으며 이제 그 국면이 성공적으로 끝났기 때문에 세계역사는 이 드라마의 최후의 막의 무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누가는 유대교의 이야기를 전복시켰고 유대교 신학에 대한 끈을 놓지 않은 채 이교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이교도들의 이야기도 전복시켰다.
누가는 유일신 사상, 선택사상, 종말론이라는 유대교 신학의 견고한 토대를 가지고 또 다른 왕 예수가 존재하며 이교사상보다 더 낫게 세상을 이해하고 응답하는 방식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알려져 왔고 이제 예수와 신의 영을 통해서 가장 잘 알려지게 된 이 참 신은 창조주이시며 이제 세상을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누가의 이야기는 공적이고 세계적인 역사 속에서 일어난 것일 때에만 그리고 신학과 결부될 때에만 의미를 가진다. 누가는 역사가로서 유대교와 헬레니즘 세계 속에서 살았으며, 또한 신학자로서 확고하게 유대적인 것을 견지하면서 이교 세계에 말을 걸었다. 누가는 창조주 신으로부터 이교세계와 대결하는 과제를 부여받은 사람이라면 참된 유대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세상의 이야기를 전복시킴으로 이 과제를 완수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 과제를 완수한 사람이었다.
3.마태의 이야기: 서기관과 줄거리
마태복음의 첫 장에 나타나는 족보의 구조는 아브라함으로 시작되는 백성에 관한 긴 이야기가 자기 백성을 포로생활로부터, 즉 죄로부터 구원할 새 다윗, 메시아인 예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새로운 다윗이 와서 그의 백성을 현재의 포로상태로부터 구원할 때 그것은 새로운 출애굽, 새로운 계약과 같을 것이다. 신명기 27-30장에는 야훼와 거의 백성 간의 계약이 저주목록과 축복목록이라는 견지에서 구성되고 있는데 신 30장에는 앞 선 저주목록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구원과 새로운 계약이 약속되고 있다. 신명기의 이 대목과 마태복음의 첫 장의 주제는 철저하게 연관되어 있다. 신명기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은 죄로 인해 포로로 끌려가는 저주 속으로 떨어졌고 이제 아브라함의 백성은 새로운 출애굽과 계약의 갱신을 통해 다시 본래의 궤도를 되찾아야 한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또 다시 생명이냐 죽음이냐, 저주나 축복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마태는 이러한 계약에 의거한 선택을 그의 복음서 구조에 엮어 넣어서 그러한 선택을 예수가 동시대인들 앞에 제시한 선택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태는 이스라엘이 실패하였고 포로상태에 머물러 있으므로, 이제 새로운 출애굽이 필요하다는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전제하고, 이 새로운 출애굽이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마태는 모세가 신명기 30장에서 말한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의 복음이 이스라엘 이야기의 속편이자 완결편이라고 말한다. 이와 동시에 마태는 자신의 이야기가 온 세계에 대한 이야기의 실마리라는 암묵적인 인식하에서 그 이야기를 이스라엘 이야기의 속편이자 절정으로 이해하였으며 그래서 이 이야기를 당시의 교회를 위한 교훈이자 역사로 읽기를 바랐을 것이다.
4.마가의 이야기: “읽는 자는 깨달을 진저”
마가복음은 전체가 묵시 문학의 범주로 가장 잘 설명될 수 있다. 내가 말하는 묵시문학은 시공을 떠난 초월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공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신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묵시문학은 현 세상 속에서 악의 최종적인 승리를 부인하지만, 현재의 영속적 시공의 질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마가의 묵시문학은 신화와 은유를 혼합하여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이야기를 현재로 가져오며, 현세의 악이 뿌리 뽑히고 이스라엘의 해방이 일어날 것을 보여준다. 마가는 유대인들의 전승들 속에 표현된 이스라엘의 영광스러운 기대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 속에서 역설적으로 성취되었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통해서 이런 성취는 한층 더 진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가는 이렇게 묵시문학의 취지와 방향을 재설정함으로써 이스라엘 이야기에 대한 유대인들의 통상적인 묵시문학적 이야기들을 전복시켰다. 그래서 마가복음 13장은 예수의 삶과 재판과 죽음이라는 지상의 사건들이 천상에서 가지는 경천동지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전승이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묵시문학적 이미지들을 통해 들려준다면 마가는 묵시문학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예수의 이야기를 통한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했다. 마가는 예수의 이야기를 이스라엘의 신의 나라를 선포하고 이스라엘에게 회개를 촉구한 갈릴리의 한 선지자의 이야기로 들려준다. 마가가 들려주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 전체는 하나의 묵시록의 기능을 하도록 설계되어 이상해 보이는 이야기의 배후에 있는 비밀로 독자들을 초대하고 있다. 마가의 주제는 이스라엘이 그토록 열망하는 이스라엘 신의 나라의 도래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마가는 그 나라의 도래가 예루살렘의 신원, 성전의 회복 그리고 포로귀환이라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예루살렘의 멸망, 성전의 파괴 그리고 예수와 그의 백성의 신원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마가의 이야기는 묵시문학적으로 인식된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배경으로 전제할 때만 의미를 지니게 된다.
5.공관복음서들: 맺는 말
공관복음서들은 서로 상당한 편차를 보이면서도 공통의 패턴을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공관복음서들이 모두 예수의 이야기를 창조주와 세상에 관한 이야기의 구심점이 되는 이스라엘 이야기의 결말 부분으로 들려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공관복음서의 이야기들은 기독교 공동체의 창건 이야기이며 이스라엘 신의 나라의 건국 신화인 셈이다. 공관복음서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공통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공관복음서의 이야기는 세계사의 중심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들은 창조주의 세계 속에서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에 대하여 말한다.
둘째, 복음서 기자들은 그들이 말하는 예수의 이야기가 이스라엘 이야기의 위대한 절정이며, 마침내 유구한 세계사가 그 경로를 바꾸게 될 전환점이라고 믿었다. 복음서 기자들은 일반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역사는 이스라엘의 신이 그의 백성을 구속하기 위하여 활동하는 무대라고 믿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셋째, 복음서 기자들, 특히 누가와 마태는 예수가 활동하던 시기를 그 이전이나 이후의 때와는 다른 특별한 때라고 생각하였다. 복음서 기자들은 초대교회의 쟁점들을 예수의 시대로 소급하여 투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의 사역 속에서 일어난 중요한 자료들을 보존하려고 했다. 그러니까 복음서 기자들은 자신들이 신의 드라마의 최후의 막 속에서 살고 있다고 믿었고, 자신들의 삶이 바로 앞선 막인 예수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공관복음서 전체에 대한 서사적 분석에 의하면 복음서 기자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 자신의 체험을 투영하여 예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체험 자체가 과거에 일어난 유일무이하고 반복될 수 없는 사건들에 의존해고 있다는 믿음으로 예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복음서 기자들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되, 그 이야기들이 그들의 세계관 전체 속에서 지니는 의미를 부각하는 방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복음서 기자들이 역사적으로 실재한 인물에 관한 실제적인 정보를 독자들에게 주고자 한 확고한 이유는 그들이 예수의 이야기를 이스라엘 이야기의 절정으로 들려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다섯째, 고대의 유대 땅에서 어떤 사람이 확실하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일은 획기적이고 놀라운 사건이긴 하지만, 결코 그 사건 자체가 부활한 인물을 세상의 구세주, 신의 아들이라는 주장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자에 관하여 어떤 일들이 미리 알려져 있지 않았다면 그 사람의 부활이 어떤 특별한 신앙을 낳을 수 없을 것이다. 부활사건은 예수가 어떤 분인지에 대한 기존의 믿음이 옳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부활 후 생겨난 신앙의 유일한 원인일 수는 없다. 그러니까 예수에 관한 부활 이야기는 예수의 이야기로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맥락 속에서만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서 기자들과 바울, 그리고 초대교회가 말하는 복음은 유대인들의 성경에 나오는 약속들이 예수의 부활을 통해서 실현되었다는 것이다. 초대교회가 예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세상을 향하여 그 이야기를 듣고 순종하라고 촉구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이스라엘을 향한 약속들이 예수 안에서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가 예수의 부활을 선포하되, 성경에 따라 부활하였다고 선포하는 것은 예수에 관한 이야기 형태로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며, 그리고 세상을 향한 선포의 배후에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이스라엘의 땅이 피조세계의 중심이라는 이스라엘의 변함없는 신앙이 자리 잡고 있다.
여섯째, 복음서 기자들은 이스라엘 이야기의 절정으로서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 이야기기 최종적인 결말이 아니라는 것을 은연중에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복음서의 이야기는 결말이 아니라 결말이 출현할 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이며, 전체 이야기를 본궤도로 올려놓는 절정 부분의 이야기인 것이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한 가지 과제가 남아있는데 그것은 구속받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세상을 그 창조주에게 복속시키는 과제이다. 그래서 복음서 기자들은 묵시문학적 언어를 통해 시공으로 이루어진 질서의 임박한 종말을 예상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세상 질서의 종말을 묘사한 것이다.
이러한 복음서 이야기들의 공통점들을 살펴볼 때, 복음서를 예수라는 한 인물에 대한 헬레니즘적 전기로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분명하다. 비록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한 사람 속에 구현되었기 때문에 전기라는 문학적 장르를 취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인물에 대한 단순한 전기가 아니라 예수의 이야기가 이스라엘 이야기의 절정이라는 믿음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복음서들은 한 인간의 삶 속에 구현된 이스라엘 이야기의 정수를 보여주기 위하여 설계된 유대식의 전기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서들 속에서 이스라엘과 그 신에 관한 역사를 목격하며, 또한 이스라엘이 창조주와 세상에 관한 은밀하고도 진정한 역사라고 믿었던 이야기를 본다.
복음서들은 독자들을 어떤 새로운 세계관으로 이끌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되었다. 이 세계관 속에는 자신이 선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을 통하여 세상 속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한 분, 즉 세상의 창조주가 있다. 복음서 기자들은 이스라엘의 목적은 이제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고 이스라엘의 오랜 종살이도 끝났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복음서들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은 복음서 이야기에 후대의 기독교 신학이 투영된 것이 아니라 복음서 이야기들의 필연적이고 합당한 절정으로서 기독교 신학이 나타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6.바울: 아담에서 그리스도로
바울 서신들 속에도 이야기들이 있고 그 이야기들로부터 서신들과 그 이야기들의 서사 세계를 구축해 낼 수 있다. 우리는 바울의 모든 서신들, 특히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암묵적인 큰 서사를 발견할 수 있다. 이 큰 서사는 유대인들의 이야기이지만 거의 모든 점에서 수정되어 전복성향을 띠고 있다. 바울이 이 이야기를 직접 하지 않을 때에도 그는 이 이야기를 전제하고 있다. 바울의 이야기는 한 분 신, 선하고 지혜로운 신에 의해 세상이 창조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전승과는 달리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계약의 약속은 이스라엘 땅만이 아니라 코스모스, 즉 세상 전체와 관련된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리고 바울은 아브라함의 약속에 참여하는 자들에 관한 유대인들의 이야기와 토라에 관한 유대인들의 이야기도 전복시킨다. 바울은 진정한 포로귀환은 땅의 정화, 성전의 재건, 토라의 강화를 통해서 체험될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메시아인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지금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바울 신학의 이런 주된 특징들은 그가 본질적으로 유대적인 이야기를 이제는 그 절정에 이미 도달하였고 그 위대한 성취를 이룬 때가 이미 현존한다고 믿는 자의 관점에서 다시 이야기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울은 자신의 서사 세계를 이런 큰 틀 속에 맞춰놓았으며, 이방인의 사도라는 그의 소명도 이스라엘의 소망들이 이미 실현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서사 세계 내에서만 의미를 가지게 된다.
바울의 이야기는 피조세계 그리고 아담과 하와의 후손을 회복시키는 이야기로 이해된 이스라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교세계 및 그 이야기들과 대결하여 그것들을 전복시킨다. 주후3세기 마르키온에게서 시작된 일부 독자들은 바울이 유대인의 이야기를 포기하고 다른 서사 세계를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울의 근본적인 서사세계는 주후1세기의 어떤 이교사상에 대한 반영도 보여주지 않으며 계속적으로 이스라엘에 관한 이야기와 공명한다.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세상을 자신의 소유로 주장하는 창조주 신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에 바울은 그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모두에게 동일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한 예수의 이야기는 창조주 신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당초의 목적을 성취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므로 바울 신학은 예수와 신의 영이라는 빛 하에서 유대인들의 근본적인 신념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는 것을 토대로 할 때 가장 정확하고 완전하게 규명될 수 있다. 유대인들의 근본적 신념인 유일신 사상, 선택사상, 종말사상이 새롭게 고찰된 바울의 서사 세계와 통합된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이야기화된 세계관을 환기시키고 있다. 그리스도는 바울에게 단순한 고유명사가 아니라 메시야를 의미하는 칭호였고 메시야는 이스라엘을 함축했다. 그러므로 바울이 예수를 메시아라고 부르는 것은 이스라엘의 운명이 예수 안에서 성취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7.요한의 이야기
요한복음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공관복음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요한의 이야기는 창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아주 명시적으로 유대인들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요한복음에서 쟁점이 되는 문제 중 하나는 예수와 당시 유대인들 중 누가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냐는 것이었다. 요한은 예수의 사역을 유대인들의 절기라는 관점에서 보면서 예수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신이 원래 의도한 목표지점으로 끌고 가는 모습으로 그린다. 특히 요한은 서문에서 계약의 신이 이스라엘 속에서 행하고 있는 것은 창조주 신이 온 세상 속에서 행하고 있는 그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창조주와 세상에 관한 문제는 예수와 이스라엘의 문제가 되며, 이 문제는 유대인의 왕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역설을 통해서 해소되며 그 때 세상은 수혜자가 된다는 의미이다.
로고스에 의한 창조로 시작해서 이스라엘의 부르심과 역사로 이어지는 요한복음의 서사세계에서 세상은 창조주에게 반역하였고 이스라엘은 그 반역이 참여하였다. 그런 후에 이제 나사렛 예수라는 인간과 동일시된 로고스가 당시의 유대인들과 동일시된 세상과 대결하여 승리한다. 그리고 예수의 제자들은 소우주적인 이스라엘의 세계로부터 좀 더 큰 이방인들의 세계로 나아가서 그들에게 창조주이신 이스라엘의 신이 세상을 구속하였다는 것을 선포하게 된다. 요한복음이 예수에 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피조세계 전체에 대한 이스라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은 요한복음이 공관복음서나 바울서신의 특징을 이루는 동일한 서사세계를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요한복음은 철두철미 이스라엘과 세상에 관한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지만 바울 및 공관복음서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이야기의 성취로서 예수의 이야기에 집중함으로써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전복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요한복음은 바울서신, 히브리서, 공관복음서와 동일한 이야기 흐름, 동일한 서사세계를 공유하고 있다. 가장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의 서사세계인 신약성서의 이 이야기들은 유대인들의 기본적인 이야기를 예수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다시 말하는 형태를 취하는 가운데 세상과 그 창조주, 그 구속에 대한 인식을 증언하고 있는데, 이것은 초기 기독교의 실천과 상징들이 보여주는 세계관과 상당히 부합한다.
4부 기독교 1세기[14장 초기 기독교 이야기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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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7 14:10:44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제4부 기독교 1세기
14장 초기기독교 이야기들(2)
1. 들어가는 말: 양식비평
양식비평에 대한 오해들을 다음 세 가지로 지적할 수 있다. 첫째는 원래 양식비평은 예수 연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에 대한 탐구 방법론으로 등장했다. 그러므로 양식비평이 예수 연구라는 과제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비판은 잘못된 것이다. 둘째, 양식비평은 초대교회의 기원과 발전에 관한 특정한 가설이라는 오해이다. 양식비평의 선구자들인 바우어와 불트만이 초기 교회에 유대 기독교과 헬레니즘 기독교가 독립적으로 병존하고 있다가 기독교2세대의 어느 시기에 이 둘이 결합되어 초기 가톨릭 사상의 시발점을 형성했다는 주장을 했기 때문에 양식비평 자체가 이런 가설에 기초한 것으로 오해된 것이다. 세 번째 오해는 양식비평은 초기 전승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예수의 삶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삶을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는 초기의 많은 양식비평 학자들이 초대 교회가 그들 당시의 문제들을 말하기 위하여 예수의 말씀을 만들어냈다고 믿었기 때문에 생긴 오해이다. 나는 양식비평에 대한 이런 오해들이 제거된다면 양식비평이라는 방법론은 유용한 도구라고 인정한다. 초대 교회에서 구전 역사가 강력한 형성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초기의 이야기들과 그 양식들을 연구할 가치가 있다. 복음서 기자들이 활용했던 자료들은 구전역사, 즉 예수가 말하고 행동했던 것에 관한 자주 반복되어 언급되었던 이야기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양식비평이 불필요한 전제들을 벗어버린다면 양식비평을 수행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양식비평 학자들은 초기 전승이 산출한 것을 묘사하는데 “신화”라는 단어를 제시하였는데 이런 표현은 실상을 제대로 다룬 것이 아니다. 신화를 원시인들이 자연현상을 설명할 때 사용했던 그런 의미의 신화와 혼동하고, 신화라는 개념을 한 개인의 의식을 현실 속으로 투영한 것으로 설명한 불트만은 틀렸다. 기독교 초기 전승을 “신화”라는 말로 표현하려면 그 정당한 의미는 공동체들이 그들의 세계관을 표현하고 유지하는 특징적인 방식으로 먼 옛날의 이야기를 하는 방식, 즉 역사적인 이야기들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특히 불트만은 예수와 동시대들의 묵시문학적 언어를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그것을 시공간상의 우주의 실제적인 종말로 보았으며 따라서 신약성서 기자들을 원시적인 초자연주의적 세계관에 갇혀있는 인물이었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철저히 왜곡되고 잘못된 생각이다. 복음서들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세계관의 토대가 되는 이야기라는 의미에서 “신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복음서들이 이런 신화론적 언어를 포함하고 있는 이유는 그 기저에 유대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창조 및 계약의 유일신 사상은 실제의 역사가 이스라엘의 신이 스스로를 계시하는 영역일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자신의 역사를 적절하게 서술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는 시공간상의 우주 속에서 일어나는 실제 사건들을 언급할 뿐 아니라 그런 사건들에 역사를 초월하는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이어야 했다.
2. 양식비평의 수정
나는 양식비평이란 도구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하여 몇 가지 토대가 되는 규칙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는 비록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물든 세계 속에서 살았지만 그것이 예수가 깊고 풍부한 유대적인 환경 속에서 활동했다는 것을 무시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둘째, 제1세대 기독교는 내용상으로는 실제의 유대교를 전복시키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지만 형태상으로는 본질적으로 유대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공간복음 전승에 대한 유대적인 양식비평이 가능한데, 이것은 공관복음 전승의 가장 초기 형태가 유대적이었고 헬레니즘적인 특징들은 후대의 발전의 산물이라는 대단히 유력한 가능성을 고려한 읽기를 제시하는 가설이다.
공관복음 전승은 원래 헬레니즘적이고 견유학파적이었는데 나중에 유대화되었다는 불트만의 가설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기독교는 확고하게 유대적인 배경 속에서 시작되었고 그러므로 예수에 관한 초기 이야기들은 당연히 유대적인 형태들로 이루어졌지만 유대적인 이야기 방식을 잘 모르거나 익숙하지 않았던 곳들에 이야기들이 전파되면서 이 이야기들은 좀 더 분명하게 비유대적인 형태들을 띠기 시작했다는 설명이 역사적으로 훨씬 개연성이 있다. 그러므로 복음서 전승에 대한 양식비평적 연구를 시작해야 할 지점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어야 한다. 예수의 동시대인들은 예수를 어떻게 인식하였는가? 또 그들은 자신들이 인식한 자에 관한 이야기들을 어떤 식으로 말했는가? 그러한 이야기들은 자연히 어떠한 양식들을 취하는가? 양식비평이 이러한 질문을 따라서 철저하게 역사적인 관점에서 논의를 진행한다면 거기서 나오는 대답들은 대단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예수는 당시 사람들에게 선지자로 인식되었다. 주후1세기 유대교에는 선지자 같은 인물들이 있었고 그들은 추종자들에게 표적을 보이고 해방을 약속하였는데 사람들은 예수를 이와 흡사한 방식으로 보았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그러므로 예수가 옛적의 선지자들의 이야기를 상기시키는 행동을 한다고 인식하였을 때, 예수의 행위들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는 선자자의 전례를 반영하는 형태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또한 예수는 어떤 유의 새로운 집단이나 운동 또는 유대교 분파의 핵심인물로도 인식되었다. 그리고 그런 집단들은 이교나 주류 유대인들에 대항해서 자신들이 의로운 유대인들, 곧 남은 자들로서 이스라엘의 신을 대변하며 결국에는 신원될 것이라는 성경의 이야기들을 반복해서 말했고 여기서 발생하는 논쟁들을 그 전례가 있는 성경에 비추어서 해석했다. 그러므로 복음서의 논쟁 기사의 양식들이 초대교회의 개별적인 필요성에 따라서 만들어졌고 점진적으로 그 말씀들에 서사적인 틀이 부여되었다는 양식비평의 통상적인 불트만식 읽기는 교정되어야 한다.
복음서의 비유에 대한 통상적인 양식비평적 읽기도 문제다. 그것은 비유들이 단순한 형태의 단일한 내용이었는데 전승이 발전하여 헬레니즘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공상적이고 알레고리적인 내용이 되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이런 결론은 신약성서의 유대적인 배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 유대 저작들 전체에 걸쳐서 발견되고 묵시문학적 환상들 속에서 절정에 달하는 비유 이야기들을 예언전승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고립적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양식비평을 바르게 사용한다면 양식비평은 기독교의 초기에는 서사가 없다가 나중에 역사화된 서사가 생겨난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반대의 방향을 보여줄 것이다. 공관 복음서들에 나오는 자료들의 최초의 형태들은 예수의 첫 제자들이 활용할 수 있다고 알려진 형태들, 특히 주후1세기에 이스라엘의 신이 예언자적 혹은 메시아적 인물을 중심으로 한 위대한 갱신 운동을 일으킬 것을 갈망하던 자들 속에서 사용되던 이야기들의 특징적인 형태들과 일치한다. 그리고 이런 초기 형태들이 헬레니즘적인 이야기들 또는 고립적인 크레이아이(단화들)로 점차 변화되었을 것이다.
3. 이야기 없는 이야기들? Q 자료와 도마복음서
금세기의 중엽에 이르기까지 50년 동안 거의 모든 신약학자들은 마태복음과 누가 복음의 주된 자료들이 마가복음 및 Q자료로 불리는 멸실된 문서에서 온 것이라고 믿었고 이 가설은 그 인기가 시들해지고 강력한 공격을 받았지만 여전히 강력하게 옹호되고 있다. 그들은 마가복음은 예수의 사역과 주요한 사건들에 대한 개략을 제공해주고 Q자료는 확고한 예수의 어록들을 제공해준다고 생각하였다. Q자료를 연구하는 학자들 대다수는 Q자료는 매우 초기의 기독교 공동체를 반영하고 있는데, 그 공동체는 양식상으로나 내용상으로 유대적이라기보다는 견유학파적인 헬레니즘적 철학과 은밀한 영지주의에 가까웠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마태와 누가는 Q자료를 다른 유대식의 예수 이야기와 혼합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나는 Q자료 가설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대신에 Q자료 가설을 공관복음서 문제를 풀어가는 유용한 방식으로 재조정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Q 자료가 존재했다면 그것이 바울이 대변하고 있는 기독교와 완전히 다른 분파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제자들의 초기 선교 공동체에 속해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초기의 선교공동체인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신의 나라를 선포한 선지자로 보는 강력한 인식과 이 나라가 기존의 유대인들의 체제를 전복시킬 것이라는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그 나라가 예수를 통하여 이미 도래하였다고 선포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신의 나라는 영지주의적이거나 플라톤적이 아니라 본질적이고 유대적이었으므로 그 나라에 대한 이야기는 당연히 유대전승의 지혜 말씀들과 묵시론적인 말씀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예언적 전승들을 활용할 수 있었던 이야기였다. 그러므로 Q자료는 견유학파적 문서가 아니라 헬레니즘 세계에서 통용될 수 있었던 유대식의 이야기였을 것이며 예수를 유대적인 지혜, 예언, 묵시문학 전승들의 핵심인물이자 세상의 창조주인 이스라엘의 신의 나라를 계시한 인물로 보았을 것이다.
4부 기독교 1세기[15장 초기 그리스도인들]
N.T. 라이트/NTPG
2015-06-17 14:11:19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제4부 기독교 1세기
15장 초기 그리스도인들 :예비적 소묘
1. 목적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목적과 목표는 무엇이며 그들은 무엇을 믿었으며 무엇을 소망하였는가? 초기 기독교는 신속하게 출발선을 떠나서 이내 그것이 탄생한 곳과는 판이하게 다른 문화 속으로 유입해 들어갔다. 이러한 기독교의 확산은 기독교가 특징적으로 말했던 이야기들의 성격과 상당히 관련이 있다. 초기 기독교 선교의 배후에 있는 동기는 예수의 빛 아래에서 해석된 유대교의 핵심적인 신앙과 소망에서 찾아볼 수 있다. 1세기 기독교의 이야기들과 실천 그리고 상징들은 그 이야기를 했던 자들이 위대한 유대적인 이야기가 드디어 성취에 도달하였고 이제 세계 역사는 새로운 국면, 즉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한 부분으로 하는 드라마 속의 마지막 국면에 진입하였다고 믿었을 때만 의미를 갖게 된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구속받았을 때 이방인들도 그 축복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위험과 희생을 수반했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선교 추진력은 이스라엘이 구속되었고 이제 이방인들을 위한 때가 도래했다는 믿음의 견지에서만 설명될 수 있다. 이것이 바울 신학과 초기 기독교 선교의 전제였다. 이 사실은 초기 기독교가 그 유대적인 강조점들을 헬레니즘적인 것으로 변화시켜서 더 많은 청중들을 확보하는 식으로 발전해 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기독교 1세기의 확고한 거점들 속에서 볼 수 있는 사고구조는 여전히 유대적이다.
2. 공동체와 상징들
공동체 즉 에클레시아는 처음부터 상징적, 실제적, 신학적으로 중심 역할을 가지고 있었고 공동체와 관련된 모든 것은 어느 것이나 이스라엘의 소망들의 성취와 세상에 맞선 새로운 역할에 관하여 말하고 있었다. 세례가 의미가 있었던 것은 세례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그 예정된 목표지점으로 인도하여 메시야로서 그 자신 속에서 이스라엘을 집약했던 예수와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인식을 기독교 아주 초창기부터 추적해낼 수 있다. 이스라엘 신의 약속들을 실현시킨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와 그의 공생애 사역의 절정을 이루었던 특정한 사건들은 세례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에 처음부터 내재해 있었다. 그래서 세례에 대한 초기의 증거들은 예수의 이름,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세례는 이스라엘의 역사, 특히 출애굽이라는 상징과 직접적으로 결부되어 있었으며 예수 자신 및 그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토대 위에서 이 둘을 묶어 주는 상징적 방식이었다.
성찬에 대해서도 실질적으로 동일한 내용을 말할 수 있다. 성찬은 한 주간의 첫 날에 예수의 부활을 주기적으로 기념하기 위하여 매주 거행하였으며 이는 유대인들의 유월절과 비슷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성찬은 초기 기독교의 삶을 이스라엘의 역사적 삶과 아주 단단하게 묶어주는 역할을 했다. 유대인들의 유월절 예식이 출애굽 사건을 기념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성찬은 예수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들을 기념하였다. 성찬은 세례와 마찬가지로 이교 세계에 맞서서 유대민족의 역사와 예수의 연속성을 결합시켰다. 이렇게 세례와 성찬은 기독교 초기 공동체의 삶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보여주며 기독교의 예배가 예수에 대한 예배였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러한 예배는 기독교가 창조 또는 계약의 유일신 사상에서 멀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유일신 사상의 근본적인 재해석을 보여주는 표시였다. 예수 그리고 신의 영을 유일신론적인 틀 속에 위치시키고 있다는 것은 초기 기독교 내에서 예수에 대한 예배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예수에 초점을 맞춘 이런 상징적인 실천을 중심으로 한 교회의 통상적인 삶은 애초부터 대안적인 가족으로서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재산을 공유하는 움직임,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일들은 교회를 사회적이고 가족적인 유대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 조직체가 아니라 명확한 경계를 지닌 집단으로 보아야 이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교회에 속했다면 그는 더 이상 가족이나 종족이든 이전의 자신이 속했던 집단에 과거와 동일한 방식으로 속해있을 수는 없었다. 일단 세례를 받으면 그 이후로는 그 사람의 기본적인 가족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이것은 새로운 사회정치적 방향설정을 요구하였다. 그들에게는 가이사가 아닌 또 다른 왕이 있었고 이 왕은 가이사에게 하는 충성맹세를 근본적으로 전복시키는 그런 류의 충성 맹세와 예배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런 전복은 통상적인 정치적 혁명의 성격을 띤 전복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합법적인 권세에 복종하였다.
그렇다면 왜 초대교회는 핍박을 받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일상적으로 핍박을 받았고 당국자들이 아닌 일반 사람들조차 그리스도인들을 빈번하게 고발하였다. 이런 일상적인 핍박의 원인은 초대 교회가 하나의 공동체로서 유사 가족적이고 유사 인종적인 삶을 통해 제국의 정상적인 사회, 문화적 삶을 전복시키고 있다고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유대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형성된 새로운 가족, 제3의 종족이었다. 기독교의 이런 존재 자체가 이교 사회의 근본적인 전제들을 위협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왜 유대인들도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는가? 토라를 강화하려던 바리새파의 계획은 기독교 운동에 의해 근본적으로 문제 제기를 당했는데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소망들의 성취를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초기 기독교는 유대교의 전통적인 실천의 여러 측면들을 해체하고 수세기 동안 유대인들이 삶의 기초로 삼아왔던 전통적인 상징들을(성전, 땅, 토라, 인종적 정체성) 무시한 채, 오직 이스라엘을 위한 신의 온전한 목적을 따라 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핍박을 받은 핵심적 이유는 그들이 이방인과 유대인들의 세계관에 도전하고 그들의 상징적 우주를 전복하려고 한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주류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가 단절된 시기는 주후 70년 얌니아 회의에서 공포된 칙령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훨씬 이전의 사울이 기독교를 핍박하던 때부터라고 보아야 한다.
3. 발전과 다양성
기독교가 여러 방향으로 발전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도행전을 보아도 초대 교회가 통일되고 안정된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초대 교회가 종족을 따라서 분열되어 있었다는 비역사적인 통설은 부인되어야 한다. 주후 1세기 유대교가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었듯이 초기 기독교도 동일하게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고 생각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래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마르키온주의자들처럼, 혹은 에비온주의자들처럼 혹은 영지주의자들처럼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기독교가 첫 세기에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는 점이 아니라 기독교가 지리와 문화를 넘어 급속하게 확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한데 결속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모든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로 묶어 주었던 것은 그들이 예수에게서 절정에 달했고 그런 다음에 성령을 수여받은 새로운 삶의 과제를 낳았던 이스라엘 이야기의 한 형태를 말하고 살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다양성은 이러한 기본적인 이야기를 해석하는 다양한 방식들이었을 뿐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현실을 바라볼 때 사용했던 렌즈는 유대적인 세계관의 변형이었다. 상징들은 근본적으로 변화되었지만 그 이야기는 새로운 말하기를 통해서 상징들의 근본적인 변화의 이유들을 제시하면서 여전히 유대적인 것으로 남아있었다.
4.신학
초기 기독교는 창조, 계약, 종말론과 결부된 유대교적인 유일신 사상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그들의 유일신 사상은 필연적으로 주류 유대교의 특징을 이루었던 두 가지 중심적 이원성 즉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이원성과 선과 악이라는 이원성을 포함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창조주가 피조물에 대해 어떻게 행했고 피조물 내에 있는 악을 어떻게 다루어왔고 또한 다룰 것인지에 대하여 대답하였다. 유대교에서 이 문제들은 다양한 방식들로 논의되었는데 초기 기독교도 동일한 문제에 직면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주제들을 예수와 신의 영이라는 두 가지 확고한 거점들 로 재조직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적인 유일신 사상을 고수하면서도 새로운 주장을 부여하였는데 그것은 창조주 신은 예수 안에서 특별하고도 최고조로 활동하였으며 지금도 예수와 연관된 방식으로 자신의 영을 통해서 활동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창조주는 그의 피조물 내에 있는 악을 어떻게 다루시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유대인들의 기본적인 대답은 그 악을 처리하게 위해 신이 이스라엘을 부르셨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난점은 해결의 수단인 이스라엘이 동시에 문제점의 일부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대답을 받아들였고 동시에 그 난점도 인정하면서 이스라엘의 신이 예수를 통하여 이 난점을 해결함으로써 그 기본적인 대답을 성취하였다고 단언하였다. 이스라엘의 목적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 속에서 고도로 역설적인 절정에 달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러므로 이제 예수의 백성이 된 자들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주장하였다. 적어도 첫 세기 동안 기독교 내부의 변증들은 이런 기본적인 신학을 받아들인 사람들에 의해서 수행되었다. 초기 기독교의 근본적인 신학적 입장은 창조주와 피조물, 피조물 내의 악과 그 악으로부터의 피조물의 구원, 성취된 소망과 장차 도래할 소망, 구원받은 자임과 동시에 구원하는 자의 백성에 관한 것이었다. 기독론, 성령론, 교회론은 이런 신학적 토대로부터 자연스럽게 발전해 갔다.
5. 소망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세계관과 신학을 토대로 무엇을 소망하였는가? 유대인들의 소망이 이미 성취되었다는 것은 초기 기독교에서 기본적인 것이었다. 유대인들의 소망은 이스라엘이 포로생활에서 해방되고 야훼께서 시온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이런 소망을 표현하는 주된 이미지는 이스라엘 신의 통치권을 부여받을 특별한 사람의 등장 그리고 부활의 은유였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언어학적 과정을 뒤집어서 부활을 문자 그대로의 확고한 거점으로 삼고 포로 귀환을 은유로 취급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메시아로 여겼던 나사렛 예수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였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신앙은 또 다른 소망 즉 장차 도래할 소망이 필요하였다. 예수의 부활은 포로생활의 한 가운데서 일어난 한 인간의 부활이었지만 포로생활을 끝장 낼 모든 의인들의 부활이 아니었기 때문에 또 다른 종말이 장차 도래해야 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소망의 네 가지 요소는 신원, 신의 나라의 확장, 부활, 그리고 예수의 다시 오심이었다. 이 모든 것들은 다 혁신적인 것이었지만 비유대적인 것이 아니라 모두 유대인들의 소망을 예수와 신의 영이라는 빛 아래서 재해석한 것들이었다.
첫째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신원이 예루살렘의 멸망 및 성전의 파괴와 결부되어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둘째로 신의 나라의 확장이라는 소망은 지극히 유대적인 것으로서 이 소망에는 순전히 추상적인 나라라는 어떤 개념이나 영지주의식으로 다른 세계로 도피하는 개념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셋째로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의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창조주 신이 죽음 저편에서 그들을 육신적으로 다시 창조할 것을 믿었다. 그러나 그들은 유대인들과 달리 미래에 속한 이런 소망이 이미 예수의 부활 속에서 시작되었다는 것과 이 사건이 모든 사람들의 부활을 위한 원형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믿었다. 네 번째 소망은 예수의 다시 오심에 대한 기대이다.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온다는 것은 주후 1세기의 유대교의 맥락 속에서 참 이스라엘이 신원될 것이라는 예언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본문들이 공관복음서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가 참 이스라엘을 대체하고 있었다고 믿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특정한 묵시론적 본문들이 초기 기독교에서 가진 의미는 예수가 다시 오실 것이라는 기대가 아니라 예수가 그의 부활과 높이 들리우심을 통해서 이미 신원 받았고 예수를 반대했던 도성이 결국 멸망할 때에 예수가 신원될 것이라는 선포였다.
5부 결론[16장 신약성서와 신에 관한 문제]
N.T. 라이트/NTPG
2015-06-17 14:11:50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제5부 결론
제16장 신약성서와 신의 문제
기독교과 유대교는 적어도 첫 세대 동안 서로 분리되어 있기는커녕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은 방식으로 서로 얽혀 있었다. 유대인들의 공동체는 예수의 도가 자신들의 품속에서 태어나서 자랐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초기 그리스도인들도 물론 그러한 사실을 알았다. 예수를 따르던 첫 세대의 수많은 추종자들에게는 실제로 두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것이 분명하게 인식되지 않았다. 하나의 공통의 뿌리에서 나왔지만 성경에 대한 두 가지 다른 읽기, 자기 이해에 대한 두 가지 방식이 나타났다. 왜 일이 이런 방식으로 일어났고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런 문제들에 관여할 때 드러나는 세 가지 초점은 예수, 신약성서 그리고 신에 관한 문제이다.
두 공동체의 존재, 즉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이 두 개의 존재는 역사가로 하여금 그 기원들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기독교라는 유대교 분파가 주루 1세기의 다른 분파들과 현저하게 다른 방식으로 발전한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 문제들을 가지고 초기 기독교 문헌에 접근할 때 우리는 이것이 단순히 이 분파의 공동체적 결단이나 계획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와 관련이 있다는 강한 인상을 받게 된다. 예수는 누구인가? 그의 목적은 무엇이며 그는 왜 죽었는가? 그리고 초기 기독교는 왜 그런 모습으로 출현하게 되었는가? 예수를 따르던 공동체는 여전히 두드러지게 유대적이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과 삶을 상당히 새로운 방식들로 다시 그렸다.
역사가는 예수에 관한 문제에 직면하고 신학자는 신의 문제에 그리고 문학 비평가는 신약성서에 관한 문제에 직면한다. 그러나 역사가이자 신학자인 사람은 신약성서의 구성 부분들을 기독교가 탄생한 두 세계에 걸쳐있는 것으로 볼 때에만 신약성서를 이해할 수 있다. 신약성서는 유대식의 이야기들을 말하는 유대적인 책이지만 세상을 위하여 그런 이야기를 한다. 신약성서는 세상의 이야기들을 전복시키고 세상 앞에 예수가 왕이라는 주장을 제시하기 위하여 세상의 이야기를 이스라엘의 이야기로 들려주고,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예수의 이야기로 들려주는 세상의 책이다. 신약성서는 새 포도주를 유대교라는 낡은 부대에 쏟아 놓고, 새로운 이스라엘의 포도주를 세상의 낡은 부대에 쏟아 넣음으로 두 개의 낡은 부대를 터뜨리려는 이중의 효과를 노린 기독교의 책이다. 따라서 우리는 신약성서는 바로 이러한 공동체 즉 새롭게 신의 백성을 자처하는 전복 성향을 가진 공동체가 쓴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신약성서를 구성하고 있는 이 글들은 초연한 관찰자의 입장에서 주후 1세기의 기독교를 단순하게 서술한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일상적인 삶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었다.
이 문제는 다시 한 번 인식론적 잣대에 따라 이리저리 기울 수 있다. 그 한 쪽 끝에는 브레데(Wrede)의 실증주의가 있는데 이는 기독교의 정경이란 말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고 우리의 과제는 단순한 사실들의 서술일 뿐이고 그 무엇도 현재의 규범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른 끝에는 주관주의라는 폐쇄된 사고가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약성서는 뭔가 의미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동일한 의미를 기대해서는 안 되는 그들의 사적인 책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 양 극단에 대한 대안으로 내가 제시한 비판적 실재론은 서사와 연관된 권위라는 모형을 지지한다. 나는 신약성서는 모든 면에서 공적인 영역에서 참된 것들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약성서는 사적인 영적 진보를 위한 지침서가 아니라 창조주와 세상에 관한 전복 성향을 띤 이야기라고 신약성서 스스로 주장하고 또 그렇게 읽히기를 주장한다. 신약성서의 주장은 연약하여 부서지기 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력하다. 왜냐하면 신약성서는 온 세상에 대한 참된 이야기, 참된 신화, 참된 역사로 자신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신에 관한 문제는 신약성서와 관련된 대다수의 책들에서 거의 다루어지고 있지 않지만 사실은 자주 논의되는 거의 모든 문제들의 뿌리에 놓여있는 문제이다. 유대 성경이 말했던 이 신, 아브라함, 모세, 다윗, 선지자들에게 스스로를 계시하셨던 이 신은 도대체 누구인가? 유대교와 기독교 중 어느 공동체가 이 신에 대하여 진실하게 말하고 있는 것인가? 초기 기독교는 표현에서만 아니라 상징과 실천 특히 유대 성경을 새로운 방식으로 읽는 상징적 실천 속에서 신에 관한 근본적 문제와 관련하여 새로운 주장을 하고 있었다. 예수의 오심으로 인류의 상황 전체는 하나님이란 말의 의미론적 내용을 변화시킬 정도로 바뀌었다는 것이 신약성서 기자들의 주장이다. 신약 성서의 각 책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 중심에 신에 관한 새로운 견해를 담고 있고 하나님을 말하는 방식에 대한 제안을 담고 있는 새로운 세계관을 표현하며 독자들을 그 세계관으로 초대하고 있다.
유대교는 기독교가 예수를 신에 관한 교리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신에 관한 교리를 결정적으로 그리고 돌이킬 수 없도록 훼손시켰다고 주장하였다. 기독교는 주류 유대교가 선민사상에 사로잡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이스라엘 신의 의로운 구원 행위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계약으로부터 비껴나갔다고 주장하였다. 이 두 종교는 서로 자기들이 성경에 기록된 계시와 부합하는 신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말하고 있고 다른 쪽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주후 1세기 유대인에게 토라는 신의 계시로서 타협할 수 없는 대상이었으며 이스라엘의 성전과 땅을 이교의 오염으로부터 막는 것도 이스라엘의 신이 부과한 타협할 수 없는 과제였으나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과제들을 모두 중시하지 않았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한 분 신의 완전한 계시, 이스라엘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위대한 신의 역사였으며 나아가 이것은 이스라엘의 신, 세상의 창조주가 예수 안에서 유일무이하게 스스로를 사람들에게 알리셨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주후1세기의 유대교와 기독교의 역사에 대한 우리의 연구는 결국 참 신에 관한 그들의 주장이 모두 옳을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주후1세기의 유대교와 그 이후의 유대교의 주장은 세상의 창조주가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 이교사상, 영지주의 등등 그리고 기독교의 주장을 허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토라 속에서 스스로를 계시하였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기독교의 주장은 세상의 창조주, 아브라함의 신은 다양한 이교도의 주장들 또한 예수를 거부하는 유대교의 주장들을 허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예수 및 신의 영을 통해 스스로를 계시했다는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신약성서로 불리게 된 글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신이 바로 그와 같은 일을 행했다고 주장한 바로 그 사건을 되돌아보았다. 이 이상한 자칭 신의 백성 안에서 출현한 신약성서는 이스라엘의 과거에 뿌리를 박고 있지만 세계의 미래 속으로 연결되는 이야기로서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하였다. 신약성서는 유대인들의 증거를 수정했고 그 주장은 민족의 해방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와 관련된 사건들을 통해서 성취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