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형이상학- 김남호
부활의 형이상학- 김남호
2017-06-30 01:13:17
들어가는 말
기독교 교리의 핵심 중 하나는 바로 부활이다. 부활은 하나의 사건이고 하나님의 약속이며 기적이다. 형이상학적으로 보면 부활은 인간론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부활 문제를 난해하게 만드는 것은 인격 동일성의 문제다. 가령 내가 부활 한다면 부활 전의 나와 부활한 내가 동일한 나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지금까지 기독교의 인간 이해는 주로 실체 이원적 인간론의 영향을 크게 받아왔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실체 이원론은 급격한 쇠퇴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실체 이원적 인간론이란 무엇인가?
1. 플라톤의 이원론
실체 이원적 인간론이란 인간을 두 개의 서로 다른 실체, 즉 정신적 실체와 물질적 실체의 결합으로 이해하는 존재론적 입장을 말한다. 실체 이원적 인간론이 인류의 지성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플라톤에 이르러서다. 파이돈에서 플라톤은 인간을 눈에 보이는 부분과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으로 구분한 뒤에, 신체는 전자에 속하며 영혼은 후자에 속한다고 논증한다. 계속해서 플라톤은 비가시적인 부분, 즉 영혼은 신체와 달리 소멸되지 않기 때문에 신적인 것에 더 가깝다는 논증을 편다. 또한 우리의 신체에 명령하여 움직이게 하는 부분은 비가시적인 부분, 즉 영혼이라고 말한다. 플라톤은 영혼은 신적인 것에 가까우므로 인간이 죽으면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지 않고 신이 머무는 하데스로 간다고 생각했다.
2.데카르트적 이원론
영혼과 관련하여 데카르트는 크게 보면 플라톤의 사상적 노선 위에 서 있지만, 실체 개념의 도입과 소위 '방법적 회의'라고 부르는 진리탐구의 방법을 도입하여 실체 이원적 인간론을 본격적으로 하나의 세련된 형이상학적 입장으로 완성시켜 놓았다. 데카르트는 정신을 '사유'를 본질로 하는 실체로 보았고 신체는 '연장'을 본질로 하는 실체로 보았다. 그는 이 두 실체는 존재하는데 서로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보았으며 인간을 이 두 실체의 통합체로 간주했다. '성찰'의 제2 성찰에서 데카르트는 나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나는 '사유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왜냐하면 내가 사유하는 동안에 나는 존재하기 때문이며 사유가 멈추면 내가 존재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는 확실한 기준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사유하는 것' 이라는 관념은 데카르트가 소위 '방법적 회의'를 수행한 뒤에 가장 먼저 발견한 명석판명한 관념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사유하는 것이 명석판명하더라도 내가 신체와 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인간은 자신을 항상 신체-정신 통합체로 체험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이 통합체를 인격이라고 불렀다. 데카르트는 각자가 자기 자신을 인격으로 감지한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에게 실체로서의 비물질적 정신과 또 다른 실체인 물질적 신체는 명석판명한 관념인 반면에 정신-신체 통합체로서의 인격은 명석판명한 관념이 아니다. 정신과 신체의 통합성은 오직 감각에 의해서만 분명하게 알려질 뿐, 지성에 의해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인격은 실재의 존재론적 목록에 속할 수 없게 된다. 즉, 사유하는 것이 명석판명한 관념에 기초한 형이상학적 결론임에 비해 인격은 명석판명한 관념에 기초해 있지 않지만 일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부인할 수 없는) 상식에 속한다. 결국 데카르트의 이원적 인간론은 형이상학적 인간 이해와 상식적 인간 이해 사이의 갈등에 직면하게 된다. 이 두 인간 이해의 갈등은 형이상학적 인간 이해가 상식적으로 의심할 수 없는 인간의 어떤 고유한 특징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3. 창발적 이원론
1세대 창발론자들이 기계론과 물활론의 양 극단을극복하는데 관심을 두었다면 1960년대 후반부터 다시 등장한 창발 이론은 환원적 물리주의에 맞서 물리/화학적 프로세스와 다른 성격을 가진 듯 보이는 실재(entity)와 속성(property)의 실제성을 옹호하는데 관심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창발 이론의 발전에 힘입어 창발론적 세계관을 받아들여 새로운 형태의 실체 이원론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로위, 스윈번, 해스커 등이 현대적 실체 이원론에 창발 개념을 도입한 대표적인 철학자들이다. 데카르트 이후 새롭게 등장한 실체 이원론은 공통적으로 정신적 실체 혹은 통합적 자아와 심적 인과의 실재성을 설명하고자 한다. 심적 인과는 자유의지를 가능하게 해주는 인과력이며 정신적 실체 혹은 통합적 자아는 그 새로운 인과력의 존재론적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로위, 스윈번, 해스커 등과 같은 실체 이원론자들이 자유의지 논쟁에서 리버타리아니즘을 지지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실체 이원론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해스커는 기존의 입장들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우선 물질주의는 소위 '설명 상의 틈'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해스커가 보기에 감각질, 심적내용, 지향성은 물리적 속성으로 환원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기능주의 역시 마찬가지라고 평가한다. 수반 이론의 경우 심적 인과의 실재성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해스커는 기존의 이원론에도 비판을 가한다. 속성 이원론은 심적 실체를 가정하지 않고 심적 인과의 실재성을 옹호하려고 하지만 해스커가 보기에 심적 인과의 궁극적 근원으로서의 심적 실체를 묻지 않는다면 불충분한 설명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데카르트적 이원론의 경우 현대과학과 심각한 마찰을 일으키며, 두 살체 사이의 인과적 상호작용의 원리는 미스터리로 남겨져 있다는 난점이 있다. 해스커는 새로운 실체 이원론을 통해서 이 난국을 타파하고자 했다. 해스커의 창발 개념과 실체 이원론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개념을 '창발적 개별자'라고 할 수 있다. 해스커는 자신의 실체 이원론에 '창발적 이원론'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 새로운 이원론은 통합된 의식적 체험을 존재론적으로 가능하게 해주는 '심적 실재'를 설명해 주면서 동시에 의지의 자유의 가능성도 설명해 준다. 해스커의 실체 이원론은 행위자 없는 행위자 원인의 비일관성을 비판하고, 창발적 개별자를 행위자 원인의 존재론적 근거로 파악한다. 해스커는 심적 실체 없는 의식적 체험의 통합성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하며 창발적 개별자를 의식적 체험의 존재론적 근거로 파악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해스커의 실체 이원론은 창발 이론에 토대를 두며 심적 실체를 두뇌의 기능적 활동에서 창발된 개별자로 본다는 점에서 데카르트의 실체 이원론과는 차별성을 가진다. 그러나 창발적 이원론이 데카르트적 이원론의 난점들을 과연 극복할 수 있냐는 물음은 아직 남겨져 있다.
실체 이원적 인간론의 난점들
1. 데카르트적 이원론의 난점들
첫 번째 난점은 '인과적 상호관계의 문제'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인간은 두 실체의 결합체이다. 그런데 두 실체는 정의상 존재하기 위하여 다른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론적 자족성을 지닌다. 그렇다면 결국 서로 다른 실체 사이에 어떻게 인과적 상호작용이 가능하냐는 문제가 발생한다. 두 번째 난점은 '관찰 가능한 연속성 문제'와 관련된다. 현대 생물학은 인간과 다른 동물 사이에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많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인간이 가진 고유한 정신적 능력들을 오직 영혼으로만 설명하기 때문에, 다른 동물과의 생물학적 연속성을 간과하고 있다. 데카르트 이원론의 마지막 난점은 '마음의 두뇌 의존성'이다. 현대 신경과학은 수많은 사례를 통해서 인간의 정신 능력이 두뇌의 상태에 의존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데카르트적 이원론이 현대철학과 과학에서 받아들여 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이론이 정신적 능력의 근원을 영혼에서 찾기 때문에, 경험 과학적 사실에 어긋난다는데 있다.
2. 창발적 이원론의 난점들
창발적 이원론은 '관찰 가능한 연속성의 문제' 그리고 마음의 두뇌 의존성' 에 대해서는 설득력 있는 답변을 줄 수 있다. 우선 창발적 이원론의 가장 큰 장점은 데카르트 이원론과 달리 생물학적 진화와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또한 창발적 이원론은 두뇌에서 마음이 창발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신경과학의 발전을 통해 신경과학과 심리철학에서 일반적으로 의심없이 받아들여지는 '마음의 두뇌 의존성'과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창발적 이원론은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는데 그것은 '일관성의 문제'이다. 해스커의 창발적 개별자는 공간적 실재라는 점에서 데카르트의 비물질적 실체와는 다르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실체 이원론은 속성 이원론을 포함한다. 왜냐하면 심적 실체는 물리적 대상들에 대한 어휘로 설명되지 않거나, 하부 층위의 구성요소들로 환원되지 않는 심적 속성 및 상태들의 담지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스커의 창발적 개별자는 공간적 실재이면서 동시에 심적 속성 및 상태들의 담지자라는 말이 된다. 또한 창발적 개별자는 그것의 하부 층위에 인과력을 행사한다. 즉, 창발적 개별자는 물리적 에너지를 가진다. 해스커는 마음과 두뇌 사이의 에너지 교환이 몸과 마음의 인과적 상호 작용의 원리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어떻게 공간적 실재가 비공간적 특성을 보이는 심적 속성 및 상태들의 담지자가 될 수 있는가? 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문제는 실체 이원론으로서의 창발 이원론의 정체성 문제와 연관된다. 만일 창발적 이원론이 공간적 실재이자 에너지를 가지는 창발적 개별자를 옹호한다면, 왜 창발적 이원론을 '실체 이원론'의 한 종류라고 보아야 하는가? 여기에 창발적 이원론의 태상적 난점이 놓여 있다. 심적 실체를 공간을 점유하지 않는 실재, 즉 비물리적인 실재로 간주하면 데카르트적 이원론의 난점들에 직면하게 되고, 반대로 심적 실체를 공간을 점유하는 물리적 실재로 보는 창발적 이원론의 경우 실체 이원론으로서의 정체성을 위협받게 된다. 오늘날 실체 이원론적 인간론을 지지하고자 한다면 위에 언급한 난점들을 극복하기 위한 설득력 있는 논증들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런 작업 없이, 또는 신경과학과 심리철학의 발전에 대한 고려없이 단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영혼의 실재를 고수하려고 한다면 시대착오적일 것이며 이는 당대의 과학과 철학의 지평 속에서 기독교를 변증하고, 신학적 사유를 모색했던 터툴리안,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와 같은 선인들의 정신에도 위배될 것이다.
구성적 인간론
1. 구성 개념에 대해
부활의 문제는 인간론 및 인격동일성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만일 실체 이원론을 포기한다면 결국 일원적 인간론에 대한 긍정적 탐구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필자는 일원적 인간론 중에서 베이커와 코코런의 구성 관점이 환원적 물리주의나 제거주의 그리고 실체 이원론에 맞서는 가장 성공적이고 장점이 많은 입장이라고 평가한다. 구성 관점은 어떤 물질적 사물과 그 사물을 구성하고 있는 부분들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에 대한 형이상학적 문제인 소위 물질적 구성 문제에 대해 하나의 해결책으로 제시된 입장이다. 물질적 사물과 그 사물을 구성하고 있는 부분들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양자는 동일한 것인가? 만일 동일하다면 어느 쪽이 실제적인가? 만일 동일하지 않다면 어떻게 다른 두 존재가 동일한 공간을 점유할 수 있는가? 구성 관점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시도한다. 구성 관계는 다음의 몇가지 특징을 가진다. 1) 구성 관계는 각각의 개별자들, 즉 물질적 사물(x)와 그 사물을 구성하고 있는 부분들(y)이 속하는 일차 종들 사이에서만 성립한다. 2) 구성관계는 비대칭적이다. 즉 물질적 사물(x)와 그 사물을 구성하고 있는 부분들(y)의 구성 관계에서 y는 x를 구성하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3) 구성 관계는 시간제약적이다. 즉 시점 t에서 y는 x를 구성하지만 시점 t' 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4) 구성 관계는 새로운 인과력을 낳는다. 5) 구성 관계는 그것이 성립되기 위한 특정한 환경을 필요로 한다. 6) 구성 관계는 동일성 관계가 아니다. 즉 물질적 사물(x)와 그 사물을 구성하고 있는 부분들(y)에는 서로 같지 않은 속성들이 존재하므로 x와 y는 동일하지 않다. 7) 구성 관계는 통합 관계이다. 가령 시점 t에 x가 y에 의해 구성된다면 x와 y는 시점 t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통합된 개별자, 즉 일차 종으로서의 x만 존재한다.이런 이유로 구성된 존재는(x) 구성하는 존재에(y) 비해 존재론적 우선권을 갖는다.
2. 인간 인격의 존재론적 특징들
구성 관점은 인간을 본질적으로 인간인격으로 본다. 베이커의 구성 관점은 인격, 인간 유기체, 인간인격을 구분한다. 여기서 인격은 일인칭 시점을 본질적으로 가진 존재이며, 인간 유기체는 생물학적 종, 즉 호모 사피엔스를 가르키며, 인간 인격은 구성 관계에 따라 인간 유기체에 의해 구성된 인격이다. 위에서 언급한 구성 관계의 특징들은 인간인격에 그대로 적용된다. 우선 1) 인간인격은 두 일차적 종, 즉 인간 유기체와 인간인격들 사이의 관계다. 2) 인간 유기체는 인간인격을 구성할 수 있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3) 인간인격은 시간 제약적이다. 즉 어느 시점에서 한 인간 유기체는 인간인격을 구성할 수 있지만 다른 시점에서는 아닐 수도 있다. 4) 어느 시점에 인간유기체가 인간인격을 구성할 때 하나의 통합적 존재, 즉 인간인격만이 존재한다. 즉 어느 시점에서 인간 유기체와 인간인격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인격만이 존재한다. 구성 관점에서 인간인격은 존재론적으로 일원론적이다. 5) 인간 유기체가 안긴인격을 구성할 때 인간 유기체와 인간인격은 동일하지 않다. 식물인간의 경우처럼 일인칭 시점을 상실할 경우 인간인격은 존재하지 않지만 인간 유기체는 여전히 존재한다. 즉 인간인격과 인간 유기체는 지속 조건이 다르므로 양자 사이에 동일성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구성 관점은 인간을 유기체와 동일한 것으로 보는 일원적 인간론의 한 형태인 동물주의와 다르다. 6) 인간인격은 새로운 형태의 인과력을 자연 내에 행사한다. 7) 인간 유기체가 인간인격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사회적 제도들을 포함하는 특정한 환경을 필요로 한다. 이상의 간략한 정의를 통해 언급했듯이 구성관점은 인격과 인간유기체를 구분한다. 인격을 인간 유기체로부터 구분시켜주는 본질적 차이는 바로 일인칭 시점이다. 인간인격을 구성하는 인간 유기체는 단지 우연적으로만 일인칭 시점을 가지는 반면, 인격은 본질적으로 일인칭 시점을 가진다. 일인칭 시점을 통해서 나는 비로서 나를 자 자신으로 인지하며, 나의 느낌, 생각, 기억 등을 나의 것으로 인지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일인칭 시점은 자기 의식의 필요조건이며, 인간인격은 우리의 내적 체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필요조건이다. 구성관점은 실체 이원론과 달리 인간을 본질적으로 인간인격으로 본다. 인간인격은 인간 유기체에 의해 구성된 인격이다. 구성 관점은 구성 관계를 통해서 그 어떤 비물질적 실체를 가정하지 않고도 내적 체험의 세계를 향유하는 인간의 존재론적 지위와 독특함을 설명해준다. 구성관점은 철저히 일원론을 취하지만 인간을 인간 유기체와 동일한 것으로 보는 동물주의와 달리, 인간을 본질적으로 일인칭 시점을 지니는 인격으로 본다.
구성 관점과 부활의 문제
1. 부활의 형이상학
부활에 대한 형이상학은 가장 먼저 부활이 형이상학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부활의 문제는 인격적 동일성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부활체와 관련하여 인격 동일성의 문제에 대해 다음 몇가지의 입장들이 있다. 1) 실체 이원론은 죽음 이전과 죽음 이후에 인격 동일성의 기준으로 영혼의 동일성을 제시한다. 2) 동물주의는 살아있는 유기체의 동일성을 기준으로 제시한다. 3) 심리적, 지속성 이론은 기억의 동일성을 동일성의 기준으로 제시한다. 4) 소프트웨어로서의 영혼 관점은 인격의 동일성을 소프트웨어의 동일성과 같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5) 구성 관점은 일인칭 시점의 동일성을 인격 동일성의 기준으로 본다. 스윈번과 같은 현대의 실체 이원론자들은 부활 전과 부활 후의 한 개인의 동일성을 확보해주는 객관적인 기준은 영혼의 동일성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실체 이원론이 가정하는 영혼은 물리 법칙과 자연의 진화과정에서 벗어나 있는 존재로 이해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동물주의는 인간을 살아 있는 유기체 즉 인간 유기체와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동물주의 역시 부활의 문제에 적합한 형이상학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부활 전의 몸은 부패하지만 부활 후의 몸은 부패하지 않는 신령한 몸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만일 동물주의가 옳다면 즉 인간의 동일성이 곧 인간 유기체라면 부활 전과 부활 후의 인간 유 기체는 동일해야 한다. 그러나 부패하는 자연의 몸과 부패하지 않는 신령한 몸에 대한 성경의 구분을 받아들인다면 부활 전과 부활 후의 몸은 동일하지 않다. 따라서 부활체의 동일성에 대한 동물주의의 제안은 옳지 않다.
2. 부활과 구성 관점
구성 관점은 인격의 동일성을 일인칭 시점의 동일성으로 본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누구나 제3자의 도움이 필요없이 자신을 자기 자신으,로 인식한다. 인간인격은 인간 유기체에 의해 구성된 인격이다. 그러나 인간 유기체는 변화하며 부분적으로나마 완전하게 교체될 수 있다. 가령 누군가 두뇌를 제외한 자신의 생물학적 신체를 기계로 대체했다고 해도 그의 일인칭 시점만 동일하다면 그는 여전히 동일한 인격이 될 수 있다. 즉 구성 관점은 신체나 신체 이외의 물질적 조건들을 인간 인격의 핵심적인 요소로 보지만, 동일성을 인간 유기체의 동일성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동물주의가 직면하는 난점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이미 보았듯이 인간인격은 하나의 통합체를 이루는 구성 관계에 의해 형성되므로 영혼과 같은 비물질적 부분이나 요소를 끌어 들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인칭 시점으로 환원불가능한 일인칭 시점을 인격의 필요충분 조건으로 보기 때문에, 내적 체험의 고유함과 풍요로움을 확보해 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기독교인들은 부활에 대한 성경의 약속을 믿는다. 형이상학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부분적으로 부활에 대한 합리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해준다. 성경에 의하면 부활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어느 시점에 부패하고 사라질 자연의 몸을 버리고 영원히 부패하지 않는 신령한 몸을 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동일한 자신으로 알게 해주는 일인칭 시점이 지속되는 이상 몸의 바뀜은 인격 동일성의 확보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가는 말
데카르트는 '성찰'의 제2성찰에서 '나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이 물음은 나의 존재론적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이다. 데카르트는 이 물음에 '나는 사유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실체 이원론을 지지하게 된다. 그러나 실체 이원론은 20세기에 들어와 발전한 신경과학과 형이상학에 의해 더 이상 받아들여지기 힘든 입장으로 판명되었다. 실체 이원론은 스윈번,해스커 등에 의해 명맥을 이어가고는 있지만 이미 제시된 난점들을 설득력 있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올슨 등이 제안한 동물주의는 인간을 인간 유기체로 본다는 점에서 극단적인 일원론의 형태를 취한다. 그러나 동물주의는 생물학적,신경과학적 지식들과 잘 부합할 수 있다는 장점을 제외하면 인간이 가진 고유한 정신적 능력들, 내적 체험의 세계들이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해주지 못한다. 또한 부활체와 관련된 인격동일성의 문제에서 부활 전의 몸과 부활 후의 몸의 동일성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한다. 이와 달리 구성 관점은 실체 이원론과 동물주의의 정점을 모두 취할 수 있는 입장으로 평가된다. 우선 구성 관점은 인격의 필요충분 조건을 일인칭 시점으로 본다. 일인칭 시점, 특히 강한 일인칭 시점은 내적 체험과 합리적 도덕적 숙고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우리를 다른 동물과 구불해주는 본질적인 차이다. 또한 부활의 문제와 관련해서 구성 관점은 인간 유기체와 인간 인격을 동일 관계가 아닌 구성 관계로 보기 때문에 성경에서 말하는 자연의 몸에서 신령한 몸으로서의 변화 및 교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인격의 동일성이 확보될 수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