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고

다시 보는 복음과 율법

메르시어 2023. 5. 8. 10:58

다시 보는 복음과 율법

2015-01-07 22:04:43


  복음과 율법 이것은 해묵은 주제이지만 종교 개혁의 중심 주제였으며 지금까지도 신학적 혼란과 논쟁이 진행중인 주제이다. 그 동안 복음과 율법을 대립적으로 보고 복음이란 율법과 무관하게  구원을 받는 기쁜 소식정도로 이해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생각해 보기전에 우리는 먼저 복음과 율법 각각에 대하여 성경이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지 귀를 기울여 보자.

 

  먼저 복음이란 무엇인가? 간단한 질문은 아니지만 가능한 쉽고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복음이란 말 그대로는 기쁜 소식이나 복된 소식이란 의미인데 중요한 것은 이런 문자적 의미가 아니라 복음을 구성하는 내용이 무엇이길래 기쁘고 복된 소식이 되느냐는 것이다.

 

  복음은 당연히 그리스도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을 뿐더러 성경은 심지어는 그리스도 자체가 바로 복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스도는 구약 역사에서 면면히 내려온 메시야 대망의 성취로서 오신 분이시다. 그러니까 복음이 무엇인지 알려면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알아야 하고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알려면 구약의 메시야 대망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구약의 메시아 대망은 간단히 말하면 이스라엘 역사의 황금기를 장식했던 다윗 왕을 능가할 위대한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에 대한 대망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의 뒤를 이어 메시아가 등장하여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하고 세계적으로 위대한 나라를 세울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이스라엘의 이런 기대는 구약의 다윗왕조의 멸망이후 포로기를 거쳐 선지자들이 선포해 온 예언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고 그가 자신을 메시아라고 주장했을 때 유대인들은 그를 메시아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스라엘이 기대하던 메시아 상과는 너무도 멀었고  로마의 압제에 대해 무력했으며 심지어 로마의 무력에 의해 처형을 당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 살아났고 그의 부활을 통하여 그가 구약에 약속된 메시아라고 믿는 사람들을 통하여 기독교가 시작되었다.

 

  기독교의 교리를 정립하고 기독교를 세계적인 보편 종교로 발전시킨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놀라운 가르침을 제시하였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 이방인이라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며 심지어는 유대인도 이제는 예수를 믿지 않으면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일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놀라운 말을 한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말했고 종교개혁의 핵심 기치가 되었던 "이신칭의"의 교리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신칭의 곧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선포는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말이고 이것은 이방인이든지 유대인이든지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인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고 이방인에게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이 막혀있었는데 이제는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모두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이 새로운 길 이것이 바로 복음이고 기쁜 소식이 된 것이다. 이렇게 복음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는 새로운 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열린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곧 복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생각해 볼 것은 당연히 율법일 것이다. 율법이란 무엇인가? 율법의 출발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후 모세를 통하여 맺어진 시내산 언약에서 찾아야 할 것이며 그 언약에서 주어진 십계명과 주요법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계명들일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킴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백성이 된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을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것이며 시내산 언약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고대 근동의 종주권 조약의 형식을 빌어서 확인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율법이 주어진 것은 시내산 언약을 맺은 이후이지 언약 이전이 아니었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킴으로 언약 백성이 된 것이 아니라 언약 백성이 되었으므로 율법을 지키라고 준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율법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된다. 율법이란 그것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거나 하나님과 언약을 맺게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으므로 맺어진 그 관계로 인하여 발생한 관계법 혹은 언약법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으므로 이제 이스라엘은 언약 상대방으로서 언약적 의무를 갖게 된 것이데 이것이 바로 율법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아무 관계도 없다면 율법도 불필요한 것이다. 율법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이 언약백성 답게 살도록 주어진 삶의 준칙이었다. 

 

  그러니까 율법은 관계 그 자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맺어진 관계때문에 발생한 법이며 그 관계를 규율하기 위하여 주어진 법인 것이다. 이와 달리 복음은 이미 설명하였듯이 관계 그 자체를 만드는 것이다. 복음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새 언약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과 율법의 상호관계가 무엇인지 분명히 보게된다. 복음이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언약이고 율법이란 하나님과 맺은 관계로 인하여 발생하는 관계법 혹은 언약법인 것이다.

 

  이렇게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이해한다면 복음과 율법이 대립될 이유도 혹은 복음과 율법이 이원론적으로 혼동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이 윈리는 구약이나 신약이나 동일하다. 구약에서도 율법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관계를 규율하는 법으로서 언약의 회복, 유지 발전을 목적으로 주어진 것이듯이 신약에서도 율법은 신약 백성이 하나님과 맺은 새 언약 관계를 규율하는 언약법이며 새 언약의 백성을 위의 삶의 준칙이 되는 것이다.