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신명기

신명기 21장 살인사건의 규례 외

메르시어 2023. 2. 19. 19:41

신명기 21장 살인사건의 규례 외

Tolle Rege/신명기

2011-06-24 02:09:13


    죽인 자를 알수 없는 피살된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 이 문제를 처리하는 규례이다. 살인자를 알지 못하지만 무죄한 피가 흘려졌기 때문에 먼저 그 시체가 발견된 곳에서 가장 가까운 성읍에서 이 문제를 담당하여야 했다. 그 성읍의 장로들이 부리지 않고 멍에 메어 보지 않은 암송아지를 취하여 물이 항상 흐르고 갈지도 않고 씨를 뿌린 적도 없는 골짜기에서 그 송아지의 목을 꺽고 제사장이 입회하에 장로들이 암송아지 위에 손을 씻고 무죄함을 선언하며 죄사함을 간구하여야 한다.  이 규례는 아마도 살인자가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그 대신 암송아지가 그 살인죄에 대한 대속의 죽음을 죽음으로써 공동체 가운데 그 죄가 속량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은 여자 포로를 아내로 삼는 규례인데 이 경우는 가나안 밖에 거주하는 이방 여자를 가리킬 것이다. 가나안 땅 안에 사는 자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진멸의 대상이었다. 이방 여인을 아내로 삼아 공동체에 편입시키기 위해서는 정결의식이 필요했다. 아내로 삼은 이후에 내보내려고 하면 종이 아니므로 돈을받고 팔거나 하지 말고 마음대로 가게하여야 한다. 두 아내가 있는데 두 아내가 아들을 낳았는데 미움을 받는 아내가 낳은 아들이 장자이면 장자권을 마음대로 바꾸면 안된다.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않은 패역한 아들은 성문의 장로들이 판결 자리로 끌고 나가서 그 성읍의 모든 자들이 돌로 쳐 죽여 공동체 중에 악을 제하여야 한다. 이 죄악은 십계명을 직접 범하는 중대한 죄이기 때문이다. 죽을 죄를 범한 자를 죽여서 나무에 달 경우 그  시체를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세세한 일에 다양하게 규례가 주어지는데 이런 규례들은 전부 언약 공동체를 제대로 세우는 일에 관련된 것이다.

신명기 21-22장

닥치고 성경/신명기

2019-10-23 22:06:38


신명기 21장

살인자가 밝혀지지 않는 살인사건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이것도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과 거짓증거하지 말말라는 계명을 공동체 안에서 예민하게 적용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범인이 잡히지 않은 살인 사건은 응당 억울한 죽음일 것이고 유가족들에게는 원한이 맺인 사건일 것이다,. 이런 사건이 공동체 안에서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다면 공동체 구성원들간의 의심과 원망으로 인해 공동체 내부에 갈등이 초래될 것이 당연하다. 이 경우는 시체가 발견된 곳에서 가장 가까운 성읍이 의심을 받을 수 있으므로 그 성읍의 장로들이 그 성읍을 대표해서 자신들이 이 피를 흘리지 않았고 살인자를 본적도 없다는 공적인 증언을 제사장 앞에서 해야한다. 그리고 암송아지의 목을 꺾음으로써 억울한 죽음을 대신하게 된다. 만일 그 성읍 장로들이 거짓증언을 한 것으로 밝혀진다면 그 성읍 전체는 그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고 그 증언이 참되다면 비록 살인자는 밝혀지지 못했지만 억울한 죽음의 원한이 공동체 갈등으로 증폭되는 것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신명기 22장

아내의 순결의 문제나 강간이나 간음에 대한 규례 역시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보여준다. 다시금 우리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법이 개인의 윤리나 도덕 차원이 아니라 언약공동체를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세워나길 것인가의 차원임을 발견하게 된다. 간음이란 문제 역시 나 개인에게만 적용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복잡다단한 상황 가운데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냐는 문제인 것이다. 아내를 미워함으로 아내에게 처녀가 아니라고 누명을 씌우는 경우, 실제로 아내가 처녀가 아님이 밝혀진 경우는 합법적인 부부 간에 해당한다. 간음의 경우도 그것이 성읍 안에서 일어난 경우와 인적이 드문 들판에서 일어난 경우를 구분하여 판결하고 상대 여자가 약혼한 사람인지 아닌지에 따라서도 판결이 달라진다. 이런 것을 보면 하나님의 계명을 우리 삶에 실천한다는 것은 단순하지 않고 매우 복잡하고 예민할 수 밖에 없음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명이 복잡해서가 아니라 인간 삶의 자리가 복잡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