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고

다윗의 생애

메르시어 2023. 5. 16. 21:59

다윗의 생애(상)

2019-03-25 18:23:31


  주님이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신 후에 다윗 이야기는시작된다. 주님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 가장 막내인 다윗을 사울 대신 왕으로 세우시고 사무엘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명하신다. 그러나 이렇게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에게는 영광보다는 고난스러운 삶이 전개된다. 그것은 다윗이 왕으로 세움을 받지 않았더라면 겪지 않았을 고난이었다. 다윗은 이렇게 자신이 왕으로 기름을 부음받았지만 한번도 이 사실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아마도 다윗은 자신을 왕으로 택하신 이기 주님이시니, 자신을 실제로 왕으로 세우실 이도 주님이심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다윗은 단 한번도 자기 스스로 왕이 되려고 힘쓰지 않았고 왕이 된 이후에도 그 왕권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일에 힘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윗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자신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심을 알았기 때문이다. 

  드디어 다윗과 사울의 악연이 시작된다. 다윗과 사울의 첫 만남에서 다윗은 사울을 섬기며 그의 무기들 들고 다니는 최측근이 되었다.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게 된 일은 다윗이 골리앗을 넘어뜨린 사건부터이다. 사울을 비롯하여 이스라엘 전 군대가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다윗이 나서서 골리앗을 넘어뜨렸다. 골리앗 사건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 누구인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을 자처하면서도 이스라엘을 모욕하는 골리앗 앞에 꼼작도 못하고 있었지만 일개 소년에 불과한 다윗은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골라앗을 제압하였으니 이 일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 사울이 아니라 다윗임을 보여준 것이다. 사울은 수천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명을 죽었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래를 들은 사울은 그날부터 다윗을 시기하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사울은 다윗을 자기 왕권에 위협이 되는 존재로 직감했고 이후 끊임업시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으니, 드디어 다윗의 본격적인 고난이 시작된 것이다.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의 집요한 시도로부터 다윗을 구해준 시람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었다. 사울은 자기 왕권을 지켜 요나단에게 물려주려고 다윗을 죽이려 한 반면에 요나단이 자신이 왕위 계승자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보호하려고 한 일은 매우 역설적이다. 사울은 요나단에게 이새의 아들이 이 세상에 살아있는 한 너도 안전하지 못하고 너의 나라도 안전하지 못하다고 경고했지만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에게 그가 무슨 못할 일을 했기에 죽어야 하느냐고 반대하였다. 요나단이 다윗을 이렇게 아낀 이유는 다윗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로서 자신보다 이스라엘 왕이 되어야 할 사람이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요나단은 다윗을 구해주면서 다윗에게 부탁하길 주님께서 다윗의 원수들을 이 세상에서 다 없애버리시는 날에 나의 집안과 의리를 끊지 말라달라고 했을 것이다. 

 

  이제 다윗은 사울을 피해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다윗이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간 일은 그가 이스라엘 경내에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는 절박한 처지에 몰렸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안전하지 못한 다윗은 미친 체를 하며 겨우 위험에서 빠져 나와야 했다. 다윗에게 닥치는 이 모든 고난은 그가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윗이 아둘람 굴속으로 피했을 때 다윗의 집안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내려왔다,. 그들뿐만 아니라 압제를 받는 사람들과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원통하고 억을한 일을 당한 사람들도 모두 다윗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이리하여 다윗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사백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사울이 다스리는 세상에서는 아무 희망도 없는 사람들이 다윗에게 모여든 이 모습은 사람들이 다윗에게서 이스라엘의 희망을 찾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윗을 도왔다는 죄목으로 아히멜렉을 비롯한 놉의  제사장들을 몰살한 사울의 모습은 이제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왕권을 지키는 일에 온통 혈안이 된 자임을 잘 보여준다. 

 

  다윗은 도피하는 와중에서도 그일라 주민들이 블레셋에게 약탈을 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일라를 구하려고 했다. 그러자 다윗의 부하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왜냐하면 지금  사울을 피해 도피하는 중에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과 마주친다면 더 위험에 빠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합리적으로 본다면 부하들의 말이 맞다. 그러나 다윗은 블레셋에 약탈을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고 확신했고 위험을 무릅쓰고 그일라 주민을 구해주었다. 사실 그일라 주민을 구하는 일은 스스로 이스라엘 왕을 자처하는 사울이 해야할 일이었지만 그가 못하는 일을 다윗이 한 것은 다윗이야말로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임을 보여준 것이 아닐 수 없다. 부하들의 말대로 다윗의 그일라 출전으로 다윗은 사울에게 위치가 노출이 되어 더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사울은 다윗이 그일라 성읍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 하나님이 다윗을 자기 손에 넘겨주셨으니 다윗은 독안에 든 쥐라고 생각했다. 그일라 주민들을 사울이 두려워 자신들을 구해준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기려고 했고, 다윗은 광야의 산성을 찾아다니며 숨어서 사는 신세가 되었다.

 

  다윗은 도망다니고 사울은 필사적으로 다윗을 죽이려고 쫒아다는 와중에 다윗은 사울을 죽일 두번의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한번은 사울이 뒤를 보려고 다윗의 무리들이 숨어잇는 굴속으로 혼자 들어왔을 때이고 다른 한번은 다윗을 쫒던 사울의 군대가 깊이 잠들어 사울이 무방비 상태로 있던 때였다. 다윗의 부하들은 모두 이것이 주님이 주신 절호의 기회라고 말하며 사울을 죽이자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다윗은 두번이나 왔던 이 기회를 모두 거부하고 사울을 죽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윗은 사울이 비록 자기를 죽이려하고 이스라엘 왕노릇을 하지 못함을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이 기름부어 왕으로 세우신 자를 자기가 손을 들어 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시기에 누구를 왕으로 세우는 이도 하나님이시고 누구를 왕에서 폐하는 이도 하나님이심을 알았다. 그러니 다윗의 이런 행동은 오직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믿는 마음에서 우러난 판단이었다. 사울은 다윗이 자기를 살려준 일로 인해  다윗이 자기 보다 의로운 사람이고 다윗이 틀림없이 왕이 되어 이스라엘 나라가 그의 손에서 굳게 설 것이라고 자기 속마음을 실토했다. 그러나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의 추격은 멈추지 않았다. 

 

  다윗은 다시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망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윗은 자신이 살아나는 길은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망명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다윗이 더이상 사울을 피할 길이 없는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렸음을 의미한다. 아마도 부하들은 이것이 다윗이 사울을 두번이나 살려줘서 생긴 일이라고 불만이 가득했을 것이다. 다윗이 아기스에게로 도망갔다는 소식이 들리자 사울은 다시는 다윗을 다시는 찾지 않았는데 이는 다윗 죽이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다른 기회를 보려고 한 것이다. 다윗이 부하 육백명을 데리고 망명을 했기에 아기스는 다윗을 환영하고 잘 대해주었다. 아마도 아기스는 사울을 치는데 다윗이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아기스는 다윗에게 시글락성을 내주었고 다윗은 아기스의 신임을 얻고 그의 경호대장이 되었다. 드디어 블레셋과 사울의 전면적인 임박했고, 당연히 다윗은 이 전쟁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다윗을 의심하는 블레셋 족속 지휘관들의 반대로 다윗은 다행히 이 전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으니 이는 주님께서 막다른 골목에 처한 다윗에게 피할 길을 주신 것으로 보인다.

 

  다윗이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면전에서 빠져 나와 본거지인 시글락으로 돌아왔을 때 시글락은 초토화되어 있었다. 아말렉이 침입하여 성에 불을 지르고 성안의 남녀노소를 모두 사로잡아간 것이다. 다윗의 부하들은 모두 목놓아 울었고 다윗을 원망하여 돌로 치려고 하였다. 다윗의 부하들은 이런 일이 결국 다윗이 자기들 말을 듣지 않고 사울을 두번이나 살려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듯 하다. 사실 그때 사울을 죽였다면 이렇게 블레셋으로 도망올 필요도 없었고 시글락이 이렇게 초토화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부하들에게는 다윗이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왕을 죽이지 않은 결과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로 보였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에 순종하려고 한 일이 오히려 더 고통을 가져오는 결과를 빚은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이런 급박한 와중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구했고 아말렉을 추격하여 사로잡혀간 사람들을 구하고 약탈당한 모든 것을 되찾았다. 전리품을 배분하는 일에도 다윗은 부하들의 주장을 거부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찾아 배분했다. 다윗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 상황에 매몰되기 보다는 상황 너머에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전적으로 의지한 사람이었다. 

 

 

다윗의 생애(하)

2019-03-25 20:38:34


   다윗이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한 것은 당연하지만 자신을 그렇게 죽이려고 한 사울의 죽음도 슬퍼한 이유가 무엇인가? 다윗에게 사울은 단순히 사적인 원수이기 이전에 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그렇기에 사울의 죽음은 자기 원수의 죽음이기 이전에 이스라엘 왕이 이방인의 손에 죽임을 당한 슬픈 사건이었다. 사울을 왕에서 폐하고 블레셋의 손에 내어준 이가 주님이시지만 아마 주님도 사울의 죽음을 슬퍼하셨을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주님의 마음에 공감하는 사람이었기에 사울이 죽었다고 기뻐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두 용사가 죽었다고 애가를 지어 백성들에게 부르게 하였다. 그리고 사울 왕의 장례를 잘 치뤄준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에게 주님의 복을 빌어주었다. 이제 사울은 죽었지만 다윗은 스스로 이스라엘의 왕됨을 자처하지 않고 이제 어떻게 할 것인지 주님께 여쭈었다. 주님은 다윗에게 유대의 성읍인 헤브론으로 올라가라고 명하셨고 자연스럽게 유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사람의 왕으로 삼았다.

 

  그러나 유다 지파를 제외한 다른 지파들은 아직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사울의 군대장관이던 아브넬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아 다윗을 대적하였다. 그 기간이 무려 일곱해 여섯달이었다. 다윗은 자기에게 기름을 부으신 주님이 언제가는 자신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실 날을 기다렸기 때문에 스스로 왕이 되려고 애쓰지 않고 오랜 세월을 참고 기다렸다. 그러나 사울 집안과 다윗 집안 사에에 전쟁이 오래 계속되면서 다윗 집안은 점점 더 강해지고 사울 집안은 점점 더 약해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아브넬은 다윗의 편을 들어 이스라엘을 다윗에게 돌아오게 하겠다고 다윗과 언약을 맺는다. 다윗은 아브넬이 자신을 대적했지만 그를 죽이지 않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은 자기 권력의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보아 다윗의 뜻을 거스려 아브넬을 죽이고 만다. 다윗은 아브넬이 죽음을 애도하고 주님께서 요압의 악행을 갚아주시길 바랬다. 아직 다윗의 왕권이 요압을 견제하기에는 약하기 때문이다. 

 

  온 이스라엘의 왕권이 다윗에게 돌아가자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군 지휘관 두명이 이스보셋을 죽이고 그 머리를 다윗에게 가져왔다. 그들은 주님께서 다윗왕을 도우시려고 오늘에야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 벌을 내려서 원수를 갚아주셨다는 말로 자기들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이 말을 듣고 다윗은 주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이 흉악한 자들을 처벌해 버린다. 다윗은 이스보셋이나 아브넬이 자기의 왕됨을 반대하였지만 자기 왕권을 위해 그들을 죽이는 일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정의와 공의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 자기 욕심으로 사적인 복수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윗은 자기 왕권을 세우는 일을 스스로 힘쓰지않고,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신 주님이 왕을 세우기도 폐하기도 하심을 알고 행동한 사람이었다. 결국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으로 찾아와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 그는 헤브론에서 일곱해 여섯달 동안 유다를 다스리고 예루살렘에서 서른세 해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오랫동안 아비나답의 집에 머물던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 다윗성으로 옮기는 일이었다.다윗과 온 이스라엘은 환호성을 울리고 나팔소리가 우렁찬 가운데 주님의 궤를 다윗성으로 옮겨왔다. 다윗이 이렇게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옮기는 일을 가장 처음으로 한 것은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다윗은 자신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되고 왕궁에 거하는데 언약궤가 왕국 밖, 아비나답의 집에 머물러 있는 것이 합당치 못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우신 왕인 자신은 이렇게 왕국에 거하는데 정작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이 왕궁밖 초라한 처소에 계시는 것은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약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 다윗은 기쁨에 겨워 모시로 만든 에봇만을 걸치고 주님 앞에서 온 힘을 다해 힘차게 춤을 추었다. 사울의 딸 미갈은 다윗의 이런 모습을 보고 그를 업신여겼지만 다윗은 주님을 찬양하는 일이라면 이보다 더 낮아지고 싶다고 말한다. 

 

  다윗은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스스로 높이려 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오직 주님뿐이심을 알기에 주님 앞에서는 더 자신을 낮추기를 망서리지 않았다.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옮긴 후에도 다윗은 자신은 백향목 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가 아직도 휘장 안에 있음을 죄송스럽게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을 생각을 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도 백향목 집을 지어달라고 요구하신 적이 없지만 다윗의 이런 마음을 기쁘게 받으셨다. 왜냐하면 다윗의 이런 생각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자신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심을 고백하는 믿음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다윗에게 측복으로 한가지 중대한 약속을 해주시는데, 그것은 다윗의 집과 나라를 영원히 든든하게 세워주시겠다는 놀라운 약속이었다. 

 

  왕이 된 후에 다윗은 숙적 불레셋을 굴복시켰고 모압, 소바, 시리아, 하맛 에돔, 암몬 등 주변 이방 나라들을 제압하였다. 사사시대 이래 늘 이방에 억눌려 살던 이스라엘이 다윗의 통치 이후 이방과의 전쟁에서 전승을 거두게 되었다. 스스로 왕노릇하려던 사울이 결코 이루지 못한 엄청난 일들이 스스로 왕노릇하지 않는 다윗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는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이방의 압제에 시달린 이유는 이스라엘이 힘이 약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왕이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임을 잘 보여준다. 외교적 굴욕을 당한 이스라엘이 암몬과 시리아의 연합군과 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다윗은 이 전쟁을 요압에게 맡기고 자신은 예루살렘 왕궁에서 지내던중 드디어 다윗은 자기 생애 최초의 악을 행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밧세바 사건이었다. 밧세바 사건의 본질은 선지자 나단이 지적하듯이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왕권을 남용한 문제였다. 이것은 좀더 예민하게 본다면 다윗이 스스로 왕노릇하려 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한번도 스스로 왕노릇한 적이 없는 다윗이 밧세바에게 마음이 이끌려서 충직한 신하를 배신하고 죽임으로써 하나님이 주신 왕권을 남용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다. 

 

  선지자 나단의 지적에 다윗은 즉시 자기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다.주님은 다윗의 죄를 용서해주셨지만 그에게 혹독한 징계를 더하셨다. 이는 주님이 다윗을 깊이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가 징계를 통해 자기의 잘못을 뼈저리게 뉘우치고 돌아오길 바라셨기 때문이다. 이 뻐아픈 징계를 통해 다윗은 온전하게 되어 주님께 돌이켰으며 더욱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이스라엘 왕으로 성장했다.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낳은 아들이 죽는 일로 시작된 주님의 징계는 다말이 강간을 당하고 암논이 죽임을 당하는 자식들 간의 비극으로 이어지고,급기야 암살롬이 다윗을 대적하여 스스로 왕이 되려는 반란으로 발전한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을 피하여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다. 다윗은 도망가면서 울고, 머리를 가리고 슬퍼하면서 맨발로 걸어서 갔으며 다윗과 함께 있는 백성들도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언덕으로 올라갔다. 다윗의 울음은 자신이 왕권을 잃고 도망가는 신세가 된 것이 슬퍼서 울었다가 보다는 아마도 주님 앞에 자기 죄악을 회개하는 울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도망가는 자신을 저주하는 사울 집안의 시므이를 죽이지 않고 욕하게 내버려두었다. 시므이를 죽이겠다는 부하를 말리면서 다윗은 주님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고 분부하셔서 그가 저주하는 것이라면 누가 그를 나무랄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다윗은 주님이 비참한 자기 모습을 보시고 불쌍히 여겨시어 시므이가 저주한 저주 대신에 좋은 것으로 갚아주시길 바랬다.

 

  이제 다윗에게 부어진 주님의 혹독한 징계는 끝났다. 압살롬의 군대는 패배했고 압살롬은 죽임을 당했다. 다윗은 압살롬이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결국 아브넬을 죽인 요압의 손에 죽고 말았다. 다윗은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하면서 슬피 울부짖었다. 다윗에게 압살롬의 죽음은 사랑하는 자식의 죽음일 뿐 아니라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죄로 인해 벌어진 일이기에 그 슬픔이 더욱 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주님은 이렇게 다윗을 철저하게 낮추셨고 다윗은 자신의 왕권이 전적으로 주님께 달려있음을 뼈저리게 경헙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윗은 다시 왕으로 귀환하는 길에 용서를 구하는시므이를 부하들이 죽이지 못하게 말리고 자신도 시므이를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압살롬을 도와 자신을 대적한 장군 아마사를 용서하고 오히려 요압을 대신해 군대장관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마사 역시 요압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이 모든 징계가 끝난 후 다윗의 왕권은 이전보다 더욱 을 견고하게 세워졌다. 다윗이 마지막으로 남긴 다음의 말은 징계를 받은 후에 다윗이 얼마나 더 하나님 앞에 합당한 왕으로 성장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반석께서 나에게 이르셨다. 모든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왕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다스리는 왕은, 구름이 끼지 않은 아침에 떠오르는 맑은 아침 햇살과 같다고 하시고 비가 온 뒤에 땅에서 새싹을 돋게하는 햋빛과 같다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