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위대한 창조 경륜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 경륜(The Glorious Economy of God's Creation)
2013-04-05 19:17:42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성경계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성경은 하나님을 천지를 창조하신 분으로 소개한다. 성경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임을 전제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으로 알고 들어야 한다는 엄중한 요구를 의미하는 것이며 성경을 읽는 우리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왜 천지를 창조히신 것인가? 창세기 1장 1절이후의 성경의 전 계시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설명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은 왜 천지를 창조하셨는가 라는 정당한 의문을 가지고 성경을 읽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성경 계시를 통하여 바로 이 질문에 대답하여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려고 인간을 지으셨고 그래서 인간을 특별히 자기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유일한 존재로서 다른 피조물들과 인간이 구별되게 창조된 것이다. 심지어는 천사라고 할지라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지 않고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다른 피조물에게는 없는 유일하고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치 부모와 자식사이에 유일하고도 특별한 관계가 성립되는 것 처럼 천지 창조시에 이미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이런 유일한 관계가 성립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의 진정한 자기 정체성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고 하나님과의 이런 관계를 떠나서는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본질적인 구별점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왜 천지를 지으시고 인간을 지으셨는가? 그 대답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려고 천지를 지으신 것이라고 성경은 대답한다.
그런데 이어지는 선악과 금령은 인간에게 주어진 통치권이 무조건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에게 선악과 금령을 주심으로써 아담이 만물을 다스리되 자기 맘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려고 하신 것이다. 선악과라는 것은 그 자체로서 선악을 알게하는 효능을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명명하신 것 뿐이다. 그리고 그 나무의 이름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여부가 바로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은 아담에게 선악과 금령을 지키게 하려고 위협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할 때 인간은 그 존재 의미를 상실한다는 엄중한 계시의 말씀인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셨고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주셨으며 인간은 하나님의 뜻대로 만물을 다스림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책임을 가진 존재가 되었으니 이렇게 인간은 처음부터 언약적 존재로 지음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아담은 선악과 금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을 배워가야 했고 그 뜻에 따라 만물을 다스림으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창조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야 할 존재였던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는 하나님의 동역자로 지음을 받고 부름을 받은 영광스러운 존재였던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려야 할 언약적 존재로 창조되었으므로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한다든지 인간이 만물을 다스리길 거부한다든지 한다면 이것은 인간의 창조목적을 거스리는 것이므로 그 존재 의미를 상실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죽음이란 바로 존재 목적을 상실한 결과인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란 윤리 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것이며 그 결과 창조목적에서 이탈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의 삯이 사망이란 말은 창조목적에서 이탈한 결과는 존재 의미의 상실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결국 성경의 중요 사상중의 하나인 "죄" 라는 말은 매우 언약적인 표현인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간의 특별하고 유일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개념이 바로 죄인 것이다. 그런 관계가 없다면 죄라는 개념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죄란 매우 언약적인 표현이고 하나님과 인간 간의 언약관계를 전제하는 것이다. 결국 죄란 언약 배반이고 죽음이란 언약 배반의 결과인 것이다.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인간의 존재 의미가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계시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창조하셨으며 아브라함 언약과 시내산 언약을 통하여 이스라엘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유일한 언약백성이 되었으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여호와로 자신의 이름을 계시하셨다. 여호와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시고 이는 하나님의 영원한 이름이라고 하시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이 영원한 것임을 계시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으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의 중심에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된다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불가분의 관계가 성립되어 있으며 이 관계를 기초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야 할 언약적 책임이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행하여 언약적 자비와 신실함을 베푸시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대하여 언약적 사랑과 충성으로 섬겨야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인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 사건은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목적을 그대로 반영한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신 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만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게 하시려고 한 것이듯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만드시고 언약을 맺으신 것 역시 언약 백성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을 다스리게 하시려는 것이었다.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만드시고 택하시며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가나안 땅을 주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 목적은 바로 가나안 족속들의 불순종으로 더렵혀진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을 통하여 새롭고 깨끗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전 역사는 바로 이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불순종한다면 그들 역시 가나안 족속 처럼 그 땅에서 쫒겨나게 될 것이다. 이것을 성경은 하나님이 지으신 땅이 그들이 역겨워 토해낸다고 표현된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었지만 언약의 목적인 언약적 삶을 사는데 실패함으로써 가나안 땅에서 쫒겨났고 비참한 역사를 이어간 것이다. 이스라엘의 이런 역사는 언약적 존재로 지어진 첫 사람 아담이 언약을 배반하고 에덴 동산에서 쫒겨난 이후의 인류 역사를 그대로 반영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무엇이며 인간의 존재의미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계시하신 것이다.
비록 이스라엘의 역사는 실패하고 멸망한 역사였지만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의 도구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그 역사의 중심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신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 역사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없이 하나님의 아들이 역사 가운데 등장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없다면 역사 가운데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누가 해석하고 이해하며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면면히 흘러온 메시야 대망의 계시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고하는 계시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은 실패하였지만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결코 실패하시지 않는다. 언약적 존재로 지어진 아담은 언약을 배반하였지만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결코 언약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인간을 통하여 이루시려고 하셨던 창조목적을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며 그 창조목적을 이루실 때까지 쉬지 않고 일하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은 그 분의 아버지이시다. 사람이 되신 하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른 것은 그 분이 사람이 되신 목적 곧 성육신의 목적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고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는 통치자인 인간을 표현하는 말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다.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지음을 받은 것이고 메시야가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인간을 다시 하나님의 아들로 부르시려는 하나님의 창조경륜인 것이다. 메시야의 사명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인간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인간을 다시 부르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세우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바로 인간인 것이고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사람의 아들 곧 인자라고 즐겨 부르셨던 것이다. 예수님의 탕자의 비유는 이런 진리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십자가 죽음, 부활, 승천, 재림 그리고 심판은 모두 창조목적을 위해 일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 사역인 것이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으며 성령의 인도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고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도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과 성령의 임재가 나타났으며 하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를 살리셨다. 구약 역사와 더불어 예수님의 성육신이후의 모든 사건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사역인 것이다. 그런데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중심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인간이 있다. 인간을 떠나 하나님의 칭조목적을 논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을 통하여 인간과 함께 자신의 창조목적을 이루시기로 창조시부터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을 떠나고 언약을 배반하며 부패하고 타락하였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결코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첫 창조시 작정하신 대로 인간과 함께 인간을 통하여 자신의 창조목적을 이루실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는 것이고 그것은 인간을 다시 언약적 존재로 세우시고 창조목적을 이루는 동역자로 부르시는데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죽음, 부활 사건을 단순히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이 받을 형벌을 면제해주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보는 것은 매우 부분적인 시각이다.분명 그것은 인간의 죄와 형벌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는 것이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죄의 문제 해결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다. 죄의 문제 해결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무엇을 위한 수단이다. 관건은 무엇을 위한 죄의 문제의 해결이냐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이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고 가나안 입성도 그 자체에 목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 땅을 새롭게 하는 것이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위한 것이다. 죄가 언약의 배반이듯이 죄의 해결이란 언약의 회복이며 언약적 존재로 다시 서는 것이며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동역자로 부름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성육신 사건은 창조목적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창조의 중심에 인간을 두셨고 창조사역의 동반자로 인간을 부르셨다. 그러므로 인간을 떠나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불순종인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만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림으로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인간이 범죄함으로 즉 불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거스린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불순종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시려고 작정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인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 역시 인간의 불순종의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약에서 예언된 새언약의 실체이며 오순절 성령강림은 바로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사건인 것이다. 성육신이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이듯이 성령강림은 하나님이 사람과 연합하신 사건이며 이것은 인간의 불순종의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인 것이다. 성령의 강림과 내주는 하나님과 사람의 언약적 연합이며 이제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등장하는 사건인 것이다. 만물이 탄식하며 고대하던 하나님의 아들들이 드디어 역사의 무대로 등장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의 등장은 하나님의 수많은 아들들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후 제자들에게 나타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 예수님이 받으신 하늘과 땅의 권세가 이제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주어졌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첫번째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아담의 실패가 이제 두번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되는 것이며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들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만물을 다스리는 창조사역의 동역자로 다시 세워진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어린 양과 교회의 혼인 비유나 하나님이 친히 성전이 되시므로 하늘에서 내려운 새 예루살렘에 성전이 없다는 비유는 이제 하나님과 인간의 신비한 연합으로 만물이 하나님의 뜻대로 완벽하게 다스림을 받고 드디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이루어 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창조목적이 이루어지고 이제 더 이상 일할 것이 없으므로 하나님은 안식하시며 하나님의 언약적 파트너요 창조의 동역자인 인간 역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에게 다시는 죽음과 고통과 슬픔이 없을 것이요 하나님이 영원히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