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고

율법 연구의 전망

메르시어 2023. 5. 9. 02:27

율법 연구의 전망

2015-05-03 20:54:14


   구약 성경은 하나님 이야기와 이스라엘의 이야기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언약관계를 중심으로 하나님 이야기와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서로 얽혀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의 관계속에서 정의되고 이스라엘 역시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규정된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에서 나온 것이 바로 율법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 당사자인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는데 그 목적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언약 백성다운 삶을 살게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언약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니끼 율법이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관계에서 나온 관계법이고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 관계를 규율하는 언약법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 언약법을 지킴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스라엘이 언약법을 어길 때 당연히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위기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구약성서는 언약법을 중심으로 전개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구약의 율법을 복음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파악했고 그래서 구약이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구원을 받는 율법주의 종교로 규정되었다. 그래서 복음과 믿임의 대척점에 율법과 행위가 자리매김되고 그래서 율법과  행위는 복음과 믿음을 반대하는 해로운 것으로 치부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이제 신약 시대에 구약은 불필요한 것으로 이미 지나간 것으로 버려지고 맗았다. 그러나 샌더스에 의해 제기된 유대종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과거의 전제들에 도전하였다. 종교개혁이후 유대교와 구약종교에 대한 인식은 율법주의 종교로서 기독교의 근본진리인 이신칭의와 복음을 반대하는 종교라는 반유대적, 반구약적 전제의 오류에 도전한 것이다. 샌더스는 유대종교는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는 율법주의 종교가 아니라 이미 은혜로 구원을 받은 후에 그 구원을 유지하기 위하여 율법을 지키는 언약적 신율주의 종교라고 규정하였다. 사실 샌더스가 유대 종교 연구를 통해 유대교를 규정한 원리는 언약적 신율주의는 구약종교를 정확히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샌더스에 의해 유대종교에 대한 전제가 도전을 받은 후에 바울 신학자들 가운데는 그렇다면 바울이 반대한 유대종교는 무엇이며 바울이 반대한 율법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대두되었고 이 의문은 결국 바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유발하였는데 이것을 바로 바울에 대한 새관점이라고 부른다. 결국 새관점 유대종교를 새롭게 보게 만들었고 구약을 신약과 단절된 이야기가 아니라 신약과 연속된 이야기라는 관점을 갖게 만들었고 이런 관점에서 새롭게 바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바울에 대한 새로운 관점으로 진행되어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바울이 반대한 것을 율법 그 자체가 아니라 율법에 대한 잘못된 태도였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바울은 결코 율법 자체를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았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이런 연구 결과는 구약에서 주어진 율법의 본의와 목적이 신약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시시한다. 율법이 주어진 목적, 그리고 율법의 정신은 신약에서 결코 달라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고 높은 차원으로 발전한 것이다.  

 

   사실 이 점은 종교개혁자들 가운데 칼빈이 일찌기 그의 명저 기독교 강요에서 주장하였던 바이다. 칼빈은 율법의 기능을 이야기하면서 울법에는 죄인을 정죄하는 기능 그리고 범죄자들에게 형벌의 두려움을 주는 부정적 기능이 있는데 이 두가지 기능은 모두 우리를 그리스도께고 인도하는 초등교사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칼빈이 율법과 관련하여 가장 강조하는 것은 율법의 세번째 기능이다. 이 세번째 기능이란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의 본질을 배우고 그 뜻에 순종함으로써 신자들의 삶을 인도하고 지향한 목표를 제시해주는 기능이다. 칼빈은 율법의 이  세번째 기능이 율법의 가장 주된 기능이고 또 율법의 본래의 목적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칼빈은 율법의 첫째, 둘째 기능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기능이라면 세번째 기능은 그리스도께 인도된 신자들에게 삶의 규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율법의 첫째 둘째 기능은 율법의 고유한 기능이나 본래의 목적이라기 보다는 사람의 부패한 본성으로 인하여 부정적으로 작용하게 된 기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율법의 본래적 기능인 세번째 기능이 사리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율법에 대한 칼빈의 이런  균형 잡힌 시각은 종교개혁의 후예들에게 전수되고 발전되지 못하였고 어젼히 율법을 복음에 반대되는 것, 믿음이 아니라 행위로 구원받음을 주장하는 루터식의 이원론적 인식을 전통적으로 이어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 바울에 대한 새관점 신학으로 인해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에 신약학자들이 눈뜨게 되었으며 그 결과 바울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더불어 율법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하에서 율법을 새롭게 연구할 필요가 있으며 이것은 위대한 종교개혁자인 칼빈의 율법관을 제대로 계승 발전하는 일이 될 것이고 나아가 믿음과 행위, 복음과 율법이라는 이분법적 신학을 치료하는 치료제가 될 것이다.

 

칼빈의 율법관

2016-01-16 23:55:30


  칼빈은 율법을 십계명뿐만 아니라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이 전수하신 신앙의 모든 형식으로 넓게 이해한다. 그래서 모세가 율법 제정자로 세워진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약속된 축복을 제거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통해 조상들에게 값없이 주어진 약속을 확인하고 유대인들이 바로 그 언약의 상속자임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율법이 주어진 것은 택한 백성들이 그리스도로 부터 멀어지게 만드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마음의 준비를 갖추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이다. 그리스도를 찾기 위한 참되고도 유일한 준비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정죄받은 처지를 납득하고 자신을 완전히 낮추는 것인데 율법이 바로 이런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율법을 완전히 준수하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의가 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누구도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으니 결국 율법을 통하여 사람은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더 잘 알게되고 오로지 절박한 죽음만울 깨닫게 된다는 의미이다.

 

  칼빈은 율법의 첫번째 기능으로 정죄하는 기능을 언급한다. 율법 특히 도덕법에는 하나님의 의가 드러남으로써 각 사람에게 자신의 불의에 대해 경계하고 알리고 깨우치고 정죄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율법 자체가 아니라 사람의 부패한 본성이다. 율법은 의롭고 신령하지만 사람의 부패한 본성이 하나님의 신령한 법에 대적하기 때문에 본래 구원을 위하여 주어진 율법이 죄와 사망을 이루는 것으로 바뀌어지고 만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칼빈은 율법의 정죄하는 기능이 우리를 절망으로 몰아넣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율법의 정죄는 우리를 심판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의지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고 기다리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칼빈은 율법의 두번째 기능은 범죄자들에게 율법에  부가된 형벌의 두려움을 갖게하여 그들을 억제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억제는 강압적인 것이지만 공공사회를 위하여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칼빈은 율법의 이런 두가지 기능은 모두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의 역할을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율법의 세번째 기능은 성령이 그 마음에 거하시고 다스리시는 신자들과 관련된 것인데 칼빈은 율법의 세번째 기능이 율법의 가장 주된 기능이고 율법의 고유한 목적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말한다. 성령을 통해서 신자들은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사모하는 상태에 있는데 율법은 그들이 사모하는 바 주의 뜻의 본질을 배우고 또 그 뜻을 깨닫고 있음을 확인해주는데 최고의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자들은 율법을 묵상하여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깨움을 받으며 돌이킴을 받으므로 율법을 통해서 발전하고 전진을 계속하게 된다고 말한다. 칼빈은 일부 무지한 자들이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율법을 내 던지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면서 만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로운 모범이 율법에 제시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바르고 정의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율법에서 떠나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칼빈은 신자들에게는 이제 율법은 엄격한 재판관처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완전한 삶을 권고함으로써 우리기 열심히 지향하여야 할 목표를 제시해준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칼빈은 율법의 첫째, 둘째 기능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기능이고 세번째 기능은 그리스도께 인도된 신자들의 규범의 기능을 한다는 것이고 세번째 기능이 율법의 가장 주된 기능이고 율법의 고유한 목적에 가깝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의 첫째 둘째 기능은 율법의 본래의 목적이나 고유한 기능이라기 보다는 사람의 부패한 본성으로 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할 율법이 도리어 정죄하는 것으로  변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칼빈은 구약의 율법이 폐지되었다는 의미는 율법이 신자들에게 무엇이 옳바른가를 명령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율법의 정죄하는 기능이 사라졌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율법이 폐지되었다는 것은 신자들에게 율법의 첫번째 두번깨 기능이 사라졌다는 의미이지 율법의 고유하고 본래적인 기능인 세번째 기능은 사라지거나 폐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칼빈은 의식법들은 그 효과는 폐지되지 않았지만 그 사용은 폐지되었다고 말한다.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그 의식들의 사용을 폐지하였고 또 그 의식들의 효력을 확증하였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의식법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으므로 폐지가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