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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신경과학)의 인간 이해- 허균

메르시어 2023. 5. 14. 17:42

뇌과학(신경과학)의 인간 이해- 허균

2017-06-29 10:39:42


1.  뇌과학은 뇌라는 생체기관의 구조와 기능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감각.지각, 운동기능 뿐 아니라 기억, 언어, 지능, 감정, 성격 등의 정신 기능 등도 다루게 된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인간의 마음, 의식, 정신, 더 나아가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추상적 질문에 다가가게 된다. 일상 생활에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의식은 이 세상이 존재하고 이 세상과 대면하고 있는 나 자신이 존재한다는 의식이다. 우리의 삶은 나 자신이라는 주체와 나를 둘러싼 외부세계로 구성되어 일어나는 것 같지만 뇌과학에 의하면 실제 모든 것은 우리의 뇌 속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뇌과학 이론을 근거로 하면, 감각, 사고, 감정, 기억 같은 인간의 정신활동은 신경세포로 구성된 거대한 회로망에 각기 다른 신경전달 물질이 분비되어 특유의 전기적 활동상태가 시간과 공간에서 펼쳐지는 물리화학적 현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뇌과학(*신경과학)은 인간의 마음을 뇌라고 하는 생체조직에서 비롯되는 생물학적 현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2.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뇌과학은 인지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와 연결되어 인지신경과학으로 발전하게 된다. 뇌과학이 뇌의 구조와 전기화학적 특성 즉 인간의 마음을 창출하는 컴퓨터의 하드웨어쪽을 연구하는 분야라면 인지과학은 인간의 정신활동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기능적으로 분류하고 서술하여 마음을 다양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으로 보고 연구하는 분야라고 볼 수  있다. 이리하여 놔과학은 점차 단순한 뇌의 생물학적 현상을 관찰하고 기술하는 범주를 벗어나 인간 본성을 새롭게 정의하고 인간의 가치체계를 규정하는 규범적 학문으로 점차 변해가고 있다. 나아가 뇌과학은 신경경제학, 신경사회과학, 신경인류학 등으로 범주가 확대되어 인간의 모든 개인적 정신현상 뿐만 아니라 복잡한 집단적 사회문화현상 전체를 설명하는 통합적 패러다임으로 정착해 가고 있다.

 

 3. 뇌과학은 뇌의 궁극적인 역할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속에 내재되어 있는 불확실성을 탐지하고 최소화하여 최소한의 에너지로 생존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본다. 즉 뇌는 감각기관들을 통해 외부 정보를 수집하여 뇌속에 세계에 대한 모델을 일차적으로 구축한 후에 닥쳐올 미래를 예측하여 가능한 여러 옵션들 가운데 최적이라 예측되는 행위를 일차적으로 실행한다. 그리고 예측했던 결과와 실제 얻어진 결과 사이의 오차를 계산하여 그 오차를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그 다음의 행위를 개선하고 학습하여 끝없이 변화하는 환경을 통제하고 적용하도록 한다. 이렇게 뇌는 미래 예측에  대한 시행착오를 반복적으로 거듭하면서 변하는 환경 속에서 발견되는 인과관계를 파악하게 되고 점차 세계에 대한 믿음 체계를 구축하게 된다. 뇌과학에 의하면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것들 자아, 가치관, 인간관계, 사회 정치 윤리 철학 심지어 종교를 포함한 모든 것들은 불확실성을 통제하기 위해 뇌가 확률적 과정을 거쳐 만들어낸 거대한 믿음체계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느끼는 세계는 뇌가 만들어 내고 있는 일종의 창작물이며 참된 실재와는 거리가 먼 변형된 양상을 띠고 있다. 또한 "나"라는 의식은 확고한 주체적 실제라기 보다는 뇌의 다양한 정보처리 과정들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며 우리가 느끼는 자유의지란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정보처리 과정의 최상층부가 후향적으로 의식된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4. 이렇게 뇌과학은 현대 생물학과 인지과학을 결합하여 그동안 신비스럽게 여겨지던 뇌의 구조와 작동원리를 명쾌하게 규명하는데 성공했고, 주관적이고 추상적이던 인간의 마음과 정신현상을 기계적으로 환원하는 이론으로 변하고 있다. 인간 본성에 대한 뇌과학의 주장들은 우리의 전통적인 인간 이해와 기독교 신앙에 심각한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 뇌과학은 인간의 영혼, 자아, 자유의지, 윤리와 가치 등의 개념을 모두 다 실체가 아닌 뇌가 작동할 때 생겨난 소산물로 간주하며, 인간의 진정한 실체를 뇌에 의해 작동되는 불확실성의 정보처리 기계라고 본다. 뇌과학은 오로지 정보처리 이론에 입각한 기능적 설명을 시도하는 가운데 영혼, 자유의지, 의식 같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주관적 체험들을 물리적 과정의 부수적 환상이라고 송부리채 부정하며 그 존재 자체를 제거하려고 한다.그러나 뇌과학은 그동안의 엄청난 과학적 기술의 진전에 불구하고 풀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데 그것은 의식 또는 자의식의 문제다. 뇌는 정보처리를 통하여 세계를 수용하고 대응할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을 느끼고 나 자신의 내면을 체험하고 각성하게 하는 의식 현상을 생성해 낸다. 문제는 어떻게 뇌의 작용이 의식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지 뇌과학은 아직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의식 현상은 뇌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과학적 지식만으로는 답변이 될 수 없는 또 다른 차원의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뇌과학이 직면한 한계질문들은 인간 존재가 결코 생물학적 수준에서 종결될 수 없으며 뇌과학의 폐쇄적 지평만으로는 인간에 대한 온전한 이해에 도달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5. 우리는 뇌과학의 도전을 평가할 때 과학적 성과들을 부정하거나 일방적으로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뇌과학의 기본적인 전제와 한계를 철저히 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뇌과학을 포함한 현대과학은 근본적으로 자연주의, 물리주의, 환원주의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 과학은 결코 세계를 완벽하고 온전하게 규명하는 것이 아니며 연구대상과 방법론에 따라 매우 작은 한 부분을 분절적으로 기술하면서 세계에 대한 하나의 해석을 확대하려는 편향적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기독교는 과학적 도전들에 대해 개방된 자세로 과학의 한계를 넘어서 과학적 결과들을 통괄할 수 있는 총체적 인간이해의 틀을 신선하게 제시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뇌과학의 도전에 대해 바르게 응답하기 위하여 다양한 분야의 기독교 지식인들의 각성과 소명이 요구되는 시점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