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하나님나라와 윤리

메르시어 2023. 5. 9. 02:42

하나님나라와 윤리

2015-05-27 14:27:31


   윤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윤리는 우리의 삶과 공동체 속에서 타자와 관계 맺는 방식과 절차에 관한 문제로서 사람이 마땅히 지키거나 행해야 할 도리나 규범이다. 그렇다면 객관적인 윤리규범은 존재하는가? 윤리학의 체계는 크게 나누어 절대윤리와 상대윤리로 구분되는데 절대 윤리는 절대적인 도덕법칙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데 반해 상대윤리는 도덕율 폐기론이나 상황윤리를 주장하거나 목적이나 결과가 윤리 규범의 옳고 그름을 판별한다는 목적론적 윤리관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 윤리는 절대 윤리의 범주에 속하는데 절대윤리는 의무론적 윤리 혹은 당위론적 윤리로서 윤리 규범 자체를 윤리의 절대 기준으로 본다. 특별히 기독교 윤리는 규범의 출처를 하나님의 뜻이나 계시에서 찾는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이란 하나님의 뜻이 반영된 객관적 말씀을 의미한다.1 주목할 것은 절대 윤리에서는 규범의 위계적 질서를 인정한다는 점이다. 즉 도덕법에는 높고 낮음이 있다는 것인데 예를 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사람보다 우선한다 혹은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정부에 순종하는 것보다 우선한다 혹은 사랑이 정직함보다 우선한다는 것 등이다. 절대 윤리에 이런 위계적 질서가 있다는 것은 현실에서 윤리적 결정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도덕적 갈등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규범의 위계적 질서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의 윤리는 하나님나라의 윤리이고 하나님나라의 윤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전제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나라의 윤리란 그 윤리 규범이 하나님의 통치르 반영하는 것이란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나라 윤리란 단순한 규범이나 도덕이기 이전에 그런 규범과 도덕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드러나고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삶의 준칙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나라 윤리는 인간 스스로 지키기를 기대하고 주어진 규범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나라 백성들이 통치에 순종하는 결과로 그들의 삶에서 나타나야 하는 의를 기대하고 주어진 규범이다.

 

   예수의 윤리는 더 나의 의, 곧 완전함의 구체적 모습을 기술한 것인데 이 윤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그 나라 백성들에게 실천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더 나은 의는 철저히 하나님의 통치의 결과로 주어진 은혜의 선물이다.2 하나님나라 윤리는 외적인 행동 이전에 그런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사랑과 순종의 마음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그 나라 백성이라면 마음에서 부터 하나님의 뜻에 맞는 감정과 생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나라 윤리의 완전한 성취는 늘 불완전함을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나라의 윤리는 그 나라와 마찬가지로 그 백성들의 삶 가운데 현재의 성취와 미래의 완성이라는 이미와 아직의 긴장속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각주 1

그러나 말씀에서 모든 윤리적 규범을 도출하는 것이 자명한 것은 아니다.말씀의 원리를 각 시대의 상황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는 말씀을 해석, 연구, 유추하는 노력이 요구되며 이것이 교회가 해야할 중요한 책무중이 하나이다.

각주 2

그러나 은혜의 선물이란 말이 하나님나라 윤리가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규범에 대한 구체적인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하나님나라의 영원한 진리이다.

  1. 그러나 말씀에서 모든 윤리적 규범을 도출하는 것이 자명한 것은 아니다.말씀의 원리를 각 시대의 상황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는 말씀을 해석, 연구, 유추하는 노력이 요구되며 이것이 교회가 해야할 중요한 책무중이 하나이다. [본문으로]
  2. 그러나 은혜의 선물이란 말이 하나님나라 윤리가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규범에 대한 구체적인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하나님나라의 영원한 진리이다. [본문으로]

한국 기독교와 공공성

2015-05-27 15:45:01


     한국 개신교의 위기는 공공성의 위기이다. 그동안 한국 기독교에 팽배한 사적인 기독교 신앙은 공공성의 위기에 봉착하였다. 신앙은 하나님과 개인의 문제로 문제로 제한하는 한국 개신교는 기독교 신앙을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통하고 세상과는 소통이 안되는 사적 기독교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교회가 성장하고 기도교는 한국 사회에서 지배적 종교, 다수의 종교가 되면서 공공성의 문제가 부각되었다. 이제는 사적인 삶의 영역과 공적 삶의 영역의 경계가 허물어 지고 있으며 기독교 신앙에도 점점 사적인 영역이 없어지고 있다. 문창극 장로의 교회내 강연이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이 그 한 예일 것이다. 이제는 신앙 얘기를 공적으로 담론화해서는안된다는 변명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신앙이 사유화되면 기독교의 진리 주장이 공적인 타당성을 잃게된다. 그러나 기독교의 복음은 역사와 공간을 넘어 보편적인 진리이며 당연히 공적인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기독교 신앙의 사유화나 배타성으로 인하여 공공의 영역에서 그 타당성을 잃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기독교의 위상 변화로 이제는 공론장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과거에 성속이원론을 가졌던 기독교는 80년대를 기점으로 교회가 성장하면서 그 성숙이원론은 자연스럽게 무너지고 교회는 급격히 세속화되었다. 세속화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문제는 세속화에 따라서 한국 교회는 유뮬론적 세계관에 영향을 받게되었고 그 결과 번영신학, 기복 신앙, 긍정의 힘 등의 등장한 것인데 이것은 부정적으로 한국 기독교를 반공주의와 친자본주의적 신앙으로 자리매김하게 하였다. 풍요와 번영을 추구하는 세속적 이데올로기와 기독교 신앙이 영합되어 급진적 제자도의 삶과는 철저히 유리된 신앙으로 변질되었고 이것은 결국 도덕적 해이를 가져오게 되었다.

 

   한국 기독교가 봉착한 이러한 공공성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과 고유성을 포기하지 말되 신앙의 배타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교회는 교회밖을 향해서 포용적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는 똘레랑스적 사고가 필요하다.1 그러나 배타성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기독교 신앙의 비범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배타성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포용할 것과 배타할 것을 구분하는 판단력과 유연성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또한 공적으로 타탕성있고 설득력있는 기독교 신앙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개신교의 위기는 공적인 타당성 구조를 상실함으로 설득력을 잃어버린데 있다. 교회는 공적목표를 더욱 많이 가져야 하고 세상과의 소통에 힘을 써야 한다. 지금 한국 개신교는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있다. 과거의 분리형 기독교인 근본주의가 적응형 기독교인 성장주의, 번영주의 기독교로 전환하였듯이 이제 한국 개신교는 좀더 통전적이고 실천적이며 똘레랑스적인 기독교로 전환되고 있다. 이런 전환기는 기독교 신앙의 공공성을 증진시키는 중요한 계기로 삼는 것이 한국 개신교가 당면한 역사적 과제일 것이다.

각주 1

이런 사고의 전환을 위해서는 일반은총의 신학을 더욱 정교하게 개발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1. 이런 사고의 전환을 위해서는 일반은총의 신학을 더욱 정교하게 개발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본문으로]

기독교의 패러다임들

2015-05-28 22:41:02


     근본주의 기독교는 밥 존스, 칼 맥킨타아어, 제리 팔웰, 팻 로버슨 등이 주도하였는데 주로 정통신학을 강조하는 배타적인 신학적 근본주의를 표방한다. 교권이나 정치에서도 근본주의적 태도를 갖는데 우라나라의 한기총이나 김홍도 목사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들은 배타적이고 전투적인 반공주의와 천민자본주의로 요약되는 정치, 경제관을 가진 분리형 기독교 패러다임이다.

     성장주의 기독교는 교회성장주의자인 맥가브란, 로버트 슐러, 조엘 오스틴 등이 주도하였는데 조용기의 사중복음, 강남 대형교회들, 교회성장운동이 그 좋은 예이다. 이들은 복음전도를 통한 교회 성장과 개인의 건강과 행복 성공을 중요한 가치로 제시한다. 이들은 근본주의에 비해 완화된 정치색을 가지고 있으나 대신에 철저히 세속화된 물신주의적 신앙을 추구한다. 이 패러다임은 복음과 신앙이 번영과 형통의 세속주의 형태로 변형된 적응주의 기독교이다.

 

    통전적 복음주의 기독교는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아울러 강조한 로잔언약과 신앙과 삶의 통합을 추구하는 기독교세계관에 기초한 패러다임으로서 대표적인 인물은 존 스토트, 로날드 사이더이다. 이들은 근본주의와 맑스주의적 사회변혁운동의 중간지점에 위치하여 있는데 우리나라의 성서한국 운동과 기독교세계관 운동이 그 사례이다. 이들은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나라를 구현함으로 신앙의 왜소성을 극복하고 기독교의 공공성을 강조한다. 통전형 기독교는 복음주의 신앙에 변혁형 기독교를 통합하여 양자의 균형을 추구하는 패러다임이다. 

 

      실천적 기독교는 주로 에큐메니칼 진영에 속한 패러다임인데 신학적으로는 세속화 신학, 정치신학,  missio Dei,  해방신학, 민중신학을 표방하는데 복음주의자인 짐 윌리스도 이런 계열에 속한다. 에큐메니칼 진영은 과거 국가비판적 저항주의에서 친국가 협력관계로 변모하였고 복음주의 진영은 순수 NGO를 유지하면서 시민종교로서의 기독교를 표방하는 변혁형 기독교 패러다임이다.

 

     똘레랑스 기독교는 종교다원주의를 인정하는 다원주의적 똘레랑스를 표방하며 종교간의 대화와 일치를 표방하며 신학적으로는 생태, 평화, 아나키즘, 대안운동을 추구한다. 홍세화, 오강남, 김용옥, 새길교회가 이런 계열에 속한다. 이들은 신앙의 목표는 인간적인 가치에 두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난관론을 주장하며 시민종교로서의 기독교를 추구한다. 기독교 복음의 정체성을 위협할 수도 있는 자유주의형 기독교 패러다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