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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우종학

메르시어 2023. 5. 12. 11:22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우종학

2016-06-27 18:10:20


과학과 신앙

 

1. 과학과 신앙은 서로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다. 기독교와 과학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창조과학은 기존의 과학 대신에 성경을 토대로 한 새로운 과학을 세우겠다는 동기를 갖고 있으며 성경의 내용들이 과학으로 입증될 수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창조과학은 과학에 대한 기독교의 유일한 입장이 아니다. 과학과 종교는 서로 적대적이지 않다. 갈릴레오 사건을 종교가 과학을 억압하고 반대한 대표적인 사건으로 평가하는 것은 과학을 무신론적인 도구로 삼아 종교를 비판하는 무신론자들에 의해 악용되어 온 일종의 편견이다.  당시에 과학계에서도 갈릴레오의 태양중심설을 지지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공존했고, 신학계에서도 지구중심설을 지지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공존했다. 그러니까 당시에 신학계는 태양중심설을 지지하고 과학계는 지구중심설을 지지하는 그런 양분화된 상황이 아니었다. 더 중요한 것은 갈릴레오를 지지했던 사람들과 반대했던 사람들 중 다수가 기독교인들이었고 성경의 권위를 높이 인정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갈릴레오 재판은 단순히 종교와 과학이 대립한 사건으로만 볼 수 없다.

 

2. 진화 이론은 생물의 변화 과정, 즉 진화를 연구하는 과학이론일 뿐이지 진화 이론 자체가 무신론이나 유신론의 입장을 가진 것이 아니다.  무신론이나 유신론은 세계관의 문제이고 유신론이든 무신론이든 우주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를 다루는 것은 과학의 문제다. 세계관적 논의와 과학적 논의는 분명히 서로 다른 차원을 다루는 것이다. 창조-진화 이슈를 다룰 때 진화, 진화이론, 진화주의, 이 세가지를 구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진화라는 말은 과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로서 시간에 따른 변화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우주 진화든 생물 진화든 진화 자체는 자연현상 자체라고 볼 수 있고 과학자가 재료로 사용하는 경험 데이터에 가깝다. 반면에 진화 이론이라는 것은 진화라는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하나의 과학이론이다. 과학자들이 얻는 경험 데이터를 가지고 자연현상 간의 인과관계나 진화가 일어나는 기제나 원인을 설명하는 과학이론이 바로 진화 이론이다. 그러니까 우주의 빅뱅이론은 우주 팽창 현상을 설명하는 과학이론이고, 생물 진화이론은 시간에 따라서 더 복잡한 종이 발생하는 진화현상을 자연선택이라든지 유전자 변이라든지, 적응이라든지 하는 기제를 통해서 설명하는 과학이론이다.  그러나 진화주의는 과학이 아니라 진화이론을 무신론적으로 해석한 하나의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진화주의는 생물 진화라는 자연현상이 생물 진화이론으로 설명된다면 더 이상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무신론자의 세계관이다. 그러니까 진화주의는 진화라는 자연현상과 진화이론이라는 과학을 토대로 무신론을 주장하는 하나의 세계관 혹은 철학적 논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화는 신이  다양한 생물의 종들을 창조한 방식이고 진화이론은 그 창조의 방법을 밝힌 것이라고 진화와 진화이론을 유신론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고 이런 입장을 유신론적 진화론이라고 부른다.

 

3. 그러나 창조과학은 진화나 진화이론을 진화주의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랫동안 창조과학과 진화론의 입장이 충돌했고 미국 사회에서는 정치적 사회적 마찰을 일으켰다. 그러나 창조과학처럼 과학과 신앙을 갈등관계로 보는 입장이 기독교의 유일한 견해는 아니다. 기독교 안에는 창조주가 진화라는 방법을 사용해서 생물을 창조했다고 보는 진화 창조론 혹은 유신진화론도 있다. 또한 창조주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창조했는가의 문제는 과학이 다룰 문제일 뿐이므로 창조주를 믿는 믿음과는 무관하다는 상호 독립의 입장도 있다.  과학은 무신론을 지지하지도 않고 유신론을 배척하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신의 존재나 초월적 세계 등에 대해 과학이 별로 애기해 주지 않기 때문에 신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적이거나 판단유보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 물론 신의 존재를 믿는 과학자들도 많다. 제대로된 과학자라면 적어도 신의 존재와 같은 초자연적 영역은 과학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혹은 과학이 다룰 능력이 없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과학이 무신론을 지지한다거나 유신론을 배척한다는 주장은 모두 설득력이 없다. 자연현상을 과학으로 설명하고 나면 더 이상 신의 자리는 없어진다는 주장이 있다. 이런 주장은 자연세계는 신과 상관이 없어지고 신을 초자연 영역에만 제한하게 만든다. 그러나 자연 현상 자체도 신의 영역이며 자연현상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신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과학적으로 보면 모든 자연현상은 물리법칙에 따라 일어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모든 자연현상은 신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자연현상 자체는 신이 부여한 물리법칙이고 신의 지속적인 섭리를 통해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니 과학이 자연현상의 인과관계를 이해한다고 해서 자연현상에 신이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4. 근대과학은 예측할 수 없이 불안하고 미신적인 세계에서 합리적이고 근대적인 세계를 탄생시켰다. 그 결과 자연현상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더 이상 자연현상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자연현상 자체는 여전히 신의 작품이고 섭리이다. 신의 지혜를 따라 창조된 자연세계이지만, 인과관계가 설명되고 질서있고 조화로운 자연현상으로 자연에 대한 이해가 바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신의 영역이 점점 좁아지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발생했는데 이것을 "틈새의 하나님"(God of the gaps)이라고 부른다. 자연현상이 인과관계로 설명되면서 신이 필요없는 것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서서히 신은 설명되지 않는 초자연의 영역으로 밀려나게 된것이다. 그러나 기적뿐 아니라 과학으로 설명되는 모든 자연현상도 신이 섭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학이 발전한다고 해서 신의 영역이 좁아지는 것은 아니다.  신을 기적의 영역에 제한하는 틈새의 하나님 개념은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을 신의 기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인데 이런 신 개념은 나중에 현상의 인과관계가 과학적으로 밝혀지면 신의 역할을 아예 없어지게 만들 위험이 있다. 비록 자연현상이 과학으로 설명되더라도 그 밑바탕에 깔린 신의 역할을 배제할 수는 없다.

 

5. 신이 자연선택이나 유전자 변이등과 같이 인과 관계를 설명할 수 없는 진화의 과정을 사용해서 인간을 창조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창조에 관한 신의 역할을 사람들이 너무 제한된 관점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의 신학자 윌리엄 페일리는 설계 논증을 주장했는데, 이것은 자연 세계를 들여다 보면 자연 세계를 설계한 설계자 혹은 창조자를 알수 있다는 논증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설계 논증을 비판하며 생물이 시계공같은 외부의 통제나 계획없이 우연한 방식으로 진화를 통해 만들어 질 수 있으므로 페일리의 설계 논증에서 시계공의 역할을 할 지적 존재가 전혀 필요없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도킨스는 설혹 신이 진화의 방식을 사용해 생물을 창조했다고 해도 진화는 우연한 방식으로 무작위로 일어나기 때문에 어떤 설계자의 의도나 계획대로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페일리의 설계 논증이 가진 한계는 신의 설계를 시계공이 시계를 만드는 방식으로 제한한다는 점이다. 즉 페일리의 설계 논증에는 이 자연법칙의 인과관계를 통해 생물체를 만들 수 있다는 설계 개념이 전혀 담겨있지 않고 신의 설계를 기적적인 방식으로만 제한하는 반쪽 자리 설계 개념이다. 신은 무작위로 일어나는 것 처럼 보이는 사건을 통해서도 일할 수 있다. 즉 신이 진화라는 우연한 방식으로(우연하다는 것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과학적 우연을 말하는 것이지 맹목적이거나 무목적적이라는 철학적 우연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체와 인류를 설계하고 만들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의 존재를 인간의 제한된 이해의 틀 속에 가두는 것이다. 무신론적 진화론자가 비판하고 창조과학자나 지적설계론자가 변호하는 지적설계는 지적 작업에 더하여 손으로 직접 만드는 일이 포함된 제한적 설계다. 진화가 우연히 일어난다면 그것은 지적 설계를 반증하는 것이라는 도킨스의 주장은 진화가 가진 우연이나 무목적성이란 말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과학에서 사용하는 우연이란 개념은 누군가 전혀 의도하지 않고 발생한 사건이란 의미가 아니라 여러가지 가능성 중에 하나가 실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과학적으로 봤을 때 우연한 사건이라고 해서 신의 의도나 설계를 배제할 수는 없으며 우연과 설계는 양립할 수 있다. 또한 무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인간이 진화의 산물이라면 인간은 어떤 목적을 위해 창조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화 이론이라는 과학 자체는 인간 존재의 목적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진화 이론은 인간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부분적으로 시도할 뿐이지 진화된 인간이 목적없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성경과 과학

 

1. 성경과 자연은 둘 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책이다. 성경이 하나님이 주신 특별계시로서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면 자연은 하나님이 주신 일반계시로서 하나님이 우주를 어떻게 주관하시고 세상을 어떻게 다루시는지 알려준다. 성경과 자연을 하나님이 주신 두 개의 책으로 이해하고 함께 읽는 것은 기독교의 오랜 전통이다.  이 두 책은 하나님이 스스로를  드러내시는 계시이기 때문에 서로 모순될 수 없다. 문제는 두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가 성경을 신학적 도구를 사용해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연이란 책에서 정보를 얻을 때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한다. 결국 신앙이 성경에 대한 해석에 기초한다면 과학은 자연에 대한 해석에 기초한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우리의 책 읽기, 특히 해석이 완벽하지 못하다는데 있다. 성경 해석이 완벽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연에 대한 이해 혹은 해석도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때로 성경 해석에 기초를 둔 우리의 신앙과 자연 이해에 기초를 둔 과학이 모순되는 것 처럼 보이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러나 역사의 사례들은 사실 이런 모순이 두 책 사이의 모순이 아니라 두 책을 읽는 방식인 신학과 과학 사이의 모순이었음을 보여준다. 과학과 신학은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변화해 갈 것이다.  성경과 자연, 두 책은 모순되지 않으며 상호보완적이라는 점을 교황 바오로 2세는 이렇게 잘 표현했다. " 과학은 오류와 미신으로부터 종교를 정화할 수 있으며, 종교는 맹목적 숭배와 잘못된 절대성으로부터 과학을 정화시킬 수 있다. 과학과 종교는 각각 서로 더 번영할 수 있는 넓은 세계로 서로를 끌어 당길 수 있다."  우리에게는 성경과 자연이라는 두 책이 주어져 있고 우리는 결코 그 어느 책도 간과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성경과 자연을 조화롭게 그리고 동시에 보아야 하며 그래야만 두 책을 제대로 읽는 셈이 되는 것이다. 과학과 신학이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자연의 사실과 성경의 말씀 중 어느 하나도 거부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자연의 사실과 성경 말씀에 대한 우리의 해석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건전한 과학과 건전한 성경 해석은 항상 조화롭기 때문이다.  몇천 년 전에 매우 다른 문화권에서 다른 언어로 쓰인 성경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올바른 해석이 필수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있는 그대로 성경을 읽는다는 말은 사실은 자신의 경험과 자신이 받은 교육 그리고 자신이 속한 문화의 개념으로 성경을 읽는다는 말이다. 그것 자체가 하나의 해석이다. 또한 성경은 과학 교과서가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런데 성경을 과학 교과서로 보는 입장도 있는데 창조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헨리 모리스가 그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성경을 과학 교과서로 보기 시작하면 수많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성경은 자연 현상의 과학적 원리를 규명해 주는데 그 목적이 있지 않다.  성경을 과학책으로 읽으면서 성경에서 자연과학의 원리를 찾으려는 방식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과학과 신앙의 관계

 

1.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해서는 크게 세 가지 입장이 있는데, 첫째는 갈등 관계로 보는 입장이고 둘째는 과학과 신앙은 서로 다른 영역을 다룬다는 독립적 입장, 그리고 셋째는 과학과 신앙을 연결해 보아야 한다는 통합적 입장이다. 이런 방식으로 과학과 신앙의 관계를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유형론이라고 한다. 갈등론은 신앙과 과학을 상호 배타적으로 보면서 신앙과 과학은 양립할 수 없기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속하는 그룹은 무신론 과학자들과 창조과학자들이다. 무신론 과학자들은 과학이 밝혀낸 진화과정이 인간의 기원을 잘 설명해 내기에 신의 창조는 틀렸다는 것이고 반면 창조과학자들은 인간은 신이 창조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진화론은 틀렸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두 주장은 모두 인간은 뭔가 기적적인 방식으로 특별하게 창조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독립론은 신앙은 초자연적 세계를 다루고 과학은 자연세계를 다루기 때문에 이 둘은 서로 독립적일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 입장은 성경과 자연이라는 두 책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기독교 전통에서 보면 매우 설득력이 있다. 과학은 자연 세계가 움직이는 원리를 설명하고 신앙은 그 자연세계를 움직이는 분이 누구인지를 가르쳐준다는 이런 입장은 과학과 신앙은 서로 다른 차원에서 자연 세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본다. 즉 과학은 "어떻게" 라는 문제를 다루고 신앙은 "왜"라는 문제를 다룬다는 것이다.  통합론은 신앙과 과학의 유기적인 관계를 강조하면서 신앙과 과학은 전체 세계를 이해하는 면에서 서로 보완적이라는 입장이다. 신앙과 과학은 서로 다른 차원의 영역을 다루고 설명하지만 그 둘을 함께 비교하면서 봐야 하므로 신앙과 과학이 독립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과학지식이 증가하면서 성경을 더 올바르게 해석하게 되고, 신앙을 통해서 과학도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고 더 과학답게 된다는 것이 통합론의 견해다.

 

2. 갈등론에 대한 가장 큰 비판은 왜 과학과 신앙을 둘 다 포용할 수 없는가라는 점이다. 왜 진화와 창조를 동시에 받아들일 수 없는가? 왜 하나님은 진화라는 방식으로 인간을 창조할 수 없는가? 무신론 과학자들은 어떤 자연현상이 과학적으로 설명된다면 신의 존재는 필요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떤 자연 현상이 과학적으로 설명된다는 것이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기적적인 방식으로만 아니라 얼마든지 자연적인 방식, 과학으로 설명되는 방식으로도 일하시는 분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를 기적적인 방식으로만 제한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과학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자연의 원리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창조할 수 있는 분이다. 무신론자들은 진화는 방향성없이 무작위적, 우발적, 우연적 사건들의 종합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이 세상은 결코 신이 설계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연적 사건, 우발적 사건, 우리 눈에 무작위로 보이는 방식을 사용해서 창조할 능력이 없다고 하나님의 창조방법을 제한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설계, 창조 계획을 우리가 생각하는 질서와 계획으로 제한하는 것은 신앙동형설의 전형적 오류라고 볼 수 있다. 자연적인 설명이 가능해지면 신의 자리가 없어진다는 주장은 무신론적 해석방법일 뿐이다. 그런데 창조를 주장하는 창조과학자들은 오히려 무신론적 해석의 프레임에 갇혀있다. 그래서 그들 역시 인간의 기원이나 우주의 기원을 기적적인 창조 방식에 제한하고 있다. 그들은 우주 빅뱅이론이나 생물학의 진화이론이 신의 자리를 빼앗을까 두려워함으로 대폭발 우주론이나 진화 이론에 반대하고 있다.

 

3. 독립론에 대한 비판은 과연 신앙과 과학이 독립적인가하는 점이다. 무신론 과학자들은 신앙도 과학처럼 당연히 과학이 탐구해야 할 영역이기 때문에 신앙과 과학은 서로 독립적이라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통합론자들도  신앙과 과학은 서로 유기적 관계에 있을 때만 즉 자연과 성경 두 책을 함께 볼 때에 제대로 된 신앙과 과학이 되기 때문에 신앙과 과학을 독립적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한다. 통합론(상보론)에 대한 비판도 없는 것은 아닌데, 그것은  이 입장이 과학에 너무 의존한다는 것이다. 과학은 절대 진리가 아니라 계속 변해가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정설로 알려진 과학이론이 인간 지식이 증가하면서 바뀔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폭발 우주론에 의존하여 신의 창조를 변증했던 논리는 큰 타격을 받게된다. 또한 신앙에는 합리성이나 과학으로 담보할 수 없는 믿음이라는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에 통합론의 입장은 자연신학의 한계를 분명히 인정할 필요가 있다. 통합론은 진화론으로 인간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밝혀질 수 있다는 견해를 갖고 있지만 동시에 신이 인간을 기적적인 방법으로 창조했을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수용해야 한다. 통합론자들은 과학이 인간 기원의 문제를 완전히 밝혀줄 것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생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 기원의 문제를 완전히 밝혀주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창조과학

 

1. 창조과학은 진화이론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주류과학을 반대하는 표현인데 창조과학자들은 기존의 과학이 무신론과 진화주의에 물들어 신의 개입없이 우주가 우연히 탄생했다고 주장한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그들은 대부분의 과학이 타락했다고 정죄하며 자연주의에 물든 기존의 과학을 대체할 새로운 과학을 세워야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창조과학이란 말은 1970년대 창조과학 운동을 이끌어 온 핸리 모리스가 처음 사용했다. 창조 과학의 핵심 주장은 말 그대로 과학을 통해 성경의 창조가 입증된다는 것이다. 즉 신이 인간과 우주를 창조했다는 성경의 창조론의 내용이 과학적 증거를 통해 뒷받침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과학은 과학이라고 할 수 없다. 창조과학이 담고 있는 과학이라고 할만한 내용은 20세기 초부터 창조과학 운동에 근간이 되어온 홍수지질학이 유일하다.  홍수지질학이란 성경에 나오는 노아 홍수 사건을 가지고 지질현상들을 설명하려는 이론인데, 당시에 전지구적 홍수가 일어남으로 지층과 화석이 한꺼번에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창조과학은 유사과학으로 분류된다. 창조과학자들의 주된 전략은 과학이론이 틀렸음을 주장함으로써 현재 우주나 인간의 기원은 과학으로 설명하지 못하며 결국 신의 창조일 수 밖에 없다는 식의 결론을 유도한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과학은 과학대로 무신론자들에게 빼앗기게 만들뿐만 아니라 틈새의 하나님의 오류를 수용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주류 과학자들은 대부분 창조과학에 대해 비판적인데, 그 결과 창조과학의 주장은 오히려 무신론적 진화론자들의 입지를 지지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과학이론을 비판하는 그들은 오히려 신의 영역을 기적이라는 세계에 가두어 버리고 과학을 무신론자들에게 넘겨주는 셈이다. 창조과학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창세기를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지구 나이를 6천년에서 만년 정도로 보고 창조기간도 문자 그대로 6일로 보는 젊은 지구론과 과학적 주장을 따라 지구 나이를 40-50억년으로, 우주의 나이를140억년 정도로 인정하지만 생물학의 진화이론은 거부하는 오랜지구론이 그것이다.  역사적으로보면 오랜 지구론은 창조과학내에서 소수에 불과했고 젊은 지구론이 주요 입장이었다. 한국의 창조과학회의 공식입장도 젊은 지구론이다.

 

2. 창조과학자들이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진화이론을 무신론적 진화주의와 동일한 개념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화론이 성경의 6일창조 기사에 위배된다는 것 그리고 진화론 자체가 오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의 창조기사에 대한 해석은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복음주의권 내에서도 문자적 해석, 골격 해석, 비유적 해석 등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복음주의적 구약학자들의 주류는 문자적 해석보다는 골격 해석이나 비유적 해석에 무게를 둔다. 그러나 창조과학자들은 창조기사의 문자적 해석을 고집하는데 이는 창조론 운동의 태동과 관련이 있다. 로널드 넘버스의 연구에 의하면 창조론자들의 문자적 성경해석은 안식일의 문자적 준수를 고집했던 제칠일안식교의 문자적 성경 해석 전통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창조론 운동의 본격적인 시작을 이끈 사람은 20세기 전반부에 활동한 조지 맥크레디 프라이스인데 이 사람은 흔히 홍수지질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프라이스는 안식교인으로서 문자적 해석을 믿었던 그는 당대의 지질학을 거부했고 그 대신 노아 홍수를 기반으로 한 홍수지질학을 주장했다. 안식교의 극단적인 문자주의와 홍수지질학 그리고 젊은 지구론은 지금까지 창조론 운동의 중심에 있다. 창조과학자들이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진화론 자체가 과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진화주의는 과학이 아니고 과학을 무신론적 세계관으로 해석한 것이지만 진화이론 자체가 과학이 아니라는 주장은 대부분의 주류 과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진화론이 성경에 위배된다거나 과학이 아니라는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은 극단적인 견해다. 창조과학자들은 이렇게 주류의 과학을 부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성경이 과학으로 입증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대단히 이율배반적인 태도다.(창조론의 변증을 위해 주류과학을 부인하면서 동시에 유사과학에 의존하므로)

 

 

진화 이론

 

1. 진화론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창조과학자들이 꼽는 주요한 논거 중 하나는 진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증명하는 종과 종 사이의 중간 단계에 해당하는 종이 현재 존재하지 않고 그것을 보여주는 화석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화이론은 말이 개로 진화하거나 침팬지에서 인간으로 진화되는 단선적인 그림이 아니라 한 뿌리에서 다양한 선들이 뻗어 나가는 다선적인 그림이다. 생물학에서 말하는 진화의 핵심 개념은 공통조상을 갖는다는 것, 즉 지금 현존하는 종들은 결국 공통조상에서 분화돼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통조상에서 현재의 종으로 진화해 왔다면 그 중간 단계에 해당하는 화석이 존재하는지 질문할 수 있다. 그러나 특별한 조건 하에서만 이루어지는 화석 기록 자체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중간단계의 종들 처럼 빠르게 진화가 일어나는 단계에 있는 종들은 안정적인 단계에 있는 종들에 비해 화석으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훨씬 적다. 그렇기 때문에 생물학자들은 중간 단계에 해당하는 종들의 화석은 확률적으로 훨씬 적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종들의 중간 단계 조상에 해당하는 종들이 존재했다는 많은 화석 증거들이 있다. 또한 창조과학자들은 열역학 제2법칙을 거론하며 무질서도는 자연히 증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화를 통해 더 복잡한 생명체가 만들어질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열역학은 물리학에서 공기나 물과 같이 분자운동을 전체적으로 다룰 때 사용하는 학문인데 열역학 제2법칙은 어떤 시스템에 들어있는 분자 덩어리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엔트로피(무질서도)가 증가한다는 법칙이다. 창조과학자의 주장은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무질서도는 항상 증가하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덜 복잡한 생명체에서 더 복잡한 생명체로 진화한다는 진화론의 주장은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무질서도가 감소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므로 열역학 제2법칙에 어긋난다는 논리다. 그러나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단순히 생명체가 더 복잡해지는 현상에 적용하는 것은 상당한 비약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물리법칙을 가지고 생명체가 더 복잡한 형태로 진화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엔트로피는 단순하게 생명현상에 적용할 수는 없다. 만일 그렇다면 단순한 세포에서 시작해서 태아가 만들어지는 일도 무질서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감소하는 셈이니까 열역학 제2법칙에 어긋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논거에서 핵심은 엔트로피의 증가는 닫힌 시스템에서 일어난다는 점이다. 외부에서 에너지를 공급하거나 외부로 에너지를 빼앗기기 않는 차단된 상태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외부에서 에너지가 공급된다면 얼마든지 엔트로피가 감소할 수 있다. 생명체는 끊임없이 주변과 에너지를 주고받으니까 생명체가 더 복잡한 생명체로 진화하는 과정을 닫힌 시스템에서 일어나는 일로 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열역학 제2법칙을 가지고 진화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2. 생물학자들이 진화의 증거로 제시하는 두 가지는 화석의 증거와 유전자의 유사성이다. 인간과 동물의 유전자 연구에 의하면 종과 종이 서로 가까울수록 유전자 구성이 매우 비슷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다시 말해 공통 조상에서 중간 조상들을 거쳐 각각의 종이 분화되는 그림과 일치하는 유전자의 유사성이 발견된다. 인간과 침팬지가 매우 유사한 유전자를 갖는다는 것은 인간과 침팬지가 공통 조상에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사 유전자가 공통조상의 증거라기 보다는 구조와 기능이 비슷하기 때문에 유전자도 유사하다는 주장도 있다. 문제는 기능과 관계없는 유사 유전자라는 고장난 유전자가 공통적으로 발견된다는 점이다. 많은 동물들은 비타민c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전자를 갖고 있는데 유독 침팬지는 이 유전자가 고장이 나서 그 기능을 잃어버렸는데 이런 고장난 유전자를 유사 유전자라고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인간도 침팬지와 동일하게 비타민c을 만들지 못하는 고장난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인간과 침팬지의 공통조상애 해당하는 어떤 종에서 비타민c를 만드는 유전자의 변이가 일어나서 그 기능을 상실했고 그 종으로부터 인간과 침팬지가 진화되어 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유전자가 같은 이유가 공통조상 때문이 아니라 공통 기능때문이라면 인간과 침팬지가 똑같이 고장난 유전자를 갖는다는 사실은 설명되지 않는다.  인간과 동물 유전자의 유사성은 진화 이론의 강력한 증거라 할 수 있다. 진화이론에서 자연선택이라든가 유전자 변이라든가, 적응이라든가 종에서 종으로 진화하는 기작들을 설명하는 과학적 시도들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는 과학자들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생물 진화이론은 과학적으로 크게 문제가 없다. 물론 무신론적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진화론에는 우주 진화나 생물 진화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밀하는 진화론에는 생물 진화뿐 아니라 우주의 기원과 인간의 기원까지 전체를 포함하는 주장이 있다. 대폭발 우주론이나 생물 진화론은 과학적 증거를 잘 갖추고 있지만 그런 과학이론들이 우주의 기원이나 생명체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말해 주지 못하고 있다. 대폭발 우주론은 일단 우주가 시작된 이후에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주지만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생물 진화론도 일단 생명체가 시작된 후에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잘 설명하지만 생명체의 기원 자체는 다루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기원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더 단순한 생명체에서 진화해 왔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충분히 뒷받침되지만 동물과 다른 인간의 특성들을 과학이 다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동물과 달리 고도의 지성을 가진 인간 의식의 기원에 대해 과학은 아직 답을 주지 못한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한다 할지라도 생명체든 우주든 기원의 문제는 결국 과학이 밝혀내지 못할 빈틈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신이 창조한 창조세계는 인간 지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세계인가 아니면 인간 지성으로 풀 수 없는 근원적인 한계가 있는가?

 

 

지적 설계 비판

 

1. 지적설계 운동은 전통적인 설계논증을 현대과학을 통해 부활시키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전통적인 설계논증이 철학적 형이상학적 논증에 블과했던 반면에 지적설계운동은 과학에 기초해서 설계논증을 시도한다는 점이다. 지적설계운동은 창조과학의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들은 성경의 권위 앞에 모든 과학적 증거들을 상대화시켜 대화를 불가능하게 했던 창조과학의 입장에 반대하면서 논쟁보다는 대화를 장려하는 새로운 창조론 운동의 흐름을 열었다. 그동안 창조과학계 내부에서 젊은지구론과 오랜지구론 등 다양한 입장간의 갈등이 있었고 법정 소송에서 패소라는 외부적 압박까지 가해지자 창조과학계는 더 통일된 목소리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런 필요는 창조 기간이나 지구 연령에 대한 세부적인 입장 차이를 넘어서 진화론을 반대하는 반진화의 커다란 깃발 아래 창조론자들을 연합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 모인 창조론자들은 창조의 기간이나 창조방식에 대한 이해는 달라도 자연 세계가 창조주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커다란 우산 아래 공동전선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지적설계 운동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지적설계론자들의 핵심 주장은 인간 경험에 비추어 어떤 지성적인 존재가 만든 것이 분명한 대상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자연계 내에도 자연적인 원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성의 작업임이 분명한 현상들이 있다는 것이다. 지적설계론자들의 논증은 세 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그들은 우선 DNA에 다량의 특정한 정보가 담겨있다는 과학적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두번째로 이런 사실들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런 사실들은 지적 존재를 암시하는 설계의 증거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자신들의 설계논증을 과학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첫번째 단계에서 과학의 결과들을 사용하고 두번째 단계에서 확률이론 등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2. 그러나 지적설계 논증의 두번째 단계의 주장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DNA정보를 자연적 방식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도 문제지만 설사 설명할 수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어떤 현상을 현재 과학으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일이 전혀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미래의 가능성을 지금 제한해 버리는 어리석음이다. 같은 맥락으로 마이클 베히는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보아는 생물기관들은 진화라는 자연적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설계자가 만든 흔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런 논증의 문제점은 자연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빈틈을 신의 작품으로 돌렸다가 나중에 과학이 발전하여 그동안 설명할 수 없었던 빈틈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면 결국 신의 영역은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지적 설계운동이 창조과학의 가면을 쓰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것은 이처럼 과학으로 설명될 수 없는 현상을 찾아내 그것을 설계논증에 이용하려는 전략 때문이다. 이렇게 "틈새의 하나님"에 호소하는 창조과학이나 지적설계의 전략은 결국 무신론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셈이 되어버린다.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의 오묘함을 자연적으로 설명해 낼 때마다 오히려 무신론자들의 주장을 지지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크리스천 과학자들은 자연적인  설명이 가능한 우주의 영역들도 신의 작품으로 해석하고 이를 알려야 한다. 자연적으로 설명이 되면 신은 없어지는거라고 외치는 무신론자들의 게임 규칙에 묶여서 과학으로 설명 불가능한 영역을 찾아 헤메기 보다는 오히려 무신론자들이 탈취해간 영역, 즉 과학으로 설명이 가능한 영역들을 하나님의 주권 아래 당당히 되찾아야 한다.

 

3.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되는 자연 현상은 그 자체로 신이 없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설명이 안되기 때문에 신의 작품이라는 주장도 가능하고 반대로 설명이 안됨에도 불구하고 신의 작품은 아니라는 주장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둘 중에 어느 주장이 옳다고 과학이 판정해 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주장은 과학적 논증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논증이기 때문이다.  자연적 방식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이 존재한다는 지적설계자들의 논증은 무지에 호소하는 논증이고 과학적 논증이 될 수 없다. 과학이 답하지 못하는 어떤 현상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러면 그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것은 결국 형이상학적 질문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런 형이상학적 질문이나 논증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형이상학적 논증과 지연과학의 논증은 분명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지적설계론자들은 자신들의 설계논증을 과학이라고 주장하는데 있다. 지적설계론자들은 과학자들이 자연주의적 전제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며 그들을 무신론자로 정죄한다. 그러나 자연적인 방식으로 모든 것이 설명될 수 있다는 자연주의적 세계관은 무신론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지적설계론자들은 모든 현상이 자연적인 방식으로 설명 가능하다는 전제를 비판한다. 그렇다면 어떤 현상은 자연적인 방식으로 설명 불가능하다는 그들의 전제도 비판받아야 한다. 우주의 현상을 자연적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나 어떤 현상이 자연적인 과정으로 설명 불가능하다고 가정하는 것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양자는 모두 과학적 논증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가정일 뿐이다. 지적설계론자들은 하나의 형이상학적 전제를 채택함으로써 다른 형이상학적 전제를 취하는 무신론 과학자들과 동등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설계의 증거를 자연적 과정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에서 찾아냄으로써 하나님의 다양한 설계방식을 제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4. 지적설계론자들은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신을 배제하고 자연현상의 인과관계를 따지는 무신론적 혹은 유물론적 방법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방법론적 자연주의가 신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들이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사용하는 것은 자연을 합리적으로 창조한 신을 암시적으로 가정하기 때문이다. 방법론 자체는 무신론 과학자들과 동일하지만 크리스천 과학자들은 자연현상의 합리성 자체가 창조주 때문에 가능하다는 다른 전제를 가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지적설계론자들이 사용하는 설계 개념이 너무나 인간적이라는데 있다. 이것은 신을 인간의 설계 개념 안으로 끌어 내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신은 우리의 경험과 사고를 넘어서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신의 설계라는 것은 결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결국 어떤 현상이 인간이 아닌 신에 의해 설계되었음이 분명한 과학적 증거가 있다는 지적설계론자들의 주장은 결국 형이상학적 주장이지 과학적 논증은 아닌 것이다.

 

 

성경의 창조 기사

 

1. 창세기가 창조의 연대나 순서 혹은 창조의 방법을 보여주는 책은 아니다. 창세기 1장의 핵심 내용은 우주만물이 (이스라엘의)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 사람들이 신으로 숭배했던 태양이나 달이나 바다나 그런 것들도 신의 창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이 창세기1장의 핵심 주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창세기 1장의 기록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다. 육하원칙에 따라 기록된 것이 아니라고 해서 창세기 1장의 기록이 사실이 아닌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창세기1장을 과학 교과서처럼 읽어서 창조의 연대나 순서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는 잘못이다. 창조기사가 오늘날 과학이 제시하는 그림과 너무나 다른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몇천년전 고대 근동 지방의 상식과 우주관을 바탕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창세기는 고대 근동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그 시대의 문화와 상식을 배경으로 표현될 수 밖에 없다. 성경은 신의 계시를 담고 있지만 그 계시를 담아낸 인간의 언어는 분명히 시대적, 문화적 한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창세기 기자는 당대에 사람들이 이해하는 우주의 모습에 맞게 창조의 과정을 하나 하나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 기자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계시를 전하기 위해서 당대의 사람들이 갖고 있던 우주관에 기초해서 창조 이야기를 풀어나간 것으로 보아야 한다. 고대 근동의 사람들에게 창조라는 말은 물질적 창조라는 의미가 아니라 기능적 창조를 의미했다. 즉 그들은 창조라는 말을 어떤 기능을 부여하는 뜻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니까 당시에는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냐는 것보다는 그것이 어떤 기능을 하느냐가 주된 관심사였던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 1장에는 창조의 재료나 방식에 대한 기술이 전혀 없고 대신에 창조물들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주로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창세기1장의 창조기사는 천지만물에 하나하나 기능을 부여해서 인간이 살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을 기술한 것이고 마지막 7일째의 안식은 혼란 상태가 끝나고 창조된 세상을 다스리는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해석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창세기1장의 핵심 메시지를 보존하면서도 성경이 권위는 결코 축소하지 않는다. 성경이 무오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 자체로서 무오하다는 것이지 그 계시가 담긴 고대 근동의 언어나 우주관이 무오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2. 인간 창조는 기독교에서 민감한 문제고 우주의 창조와는 또 다른 논란의 여지가 있다. 만일 과학적 탐구가 가능한 인과 관계 같은 자연적 방법으로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인간은 특별하게 창조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고 인간이 진화라는 기제를 통해 창조되었다면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존엄하거나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다른 모든 창조물과 달리 특별하다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인간을 창조한 방법이 특별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간이 특별한 이유는 창조된 방법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특별한 존재로 대우하셨기 때문이다. 이미 잘 알려졌듯이 지구의 위치는 우주 공간에서 물리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없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지구나 우리 태양계 혹은 우리가 속한 은하도 뭔가 물리적으로 특별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생물학적으로도 다른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인간도 다른 동물과 비슷한 방법으로 창조되었음을 암시한다. 과거에는 인간이 사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혹은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다는 차별성에 기초해서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했고 그런 생각들은 물리학적이나 생물학적으로 인간을 특별하게 보이게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차별성을 주장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인간의 위대성이나 존엄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나?  우리 인간이 특별한 존재 의미를 갖게된 것은 신과의 관계 때문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선택해서 우리와 특별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인간은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따라 지어졌다는 것은 생물학적 의미가 아니라 인간이 신을 대리하는 대리자로서 창조되었다는 의미다. 신이 인간을 선택해서 언약관계를 맺었을 때, 인간은 생물학적 의미가 아니라 종교적 의미에서 진정한 인간이 된 것이다. 결국 인간의 존엄성은 창조된 방법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신과의 관계가 특별해서이다.

 

 

진화 창조론

 

1. 대폭발이후 계속 확장되고 있는 장구한 우주 역사에 기적은 없어 보인다. 우주 대폭발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생명체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인간의 의식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아직도 과학이 답하지 못하는 문제로 남아있지만 우주 진화는 과학을 통해 대체로 잘 설명된다. 자연법칙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을 기적이라고 부른다면 우주진화 과정에는 기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주진화는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는 것인가? 기적이 아니라 자연법칙의 인과관계로 우주 역사가 설명되다고 해서 신의 창조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신의 창조방법을 기적으로만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창조는 기적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래 창조세계에 부여하셨던 자연법칙을 따라 자연적인 방식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과학을 통해서 창조의 과정들을 하나씩 이해하고 있다. 그러니 기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고 해서 혹은 과학이 그 인과 관계를 밝혔다고 해서 하나님의 창조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오늘 창조주가 자연법칙을 통해 생물과 무생물을 새롭게 창조하듯이 우주 역사는 하나님이 자연적 방법을 통해 창조하신 긴 과정을 드러낸다. 창조-진화 논쟁의 핵심적 이슈는 자연현상이 과학을 통해 밝혀지면 신의 창조를 부정하게 되는가라는 문제다. 과학주의 무신론은 우주나 생물의 진화가 과학을 통해 밝혀졌고 그렇기 때문에 신의 존재는 부정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창조과학자들은 신은 기적으로 창조하기 때문에 우주나 생물의 역사를 자연법칙으로 설명하는 과학은 틀렸다고 주장한다. 이 양 극단의 입장은 모두 하나님의 창조를 기적이라는 방법에 제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2. 창조-진화 논쟁에서 진화, 진화이론, 진화주의, 이 세가지를 구별하는 일이 중요하다. 넓은 의미에서 진화는 시간에 따라 변하는 자연현상을 의미한다. 우주진화는 시간에 따라 복잡한 우주로 변해가는 과정을, 생물 진화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복잡한 종이 출현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진화는 자연현상이며 경험적인 데이터에 가깝다. 반면에 진화이론은 진화를 설명하는 과학이론이다. 현상 간의 인과관계나 혹은 진화가 일어나는 기작을 다루는 것이 진화이론이다. 가령 대폭발 우주론은 우주팽창이 일어나는 원인을 설명하는 과학이론이고 생물 진화 이론은 종이 발생하는 생물진화 현상을 자연선택과 유전자 변이라는 기작을 통해 설명하는 과학이론이다. 그러나 진화주의는 진화 이론을 이용한 무신론적 세계관이다. 진화가 진화이론으로 잘 설명된다면 신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도킨스의 주장이 대표적인 진화주의다. 진화주의는 진화를 무신론적 세계관으로 해석한 철학적 입장에 불과하다. 진화주의는 유신론의 입장과 반대되기 때문에 기독교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경험적 데이터에 가까운 진화현상이나 과학적 영역인 진화이론에 대해서는 보다 수용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진화주의는 거부해야 한다.

 

3. 창조에 관한 기독교의 입장은 다양하다. 젊은 지구론은 진화, 진화이론, 진화주의 모두를 부정한다. 오랜주구론은 우주진화는 수용하지만 생물진화는 거부한다. 오랜지구론의 입장은 생물진화론의 설명처럼 자연선택이나 유전자 변이가 종의 진화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창조주가 직접 기적적 방법으로 종을 하나하나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과학에 대립되는 이 두가지 입장과 달리 진화를 하나님의 창조과정으로 보는 진화적 유신론의 입장은 우주진화와 생물 진화를 모두 인정하고 진화이론을 수용한다. 진화적 유신론은 신이 자연세계에 개입하는 방식에 따라서 세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계획되지 않은 진화라는 입장인데 이것은 창조의 첫 시점이후 신은 자연세계에 간섭하지 않고 진화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미리 계획하거나 감독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 입장이 과학주의 무신론과 유일하게 다른 점은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이지만 이 입장은 과정 신학과 맥락을 같이하며 종종 이신론으로 비판받는다. 둘째는 계획된 진화라는 입장인데, 이것은 진화와 진화이론을 수용하면서 진화과정을 하나님의 창조과정으로 보는 입장이다. 이 입장은 신이 직접 자연세계에 개입하여 특별한 방법으로 종을 창조하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계획되지 않은 진화와 비슷하지만 다른 점은 신의 계획이 이미 창조의 첫 시점에 이미 우주 안에 담겨 있다고 보는 점이다. 그래서 이 입장은 우주진화나 생물진화는 무작위로 일어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창조주의 계획에 따라 그 역사가 펼쳐진다고 본다. 셋째는 인도된 진화라는 입장인데 이것은 계획된 진화와 비슷하지만 진화가 창조주에 의해 감독되고 인도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하지만 감독하고 인도하는 방법이 신이 창조세계에 직접 개입하는 기적과 같은 방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설명이 가능하나 확률이 매우 낮은 사건이 발생하도록 인도하는 방식으로 직접 진화과정을 감독한다는 견해다. 세 입장 모두 신의 창조를 인정하는 기독교적 입장이지만 복음주의권에서 수용가능한 견해는 아마도 오래된지구론과 계획된 진화 그리고 인도된 진화 정도일 것이다.

 

더 읽을 거리

 

기독교 세계관 :

신국원- 니고데모의 안경

제임스 사이어-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

알버트 월터스- 창조 타락 구속

 

과학사

데이브드 린버그 외- 신과 자연 기독교과 과학 그 만남의 역사(상,하)

로널드 넘버스- 과학과 종교는적인가 동지인가

 

과학과 신앙의 관계

존 폴킹혼- 쿼크, 카오스 그리고 기독교

알리스터 맥그라스-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

Owen Gingerich, God's Universe(Havard Press, 2006)

알리스터 맥그라스- 과학과 종교 무엇이 다른가

존 쿠퍼- 철학자들의 신과 성서의 하나님

 

무신론과 그 비판서

리처드 도킨스- 눈 먼 시계공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알리스터 맥그라스- 도킨스의 신

알리스터 맥그라스- 신 없는 사람들

조애나 맥그라스 공저- 도킨스의 망상

윤동철- 새로운 무신론자들과의 대화

마이클 루즈- 다윈주의자가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가?

 

성경해석

고든 피, 더글라스 스튜어트-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과학과 기독교

리처드 칼슨- 현대과학과 기독교의 논쟁

존 데이비스, 하워드 반틸 외 편집- 창조와 진화에 관한 세 가지 견해

이언 비버- 과학이 종교를 만날 때

존 호트- 과학과 종교 상생의 길을 걷다.

 

창조과학 및 진화이론

로널드 넘버스- 창조론자들

마크 놀-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

찰스 험멜, 리처드 라이트- 과학과 성경, 갈등인가 화해인가

찰스 험멜, 리처드 라이트- 신앙의 눈으로 본 생물학

트럼츠 롱맨- 어떻게 창세기를 읽을 것인가

휴 로스- 날에 관한 문제(A Matter of Days)

프랜시스 콜린스- 신의 언어

Darrel Folk, Coming to Peace with Science(ivp, 2004)

Miller, Kenneth. R, Finding Darwin's God(HaperCollins, 2007)

Miller, Kenneth. R, Perspesctive on an Evolving Creation(Eerdmans, 2003)

데보라 하스마- 오리진

프랜시스 콜린스- 신의 언어

존 호트- 신과 진화에 관한 101가지 질문

피터 엔즈- 아담의 진화

메튜 베릿 편집- 아담의 역사성 논쟁

존 호트- 다윈 이후의 하느님

지울 수 없는 흔적(진화는 왜사실인가?)- 제리 코인

 

 

지적 설계론자들

필립 존슨 - 심판대의 다윈

필립 존슨- 위기에 처한 이성

마이클 베히- 다윈의 블랙박스

웰리엄 뎀스키- 지적설계

 

지적설계 비판

데보라 하스마- 오리진

리처드 칼슨- 현대과학과 기독교의 논쟁

Miller, Kenneth. R, Finding Darwin's God(HaperCollins,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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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데이비스, 하워드 반틸 외 편집- 창조와 진화에 관한 세 가지 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