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 마크 놀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 마크 놀
2015-06-19 07:14:17
1장 오늘날의 스캔들
복음주의 지성이라고 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 바로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이다.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은 대중적인 차원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진지한 지성을 지키는데 실패하였다. 현대의 복음주의자들은 그들의 선조들과는 달리 하나님 안에서 종합적으로 사고하거나 기독교적 관점에서 지성의 역량을 최대한 발전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 복음주의 지성이란 말은 현대 학문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사고하려는 노력 기독교적 틀 안에서 사고하려는 노력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현대의 복음주의자들이 이런 영역에서 지성을 사용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 바로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이다.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은 세 가지 양상 즉 문화적, 제도적, 신학적 양상을 띤다. 문화적 양상이란 복음주의 정신이 행동주의적, 대중주의적, 실용주의적, 공리주의적이기 때문에 복음주의는 성서주의자들이 면서도 세상을 이해하는데 성서가 주는 지혜로 세상에 관한 지식을 비추어 보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제도적 양상이란 복음주의 교육기관들이 거의 예외 없이 세상, 사회, 예술의 본질에 대해 철저한 기독교적 연구를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았으며 그 결과 현대 지성의 심층구조는 그리스도인이 아니거나 기독교에 적대적인 사람들의 연구 성과에 주도되었으며 개신교적 복음주의적 방식으로 규정된 기독교 학문을 발전시키는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삼는 고등교육 기관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2장 이 스캔들이 중요한 까닭
기독교라는 포괄 실체 자체는 우리에게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분명한 기독교적 성찰을 요구한다. 이는 사회이론이나 과학사, 다른 역사적 변화들, 몸, 예술, 문학에 대한 성찰도 포함한다. 그러나 미국의 복음주의 문화는 반대의 극단으로 치달았다. 회심을 강조한 나머지 은혜 안에서의 점진적인 성장을 배제해 버렸고, 창조세계에서 하나님을 묵상하는 대신 직접적인 성령의 체험에만 초점을 맞추었고 권위 있는 견해에 앞서 대중적인 지혜를 귀하게 여겼으며 세상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천국에만 매혹되었으며 초자연적인 것에 몰두하는 반면 자연적인 것을 무시해왔다. 그리스도인들이 더 광범위한 지성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는 마치 우리의 지성이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현대의 칼리지에서 가르치는 관습에 의해 결정되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 결과적으로 이런 행동을 취하게 된다면 우리가 믿는 종교의 핵심진리와 모순되는 문화적, 지적 세력에 의해 우리 삶이 결정되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셈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고자 하는지 묻는 것은 대단히 지적인 문제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는 상당 부분 우리가 세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달려있다. 하나님 때문에 사는 삶,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존재의 영역을 경시하는 것과도 같다. 진지하게 지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복음주의 전통에 속한 규범적인 모습임을 보여주는 이전의 역사가 없었다면 현대 미국의 복음주의 지성의 상태를 두고 스캔들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개신교지도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삶을 위해 지적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루터는 성서의 말씀과 그 말씀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세상의 본질 둘 다를 이해해야하기 때문에 지성을 계발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강조와 진지한 지성의 추구를 결합한 칼빈의 목표는 삶의 모든 영역을 기독교적 사고의 인도 아래 두고 삶에서 제기되는 물음에 대해 기독교적 관점에서 대답하는 것이었다. 청교도들의 독특성은 종교개혁 신학과 세상에 대한 포괄적인 시각을 결합하고자 노력한 점이었다. 마음의 종교와 삶의 모든 영역에 대한 포괄적 관심 사이의 청교도적인 종합은 미국문명 발전에 독특한 기여를 하였다. 청교도들의 후예인 현대 복음주의자들은 어떤 이유에선지 청교도처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기독교적 영향력이 최대한 발휘되는 지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에 지성이 필요한 이유는 일차적으로 그 실용적인 혜택 때문이 아니라 지성이 하나님과 그분의 사람의 사역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지성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이 세상의 창조주이며 통치자라는 기독교의 기장 본질적인 믿음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창조세계인 자연과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이해하기 위한 지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만일 스스로 정통적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현대의 지적활동들을 세상에 내어주어도 기독교의 대의에는 근본적인 위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현대의 마니교도, 영지주의자, 가현주의자일 뿐이다.
3장 복음주의 지성의 형성
종교개혁의 주요 지도자들 특히 루터와 칼빈은 대중주의적이며 반지성주의적인 운동에 대항해 고등교육의 절대적인 중요성을 적극 옹호하였다. 복음주의 전통이 종교개혁에서 시작되어 청교도들을 통해 전해졌다면 왜 현대 복음주자들에게는 지성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것인가? 미국에서 복음주의가 대중적인 부흥운동으로 시작됨으로 그리스도인의 수는 증가했지만 지성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그 이유는 부흥운동이 사람들에게 전통적인학문을 탈피하는 방법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올 것을 촉구했기 때문이다. 결국 부흥운동의 형식은 행동주의적, 즉각주의적, 개인주의적이었고 이것은 지성을 상당히 무력화시키고 말았다.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통해 공식화된 종교의 비국교화와 비흥운동의 결합은 원칙보다 실용주의적 관심을 우선시하였고 신자들을 실용주의적 변증학과 기능주의적 신학으로 경도되게 했다. 그 결과 미국혁명으로부터 남북전쟁에 이르는 시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진리의 문제를 실용성의 문제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미국의 공화주의 정치이론, 민주주의적, 사회이해, 자유주의 경제관도 복음주의 지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요약하면 미국의 복음주의는 부흥운동의 중요성,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통해 주어진 자유, 새로운 공화국의 강력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특성과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 때문에 지성이 약화되는 양상을 띠게 된다.
4장 복음주의적 계몽주의
18세기 초 복음주의자들이 계몽주의를 수용했다는 사실은 거의 2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복음주의적 계몽주의가 부추겼던 지적성향은 특정한 방식으로 객관적인 진리에 헌신하는 태도와 과학적 방법으로 성서에 접근하는 태도이다. 종교개혁에 뿌리는 두고 있으며 바로 얼마 전 웨슬리, 휫필드, 에드워즈의 부흥운동을 통해 갱신되었던 개신교 전통이 어떻게 계몽주의적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도덕 철학이 전통적인 종교적 가치관에 충실하고자 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그런 가치관을 정당화하려고 노력했던 그 시대의 요구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혁명기 미국에서 개신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신앙을 현대적이며 존중받을 반한 방식으로 방어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후 복음주의자들은 그들 스스로 기독교를 옹호하는 논리를 계발하기 시작함에 따라 도덕적 계몽주의의 방법론을 훨씬 더 직접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이런 논리는 깊숙이 뿌리를 내려 정통 복음주의자들까지도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에 기초하여 신앙의 모든 체계를 세우는데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19세기 초에는 사람이 자신의 의식으로 하나님의 존재와 전통적인 도덕의 타당성을 자연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는 스코틀랜드의 근본 원리가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 그 결과 복음주의는 성령의 영역조차 합리성과 과학적 예측 가능성을 추구하게 되었으며 영적 세계는 자연 세계와 유사하기 때문에 관찰 가능한 인과 법칙은 물리학뿐 아니라 종교에서도 동일하다고 간주되었다. 복음주의의 성서 이해야 말로 개신교와 계몽주의 사이의 결합이 가장 두드러진 결과물을 내놓은 영역이다. 성서에 대한 복음주의의 애착은 거의 모든 측면에서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찰스 하지는 그의 조직신학에서 신학자와 성서의 관계는 과학자와 자연의 관계와 동일하다고 말했다. 계몽주의적 합리성의 원리가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복음주의자들은 성서를 귀납적으로 접근하여 모든 이슈에 대한 진리를 산출해 낼 수 있는 과학적 텍스트로 대하는 경향이 점점 더 심해졌다. 신앙에 적대적인 새로운 과학과 학문의 도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19세기 복음주의는 자유주의 진영과 근본주의 진영으로 분열했지만 이전의 계몽주의적 성향은 양 진영에 여전히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자유주의 진영은 시대의 조류에 따라 새로운 과학에 주도권을 내주면서 미국 개신교 계몽주의의 옛 주도권을 새로운 형태로 보존하려고 했다면 근본주의 진영 은 새로운 조류에 저항함으로 그들 역시 미국식 개신교 계몽주의를 옛 형식과 내용 그대로 보존하려고 노력했다. 1870년경부터 개신교인들 사이에 널리 받아들여졌던 성서의 본질에 대한 합의가 변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본문 비평과 고등비평으로 얻은 결론이 기존의 견해에 의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성서관에 대한 개신교인들의 두드러진 반응은 한결같이 과학적인 성격을 띠었다는 점이다, 전문 성서학자의 절대 다수는 성서와 역사로부터 얻은 새로운 사실로부터 도출된 귀납적 결론 때문에 전통적인 이론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진영 역시 과학을 동원해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했다. 일단 논쟁이 이처럼 과학적인 형식으로 향한 후에는 그로부터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자유주의자들이 성서의 과학적 정확성에 대한 새로운 관념을 활용했던 것처럼 근본주의자들도 망설임 없이 이전의 미국식 계몽주의의 기준을 계속해서 성서에 적용했다. 결국 복음주의자들이 분열한 이유는 성서 비평을 둘러싼 문제 때문이었지만 그러한 분열이 계몽주의적 합리성에 대한 복음주의의 전통적인 확신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복음주의는 복음전도와 열정적인 도덕적 행동주의를 통해 교회의 즉각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데 큰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위해 지성을 사용해야 할 필요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그 댓가를 치러야 했다. 남북전쟁 이후 문화적, 지적 위기감이 급속히 확산되었고 복음주의자들은 지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압력이 직면했다. 미국 사회와 경제 구조는 급속히 변했고 성서에 대한 공격이 증가하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지적 자산에 눈을 돌렸을 때 복음주의자들은 가진 것이 거의 없음을 발견했다. 그들은 성서가 여전히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지만 과연 그 해답이 무엇이란 말인가? 누가 복음전도에 열정을 쏟듯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열정을 쏟았단 말인가? 안타깝게도 이런 물음에 대해 일관된 기독교적 사고를 위해 노력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19세기 내내 복음주의자들은 성서로부터 상황으로 그리고 상황으로부터 성서로 사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문화 전체가 일반적인 기독교적 가치를 고수할 때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지만 기독교적 가치관이 약화되기 시작했을 때 세상 전반에 대해 그리스도인답게 사고하지 못하는 복음의 신학의 약점은 너무나 분명해졌다. 신학적 자유주의가 출현했고 그에 대한 반응으로 이제 곧 근본주의라 불리게 될 복음주의 후예들은 기독교의 기본진리를 고수했지만 그러기 위해 그들은 세상의 문제로부터 도피해 내적 영성이나 종말적 예언에 몰두하게 된다.
5장 근본주의라는 지적 재앙
19세기 말 고등교육 제도의 재편만큼 북미 복음주의의 사고에 큰 영행을 미친 역사적인 변화는 없었다. 이런 변화의 결과로 그때까지 대학교육을 장악해 온 복음주의자들이 이 나라의 지적인 중재자로서 역할을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미국 대학 교육기관들은 폭발적인 성장을 했는데 이러한 성장의 동력은 복음주의 교회가 아니라 신흥 기업가와 주 정부였다. 그러면서 미국 고등교육에서 기독교적 성격이 점점 약화되었다. 미국 신흥 기업가들의 교육투자로 인해 대학의 실용적인 과학과 경영이론은 강조되고 도덕주의는 약화되었다. 그 결과 새로운 자연주의적 과학과 실용주의 철학은 자본가들에게 훈련과 기술을 제공하는 한편 신흥 산업자본에 대한 비판을 약화하여 막강한 기업세력을 조장하였다. 그리고 이들과 타협한 자유주의적 개신교는 전통적인 복음주의 신념에 등을 돌리게 된다. 이렇게 새로운 자본, 사회적 진화론, 자연주의적 과학, 타협적인 개신교가 결합은 미국에서 기독교 지성을 세우려는 보수적인 복음주의 노력이 좌절되었음을 의미했다.
근본주의 운동은 대학교의 변화를 비롯한 미국 사회 전반의 변동에 대한 반응이었다. 20세기 초에 등장한 근본주의자들은 전통적인 기독교 이해에 필수적인 많은 신념을 옹호했지만 그와 동시에 지성에 몇 가지 중요한 문제를 야기했는데 그것은 반지성주의라는 일반적인 경향에 새로운 자극을 더한 것이고 복음주의와 미국문화를 19세기 식으로 통합하는데 복음주의자들이 더욱 집착하게 만들었으며 세상에 대한 기독교적 사고를 억누르는 결과를 가져왔다. 전통신학을 수호하려는 근본주의자들의 신학적인 열정은 성결의 영성, 오순절 운동, 전천년주의적 세대주의라는 새로운 신학적 경향으로부터 나왔다. 이러한 신학적 경향의 공통점은 세상과 분리된 경건이 주는 평안함, 복음전도의 중요성, 종말에 대한 기대 등을 강조한 것이고 이것은 복음주의 사상이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근본주의 시대는 복음주의적 사고에 여전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근본주의가 세상을 바라보는 지적 경향을 철저하게 확립했기 때문이다. 근본주의는 반지성주의를 조장하고 19세기 미국 복음주의의 통합이 안고 있던 문제점을 강화했으며 잘못된 사상으로 바른 결론을 옹호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관점에서는 가현주의적이며 방법론에서는 영지주의적인 경향이 나타났다. 무엇보다도 근본주의는 새로운 형태의 반지성주의에 빠짐으로써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지성을 사용하려는 노력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지성과 관련된 근본주의의 가장 심각한 폐해는 19세기의 지적 습성을 무비판적으로 채택했다는 점이다. 특히 세대주의가 부추긴 초자연주의는 신앙을 방어했다는 미덕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적절한 관심을 기울이는데 실패했다. 그들의 극단적인 초자연주의에는 자연적 영역을 위한 충분한 자리가 없었고 진리를 전달할 때 일종의 영지주의적 경향을 띠었다. 세상의 상황과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성서구절을 인용했지만 사건과 상황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런 영향 아래 복음주의자들은 창조 세계에 대한 관심을 구속에 대한 묵상으로 거의 대체하고 말았다. 근본주의 운동의 영향으로 복음주의 공동체는 칭찬할 만한 성서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런 믿음이 적용되는 곳인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갖지 못했다. 복음주의자들이 근본주의의 주장을 따르지 않는 경우도 있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근본주의의 정서를 대체로 공유하고 있었기에 복음주의 지성계 역시 변변한 결실을 맺지 못했다. 문제는 세대주의, 성결운동, 오순절 운동의 특정한 교의가 아니라 이런 신학들이 부추긴 사고의 형식이고 복음주의가 거기에서 영향을 받은 지적습성을 오늘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6장 정치에 관한 성찰
세 차례나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19세기 복음주의 정치 참여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1896년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국대회 후보토론에서 행한 황금 십자가라는 제목의 유명한 연설은 그의 사상을 생생하고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19세기 말 정치에 대한 기독교의 다른 접근은 1891년 교황 레오 13세가 발표한 새로운 사태라는 제목의 회칙이다. 레오 13세와 브라이언은 둘 다 신앙이 현재의 관습에 의하여 재해석될 때가 아니라 물려받은 신앙의 진리를 새롭게 방향을 정하여 현재의 상황을 에워싸게 할 때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이 현대의 공적 위기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차이점은 20세기 복음주의 정치사상의 가장 심층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레오 13세가 종교와 교회가 나서지 않는 한 이 경제적인 문제의 실제적인 해법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한 반면에 브라이언은 그렇게 할 수 없었는데 그것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에 대한 미국적인 신념 때문만이 아니라 미국 복음주의의 자발주의적 전통 때문이기도 했다. 복음주의의 정치적 성찰은 반교회적이거나 무교회적이라 할 만한 도덕주의에 의존해 왔는데 이는 복음주의가 교회에는 중요한 역할을 부여하지 않으면서도 도덕적 행동주의를 강조하는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복음주의의 정치적 성찰은 대중주의적 성격을 띠었는데 이는 복음주의 자체가 대중주의적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복음주의의 정치적 성찰은 정의에 대한 직관적 개념을 활용했다. 일반적으로 복음주의자들은 공식적인 신학이나 역사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학문적으로 훈련된 윤리학자들의 의견보다는 상식적인 성서주의를 더 신뢰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성찰에 대한 19세기 복음주의의 공통된 틀은 도덕적 행동주의, 대중주의, 직관주의, 성서주의인데 이 틀은 20세기에도 여전히 복음주의자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압도적인 방식으로 남아있다.
브라이언 시기의(1896-1925) 복음주의는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는데 그 정치적 성찰은 성서에 의존, 개혁에 대한 확신, 가톨릭의 위협에 대한 가정, 그리고 역사를 사용하는 측면에서 직관적이었다. 브라이언 시대가 저물고 근본주의 시대가 시작되면서(1925-1941) 복음주의의 정치적 성찰에 분명한 변화가 찾아왔다. 이 시기는 이전 시대가 가지고 있던 개혁에 대한 낙관적 전망과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지지하던 태도는 점점 힘을 잃었고 문화적 비관주의와 정부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확신되면서 정치 참여에 대한 관심은 사라져 가는 대신 개인 전도와 개인 경건만 거의 배타적으로 강조하기 시작했다. 특히 1930년대는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정치적 행동주의가 약해지는 동시에 정치적 성찰도 절대적인 최저치에 도달했다. 근본주의 시대 이후 중요한 변화가 찾아왔지만 여전히 복음주의자들은 행동주의와 성서주의 사이의 전통적인 관계로 되돌아갔고 복음주의의 대중주의적 성격 때문에 정치적 성찰은 여전히 직관적이었다. 즉 분명하고 의식적인 신학구조나 체계적인 도덕철학, 철저한 역사적 분석, 신중한 사회과학적 연구의 도움을 추구하지 않는 정치적 성찰이었을 뿐이다. 미국 정치가 실제로 어떻게 발전해 가든 상관없이 복음주의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지난 두세기 동안 자신들을 규정해 온 행동주의, 성서주의, 직관주의, 대중주의를 계속 보여줄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이런 복음주의 역사가 보여주는 불균형이 반복된다면 복음주의 정치활동은 파괴적일 것이며 정치적 성찰은 부재할 것이다.
7장 과학에 관한 사고
과학에 관한 복음주의의 사고는 정치적 성찰과 같은 길을 걸어왔다. 대학교에서는 과학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급격한 세속화가 전통적인 기독교의 관심사를 압도해버렸고 복음주의 안에서는 과학과 복음주의를 조화시키려 했던 19세기 방식이 공격을 받게 되었다. 근본주의자들은 새롭게 떠오른 대중적 과학관에 반대하면서 자신들과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보도록 복음주의자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많은 복음주의 과학자들이 대개 과학 연구를 신학이나 다른 사고 영역과 철저하게 분리된 지식의 영역으로 간주했고 복음주의 운동의 과학 담론을 지배하는 논쟁적 이슈에 대해 침묵하였다.
미국 건국이후 몇 십 년 동안 복음주의자들은 과학의 연구 성과를 전통적인 성서해석과 조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복음주의자들은 이러한 과학관을 가지고 다윈의 진화론에 대응했고 그래서 다양한 신학적 입장의 개신교 지도자들이 다윈의 변이가설을 나쁜 과학이라고 거부하는데 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1870년대에 미국 과학자들이 유기적 진화론을 받아들이자 이제 복음주의자들은 전통적인 입장을 진화론에 맞게 조정할 것인지 아니면 이 새로운 도전에 대항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보수적인 반대자들은 진화론이 자신들의 성서 이해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즉각 거부했다. 그러나 프린스턴 신학교의 벤저민 워필드로 대표되는 복음주의적 진화론자들은 역사적 기독교의 틀 안에서 진화론을 인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19세기 마지막 30년간 벌어진 진화론 논쟁이 중요한 이유는 미국 복음주의자들에게 성서의 진리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문제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화론에 찬성하는 이들이나 반대하는 이들이나 모두 역사적 개신교가 계몽주의적 과학관과 기독교의 전통적인 관념 사이의 연결고리에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진화론 논쟁은 역사적으로 복음주의자들이 베이컨주의적 과학의 전제에 얼마나 집착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프린스턴 신학교의 찰스 핫지는 자연은 성서만큼 참된 하나님의 계시라고 말하면서 성서가 과학과 모순될 수 없다면 과학도 성서와 모순될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 그의 견해는 과학에 대해 기독교적으로 사고하는데 복음주의 지도자들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다.
복음주의 지성이 근본주의 신학이라는 제단에 바친 제물은 바로 이런 믿음, 즉 과학적 성과를 수용함으로써 성서해석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일반 문화에서 과학이 의심스러운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에 자극을 받은 근본주의자들과 그들의 후예인 복음주의자들은 신학은 과학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19세기식 확신을 포기했지만 성서와 과학을 조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며 베이컨주의적 방법론이 모든 주제를 연구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확신은 유지했다. 현대과학은 급격히 세속화되어 19세기에 널리 퍼져있던 태도 즉 하나님 지향적으로 과학을 연구하는 태도를 배제하기 시작했다. 과학계의 이런 급속한 세속화에 대한 반응으로 대두한 근본주의적 과학이 바로 창조과학이다. 창조과학은 기존의 지성계에서 가르치는 과학에 대한 대안적 과학으로 급부상했고 이것은 복음주의 역사에서 큰 혁신이라 할만하다. 창조과학이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대중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까닭은 창조론이 성서의 단순한 가르침을 구현한다는 많은 복음주의자들의 직관적인 믿음 때문이었다. 사실 과학적 세대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창조과학은 원래의 창조질서와 타락이후의 세계 사이에 중요한 구조적 단절이 있다고 생각했다. 창조과학과 그에 의해 조장된 태도는 현대 복음주의의 주요한 특징이 되었는데 창조과학이 복음주의에 입한 피해는 인간의 기원, 지구의 나이, 지질학적, 생물학적 변화의 원리에 대해 명확하게 사고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 것뿐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바로보고 이해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약화시킨 것이다. 창조과학은 자연세계의 지식에 대해 복음주의자들이 마니교적 태도를 갖게 만들었고 기독교와 경험적 과학의 만남에 대한 논의를 혼란에 빠뜨렸다. 창조과학의 비극은 성서에 대해서는 잘못된 베이컨주의를 유지하면서 과학에 대해서는 건전한 베이컨주의를 포기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창조론자들은 성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관해서 자신들의 선이해로 결정된 결론을 말하면서도 자신들이 마치 성서로부터 이끌어낸 단순한 결론을 말하는 것처럼 주장한다. 이런 점에서 창조론은 자연세계와 현대진화론이 제시한 형이상학적 이슈에 성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특정한 선이해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수많은 복음주의자들은 창조과학을 옹호함으로써 성서를 옹호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런 경향 때문에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능력과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복음주의자들은 20세기 열광적인 세속주의자들에 대해 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다가 하나님이 주신 책 두 권중 한 권을 위하여 다른 한권은 덮어버려야 한다는 입장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창조론의 핵심은 여전히 성서에 호소한다는 것이고 창조과학은 모든 주제에 대한 기독교적 연구가 따라야 하는 모범적인 방식으로 과학을 연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창조과학은 성서의 말씀으로부터 단순히 지구의 나이나 지질학적 문제에 관한 과학자들의 검토로 넘어가려하지만 이 과정은 말처럼 단순하지 않다. 자명하고 문자적이며 평범하고 단순하며 상식적인 성서해석을 그대로 과학의 영역에 적용할 때의 문제점은 초대교회에서도 분명히 지적한 바 있다. 아우구스투스는 [창세기의 문자적 의미]에서 성서의 첫 책에 대한 이전의 자신의 문자적 해석을 근본적으로 수정하면서 창세기의 첫 장들을 이용해 당시 과학과 모순되는 자연관을 조성하는 이들을 가차 없이 비판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우주론적 의미를 담고 있는 성서본문을 해석하면서 이성과 경험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성서를 잘못 해석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베이컨과 갈릴레오는 모두 성서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이라는 전통적인 견해를 받아들이면서도 경직된 성서해석이 자연에 대한 이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했다. 벤저민 워필드도 과학과 성서해석의 관계에 대해 동일한 관점을 제시하였는데 그는 인류가 얼마나 오래 전부터 존재했는가 하는 문제는 신학적으로 결코 중요하지 않으며 성서가 인류의 역사가 짧다고 말한다는 주장은 확실한 근거가 전혀 없는 연구를 통해 성서의 자로를 특정한 방식으로 해석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성서의 무오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워필드가 과학의 문제에서 창조론자들과 정반대의 결론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성서의 무오성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창조과학의 결론을 비롯한 과학의 특정 분야에 관한 결론으로 넘어가는 것이 결코 단순하고 상식적이며 직관적인 과정이 아님을 보여준다. 워필드는 말하길, 진화론과 관련해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 새로운 교리와 옛 신앙이 공존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진화론이 정말로 참인가하는 물음이라고 하였다.
8장 복음주의의 지적부흥은 진행 중인가?
복음주의 사상은 미국적 가치관과 개신교 가치관의 19세기적 종합에서 생겨나 근본주의와 근대주의 사이의 투쟁이라는 상처를 거친 일군의 지적 전제이다. 이런 역사를 감안할 때 복음주의 사상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근본주의라는 여과장치 덕분에 무신론을 걸러내고 초자연적 기독교를 보전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적인 측면에서 근본주의는 지성에 꼭 필요한 요소까지도 대부분 걸러내고 말았다. 그러나 미국의 복음주의 사상이 절망의 나락에 빠진 것처럼 보이던 그때, 새로운 생명이 약동하고 있었고 이것은 지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공헌하게 된다. 가장 극적인 이야기는 미국 근본주의 안에 지적으로 책임감 있게 기독교 신앙을 표현하려는 젊은 지도자들이 출현했다는 점이다. 근본주의자로 자라났지만 세대주의 유산을 분명히 거부하는 야심찬 젊은 설교자, 학자, 언론인들이 나타났다. 빌리. 그레이엄, 칼 헨리 그리고 헤럴드 존 오켕카는 전통적인 기신교의 정통을 고수하면서도 학문을 소중히 여기고 사회에 적극적 관심을 기울이는 신복음주의를 제창했다.
근본주의와 근대주의 사이의 격렬한 갈등이 역사의 배경으로 저물어가자 신학적 보수주의자들이지만 근본주의는 아니었던 사람들과 신복음주의자들과의 교류도 자연스럽게 다시 확립되었다. 또한 미국에서 중요한 공동체를 세웠던 이민 교회인 네덜란드 개혁교회도 미국 복음주의에 진지한 학문적 연구와 원숙한 철학적 유산을 나누어 주었다.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고향인 네덜란드에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를 세웠고 정치 이론과 정치적 실천에도 중요한 공헌을 했으며 그리스도인들이 예술과 문화 분야에 전면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또한 영국의 복음주의자들도 탈 근본주의적인 미국 내 다양한 분파의 복음주의자들과 유대관계를 맺으며 복음주의 지성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그 결과 미국, 영국, 캐나다 그 외 다른 지역에서 풍성한 복음주의 지성의 네트워크가 확립되었다. 영국 기독학생회의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통찰력, 메노나이트의 윤리적 가르침, 성공회의 문학적 자극, 고전적 개신교 유산을 존중하는 일치된 태도, 역사적 기독교 전통에 대한 존중 등은 지난 50년 동안 복음주의 지성계가 상당한 개선을 이루었음을 보여준다. 요컨대 근본주의-근대주의 논쟁이후 복음주의 지적 상황이 크게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잠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많은 부분이 복음주의 외부에서 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
복음주의 정치사상 역시 지성계 전반의 혁신과 궤를 같이 하는데 사회 및 정치사상에 기여한 가장 대표적 인물은 칼 헨리였다.칼 헨리의 노력보다 복음주의의 변화된 지형도가 정치사상의 발전에 더 유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즉 이제까지는 고립되어 있던 보수적 개신교 단체들이 복음주의 운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다. 특히 메노나이트와 네덜란드 개혁교회가 복음주의권에 새롭게 참여함으로 중요한 정치적 성과를 이루어 냈다. 이러한 최근의 복음주의 정치사상은 과거와 같은 직관적인 본능이 아니라 진지한 신학과 체계적인 사회분석에 기초하고 있다. 이처럼 자각적인 복음주의 사상을 향한 첫 발걸음은 직접적인 이론적 뒷받침을 받기도 했는데, 1970년대 초부터 적어도 일부 복음주의자들은 정치에 대한 신학과 신학적으로 분석한 정치학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직은 복음주의의 정치적 성찰을 큰 비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 이상의 의미는 가진다. 그러나 최근 정치사상의 발전에 기여한 요소 중에 역사적 복음주의에서 기원한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과학 분야에서는 근본주의 영향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다. 아마도 과학적 이슈가 성서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되고 응용과학의 경우에는 복음주의권에서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도덕의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복음주의 과학자가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기독교적이면서 과학적으로 책임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원인은 바로 복음주의 운동의 대중주의와 성서주의 때문이다. 자기 확신으로 가득 성서주의와 대중주의적 정치선동이 결합하여 의미 있는 결실이 기대되는 과학논쟁을 크게 제한하고 말았다. 대부분의 복음주의 대중들은 아직도 성서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며 창조과학을 정당한 과학이론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복음주의권에서 하나님과 자연세계에 대한 사고가 더디게 발전한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복음주의의 과학적 성찰을 근본주의가 계속 저해한 반면에 철학계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지난 몇 십년간 미국에서 정통 개신교의 철학은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 철학자들은 성서해석의 특수한 문제에 대해서도 정치학자나 과학자들만큼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고 그들은 대중의 시야에서 벗어나 연구 활동을 수행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기독교철학이 재부상하는데 기여한 다수는 복음주의자들이었지만 미국 복음주의의 독특성은 이러한 부흥에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 기독교철학 사상의 대부분은 가톨릭, 성공회, 북미개혁교회 그리고 탈 근본주의 진영에서 온 것이었다. 복음주의자들이 기독교 철학을 부흥시키는데 상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복음주의 지성의 근본적인 구조를 생각해 보아도 분명하다. 복음주의가 지적으로 강조하는 주제인 회심, 성서, 십자가중심성 등은 기독교철학의 갱신을 이끈 지적인 자극이 아니었다. 기독교철학의 갱신에 가장 중요한 지적자원은 네덜란드 개혁교회로부터 왔는데 그들은 회심을 그다지 강조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강조하지만 아울러 현재적으로 삶의 모든 영역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균형적으로 강조하였다.
현재 복음주의자들은 지난 몇 십년간 북미에서 진행되는 기독교적 지성의 갱신에 전면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철학분야에서는 르네상스라 할 만한 전기를 맞고 있고 정치사상에서도 주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런 기독교적 사고의 부흥을 이끈 지적 활력은 미국 복음주의의 역사적 자원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과거 복음주의가 사고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던 분야에서도 미국 복음주의가 지성에 기여할 만한 근본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복음주의 전통 안에는 지성을 추구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요소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복음주의자들은 고백주의 개신교인, 메인라인 개신교인, 로마가톨릭교도, 혹은 동방정교회 교인들이 계발한 사상 속에서 지성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9장 십자가라는 걸림돌
미국 복음주의로부터 기독교 지성을 계발할 수 있을까? 20세기의 역사적 선례만을 근거로 한다면 그럴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복음주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핵심으로 하는 기독교의 한 형태일 뿐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인간 존재의 영역을 얼마나 진지하게 다루시는지 말해준다. 이 영역은 구속이 전시되는 극장이며 하나님이 자신을 가장 온전하게 드러내기로 작정하신 무대다. 하나님이 죄인을 구속하기 위한 댓가를 치르실 정도로 창조영역을 사랑하셨다면 그 영역에서 구원을 누리는 죄인이 구속주를 예배하기 위해서는 그 영역의 실체를 헤아리는 노력을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는가? 많은 복음주의자가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구속은 이 세상 안에서 실행되었다. 천상의 영원한 존재라는 더 큰 실체를 축소하거나 그와 반대로 이 세상의 작동되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도 잘못일 것이다. 지성이 인간이 추구하는 다른 영역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영역임은 분명하다.
미국 복음주의자들은 문제에 부딪혔을 때 행동하는 경향이 있는데 기독교적 사고를 위해서는 이런 경향을 억제해야 한다. 활동을 더 많이 하는 것만으로는 복음주의가 물려받은 행동주의의 지적 취약성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해 지성을 사용하는 목적과 의도를 분명히 하고 꾸준히 노력할 때에만 비로소 필요한 균형을 이룰 수 있다. 복음주의자들이 지성을 추구하고자 할 때 가장 시급히 고쳐야 할 태도는 자신의 독특성, 이분법적 경향, 지적 직관주의와 관련된 태도다. 미국 복음주의의 독특성 중 많은 것이 기독교의 본질에 해당하지 않는다. 기독교 지성계를 발전시킬 가능성은 복음주의가 가진 이 독특성을 얼마나 기독교의 본질에 종속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독특성과 본질을 혼동한다면 삶을 변화시키는 기독교 신앙의 능력이 축소되고 기독교 지성의 갱신도 어려워질 것이다. 복음주의자들이 기독교 사상의 여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그들의 독특성 때문에 나타난 잘못된 이분법도 버려야 한다. 또한 지성을 계발하고자 한다면 복음주의자들은 직관주의적 성향 즉 첫인상에서 최종적인 결론을 곧바로 내리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 그런 직관을 더 나은 신학으로 바로잡지 못한다면 복음주의적 사고는 복음주의 신앙의 활력에 걸맞은 기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기독교 전통은 깊이 있는 신학적 통찰로부터 사고의 원리를 발전시켜 왔다. 복음주의자들은 이런 원리에 대해 배워야 한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을 존중하고 그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창조세계가 선하다고 믿고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온전히 밝혀내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런 지적 작업은 그 자체가 보상이다. 이를 통해 오직 한 분께 집중하게 되는데 오직 그분께 인정받는 것만이 중요하며 그분을 향해 온 마음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복음주의자들에게는 지적으로 내놓을 것이 별로 없다. 우리는 한 세기 이상을 허비했고 이를 벌충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꾸준히 지적 활동을 해 온 다른 기독교 전통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희망의 징조는 복음 자체에 있다. 궁극적으로 복음주의 사상의 가장 큰 희망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복음주의의 핵심적인 메시지에 있다. 복음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의 사역이 지성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체계적으로 무시해 왔다 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복음에 대해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성육신의 진리는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강조할 수도 있고 그분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음을 강조할 수도 있다.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은 복음주의자들이 성육신의 두 번째 강조점과 그것이 가지는 육신의 영역에 관한 사고의 가능성이 가지는 의미를 완전히 무시해왔다는 것이다. 성육신의 교리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택하셔서 택함 받은 이들의 구원을 성취하시는 무대로 삼기로 작정하셨다고 말한다. 속죄교리는 하나님이 장차 올 세상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삶을 위해 그분의 백성을 속량하셨다고 말한다. 신자들의 육신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신자들은 자신들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이 물질세계도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복음은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은혜이므로 이 세상에서 모든 인간이 존엄하며 그들이 이 세상에 하는 모든 일에 잠재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안다. 복음의 본질이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적 사고의 문제는 뿌리 갚은 영적문제이다.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예배하는가라는 이 질문을 통해 우리는 지성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되돌아간다. 만물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다면 복음주의자들은 그리스도와 그분이 만드신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삶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을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학문적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한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 세상을 구속하시고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주되심, 매순간 세상을 지탱하식 주관하시는 성력의 능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진정으로 모든 삶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생각하는 지성을 추구하는 일은 궁극적인 의미를 갖는다. 기독교 지성을 추구하는 일은 결국 지성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후 소감]
1. 복음주의가 가진 지적인 약점에 대한 저자의 지적은 날카롭다. 그리고 복음주의가 현대 기독교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가 기독교 전반에 미치는 영향 또한 크다 할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현대 복음주의의 이런 지적 취약성이 19세기 복음주의 등장이전의 개신교 전통에는 있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그래서 그것이 복음주의의 스캔들이 된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주로 복음주의가 등장하던 시기의 사회, 문화적, 정치적 이유들로 설명한다. 그러나 저자의 이런 설명은 다소 피상적이란 생각이 든다. 현대 복음주의는 갑자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개신교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고 이 말은 개신교 내부에 이미 지성에 대한 취약성이 있지 않은가 의심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저자의 말대로 중생, 회심, 개인구원을 강조하는 복음주의의 특성은 사실 이미 구원론을 중심으로 전개된 개신교 전통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2. 그러니까 문제는 복음주의의 복음 이해가 너무 편협하다는데 있다. 복음주의는 복음을 개인의 구원에 주로 국한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강조한 반면에 창조주이며 통치주로서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 것이고 이것이 바로 복음주의자들이 지성에 관심을 갖지 못한 이유가 아닐까 한다. 물론 개신교 전통에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비교적으로 복음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문제는 대중성을 가진 미국식 복음주의가 현대 기독교의 주류가 되었다는데 있다. 더 심각한 것은 20세기 미국식 복음주의에 근본주의 운동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세상의 근본주의 운동은 지적 도전에 대한 반작용으로 복음주의 내부에서 나타난 운동으로 복음주의의 지적 무능을 더욱 악화시키고 말았다. 세상의 지적 도전에 직면하여 복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지적 무능을 반성하기 보다는 오히려 퇴행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런 것을 보아도 복음주의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는 신학적 한계 특히 복음에 대한 편협하고 왜곡된 이해라고 보인다.
3. 저자는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이 가장 현저하게 나타난 영역이 정치와 과학 영역이라고 말하면서 이 두 영역에서 나타난 복음주의 지성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지적한다. 특히 정치적 성찰에 대한 19세기 복음주의의 공통된 틀은 도덕적 행동주의, 대중주의, 직관주의, 성서주의인데 이 틀은 20세기에도 여전히 복음주의자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압도적인 방식으로 남아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복음주의는 정치에 대해서도 지성적인 접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미국 정치가 실제로 어떻게 발전해 가든 상관없이 복음주의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지난 두세기 동안 자신들을 규정해 온 행동주의, 성서주의, 직관주의, 대중주의를 계속 보여줄 것이 확실하며 이런 복음주의 역사가 보여주는 불균형이 반복된다면 복음주의 정치활동은 파괴적일 것이며 정치적 성찰은 부재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4. 과학영역에서도 복음주의는 정치영역과 비슷한 태도를 취하는데 현대과학은 급격히 세속화되어 19세기에 널리 퍼져있던 태도 즉 하나님 지향적으로 과학을 연구하는 태도를 배제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과학계의 이런 급속한 세속화에 대한 반응으로 대두한 근본주의적 과학이 바로 창조과학인데 수많은 복음주의자들은 창조과학을 옹호함으로써 성서를 옹호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런 경향 때문에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능력과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고 비판한다. 결국 복음주의자들은 20세기 열광적인 세속주의자들에 대해 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다가 하나님이 주신 책 두 권중 한 권을 위하여 다른 한권은 덮어버려야 한다는 입장으로 후퇴하고 말았다는 저자의 지적은 정당하다. 저자는 창조과학은 자연세계의 지식에 대해 복음주의자들이 마니교적 태도를 갖게 만들었고 기독교와 경험적 과학의 만남에 대한 논의를 혼란에 빠뜨렸다고 지적한다.
5.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저자는 복음주의권에서 새롭게 등장한 신복음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이것 역시 복음주의가 가진 근본적 한계를 공유하고 있다고 보인다. 저자는 복음주의가 가진 구조적 문제 때문에 복음주의 자체에서 해결책을 찾기는 어렵다고 보면서 지성을 존중하는 복음주의 밖의 기독교 전통에서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복음주의가 가진 신학적 한계를 반성하고 극복하려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저자의 지적을 복음주의자들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