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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제사의 신약적 의미

메르시어 2023. 5. 11. 15:32

구약 제사의 신약적 의미

2016-01-30 14:52:13


    구약의 제사 제도는 신약에서 완전히 폐지되었다. 그 이유는 구약  제사의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전히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구약의 5대 제사인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는 모두 그 완전한 형태로 그리스도 예수에 의해 하나님게 드려진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 제사 제도 자체는 이제 더 이상 신약에서 필요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신약의 언약 백성은 구약의 제사와는 아무 상관이 없게 된 것인가?  결론적으로 말한면 전혀 그렇지 않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약의 제사 제도는 이제 더 이상 필요없게 되었지만  그 제도에 담겨진 법 정신과 교훈은 여전히 신약백성에게도 유효한 것이다.

  구약의 제사제도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은 후에 언약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제사 규례였다. 하나님이 그  제사 규례를 주신 것은 언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그것은 이미 맺은 언약관계를 어떻게 회복하고 유지하고 발전할 것인가에 대한 규례였다. 물론 언약의 회복 유지 발전에 제사 제도 자체가 어떤 고유한 효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 제사 제도를 통해 계시된 바, 하나님을 향한 언약적 태도가 바로 언약을 회복하고 유지고 발전시키는 실제적인 효과를 가진 것이다. 그래서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아무리 엄청난 제사를 드릴지라도 마음에 진실함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 제사를 미워하신다고 책망한 것이다.  제사제도는 이미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것으로서 이스라엘에 하나님과의 언약적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그리고 그것을 통해 어떻게 언약을 회복하고 유지하고 발전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의 제사 제도에 담긴 언약적 삶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하고 그것을 신약적으로 가져오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구약의 제사 제도에는 5가지 종류의  제사가 있는데 그것은 번제, 소제 화목제 그리고 속죄제와 속건제이다. 번제, 소제, 화목제가 죄와 관계없는 자빌적인 제사라며 속죄제와 속건제는 범죄한 경우에 의무적으로 드려야 하는 제사였다. 레위기에서 번제, 소제, 화목제의 규례를 먼저 말하는 것은 그만큼 이 제사들이 죄와 관계된 의무적 제사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특히 번제와 소제의 경우에는 그 제물을 태우는 냄새가 하나님이 기뻐히시는 향기로운 냄새라고 표현되고 있다. 번제는 동물을 완전히 남김없이 불태워 드리는 제사로서 제사드리는자가 자발적으로 자신의 전적인 헌신과 순종을 다짐하는 의미의 제사였다. 번제 제물은 동물이었지만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드릴 수 있도록 소나 양 염소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들은 비둘기도 드릴 수 있게 배려되었다. 소제는 유일하게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인데 번제 처럼 불태워 드리지만 번제와 달리 기념물로 일부만 불사르고 나머지는 제사장들에게일용하는 음식을 제공되었다. 소제도 자발적인 제사인데 동물 제사가 아니라 곡식 제사이므로 누구든지 일상적인 감사의 표시로 드릴 수 있던 제사였다. 소제는 독자적으로 드려지기 보다는 통상적으로 다른 동물제사에 덧붙여 드려졌다. 

 

  죄와 관계되지 않은 다른 제사로 화목제가 있는데 이 제사는 주로 감사, 자원, 서원의 표현으로 드려지는 제사로서 번제와는 달리 제물의 기름만 불태우고 나머지 고기는 제사장과 제사인들이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었다. 특히 화목제는 공동식탁에서 고기의 일부를 하나님께 올리거나 흔드는 방식으로 하나님이 공동 식탁에 함께 참여하시는 것을 상징하는데 이는 화목제가 하나님과 언약 공동체가 함께 식사를 하는 즐거운 축제의 시간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화목제 제물의 고기는 이튿날까지 남겨두는 것이 금지되었는데 이는 식탁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후히 아낌없이 베풀고 즐기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죄와 관계된 제사로 속죄제와 속건제 두가지가 있는데 두가지 모두 율법을 범한 경우에 죄의 용서를 위해 드리는 제사였다. 다만 차이점은 속죄제와 달리 속건제는 율법을 범한 결과 남에게 피해릴 끼친 경우에 드리는 제사였다. 그래서 속죄제는 하나님께만 제사를 드리면 되지만 속건제의 경우는 피해 당사자에게 정당한 배상을 한 후에야 죄의 용서를 위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구약의 제사제도의 목적이 그리스도에 의해 완전히 성취된 것인가? 먼저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분명히 해야하는데 그리스도는 구약의 메시아로서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왕이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대표하고 대신하여 하나님께 드려진 제사였던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언약백성들에게 요구하셨던 완전한 제사를 친히 자신이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드리신 것이다. 그의 죽음은 완전한 순종와 헌신을 나타낸 완전한 번제였으며, 그의 죽음은 하나님과 언약공동체 그리고  언약공동체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완전한 화목제였다. 또한 그의 죽음은 언약 백성이 범한 죄에 대한 형벌로서의 완전한 속죄제였으며, 그의 죽음은 언약백성의 죄로 발생한 모든 손해에 대한 배상으로서의 완전한 속건제였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이 구약의 제사를 통해 언약백성에게 요구하셨던 모든 언약적 요구를 언약백성을 대표하여 완전히 충족시키신 제사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속죄에만 국한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구약 제사에는 죄와 관련된 제사보다 죄와 관련되지 않은 제사가 더 많고 중요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가 언약백성을 대표하고 대신하여 완전한 제사를 드렸다는 것이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언약백성된 신약의 성도들이 구약의 제사제도와 무관하게 되었다는 의미로 오해되서는 안된다. 언약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적 삶의 요구는 구약이니 신약이나 동일하게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드린 제사의 목적과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가 대표하고 대신한 언약 백성들이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구약의 제사제도가 요구하는 바 언약적 삶을 살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신약의 언약백성들은 이제 그리스도가 먼저 가시고 언약백성을 위해 만들어 주신 그 길을 따라서 하나님의 앞에 직접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해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갈 수 있도록 성령을 보내주시어 우리를 인도하고 돕게 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된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하나님 앞에 언약적 삶을 살수 있게 되었고 또 살아야 하는데 구약의 제사제도는 이에 대한 풍부하고 깊은 통찰을 제시해 준다. 구약 제사에는 죄와 관련되지 않은 제사와 죄와 관련된 제사가 있고, 피흘리는 동물 제사와 피없는 곡식 제사가 있었으며, 자발적인 제사와 의무적인 제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다양하고 풍성한 언약적 삶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그 언약백성과의 관계는 건조하거나 획일적인 것이 아니라 언제나 역동적이고 다양했음을 구약의 제사 제도는 잘 보여준다.

 

  이제 구약에 나타난 제사 제도의 순서를 따라서 그 신약적 의미를  생각해 보자. 먼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제사가 번제였는데  제물을 남기지 않고 완전히 불태워 올리는 번제는 완전한 순종과 헌신을 의미한다. 오늘날도 하나님이 신약의 언약백성에게 요구하시며 가장 기뻐하시는 언약적 삶의 태도가 바로 이런 자발적인 헌신과 순종일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따라 십자가를 지는 길이여 자기를 부인하고 좁고 험힌 길을 기쁘게 걸어가겠다는 결단일 것이다. 그 다음이 소제인데  곡식으로 드리는 소제는 누구든지 부담없이 일상적으로 드릴 수 있는 작은  제사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제는 제사장을 섬기는 음식이기도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소제도 번제만큼이나 향기로운 냄새라고 기뻐하셨다. 이것은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이 일상의 모든 일들 가운데 늘 하나님께 감사하고 남을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시사한다. 그 다음이 화목제 제사인데 이것도 번제나 소제처럼 자발적인 제사였는데 주로 감사, 자원, 서원의 표시로 드려졌다. 화목제에서 뚜렷이 나타나는 것은 공동식탁에 참여하는 하나님과 언약백성 그리고 언약 백성간의 화목하고 즐거운 관계 누림이다. 이것이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그것은 화목한 언약공동체를 형성하여 진실된 코이노니아를 누리도록 힘쓰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마음을 같이하고 남을 낫게 여기며 교회 안에서 궁핍하거나 고통받는 자, 소외받는 자가 없도록 애써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언약백성 상호 간의 관계와 분리되지 않음을 화목제는 잘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죄와 관계된 제사인 속죄제와 속건제이다. 이 두 제사는 모두 죄와 관련된 제사인데 이 제사는 죄의 문제가 언약백성의 언약적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하나님고의 언약 관계게 원만하게 유지되지 못하기에 이 제사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죄의 문제를 근본적이고 영원히 해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죄의 문제와 무관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그리스도인들은 현실적인 죄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고 죄에 의해 유혹당하고 압도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죄와 관련된 이 두가지 제사는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죄의 문제를 심각하고 예민하게 생각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시므로 우리도도 죄를 미워하고 죄와 싸워야  한다는 사실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제사는 그리스도인은 죄를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죄의 용서를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는 것도 의미한다. 특이한 것은 속건제인데, 이는 자신의 죄로 남에게 피해를 끼친 경우에는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먼저 피해 당사자에게 정당한 피해 보상을 한 후에 하나님께 죄의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원리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속건제는 우리가 만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남에게 정신적이나 물질적인 피해를 입혔다면 반드시 먼저 그 피해 당사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피해를 정당하게 보상한 후에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번제, 소제, 화목제가 언약의 발전과 관련된 제사라면 속죄제, 속건제는 언약을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한 제사였다.  이렇게 구약의 제사 제도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관계는 한 번 맺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복되어야 하고 유지되어야 하며 나아가 그 언악관계는 더욱 발전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렇게 구약의 제사 제도는 오늘날 신약의 언약백성된 우리에게 언약적 삶의 지침을 깊고 풍성하게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