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하나님나라
복음과 하나님나라
2017-08-26 18:37:26
복음이란 무엇인가? 복음은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식이다. 하나님나라가 이제 도래한다는 기쁜 소식이 바로 복음이다. 1세기 유대 세계에서 하나님나라가 도래한다는 것은 곧 메시아의 등장을 의미했다. 왜냐하면 메시아가 등장하지 않고는 하나님나라가 도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메시아는 하나님나라의 왕으로 오시는 분이며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하여 다윗 시대를 능가하는 위대한 나라로 만들 분이었다. 그러므로 1세기 유대인들에게 하나님나라의 도래는 곧 자신들을 이방의 압제에서 구원할 메시아의 등장을 의미했고 하나님나라는 바로 메사아의 통치로 말미암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되어 이루어질 위대한 이스라엘을 의미했다.
이렇게 1세기 유대인들에게 하나님나라는 지극히 정치적, 사회적이고 현실적이며 역사적인 실체로서 메사아를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통치이지 그저 죽어서 가는 역사 너머의 내세가 아니었다. 그리고 복음이란 바로 이런 하나님나라가 도래한다는 기쁜 소식인 것이다. 1세기 유대세계에서 하나님나라 개념은 당연히 이렇게 이해되었으며 그러므로 복음서에서 세례요한이나 예수가 하나님나라가 가까왔다고 말했을 때, 유대인들은 모두 그런 의미로 하나님나라를 이해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나라가 가까왔다고 선포하면서 그 나라가 무엇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고대하던 1세기 유대인들에게 하나님나라가 임박했다는 소식은 당연히 기쁜 소식 곧 복음이 아닐 수 없었다.
복음은 고대하던 하나님나라가 이제 임박했다는 기쁜 소식이다. 그러니 하나님나라를 떠나서 복음을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님나라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나라가 임박했다는 소식이거나 지금의 시점으로 보면 하나님나라가 이미 이 땅에 도래했다는 소식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 이후 이천년이 지난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복음이란 하나님나라라 이미 도래하여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하나님나라가 이미 도래하여 존재하며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그러니 복음은 단순히 죄용서와 종말에 심판을 면한다는 그런 의미로 왜곡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하나님나라의 도래로 말미암는 어떤 결과나 내용일 뿐이지 그것 자체가 하나님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목할 사실은 하나님나라의 도래는 반드시 메시아의 등장으로 이루어 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이 복음을 선포했을 때 거기에는 메시아의 등장에 대한 선포가 포함된 것이며 예수가 복음을 선포했을 때 거기에는 예수 자신이 메시아라는 주장이 포함된 것이다. 메시아는 하나님나라의 왕으로 세우심을 받은 자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는 반드시 이 메시아를 통해서 구현된다. 그러므로 메시아 없는 하나님나라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메시아가 하나님나라의 왕이라면 그 왕의 통치는 통치 대상인 백성의 존재를 전제한다. 통치 대상이 없는 통치가 존재할 수 없듯이 백성이 없는 왕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나라의 왕인 메시아는 그 나라의 백성을 필요로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모든 사역은 하나님나라의 왕으로 그 나라의 백성을 새롭게 세우기 위한 일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는 열두 제자들을 세웠고 그들을 통해서 복음이 이방에 전해지도록 하신 것이다.
이제 하나님나라는 이스라엘에 국한되지 않고 이스라엘을 넘어 모든 이방나라로 확대되었다. 이것은 예수는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오셨지만 이제 이스라엘의 메시아를 넘어서 온 세상의 메시아가 되셨음을 의미한다. 사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온 세상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경륜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오신 예수가 온 세상의 메시아가 되시는 것은 당초 이스라엘을 택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이루어진 일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셨기에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오신 예수가 온 세상의 메시아가 되는 일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복음이란 예수로 말미암아 그가 왕으로 다스리는 하나님나라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며 우리가 그 나라의 백성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에게 복음은 1세기 유대인들에게 처럼 하나님나라의 임박했다는 소식이 아니라 이미 도래한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소식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복음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이미 도래한 하나님나라가 무엇이고 그 나라의 백성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왜 우리가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이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인가? 이것을 알지 못하고는 우리는 복음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우리는 흔히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을 들어왔다. 이 말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다는 것이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이신 예수가 다스리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가 그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가 메시아 곧 하나님나라의 왕이심을 믿는다는 말이고 그렇게 할 때 믿는 그 사람은 예수가 왕으로 다스리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가 그 나라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말이다.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왕의 다스림을 인정하고 받아야 한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 분을 하나님나라 왕으로 인정하고 그 통치에 순종하겠다는 약속을 의미한다. 그래야만 그가 왕으로 다스리는 나라에 들어가 그 백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복음이란 예수가 하나님나라 왕이라는 선포이고 이 선포는 동시에 그가 다스리는 나라에 들어오라는 초대이기도 하다. 결국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 바로 이것이 복음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일 믿는다는 것, 곧 그가 하나님나라의 왕이심을 믿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를 왕으로 모시고 그의 통치에 순종하겠다는 서약이기도 하다. 그럴 때 그는 예수가 다스리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가 그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다. 그렇기게 믿음은 곧 순종을 의미한다. 왕으로 인정하면서 그 왕의 통치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거짓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동시에 순종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할 수 없다. 복음에서 믿음과 순종은 분리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복음이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소식이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소식은 예수가 바로 하나님나라의 왕이시란 소식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그 복음을 듣는 자로 하여금 예수가 하나님나라 왕이심을 맏고 순종하라고 요구한다. 복음은 단순한 소식이 아니라 듣는 자로 하여금 믿고 순종하라는 요구이다. 이 요구를 받아들여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자 곧 예수가 하나님나라 왕이심을 믿고 그 다스림에 순종하는 자가 바로 복음을 믿는 자이고 이런 자가 바로 하나님나라에 들어간다. 이것이 바로 복음을 믿고 혹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 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