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성경의 인간관

메르시어 2023. 5. 9. 02:44

인간이란 무엇인가?

2015-05-27 16:58:17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 이해는 모든 종교와 인문학의 주제이다. 인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해가 있는데 기독교를 제외하면 대표적인 것이 불교와 헬라철학 그리고 유물론적 인간이해일 것이다. 불교는 인간을 본래적으로 선하고 깨끗한 존재로 이해하고 인간현실을 인간이 욕심으로 미혹을 받아서 번뇌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보고 번뇌를 제거하는 마음수행을 구원의 방법으로 제시한다. 헬라철학은 영원을 성찰하고 이데아를 꿈꾸는 것이 인간 이성이라고 규정하고 인간을 이성중심적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인간이 이성을 따라는 사는 삶을 방해하는 것이 육체라고 생각하고 이성적 삶을 위하여 육체를 제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헬라철학은 인간을 이성과 육체의 대립이라는 이원론적 구조로 이해하는 것이 특징이다. 사실 데카르트로 상징되는 근대철학도 헬라 철학의 사상을 계승하여 인간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 인식한다. 찰스다윈에서 기원하는 진화론적 사고는 인간을 신적 기원을 갖는 존재가 아니라 단지 진화의 산물로 주장하면서 인간에 대한 유물론적 이해를 구축하였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이런 전통적 이해들은 과학과 돈의 지배를 받는 현대 실용주의적 인간관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에 인간은 자신을 타인과 공동체 나아가서 자연과의 관계속에서 구정하였다. 즉 인간을 관계를 통해 규정되는 관계적 존재로 본 것이다. 그러나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점차 인간의 지율의식이 생겨나고 개인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인간을 독립적, 자율적, 개인적인 존재로 보기 시작했다. 근대의 과학의 발전은 이런 경향을 더욱 조장하여 자율적인 인간 능력의 무한한 가능성을 강조하였고 이제 인간은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자연을 통제하고 조작할 수 있는 존재로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은 자신의 행복을 성취하기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으며 그것만이 인간 존재의 유일한 목적인 것 처럼 간주하였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은 인간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아에 인간을 자기비하로 내몰고 있다. 과학과 인간지성의 발전의 산물인 진화론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유뮬론적 인간관을 조장하고 있다.

 

     인간 이해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 기원에 대한 이해이다. 인간 기원에 대한 이해가 결국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이해를 결정짓는다. 그렇다면 성경은 인간의 기원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관은 현대 과학-경제 시대의 인간관과는 전혀 다르다. 성경은 인간에 대하여 두가지 사실을 말하고 있는데 첫째는 인간은 피조물이라는 분명한 한계를 가진 존재라는 것이고 둘째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이다. 첫번째는 당연히 인간존재의 한계성과 제한성을 계시하며 인간은 결코 독립적, 자율적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나 두번째는 인간이 피조물중에서 매우 특별하며 최고의 존재임을 말해준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가능하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존재임을 말해준다. 인간 기원에 대한 이런 이해는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를 결정짓는다.

 

     인간은 피조물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라는 인간 기원에 대한 이해는 인간 존재의 목적이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창조자가 인간을 만들었다면 그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스스로는 자신의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창조하지 못한다. 인간의 삶의 의미라는 것 역시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졌을 때 이미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삶의 목적과 의미를 하나님에게서 찾아야 하며 하나님을 떠나서는 인간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당연히 삶의 의미와 목적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인간을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은 이에 대한 한마디로 대답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인간의 삶은 아무 목적이 없는 무의미한 것이 아니며 인간 삶의 목적인 인간 자체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삶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그의 계획을 성취하며 그가 원하는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한마디로 요약하여 주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 사명을 위하여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과연 나의 삶과 나의 일이 하나님나라와 그 의를 이루는데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현대의 영성은 자신을 부인하고 신의 뜻을 추구하는 종교보다는 자신 안에서 신을 발견하고 극대화하는 종교에 열광한다. 그러나 이것은 관계를 통해서 존재 의미가 살아나는 원리를  이해하자 못한 것이다. 어떤 고귀한 존재를 위한 존재는 그 고귀한 존재로 말미암아 존재가치를 부여받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독립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주장하는 것 보다 가장 고귀한 존재인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생각하는 것이 진정으로 자신의 가치를 찾는 길이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

2015-05-27 17:41:26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인간을 다른 피조물과 구별하는 핵심이다.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신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인종,성별, 빈부, 장애, 신분, 직업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인간이 타락하여 죄를 지었지만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 비록 그 형상이 훼손되기는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상 자체가 시라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고귀한 존재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을 대리하는 역할 곧 다른 피조물을 다스리는 역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둘째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이 남자와 여자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형상의 복수성과 사회성을 의미한다. 이것은 삼위일체하나님의 복수성이 그대로 형상이란 의미로 인간에제 전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성경은 그리스도야 말로 하나님의 형상의 원형이라고 말한다. 죄는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시켰지만 죄없으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의 완전한 모습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고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의 형상의 원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 신학자들은 다양한 견해를 제시하는데 하나님을 닮은 어떤 성품이나 특성(구조성), 하나님과 어떤 유사한 기능을 행하는 능력(기능성), 하나님처럼 관계적인 존재로 존재하는 것(관계성)이 그런 견해들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이 행하는 어떤 일에 관련된 것이라기 보다는 인간 자체가 본래적으로 가진 어떤 특성으로 보는 구조성의 견해가 가장 적합한 설명인 것 같다. 기능성이나 관계성은 구조성에서 파생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 존재의 내면에 있는 하나님을 닮은 어떤 성품이나 특성을 의미한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의 어떤 부분을 인간에게도 주셨는데 하나님의 속성중에서 인간에게도 주어진 성품적 속성을 신학적 용어로 "공유적 속성"이라고 한다. 그 성품들은 원래 하나님께 속하는 것이지만 창조하실 때 인간에게도 부여하신 것이다. 공의, 자비, 사랑, 선함, 평화, 거룩함, 진실함 등 하나님이 주신 이와 같은 성품들이 잘 발휘될 때 우리가 하나님을 닮은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란 말에는 인간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것만 아니라 하나님을 닮은 존재적 특징도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은 인간이 영적 존재, 지정의를 가진 인격적 존재 그리고 관계적 존재임을 말한다. 인간은 영적, 인격적 존재이기에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성을 닮아서 관계속에서 존재한다.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라는 삼중적 관계는 오직 인간에게만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으로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관계 속에서 살게 하셨고 관계속에서 인간의 진정한 모습이 발휘되도록 하셨다. 즉 하나님은 관계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관계성은 인간의 본질적 성격인 것이다.

 

     그러나 타락으로 인하여 우리 안의 하나님의 형상은 많은 부분이 파괴되고 훼손되어 버렸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이다. 비록 죄 때문에 타락했지만 인간에게는 여전히 선한 행동, 선한 관계, 창조적 행위 등과 같은 하나님의 형상의 긍정적인 모습이 남아있다. 구원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이기 때문에 이 땅에서 인간으로 사셨던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려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삶을 사셨는지 그 교훈은 어떤 것인지를 알고 그대로 따라가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일은 일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영적 훈련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지속적인 과정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의 삶에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은 인간의 존엄성의 근거가 된다. 하나님의 형상 사상은 다른 어떤 사상보다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와 인권을 고양하는 근거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에 비해 지극히 사소한 차이를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고귀한 존재로 평등하게 대우해야 한다. 둘째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상을 잘 관리하는 것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대 근동의 문화속에서 형상은 세상의 욍이신 하나님이 인간을 이 세상을 다스리는 대리자로 세운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어 세상을 다스리고 보존하고 관리하여야 할 역할을 잘 감당하여야 한다.

인간의 타락과 죄

2015-05-27 21:08:40


     세상의 모든 악은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인간에게서 나온다. 인간이 모든 악의 근원지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하나님은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셨고 인간 또한 선한게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하나님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악과 금령을 주셨고 인간이 이 금령을 범함으로 모든 문제가 시작되었다. 선악과 금령은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지유로운 의지로 하나님에게 순종할 수도 또 불순종할 수도 있는 존재로 지어졌다. 하나님은 인간이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하셨고 그것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사용하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하나님을 거역하는 방식으로 사용하였다.

     이렇게 해서 최초의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다. 인간의 최초의 죄가 어떤 과정을 거쳤고 그곳에 어떤 특징이 숨어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최초의 죄는 이후에 인간이 범하는 모든 죄의 원형과 같으며 우리가 범하는 죄의 성격도 최초의 죄를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초의 죄는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한 것, 그리고 인간이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 여기는 교만함이 죄의 본질임을 말하고 있다. 최초의 죄에 나타난 죄의 본질은 이후의 모든 죄에도 그대로 계승된다.죄에 대한 신구약의 개념들을 종합하면 성경은 죄를 "실패"로 본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죄는 과녁을 빗나가는 것,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 즉 하나님이 설정하신 목적이나 목표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죄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대항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최초의 죄에 대한 결과는 삼중적 죽음으로 나타났는데 그것은 육체적 죽음, 영적 죽음, 그리고 영원한 죽음이다. 이러한 삼중적 죽음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파괴된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 깨어짐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다른 관계 즉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모든 인간은 이러한 죄의 책임 가운데 태어난다. 첫 사람 아담은 모든 인류의 대표였기에 그의 죄는 그의 죄로 끝나지 않고 모든 인류의 죄가 된 것이다. 한 사람의 순종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으로 판정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과 최초의 인간이 온 인류를 대료하여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고 그래서 그의 순종은 인류에게 축복을 가져다 줄수도 있었고 반대로 그의 불순종은 불행을 가져다 줄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아담의 죄 때문에 모든 인류는 타락한 본성을 상속받게 되었다. 그래서 모든 인간 본성에는 죄를 지향하는 성향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타락한 본성은 인간 존재의 지정의 전체 걸쳐 총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이것을 일컬어 전적 타락(total depravity)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이 선한 행동을 전혀 할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신자든 불신자이든 모든 인간에게는 비록 훼손되어 있지만 아직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있고 또 일반은총으로 인하여 어느정도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선을 행하는 일에 늘 제한적이고 부분적이고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죄는 인간의 모든 것을 사로잡아 인간이 선을 행하는 일에 무능력하게 만들어 버렸는데 이것을 전적 무능력(total inability)라고 한다. 인간은 죄의 본성을 계승하였을 뿐 아니라 실제로도 직접 죄를 짓는다. 죄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죄성도 있는 것이고 그로 인한 실제적 범죄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인간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기를 회피하고 변명하려고 한다. 이렇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성향은 역으로 인간이 철저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상이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이리는 사실을 완전히 부정하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누구라도 개인적이고 도덕적인 차원에서 완전무결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죄에 대하여 주로 개인적, 도덕적 차원만을 생각하는데 성경은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죄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인간 사회는 개별인간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인간 외부에서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구조로 형성되었다. 이것을 스탠리 그랜츠는 "인간실존의 구조들"이라고 규정하였다. 이런 구조들은 사회적 필요에 의해 인간들이 만들어 낸것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구조들은 인간의 통제를 넘어서고 나아가 인간을 지배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문제는 죄가 개인의 삶뿐 아니라 사회의 구조들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죄는 자기 영역을 확대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개인, 관계,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사탄은 이렇게 죄로 물든 사회구조와 제도를 이용하여 인간을 구조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고 인간 사회를 평화가 아니라 탐욕과 착취와 싸움의 장으로 변질시킨다. 이런 악의 세력을 성경은 세상의 통치자, 권세자, 지배자들이라고 한다. 죄의 이러한 사회적 구조적 차원을 민감하게 느끼고 지적한 사람들이 구약의 선지자들이었다. 그들은 개인의 죄뿐 아니라 잘못된 사회질서와 제도를 지적하고 그속에서 이익을 보는 자들을 비판하고 회개를 촉구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개인적인 죄만을 강조하면서 사회적 불평등과 억압, 정치적 박해, 경제적 불공평, 압제, 경제적 착취를 악의 목록에서 제외한다면 이것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고 죄의 개념을 변질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사회구조적 죄에 대한 무지하고 무관심하다면 그것은 악한 구조의 동조자가 되는 것이다. 스티븐 모트는 "권세자들이 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개인들이 그들의 영향력을 따르고 그것을 섬김으로서 세상질서에 스스로를 일치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이처럼 사회적 악이 심각한 것이며 개인도 그 죄와 무관하지 않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먼저 우리는 사회적 악이 하나님의 정의에 어긋나는 것임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정의의 잣대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사회구조적 죄의 실체를 파악해야 한다.  우리가 악의 실체를 분별하는 작업을 할 때 비록 완벽할 수는 없을지라도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왜곡된 질서에 대한 수동적 복종의 태도를 버려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권세 잡은 자에게 굴복하지 않고 새로운 질서를 가져오시는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쪽으로 삶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다수가 인정하는 제도라고 해서 그속에서 이익을 취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것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이 옳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은 우리가 속한 세상의 악의 실체를 분별하고 그것과 싸워야 한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세상에서 기대하는 것과 다른 삶의 태도를 견지하면서 종말에 다가오는 하나님나라의 새질서를 중시하는 따르는 삶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런 삶이 새로운 피조물로 사는 것이고 이 땅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대속에서 하나님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대안적인 삶의 방식은 어떤 것이 있을지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