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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서론- 그레고리 비일

메르시어 2023. 5. 14. 18:15

요한계시록 서론- 그레고리 비일

2017-09-17 19:52:19


   저자는 아시아의 모든 교회에 잘 알려져 있고 또 자신이 보낸 편지를 주의 깊게 읽으라고 촉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권위를 지닌 자였으며 히브리어로  된 구약 본문을 활용하는 것을 보면 헬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출신의 유대인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저자는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다른 요한일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인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을 저자로 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특히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에 나타나는 많은 주제들이 요한계시록에도 그대로 나타난다는 점이 이 판단을 확증한다. 사도 요한을 개인적으로 아는 폴리캅의 제자였던 이레니우스도 요한계시록의 저자가 사도 요한이라고 증언한다. 사도 요한은 지역에 따라 산발적으로 일어난 박해로 고통을 당하던 당시 교회들에게 편지를 썻고(2장3절, 13절, 3장8-9절), 이것은 주후 64-65년 네로 치하에서 일어났던 심각한 박해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레니우스를 비롯한 초기 저술가들은 요한이 도미티우스 황제 시대에 환상을 보았고 에베소에서 황제숭배가 시작된 것은 도미티우스 치세 때였고 이 당시 어느정도 교회에 산발적인 박해가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당시에 그리스도인에게 가해진 통상적인 핍박의 원인은 황제숭배를 거부한 것에 있었다. 유대교는 회당에서 예배할 권리를 누리고 황제숭배에 대한 부분적인 면제를 받았지만 그리스도인은 유대인과 분리된 집단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유대교에 주어진 특혜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보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회당으로 돌아가 박해를 피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황제 숭배에 굴복함으로써 박해를 피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증거로 보면 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의 노년기인 주후 90년 직후 어느 시점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요한계시록에는 묵시, 예언, 서신이라는 세 가지 장르가 결합되어 있다. 구약성경의 어떤 책에는 묵시와 예언의 두 장르가 어느 정도 결합되어 있다. 물론 묵시와 예언이 크게 다른 것은 아니지만 묵시에는 예언에서 발견되는 문학적, 주제적 특성이 강화되고 심화된 형태로 담겨 있으며, 때때로 묵시 문헌에서는 계시의 기원이 강조된다. 이런 의미에서 요한계시록은 구약의 예언적, 묵시적 작품들, 특히 에스겔서, 다니엘서, 스가랴서의 장르와 가장 잘 부합하는 책이다. 묵시문헌인 요한계시록은 다른 예언 문헌보다 계시의 원천에 더 큰 초점을 맞춘다. 요한계시록에서는 계시의 기원은 하늘의 성전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로 묘사되는데, 이는 일곱 교회에 보내진 계시의 신적이고 천상적인 원천을 강조하기 위한 지배적인 초점이 된다. 요한계시록은 땅의 현상이나 사건들의 무대 뒤에 실제로는 치열한 영적 싸움이 벌어지고 있음을 교회들에게 상기시키기 위해 이 천상적 관점을 강조한다. 요한계시록이 이렇게 천상적 관점에 초점을 두는 이유는 교회로 하여금 우상숭배의 위협을 물리치고 그들의 승리가 궁극적으로 어린양과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천상의 영역으로부터 오고, 그것이 그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땅에서 능력을 행하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는데 있다. 요한계시록의 이러한 묵시적, 예언적 성격은 과거, 현재, 미래의 구속적, 종말론적 역사에 관한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그리고 이 경륜이 하늘의 본질 및 작용과 어떻게 관련되는지에 대한 해석적 계시로 정의될 수 있다. 이 하나님의 계시는 숨겨진 천상의 영역으로부터 땅의 영역으로 침투해 들어오고 교회에 전달되도록 선지자인 요한에게 주어진다. 이 천상적 계시는 보통 역사의 평가나 인간적이고 지상적인 관점에서 나온 가치들과 충돌하고, 사람들에게 그들의 관점을 천상의 관점으로 바꾸고 조정할 것을 요구한다. 이 점에서 교회는 요한계시록의 메시지에 복종하라는 요구를 받고 그렇지 않으면 심판에 직면한다는 경고를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사건들이 단순히 미래의 마지막 시점에 대한 상황이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교회의 실제적인 삶의 상황을 다루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요한계시록 해석의 중대한 논점 가운데 하나는 요한계시록이 상징으로 해석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문자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는지의 여부다. 요한계시록 1장1절을 보면 헬라어 동사 "semaino" 가 요한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계시 양식을 암시하는데 사용된다. 이 단어는 단순히 "알려주다" 또는 "전달하다"를 의미할 수 있지만 요한계시록 1장1절이 다니엘 2장28-29절, 45절의 인유라는 사실은 이 단어가 "상징하다"를 의미한다는 것을 확증한다. 다니엘 2장의 semaino의 상징적 용법은 요한계시록 1장1절의 용법이 단순히 일반적인 정보전달이 아니라 상징적인 전달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확증한다. 요한계시록의 엄밀한 전달방식에 대한 이러한 표제 진술은 요한계시록의 기본요소가 상징적 임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것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강요받지 않는 한 요한계시록은 상징적으로 해석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요한계시록에 펼쳐지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문자적으로 취해서는 안되고 그것들은 각각 다른 일단의 실체들을 상징적으로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물론 상징적 의미를 밑받침하는 문자적 의미는 존재하지만 그 문자적 의미는 때로는 영적 실재에 대한 것이고 때로는 물리적 실재에 대한 것으로, 두 실재는 모두 모종의 역사적 실재와 관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의 메시지는 단순히 미래 사건을 드러내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이해되는 현재의 사건을 사용하여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을 끝까지 지키고 흑암의 나라의 통치를 구현하는 세상의 구조에 충성하지 않도록 경고와 권면을 말하는데 관심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심각한 비극 가운데 하나는 미래의 마지막 시점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 나머지 요한계시록을 너무 좁게 그리고 부정확하게 해석함으로써 요한계시록이 그리스도인의 삶과 제자의 길에 관한 심원한 진리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목회서신인 요한계시록의 목표는 세상이 비극과 고난과 사탄의 지배 아래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 계신다는 사실을 전함으로써 모든 시대의 신자들에게 위로를 주고자 하는데 있다. 

 

   구약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요한계시록도 이해하기 어렵다. 요한은 자신을 여호와의 심판과 약속에 대한 말씀을 선포한 구약 선지자들의 계보를 잇는 선지자로 간주한다.(1장3절) 요한계시록에는 전체 404구절 가운데 278개 구절이 구약성경을 언급하고 전체적으로 500회 이상 구약본문에 대한 언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 언급이 직접적인 인용이 아니라 인유라는 사실을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유가 문구까지 구약본문과 거의 동일한 명확한 인유이거나 문구가 동일하지 않아도 관념을 구약본문에서 직간접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개연적인 인유다. 이러한 인유들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통일성을 보여주며 특히 메시아의 고난, 구원, 승리에 대한 약속은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처음부터 동일하게 펼쳐진다는 것을 예증한다. 요한계시록은 또한 구약의 특정 주제들을 일반적으로 전개한다. 예를 들어 마지막 때의 심판과 구원, 멸망의 가증한 것에 대한 다니엘서의 개념, 마지막 때의 표징으로서의 지진에 대한 구약의 개념들이 그것이다. 주목할 점은 요한이 구약본문들을 취하여 이스라엘에게 적용되는 것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런 보편화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이 어떻게 민족들에게 확대되었는지에 대한 신약성경의 이해에 있다. 요한계시록의 환상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구약성경을 이해하는 것이다. 먼저 구약성경을 돌아보지 않으면 그리고 요한 시대에 구약성경이 의미했던 바를 올바르게 파악하지 않으면 우리는 요한계시록이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요한계시록의 다양한 환상이 서로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접근법이 있는데 미래주의 입장과 반복이론 입장이 그것이다. 미래주의 입장은 환상 순서는 그 속에 펼쳐진 사건들이 직선적인 연대순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본다. 이에 반해 반복이론 입장은 다양한 심판 시리즈는 동일한 사건들에 대한 평행적 묘사라고 주장한다. 각 심판 시리즈에서 패턴이 동일하게 나타나는데, 각 심판 시리즈가 끝날 때마다 심판에 대한 묘사 다음에 구원에 대한 묘사가 이어진다. 나는 반복이론 입장이 요한계시록의 구조를 가장 잘 설명하는 관점이라고 확신한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동일한 진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제시하시는 일련의 평행적 환상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요한이 환상 속에서 본 일의 순서는 반드시 그 일이 일어날 역사적인 연대 순서가 아니다. 요한은 동일한 사건을 다양한 환상 속에서 본 것에 대해 말하면서, 때로는 그 사건들을 동일한 순서에 따라 말하지 않거나 동일한 실재를 다른 환상으로 표현한다. 그 이유는 일반적으로 재앙이 단회적인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역사 전체에 대해 반복되고, 따라서 재앙과 사건들이 세부적으로 정확한 대응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별히 요한계시록 1장19절의 진술은 요한이 본 평행적 환상들의 시간 범주가 오순절에 교회가 탄생한 후부터 주의 재림이 있을 때까지의 전체 역사 과정을 망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의미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완전히 결정적인 열쇠를 갖게될 것이다. 편지와 이후 환상부분과의 긴밀한 관계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의 다른 서신서들과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도 신자를 위하여 기록된 목회서신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의 환상의 내용이 어느 시대에 살든지 요한계시록을 읽는 모든 신자와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관련성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찌 요한계시록의 환상은 미래의 사건만 다루고 있고 오늘날 우리와는 현실적 관련성이 없다고 추정할 수 있겠는가?

 

  요한계시록 1장 19절(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은 미래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본문이다. 미래주의 관점은 "네가 본 것"이 직전 구절에 묘사된 최초의 환상을(1장1절-18절), "지금 있는 일은 일곱 교회의 현대 상황을, 그리고 "장차 될 일"은 미래 사건들 특히 그리스도 재림 직전의 사건들 및 재림 사건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네가 본 것"의 범주를 요한이 본 첫번째 환상으로 제한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것은 요한계시록 전체 내용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지금 있는 일"은  일곱교회의 현재 시기에 일어나는 사건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일곱교회는 보편적 교회를 상징하기 때문에 "지금 있는 일"은 교회 시대 전체 가운데 "현재 기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장차 될 일"도 먼 미래의 사건으로 한정되지 않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 사이의 기간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망라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장차 될 일"이 라는 문구를 적절히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사실은 하나님이 옛날에 다니엘에게 주신 예언의 말들을 지금 요한에게 전달하고 계시다는 점이다. 만일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예언적으로 말씀하신다면 요한계시록에서 이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신다는 사실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다니엘 본문(2장28-29절, 45절)과 요한계시록 본문(1장1절) 사이의 중대한 차이는 "후일에"를 "속히"로 바꾼 것인데 이는 다니엘서의 "후일"이 요한계시록에서 바야흐로 펼쳐지기 시작했음을 함축한다. 여기서 우리는 다니엘 2장과 요한계시록 1장은 동일한 실재를 묘사하고 있다는 것과 다니엘서에 예언된 것이 요한계시록에서 성취가 시작되었다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다니엘서에 예언된 사건들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다니엘서에 예언된 하나님나라의 출범을 가져온 것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 나머지 부분에서 펼쳐진 환상들은 이 미지막 때 전체 기간, 곧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 사이의 교회 전체 역사 속에서 펼쳐지고 있는 일을  우리에게 말해준다고 보아야 한다. 비록 그런 환상들이 그리스도 재림 직전 시기를 특별히 언급하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대부분의 환상들은 요한계시록 당대를 포함해 모든 시대, 모든 교회의 삶과 역사에 대해 말한다. 만일 미래주의적 관점이 견지된다면 요한계시록 대부분의 내용은 당시의 사람들은 물론, 그 이후 지금까지 살고 있는 신자들에게도 별로 적합성이 없게될 것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의 환상들이 주는 신학적 메시지는 무엇인가? 첫째는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고난을 감수하는 것이 궁극적인 승리의 길이라는 메시지다. 십자가가 사탄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보증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현재의 고난은 흑암의 세력에 대한 승리를 보증한다. 요한계시록의 주된 주제 가운데 하나는 신자들에게 현재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세상 구조와의 타협으로 표상되는 우상숭배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결국은 하늘나라에서 상을 받게 될 것이므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실함을 끝까지 유지하라고 권면하는데 있다. 둘째는 인간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강조이다. 요한계시록 4-5장에서 하나님의 보좌에 대한 환상이 주어지는데 여기서 17번이나 등장하는 "보좌"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주권을 상징한다. 이 환상은 요한계시록 나머지 부분에서 등장하는 모든 일에 대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권세를 예증한다. 신자들의 현재적 환난, 원수의 일시적 승리, 원수의 결정적 파멸 그리고 교회의 궁극적 승리,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주권적 통제 아래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메시지는 성경적 예언의 성취로서의 새 창조이다. 구약과 신약의 주요 예언 주제는 새 언약, 새 성전, 새 이스라엘, 새 예루살렘에서 절정이 달하고, 이 모든 주제는 새 창조 개념으로 요악된다. 이 주제들은 요한계시록의 클라이막스인 21장1절-22장5절에서 나타난다. 요한계시록과 신약성경 다른 부분들은 이 실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시작된 것으로 간주한다. 즉 신자는 새 피조물로, 교회는 새 이스라엘로 간주된다. 나아가 이 예언적 실재들은 특히 요한계시록의 클라이막스에서 제시된 것처럼 완전하게 성취될 것이다.

 

1. 프롤로그 (1장1-20절)

2. 일곱교회에 보내는 편지(2장1절-3장22절)

3.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광(4장1절-5장14절)

4. 일곱 인 심판(6장1절-8장5절)

5. 일곱 나팔 심판(8장6절-11장 19절)

6. 격화된 싸움(12장1절-15장4절)

7. 일곱 대접 심판(15장5절-16장21절)

8. 바벨론과 짐승에 대한 최후심판(17장1절-19장21절)

9. 천년왕국(20장1-15절)

10. 새 창조와 영광속에 들어간 교회(21장1절-22장5절)

11. 에필로그(22장6-2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