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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의 기독론

메르시어 2023. 5. 14. 17:02

요한복음의 기독론

2017-04-09 19:15:26


   1. 요한복음은 예수가 누구이신가? 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는 선포로 시작한다. 왜 요한복음은 예수에 대한 증거를 "말씀"이 계시니라는 말로 시작한걸까? 여기서 말씀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할 것이다. 물론 요한복음이 태초에 계시던 말씀 그 자체를 예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요한복음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그 말씀이 육신을 입고 세상이 오신 분이 바로 예수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요한은 예수를 말씀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분으로 표현하는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시고 자신의 뜻을 나타내신다. 그렇다면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 바로 예수라는 것은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계시와 하나님의 뜻이 충만하게 드러남을 의미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계시가 예수에게서 절정에 이르렀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예수는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절정인 셈이다. 사실 요한 복음은 이어지는 내러티브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계시의 절정이요 총화임을 예수의 구체적인 말과 행위를 통해 드러낸다. 그러므로 예수가 선재하는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선포는 예수의 신성과 선재성과 더불어 예수가 하나님의 계시의 절정이라는 주장을 포함한다. 요한복음은 만물이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창조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차원을 갖는다.  이것은 예수는 온 세계의 주님이고 왕이심을 의미한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그 안에 생명이 있다고 말한다. 예수 안에는 생명이 있을 뿐 아니라 그 생명을 세상에 주는 분이시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사람들을 비추는 빛이라고 말한다.예수는 태초에 계신 말씀일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분이고 사람들을 비추는빛이시다. 

  2. 문제는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이 빛에 대해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이 빛을  믿게할 증인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바로 그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은 자가 세례 요한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 빛이 아니라 그 빛에 대해 증언하러 온 자이다.  그런데 이 빛을 증언하는 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그들 가운데 거하신 분의 영광을 보는 자들이다. 요한복음은 그들이 본 영광은 예수의 영광이며 그 영광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말한다. 여디서 요한복음은 예수를 아버지의 독생자라고 말한다. 앞에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관계가 아버지와 아버지의 독생자라는 관계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그 독생자를 통해 하나님이 볼 수 있게 나타났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요한복음은 예수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도 말하고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라고도 말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은유적 표현이 지향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임재 혹은 영광 혹은 계시가 예수를 통해 충만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요한복음이 예수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 속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은 곧 충만한 은혜와 진리이다. 은혜와 진리는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전제한다.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시고 그 언약적 신실함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은혜와 진리로 나타난다. 다시 말하면 은혜와 진리는 언약적 원리이며 하나님은 이 언약적 원리를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기고 행동하신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것이 바로 하나님이 언약적 원리인 은혜와 진리를 따라서 행하신 일이라고 말하는 셈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의 성육신 에는 하나님의 은혜의 행동과 진리의 행동이 동시적으로 가장 충만하게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율법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나타났지만 은혜와 진리의 가장 충만한 것, 혹은 은혜외 진리의 실체는 예수를 통해서 나타났다는 의미이다. 

 

  3. 결론적으로 요한복음의 기독론은 대단히 언약적이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말씀하시던 분이시며 그 말씀으로 세계를 지으신 분이시다. 이렇게 하나님과 세계는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불가분의 필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사실은 피조물이 하나님을 떠나 존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이 지으신 피조세계를 붙드시며 다스리시는 신실하신 분이심을 전제하고 있다. 세계와 하나님 간의 이 불가분의 관계, 그리고 피조셰게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구체적인 역사 가운데 나타난 것이 바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이 얼마나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시며 이스라엘이 얼마나 언약을 배반한 자들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온 세상을 대표하여 세워진 상징적 존재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세상의 불가분의 관계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반영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은 곧 하나님과 이 세상이 맺은 언약을 대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이 세상을 대하여도 신실하신 분이시다. 태초부터 계시던 말씀이 사람들의 생명이며 사람들을 비추는 빛이라는 말은 바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그 절정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예수는 하나님의 언약의 절정이며 언약적 행동의 총화이며 에수의 영광에는 언약적 원리인 은혜와 영광이 충만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