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고

교회와 세상의 관계

메르시어 2023. 5. 11. 17:15

교회와 세상의 관계

2016-05-14 18:44:04


    성경 이야기의 시작은 창세기 1장이 아니라 창세기 12장이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내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말씀이 성경 이야기의 시작이다. 아브람을 부르시는 이 장면이 바로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왜 아브람을 부르시고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명하신 것인가?  그것은 아브람으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며 그에게 복을 주어 그의 이름을 창대케하며 그가 복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아브람을 부르신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으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하며 그에게 복을 주시는 이유는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하시려는 것이었다.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시려고 아브람을 부르신 것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12장 이전의 이야기는 바로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신 목적에 대해 설명하기 위한 배경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는 창조의 방법이니 인류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아브람을 통해 복을 받게 될 인간이 누구인지를 설명하기 위한 이야기다.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이시며 특별히 사람을 자기 형상으로 지은 분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시고 사람을 자기 형상으로 지으신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사람은 누구인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재이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존재이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았고 그로 말미암아 사람은 그 존재의 이유를 상실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이것이 바로 아브람을 부르신 이야기의 배경을 제공하는 성경의 이야기다.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보면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셔서 그로 말미암아 땅이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신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하나님이 천하만민에게 주시려는 복이란 바로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인간에게 그 존재의 의미를 다시 찾아주는 것이다. 인간 존재의 의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는데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복을 주실 때 인간은 그 존재 의미를 되찾게 되는데. 그것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인간의 총제적인 삶에서 하나님의 뜻에 구체적으로 순종하는 삶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성경 이야기는 처음부터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경륜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궁극적인 관심사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며 교회는 세상에 하나님의 복이 부어지는 하나님의 경륜의 도구적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세상과 교회는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세상을 섬기는 것이 교회의 소명인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이방을 비추는 빛으로 부름을 받았고 선택된 것이고 신약의 이스라엘이라 할 수 있는 교회 역시 세상에 빛을 비추는 하나님의 경륜의 도구로서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고 실천하는 일에 힘써야 하며 세상을 끌어안고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세상에 군림하거나 자신을 세상과 분리하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을 섬기고 세상과 소통하며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존재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강대한 나라란 그저 힘이 강한 나라라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을 섬기게에 강력한 나라,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고 실현하는 위대한 나라라는 의미다. 아브람이 강대한 나라가 될 때, 천하만민은 그 나라를 통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강대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그와 그의 자식과 권속이 여호와의 도를 지켜야 한다. 그래야만 여호와가 이브라함에 대하여 말한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의(tzedakah)와 공도(mishpat)을 행하는 것이다. 의가 여호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라면 공도는 여호와의 뜻에 따라 다스리는 것이다. 이것은 정확히 하나님이 천지와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을 반영한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선악과 금령을 통해 가르치시려던 것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었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 즉 이스라엘이 의와 공도를 행할 때 그의 나라는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만민은 그 나라를 통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될 것이다. 결국 그들이 받게 될 복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상실한 존재 이유를 되찾는 것이고 그것은 그들도 이스라엘을 본받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만믈을 다스리는 일, 곧 창조목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해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이스라엘을 택하여 언약을 맺으셨으며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 뜻대로 다스시는 위대한 나라를 위한 공간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나라를 통해서 천하만민은 복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특별히 구별하시고 그들을 이방나라들과 철저히 구별하신 것은 세상과 그들을 분리하고 세상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하여 장차 온 세상에 복을 주시려고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경륜의 도구이지 경륜의 목적이 아니며, 하나님의 경륜의 대상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그가 지으신  세상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방의 빛이 되게 하시려고 선택하신 것이다. 그들을 이방의 빛으로 삼아 하나님의 구원을 베풀어 땅 끝까지 이르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을 통한 하나님의 경륜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 처럼 보인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불순종했고 그 땅에서 쫒겨나 이방에 사로잡힌 바 되었으며 이후에 한 번도 독립된 국가로 살지 못하고 이방의 식민지 신세로 겨우 명맥을 유지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로 있을 그 암울한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오셨고 따라서 그의 오심은 새로운 이스라엘의 건설을 의미했다. 그래서 예수는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신 것이다. 그가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선포한 것은 그가 그 나라의 왕이심을 주장한 것이었고 그가 선포한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브르시면서 약속했던 바로 그 나라, 강대하고 위대한 그 나라였던 것이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이스라엘 왕이 오심으로써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그 나라가 도래한 것이다. 그 나라는 곧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 세우시려던 나라요, 그 나라를 통해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나라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 나라의 기초를 놓았고 성령을 보내심으로 그 나라를 이미 세우셨고 계속적으로 세워가신다. 이 나라가 역사 가운데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이 바로 교회다. 이 교회는 구약의 이스라엘을 이어받은 신약의 이스라엘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 교회는 이스라엘 민족에 국한되지 않고 이방을 향해 나아가며 이방 족속들이 이 교회의 구성원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스라엘이 이방의 빛이 되고 아브람을 통해 천하의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는 하나님의 경륜이 먼저 교회 안에 이방인들이 들어옴으로써 실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은 교회가 아니라 온 세상이며 온 세상이 하나님께 돌아와 잃어버린 존재의 이유를 되찾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 경륜은 교회를 통해 실현될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서 그 경륜의 도구로서 세상을 섬겨야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보내신 것처럼 교회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세상에 자신을 줌으로써 세상을 사랑하고 섬겨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아브람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떠나 어디에서 교회의 존재목적이나 교회의 소명을 찾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