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2015-03-23 14:17:50
성경에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창세기 2장 4절이다. 그 이전에는 하나님을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엘로힘이라는 단어가 쓰였는데 특별한 설명도 없이 갑자기 여호와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니까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다시 부연하여 설명하면서 1장에서 언급된 천지 창조의 하나님(엘로힘)의 이름이 바로 여호와이심을 강조한 것이다. 여호와가 바로 천지를 창조하고 사람을 창조하신 그 엘로힘이시란 의미이다. 그렇다면 여호와는 누구이신가? 여호와는 당연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이 여호와신데 바로 그분이 천지를 창조하신 엘로힘이시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처음 계시된 곳은 출애굽기3장 14절이다. 하나님은 모세와 대면하신 가운데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계시하여 주셨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처음으로 자신들이 섬기는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이심을 알게되었다. 그러니까 창세기 2장 4절에서 여호와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은 출애굽기에서 이미 계시된 하나님의 이름을 소급하여 적용한 것이다. 이 점은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시사한다. 창세기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이이 자신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여호와가 바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차원에서 과거를 회고하며 기록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창세기의 메시지는 출애굽의 의미를 되새겨 주며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밝혀준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은 바로 여호와 신앙, 곧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계시된 여호와란 무슨 의미인가? 출애굽기 3장 6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을 이스라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 야곱, 이삭의 하나님이시라고 소개하신다. 그러면서 모세를 애굽에서 학대받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모세는 13절에서 자기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그들의 하나님이 자기를 보내셨다고 말할 때, 그들이 묻기를 그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며 무어라고 대답하느냐는 질문을 하였다. 이 질문에 대해 하나님은 "나는 나이다(I AM WHO I AM)" 라고 대답하셨다.
"나는 나이다(I AM WHO I AM)" 이것이 바로 히브리어로 "여호와"라는 단어가 된다. 이 대목에서 여호와의 의미가 "나는 나이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스스로 나타내는 자이다" 등등 해석이 분분하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1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시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셨다 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또 16절에서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반복하신다.
이상의 문맥에서 보면 여호와라는 이름은 지금 이스라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어 애굽에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이 바로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돌보시던 그 하나님이시라는 의미가 된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불쌍히 여기시고 돌보시던 하나님이 이제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시어 애굽에서 건지실 것이라는 말이다. 결국 여호와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바는 이스라엘의 조상을 지키시던 하나님은 또한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란 뜻이 된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니까 여호와라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은 "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시다." 라는 뜻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언약을 맺으셨다. 그리고 비록 아브라함은 죽었지만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 언약을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삭과 야곱에게 지켜가셨다. 그러므로 이제 애굽의 압제에서 고통받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은 바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에서 나오는 행동인 것이다.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이 여호와 신앙이라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여호와는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이시며 그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바로 이 여호와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지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이스라엘 신앙고백의 핵심이다.
이렇게 이스라엘과 관계하시며 자신을 드러내시던 여호와 하나님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 인류를 향하여 자신을 드러내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두가지 약속을 하셨는데 첫번째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큰 민족을 이루며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시겠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천하만민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첫번째 약속이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으로 이루어졌다면 두번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니까 에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서 오신 것이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에 따라서 이루어졌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역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에 따라서 이루어진 것이다. 결국 이 두가지 성취는 모두 하나님이 언약에 신실하신 분, 곧 여호와이심을 입증한다.
언약에 신실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신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며, 죽으심과 부활사건이며 다시 오실 재림 사건인 것이다. 그러므로 에수 그리스도 사건은 바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 때문에 이루어진 사건이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에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 곧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 나타났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믿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의, 곧 언약적 신실함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이 여호와 신앙이었다면 신약의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중심 역시 여호와 신앙일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어제(구약)나 오늘(신약)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구약의 신자나 신약의 신자나 동일하게 궁극적 소망은 영원토록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곧 여호와이시다.
하나님의 이름
2016-04-24 18:51:12
성경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하나님의 이름은 엘로힘인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신적 존재를 지칭하는 보통명사이다. 고대 근동에는 각 종족마다 자신들의 다양한 엘로힘들이 있었는데 주로 태양이나, 별, 달 등 자연을 자신들의 신으로 섬기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로 신, 혹은 God, 하나님,, 이런 단어들은 호칭이라기 보다는 신적 존재를 가리키는 보통명사일 뿐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보통 명사를 사용하여 신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은 신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했다는 말로 시작한다. 그러니까 성경이 말하는 신은 천지를 창조한 존재였다. 그런데 사실 만물을 만든 조물주에 대한 관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인 신 개념이니 성경에서 신이 천지를 만들었다는 말로 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별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물론 그 신이 일월성신을 만들었다는 대목에서는 자연물을 신으로 섬기던 고대 근동의 신관과는 분명히 차별화되는 신관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조물주에대한 보편적인 신관을 넘어서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창세기 2장 4절 부터는 신에 대한 호칭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것은 신 앞에 여호와라는 신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것은 창세기 1장에서 소개한 조물주로서의 신이 바로 여호와라는 의미이다. 신이라는 명사는 보통명사이지만 여호와라는 명사는 신의 이름으로 주어진 고유명사이다. 이스라엘이 섬기는 신의 이름이 바로 여호와인데, 그들은 자신들의 신을 여호와라고 부름으로써 자신들이 섬기는 신을 다른 신들과 구별하고 있다. 그러니까 창세기 2장 이후에 등장하는 여호와 하나님이란 신의 호칭은 이스라엘이 섬기는 신인 여호와가 바로 창세기 1장에서 소개한 바로 그 신, 조물주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사실 여호와라는 신의 이름이 처음 주어지는 것은 출애굽기 3장14절이다. 어떤 신이 모세에게 나타났는데 그 신은 자신을 모세에게 소개하면서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자 모세는 자신에게 나타난 신의 이름을 묻는데 이때 주어진 이름이 바로 여호와였다. 그런데 여호와라는 이름의 의미는 무슨 특별한 의미, 흔히 말하듯이 스스로 계신 분, 자존하신 분이라는 형이상학적 의미가 아니다. 그 문맥을 자세히 보면 여호와라는 말은 "내가 네 조상의 하나님이듯이 너에게도 하나님이다" 이런 의미이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신의 이름이 된 "여호와" 라는 말은 "이스라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진 신"이라는 의미 정도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모세에게 나타난 신은 이스라엘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어떤 신인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는 아브라함을 택하고 부르신 신이며 이삭과 야곱의 신이며 이제 모세를 불러 아브라함의 후손을 애굽에서 건져내려는 신이시다. 그는 아브함과 언약을 맺으신 신이시며 이제 그 언약을 따라서 이스라엘을 기억하고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는 신이시다. 바로 이런 의미를 담은 신의 호칭이 바로 여호와다. 신은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로 알려주신 후 이는 자신의 영원한 이름이고 이스라엘이 대대로 기억할 신의 이름이라고 하셨다. 이런 맥락을 염두에 두고 다시 창세기 2장으로 돌아가면 창세기를 기록한 저자는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가 바로 모든 민족들에게 보편적 신으로 여겨지는 바로 그 조물주이심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민족들이 그 존재를 어렴풋이 상상하고 있는 그 조물주, 세상의 창조주 그가 바로 이스라엘이 섬기는 바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이며 그 조물주는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선명하게 드러내시고 이스라엘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창세기의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에서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아브라함이 등장하는 12장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12장 이전의 창세기 이야기는 말 그대로 천지창조로 시작되는 인류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앞서 우리가 관찰한 맥락을 염두에 둔다면 창세기 12장 이전의 이야기는 단순히 인류 기원과 창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스라엘 이야기를 위한 배경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창세기의 저자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신, 모세를 부르시고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로 계시하신 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신, 그분이 바로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 조물주이심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신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택하시며 이스라엘과 특별한 관계를 맺은이유는 바로 그 신의 창조목적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함의하고 있는 것 것이다.
이렇게 구약에서 이스라엘에게 계시된 여호와라는 신은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만의 부족신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한 신, 모든 세계를 짓고 모든 민족을 만든 신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 신은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은 강대하게 되고 천하민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하시려고 그 신은 계획하신 것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의 신의 이름인 여호와를 신성시해서 감히 부르기를 두려워하였고 그 대신 자신들의 주인이라는 의미의 아도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다. 감히 여호와라고 부르지 못하고 아도나이라고 불렀다. 주목할 것은 "여호와"든 "아도나이"든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신을 부를 때 그 호칭의 특징은 존재론적이 아니고 대단히 관계론적이라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의 신관은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역사적이고 관계적이다. 사람들이 어렴풋하게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그 신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정확하게 알고 체험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것이 구원이라면 그래서 세상의 구원이 이스라엘로 부터 비롯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