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메르시어 2023. 5. 9. 02:28

어떻게 죽을 것인가?

2015-05-12 19:50:12


    사실 이 질문은 어떻게 살것인가라는 질문과 동일한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이 영원히 제거되기 전까지는 삶과 죽음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으며 동전의 양면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 산 만큼 죽은 것이며 죽은 만큼 산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모든 사람에게 죽음은 인생 최대의 문제이지만 특히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더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은 직면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인 죽음이 그리스도인에게는 이미 정복된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의 핵심은 죽음의 정복이며 그리스도인의 궁극적 소망은 부활의 약속이다. 우리에게 아직 부활의 약속이 남아있으므로 우리는 죽음이 정복된 사실을 제대로 실감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에 걸맞게 죽음에 직면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더 이상 두려운 것도 아니고 피하려고 애쓸 대상도 아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환갑잔치가 대세였는데 이제는 찰순 잔치도 아예 안한다. 이는 그만큼 우리 사회가 고령화 사회로 신속히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제 100세 시대를 목표로 어떻게 노후기에 건강하게 삶의 질을 확보할 것인가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려있다. 하지만 아무리 고령화 사회라고 해도 일반적으로 사람이 80대 들어서면 삶의 질은 현저히 떨어지게 되고 임박한 죽음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행동에 실천하는 나이는 70대가 적당하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70대이면 부모세대와는 이미 작별을 하였고 자식들은 충분히 장성한 시기일 것이므로 부모를 대해서나 자식을 대해서나 이제 미련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나이이다. 그러므로 70대는 더 이상 삶에 직찹하지 않아도 될 나이이며 이제 본격적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나이가 아닐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이 시기는 각종 질병으로 인하여 의료비 지출이 과도하게 되는 시기이다. 그리고 이 시기의 질병은 가벼운 질병이라가 보다는 일반적으로 치료가 어려운 노인성 질환이대부분일 것이며 사실 이 질병들은 이제 서서히 우리는 죽음으로 이끌고 가는 인도자인 것이다. 문제는 이 시기의 질병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과도한 의료비를 감수하고 적극적인 치료를 할 것인가 아니면  삶의 질을 확보하는 차원에서의 완화치료와 같은 소극적 치료를 할 것인가?

 

사실 노인성 질환을 적극적으로 치료하는데는 의료비용도 많이 들어가지만 고통스러운 치료과정에서 삶의 질도 현저히 떨어진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대부분 적극적 치료를 선택하는 것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가능하면 죽음과 직면하지 않고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런 태도일 것이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인은 죽음이 이미 정복된 것임을 알므로 그것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피하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불필요하게 과도한 의료비를 쓰면서 또 삶의 질도 확보하지도 못하면서 적극적 치료를 하기보다는 살아있는 동안의 삶의 질을 확보하는데 주력하는 완화치료를 선택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두번째로 생각할 점은 장기 기증의 문제이다. 사회에서도 장기기증 운동 단체가 있어서 장기기증 운동을 펼치고 있는데 그리스도인들이 이에 적극 호홍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 죽음을 준비하는 70대 그리스도인이라면 적극적인 장기 기증을 통해 질병으로 고통받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정신을 따르는 제자의 길이며 또한 그리스도인이 세상이 실질적으로 빛을 비추는 일이 될 것이다. 장기기증을 하면 불필요하고 허례로 가득한 장례문화도 바꿀 수 있다. 간단한 장기기증식으로 장례식을 대신하면 되는 것이고 장기기증후 시신처리도 장기기증운동 단체에서 적절하게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70대에 이른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질병에 대해서는 소극적 치료 그리고 장기기증에는 적극적 참여를 통해 기독교 정신에 따른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이 두가지 소극적, 적극적 태도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한국 기독교의 대답이 되고 죽음의 문화가 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