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고

룻기의 내러티브

메르시어 2023. 5. 16. 21:44

룻기의 내러티브

2018-11-08 17:16:17


룻기 1장

   룻기의 시대적 배경은 사사시대다. 사사기의 기자가 이미 결론을 내렸듯이 사사시대의 근본 문제는 한미디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한 일이었다. 나오미의 가족 역시 이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기근이 들자 약속의 땅인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서 모압 지방으로 건너가 살았고 그곳에서 모압 여자를 며느리로 삼았다. 처음에는 기근을 피해 잠시 살러간 듯 한데 결국 그곳에서 아들들을 이방 여인과 결혼하게 하고 아예 눌러 살 작정을 한 것으로 보아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이나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판단하고 행하는 사사시시대의 전형적인 이스라엘 사람이었다. 모압에서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이어서 그의 두 아들도 죽었다. 나오미의 말대로 그는 가득찬 채로 예루살렘을 떠났지만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빈손이 되어 버렸다. 나오미는 고향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모압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아마도 빈손이 되지 않았다면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그곳에서 눌러 살았을 것이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 룻과 오르바를 그들의 백성 가운데 돌려보내려고 하였고 시어머니의 권유를 따라 오르바는 돌아갔지만 룻은 단호하게 나오미를 쫒아 가기로 결정한다. 룻은 나오미의 백성이 자기 백성이고 나오미의 하나님이 자기 하나님이라고 말하며 나오미를 따라 유대 땅으로 갈 것을 굳게 결심한다. 룻의 이런 말로 보아서 그런 결정의 동기는 단순히 인간적인 정리나 효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룻의 여호와 신앙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나오미와 룻은 날카롭게 대조되는 두 인물로 등장한다. 나오미는 하나님의 언약백성이지만 하나님을 떠나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한 사람인 반면에 룻은 이방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룻기 2-3장

  나오미는 룻과 함께 예루살렘에 돌아왔고 룻은 추수하는 밭에 나가 이삭을 주어서 생활을 하는 처지가 되었다. 여기서 보아스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에비멜렉의 친족으로소 재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보아스는 룻과 나오미를 불쌍히 여겨 여러모로 도와준다. 나오미의 말에 의하면 보아스는 이전에 자기 식구들이 살아있을 때도 자비를 베풀어준 사람이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자비를 베풀어주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보아스는 단지 고마운 사람이기 이전에 에비멜렉의 친족 중 에비멜렉 집안의 기업 무르기를 해야 할 책임을 가진 사람중의  하나였다. 의지할데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된 나오미는 보아스에게 희망을 두고 그가 기업무르기의 책임을 해주길 기대한다. 그래서 나오미는 룻을 보아스의 아내로 삼게 할 방법을 궁리하다가 룻에게 타작마당에서 보아스의 발치에 몰래 누우라고 말한다. 나오미는 이런 방식으로 보아스가 기업 무르기를 해주길 기대한 듯하다. 하지만 나오미는 이런 꾀를 통해서가 아니라 정식으로 보아스에게 기업 무르기를 요청해야만 했다. 나오미의 이런 생각 역시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보아스는 나오미의 그런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공적으로 기업 무르는 일을 책임있게 처리해 나간다.

 

룻기 4장

  보아스는 에비멜렉의 기업을 무를 책임이 있는 사람이 자신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기에 먼저 그 친족에게 기업을 무를 것을 공적으로 요구한다. 아마도 가난해진 나오미는 엘리멜렉의 밭을 팔려고 내놓았던 것 같고 그래서 보아스는 그 친족에서 그 빝을 사라고 권했다. 그 밭을 산다는 것을 기업 무르기의 책임을 감당함을 의미하는데 이는 그 밭이 다른 사람에게 팔리기 전에 가까운 친족이 먼저 살 권리가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집안의 기업을 보존하려는 의도이다. 보통 가까운 친족중 부유한 사람이 밭을 사게 되고 그는 밭을 산 후에 밭을 판 집안의 후손에게 다시 돌려주어 그 집의 기업을 보존해줄 책임, 즉 기업무르기의 책임을 다하게 된다. 보아스의 이런 제안에 그 가까운 친족이란 사람은 기꺼이 그 밭을 사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보아스는 한 가지 조건을 더 제시하는데 그것은 나오미에게 그 밭을 사는 날에 고인의 아내인 모입 여인 룻도 아내로 맞아 들여야하고 그렇게 해야만 그가 물려받은 유산이 고인의 이름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보아스의 이 말은 밭을 사는 일과 더불어 룻을 아내로 맞이하여 에비멜렉의 끊어진 후손을 이어주고 그 후손에게 사들인 밭을 돌려주어야 기업무르기의 책임을 다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러자 그 친족은 그런 조건이라면 밭을 사지 않겠다고 말하는데 왜냐하면 보아스의 말대로 하면 그 밭은 자기 소유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친족이란 사람은 에비멜렉의 후손이 없으므로 자기가 산 밭이 온전히 자기 소유가 될 줄 알고 밭을 사겠다고 한 것인데 보아스가 그런 조건을 달자 결국 자기 재산만 축날 뿐이므로 밭을 사지 않겠다고 마음을 바꾼 것이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기업무르기라는 책임을 감당할 생각은 없었고 단지 자기 재산을 불리려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기업무르기라는 하나님의 율법보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사람이었다. 더 가까운 친족이 거절하자 이제 기업을 무를 책임은 보아스의 몫이 되었고 보아스는 기꺼이 그 책임을 감당하기로 한다. 여기서도 대조적인 두 사람이 등장하는데 한 사람은 보아스이고 다른 한 사람은 가까운 친족이다. 가까운 친족이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한 사람이라면 보아스는 자기 소견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한 사람이다. 이리하여 보아스는 룻을 아내로 맞이하였고 룻은 오벳을 낳아 에비멜렉의 대를 잇게 되었다.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 다윗을 낳았다. 그런데 마태복음에 따르면 보아스는 라합의 후손으로 나오는데,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이 라합과 룻이라는 이방 여인의 후손이라는 진술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왕이 없으므로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던 희망없는 사사시대에 다윗이라는 위대한 왕이 준비되었으니 이는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가 아닐 수 없다. 룻기에서 나오미는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자기 소견대로 행하는 이스라엘, 그래서 비참하게 몰락한 이스라엘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룻기는 단순히 몰락한 나오미가 다시 복을 받게되었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함으로 몰락한 이스라엘에게 다시 하나님의 자비가 준비된다는 이스라엘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의 이런 놀라운 자비가 그저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준비된 것이 아니라 룻과 보아스라는 두 사람, 즉 자기 소견대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행하는 두 사람을 통해 이스라엘 부어진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룻기는 하나님의 통치는 언제나 순종하는 자들을 통해 이 땅에 임한다는 하나님나라의 만고불변의 진리를 잘 보여준다. 참으로 룻기는 캄캄한 사사시대를 비추는 한줄기 밝은 빛과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